전생검신 88권 01화
내 외침을 들은 아지다하카는 안광을 번득였다.
[검신(劍神)이라…… 광오하구나. 호사가들의 무명(武名)이 아닌 진정한 검신의 경지를 원한다면, 지금의 그대라 해도 광오한 목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검신이 되고싶다면 우선 눈앞의 나부터 넘어보아라……!!]
촤악
아지다하카가 다시금 검으로 간격을 겨누는 듯한 기수식을 취했다. 나는 그 기수식을 보자마자 어떤 상황인지를 바로 짐작했다.
‘신역절기……!!’
무한의 모래사막에 잠겨 버리는 듯한 그 광대한 절기는 암야참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었다. 방금 전 대적해봤던 바로는 아무리 [흐름]을 읽는 능력이 있어도 그대로는 이겨낼 수 없다. 왜냐하면 대자연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기술이기에, 자연재해를 미리 알고 있더라도 인간의 손으로 폭풍이나 화산폭발을 막아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참(一斬)으로 사막 그 자체를 벨 순 없다. 어떻게 해야 저 기술을 막아낼 수 있는 걸까?
‘아까 같은 운을 또 기대할 수 있을까…….’
…….
그러고 보니 정말 어떻게 내가 아지다하카의 공격에서 큰 부상을 안 입었던 걸까? 아지다하카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사실 그 정답은 명쾌하게 나지 않았다. 이 국면에서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비밀이 있다는 직감은 들었지만 그 실체를 알 수 없어서야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 내면에 뭐가…… 대체 뭐가 있는 거야…… 대체 무엇이 신역절기에서 내 몸을 보호해주는 걸까.’
그리고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왜 다른 때는 반응하지 않다가 이 일전(一戰)에서 이상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것 또한 내 몸을 호신(護身)해주는 기묘한 잠재력과 연관이 있을 것만 같았다.
‘…… 내면?’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구세(求世)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건 전신(戰神) 구천현녀(九天玄女)의 술법이구나.]
[인과(因果)의 축적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대라신선이 자신의 힘을 따로 비축해둘 수 있는 보조용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선에 따라서는 우주의 종말조차도 결과가 아닌 경우가 있을 수가 있겠지…….]
그와 동시에 내 영혼을 관통하는 단 한마디의 말.
[무신(武神)이 처음으로 그대에게 미소를 지었다.]
무신이…… 내게 미소를 지었던 날…….
나는 그저 그가 내게 힘내라는 뜻으로 지나가듯이 격려를 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대라신선이라도 인간의 감정이 남아 있기에 공치사를 으레 하고는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일에, 그게 액면 그대로의 의미였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서 받았던 가르침을 중얼거렸다.
“기(氣)는 심기혈정(心氣血精)의 원리에 따라 도야한다. 기와 의념은 이어져 있다…….”
그리고 심기혈정에 따라 새로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형성된다.
그 당시에는 와 닿지 않았던 가르침이 지금껏 내가 소화했던 신기(神技)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방면으로 이해되는 게 느껴졌다.
사앗
나는 뇌신검무(雷神劍舞)의 자세를 취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내게 알맞는 검식(劍式)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일까? 뇌신검무 또한 좋은 검술이지만 이미 내게는 그 검술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술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뇌신검무는 실전성에 있어서 그리 좋지 않은 제사용 검무인 것이다.
그런데 무인(武人)에게 있어서 극한(極限)이라 할 수 있는 신역절기를 상대로 하필이면 왜 뇌신검무를 꺼낸 것일까?
나 스스로도 나에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내 나는 나 자신을 이해했다.
‘멋지니까…….’
뇌신검무는 멋지다. 그냥 그 이유 외엔 없다.
독고성의 가르침으로 검명(劍鳴)의 깨달음으로 검뢰를 얻었던 바로 그 때, 나는 비로소 무인으로서 제대로 한 발짝을 내디뎠다. 뇌신류의 정수(精髓)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검뢰의 경지를 통해서 내가 겉핥기가 아닌 진심으로 뇌신류의 문인이 되었다는 소속감 또한 느꼈던 것이다.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 때의 검명(劍鳴)이 목소리로 변해서 메아리치는 게 들렸다.
[번개를 원하는가?]
[과연 그 허황된 번개로 이 검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춤추며 노래하던 그 96초의 검무(劍舞)!
나는 그 당시에 뇌신류의 검예(劍藝)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천상의 검기(劍技)라는 사실에 내 검과 뇌신류의 뜻이 하나라는 걸 깨달으며 화답했다. 그로 인해 검뢰를 깨달았으나 사실 나는 그 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패왕(覇王)만이 휘두를 수 있는 천지멸절(天地滅絶)의 검(劍).
정말로 뇌신의 검무는 그 패왕의 검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일까?
…….
아, 나는 그 때 이후로 줄곧…… 분했던 것이구나.
위대한 깨달음의 검명(劍鳴)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검뢰의 깨달음을 갈무리하는 것에 그쳤던 그 때의 나 자신…… 그리고 그 수준의 미천함이 내내 아쉬웠던 것이구나!
나는 이 감정을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설마 내가 지나쳤던 그 순간에 그 수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담겨져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대체 왜 지금에 와서 이 감정을 새삼 알게 된 것일까.
[이유 같은 건 강해지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바로 그 때 과거 진소청의 한마디가 머릿속을 스쳤다.
“……!!”
그래…… 그 말은 초기 전생 이후로 금과옥조처럼 내 삶을 지배했다. 눈앞의 시련을 견뎌내기에 너무 약하니까 잡생각 할 시간에 일단 강해지고 나서 생각하는 게 무조건 옳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 강해지고 나니까 이제야 ‘생각’할 단계가 찾아온 것이다.
동시에 나는 이 세상의 약육강식을 다시금 처절하게 깨달으며 몸서리 쳤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한마디는 냉혹한 현실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약한 자는…… 화를 낼 자격도…… 억울해할 자격도 없다!!’
그래.
과거에는 약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나는 이제 뇌신류의 종사를 자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때의 억울함에 대항할 때가 된 것이다.
‘나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것…….’
[그것]에 의념으로 말을 건다.
치링!!
다시금 그 때의 검명(劍鳴)이 머릿속에서 울린다. 그리고 나는 예전의 그 때처럼 96초의 검무가 눈앞에서 환영처럼 흐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건 무사시와 싸우기 전에 수련했던 것처럼 내 뇌내에서 의지력으로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다.’
명백히 내 뇌의 영향력을 벗어난 무언가가 만들어 내는 검명 -
사실 처음부터 그 검명은 내 안에 있었을 뿐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리라.
파바바밧
검극(劍戟)이 춤추며 노래하는 황홀한 경지 - 나는 이 96초 검무의 시작과 끝을 외우고 있고 많이 보아왔으나 그래도 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 절세검식(絶世劍式)에 깃들어있는 깨달음이 이제야 조금 보이는구나.’
검뢰도 얻지 못했던 하찮은 경지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게 보인다. 예전에는 그냥 멋있으니 두근댄다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이 패왕의 검식이 품고 있는 중후한 공격과 방어의 절묘한 조화가 읽혔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완벽하게 잘 짜인 무예의 도식(圖式)인지를 깨닫자 절로 탄식이 나왔다.
‘정말 대단하다! 이 자유로움과 강함…… 완성되지 못한 뇌신류의 검술로는 당해내지 못할 수밖에!’
부랴부랴 검뢰의 깨달음으로 도피한 게 창피할 정도다. 그 때도 아득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조차도 경외심이 들 정도라니.
정말로 이걸 당해낼 수 있을까?
뇌신류의 검술을 이만큼이나 발전시켰다면 정말로 손이 닿일까?
“……“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이 검술에 담겨 있는 약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유초(有招)다. 초식이 남아 있으니 약하구나.’
이걸 약점이라 해야 할까?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96초라고 하는 ‘초식’ 그 자체가 한계로 느껴졌다. 분명히 형태가 있는 검술로서의 완성도는 뇌신류의 웬만한 검술을 쉽사리 뛰어넘고 있었지만 짜임새있는 강함 그 자체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손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공손대랑(公孫大娘)의 자연검(自然劍)!
무형(無形)이기 때문에 초식(招式) 자체가 없는 검결!
나는 그 신역절기를 상대로는 거의 손도 쓰지 못하고 일패도지했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형태가 없기 때문에 초식의 약점을 찾아서 파훼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자연검과 달리 이 패왕의 검식은 아무리 완벽하다한들 초식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해석할 수도 파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록 당장은 파훼할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형태가 존재하는 것의 약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자연스레 공손대랑과의 전투경험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이 검명에 어떻게 해야 대적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성큼
패왕(覇王)의 검무(劍舞)가 춤추는 환영 속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천지멸절의 검기가 그대로 단칼에 내 심령을 베어 버리려고 덮쳐오는 순간,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뇌신검무로 패왕검을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마음 그 자체를 번개로 벼려내는 것이다!
번쩍!!
찰나지간에 패왕의 검과 뇌신검이 격돌하는 환영을 끝으로 나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치지지직…….
나는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내 철검이 변해서 완전한 뇌검(雷劍)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검뢰를 끌어내서 뇌령지기를 검날에 덧씌우는 게 아니었다.
아니, 이건 지금까지의 검뢰가 아니다!
‘…… 좋아!’
그리고 그런 내 변화를 기다렸다는 듯 아지다하카는 그대로 검을 횡으로 휘둘러서 공격해 왔다.
아르겔도 검제(劍帝) 불멸외천기(不滅外千機)
제일식(第一式)
신역(神域)
항하사(恒河沙)
츠아아앗
다시금 천지를 에워싸는 듯한 모래의 환영이 나타났다. 모래의 기운과 완전히 동화된 듯한 아지다하카의 심어(心語)가 내 심중으로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받아라!!]
투두둥
나는 이 항하사의 검기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얼핏 절대지경이 의념으로 형상화한 환영과 비슷해 보였지만, 검성 아지다하카의 항하사가 차원이 다른 점은 이 알갱이 하나하나에 [작은 굴레]마저 무시할 수 있는 힘이 깃들어있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항하사의 공간에서 흩날리는 모래 하나에 스치기만 해도 그대로 치명타로 작용한다는 것!
무한이나 다름없는 신역의 검날이 난무하는 모래사막에서 멀쩡히 살아나갈 자가 얼마나 될까?
‘그래도 겁나지 않는다.’
나는 이미 대응책을 찾아놓은 상태였다. 나는 아무리 수많은 모래알갱이가 흩날려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뇌신검무(雷神劍舞)를 펼쳐내었다.
치지지지직
그 순간, 나는 전신이 뇌정(雷精)의 덩어리로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예전의 그 때처럼 한 순간에 탁 하고 깨달음이 이어지지 않고 어느 순간 끊기는 걸 느꼈고, 그건 내가 아직 그 영역에 의식적으로 도달할 자격이 없다는 걸로 느껴졌다. 약간 아쉬웠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심뢰(心雷)를 형상화시킨 일검(一劍)을 손 위에 형상화시켰다.
우우우우 -
검명(劍鳴)이 울린다. 나는 그 순간 내 의지가 항하사의 모래사막을 뒤덮은 것을 느꼈고, 그대로 천하를 향해 검무를 펼쳐내었다.
천둔(天遁)
뇌신검명(雷神劍鳴)!
번쩍
심뢰가 나무줄기처럼 뻗어 나가서 아지다하카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항하사의 신역절기 안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보호하던 아지다하카의 진신(眞身)이 있는 곳을 단숨에 알아내어서 요격한 것이다. 마음의 번개는 그 무엇보다도 빨랐으며 그 속도는 가히 심어뢰(心御雷)라고 할 수 있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항하사가 펼쳐지기 직전, 더 빠르게 심뢰로 시전자를 죽여서 신역절기를 차단하는 것!
[……!!]
쿠쿵!
아지다하카는 내게 완벽하게 반격을 맞자 항하사의 전개를 멈추고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한 손에 검을 들고 간신히 버티는 상태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
단 일 검에 아지다하카를 무력화시킨 셈이었지만 나 또한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방금 전 일검을 펼쳐내는 순간 갑자기 전신에 힘이 풀리면서 격렬하게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마치 억지로 암야참을 펼쳐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기에 나는 그 순간 뭔가를 알아챘다.
‘…… 그, 그렇군…… 용량이야.’
내 마음의 용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힘을 남발하면 무조건 파김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먼저 쓰러지는 건 무인의 오기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당장에라도 쓰러지고 싶은 것을 참았고, 이윽고 숨을 몰아쉬던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그것…… 은…… 대체 어떤 기술이냐…….]
“……“
[아니…… 철검 대신 그대의 손 위에 존재하는 그 검은…… 도대체 무엇이지? 그것이 물질계의 검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한 손에 형상화된 심뢰의 검을 들고 있던 나는 슬그머니 검을 내려다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선검(仙劍)!”
처음부터 이야기는 단순했다.
내 내면에 있던 선검이 저절로 반응해서 아지다하카의 항하사에서 중상을 입는 것을 막아줬던 것!
그리고 단순히 대응하는 걸 넘어서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나는 내면에서 번개의 형태로 선검을 꺼낸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선검을 꺼낸 적은 달리 없었지만 왠지 될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선검 또한 [마음]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무학이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 또한 번개라면 안 될 것도 없지!’
그리고 지금이라면 천둔(天遁)의 경지 또한 왠지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대답을 들은 아지다하카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검신(劍神)…… 삼천세계(三千世界) 모든 검사(劍士)의 정점(頂点)에 오르겠다는 그대의 뜻…… 철없는 철부지의 말로만 여겼다…….]
“……그렇냐.”
[허나…… 지금 보니…….]
아지다하카는 쓰러지기 전 왠지 밝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군…….]
풀썩
아지다하카가 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나 또한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이대로 버티기에는 나 또한 심력의 소모가 너무 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이겼다.’
신역절기의 고수를 제대로 내 힘으로 쓰러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