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51화 (1,550/1,615)

전생검신 87권 20화

뭐지? 대체 뭐가 검성 아지다하카의 신역절기를 막을 깨달음이었던 걸까.

나는 그 존재를 짐작은 했지만, 무엇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신역절기를 막았으니 당연히 신역절기에 준하는 깨달음이겠지만 정작 나는 그 실체를 모른다니 이런 게 어디 있겠는가.

‘사신지혼? 아니…… 나는 전혀 발동하지 않았어.’

설령 사신지혼을 무의식적으로 썼다 하더라도 상대의 신역절기는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 미미한 발현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신지혼이 아무리 대단해도 신역절기를 힘의 편린만으로 막을 정도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자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

[그럴 시간에 검으로 대화하자!]

까앙!!

갑자기 아지다하카가 엄청난 신법을 발현하며 돌진해와서 정면으로 검을 날렸다. 또다시 신역절기를 날릴 줄 알았는데 의외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지다하카가 광풍(狂風) 같은 검기를 날리며 생전 처음보는 검술을 시전했다.

아르겔도 검제(劍帝) 불멸외천기(不滅外千機)

제오백오십팔식(第五百五十八式)

묵섬도룡(墨殲屠龍)

‘왼쪽!’

나는 차분하게 검로(劍路)가 향하는 의념을 읽어서 상대의 절초가 내 좌반신을 노리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검을 갖다대서 막으려는 순간, [흐름]이 읽히자 곤혹스러웠다.

“……!!”

아주 찰나의 망설임 끝에 나는 왼쪽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쪽인 오른쪽으로 몸을 반회전시켜서 검을 휘둘렀다. 원래라면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멍청한 꼴이었겠지만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놀라웠다.

까강!!

나는 정확하게 아지다하카의 일식(一式)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잠깐 망설인 탓에 의념에 힘이 실리지 않아서 그의 검에 실려 있는 강대한 묵룡(墨龍) 같은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크게 밀려나서 무려 이 장이나 튕기듯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윽. 팔이 저리는군…….’

내가 약간의 통증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자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대단하구나. 이 기술을 제대로 막아낸 자는 내 평생에 세 명도 되지 않았는데…….]

“…….”

[정말로 의념에만 의존하지 않고 흐름 그 자체를 읽는데 익숙해졌나 보군…….]

“……그러는 너야말로 아까 후두격도 그렇고 이런 속임수를 쓰기를 좋아하는군.”

나는 씹어뱉듯 말했다.

“설마 의념마저도 속일 수 있는 절대지경의 기술이 따로 있을 줄이야…….”

이런 건 정말 처음 본다. 환초(幻招)를 써서 적의 헛점을 유도하는 건 검술의 기본이라지만 지금 아지다하카의 공격은 바로 직전까지 실재로 존재했던 의념을 속여서 반대방향에서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다른 검술들이 육안으로 보이는 ‘현상’을 속이는 것과 달리 아지다하카의 방금 절초는 의념 그 자체를 속였기에 차원이 다른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시전하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 고차원적인 기술이었다.

‘[흐름]을 읽는 능력이 없었다면 무조건 이번 공격에 당했을 거야.’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의념을 도대체 무슨 수로 만든단 말인가?

절대지경마저도 완벽히 속일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아지다하카는 느긋하게 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이 기술은 내 선조가 다른 절대지경 고수를 상대하는 걸 상정하고 만들어낸 기술이었다. 그 시대에는 꽤나 고수가 많았기에 그랬던 것이지.]

“……? 선조?”

[그렇다. 본디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네게 경의를 표해 알려주마.]

츠츠츠

아지다하카는 기를 이용해서 소리를 차단하는 막을 형성한 후 나직이 말했다.

[검제 불멸외천기는 우주검성(宇宙劍聖) 아르겔도 류(流)의 종사(宗師)들이 대대로 익힌 기술을 전승하는 절대지경이다.]

“……!!”

나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저…… 전승(傳承)?!’

전승이라는 건 대대로 전해진다는 뜻이다. 나는 그 말뜻을 되새기고는 잠시 후 깨닫고는 황망히 말했다.

“설마…… 같은 유파의 기술을 전수받는데 특화된 절대지경이란…… 말이냐?”

[그렇게 표현하는 건 틀렸다. 초대(初代)부터 시작하여 나까지 모두가 하나의 의지를 전승한다. 그 거대한 줄기 속에서 우리 하나하나는 곁가지가 되어 자기만의 무(武)의 세계를 창조하고, 다음 대를 향해 그 의지를 잇는 것이다.]

“그,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냐? 그건 무예가 아닌 초능력 아니냐?”

[…….]

내가 당황해서 말하자 아지다하카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리 일족은…… 아르겔도 류(流)의 이름을 잇는 자들은 본디 초능력과 마법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우주의 태동기에 무신(武神)을 만나게 되어 그의 위대한 무(武)에 감화되었고, 그걸 따라하기 위하여 그때까지 존재하던 모든 초상능력을 버리고 무(武)에 몰두하게 되었지.]

“…….”

무신을…… 만났다고?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동안 무예를 연마했다…… 하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수만 년을 사는 우리였지만 수명이 부족하게까지 느껴졌지. 그래서 도리어 무신(武神)에게 염원하여 우리의 무맥(武脈) 자체에 제약을 건 것이다.]

아지다하카의 눈이 순간 빛났다.

[혈통에 잠재된 모든 초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대신에 절대지경의 전승을 가능하게 하는 제약을……!!]

“……!!”

[그리하여 검제 불멸외천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신역의 좌(座)에서 단 하나의 자리를 대대로 가져왔다. 대대로 자기만의 기술을 익혀서 개발하고, 그것을 불멸외천기라는 이름으로 좌(座)에 기록했지. 그것을 계속 이어받은 것…….]

스윽!

아지다하카의 검이 직선으로 뻗어져서 나를 겨누었다. 그 검에 서려 있는 의념은 굉장히 강렬해서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무신(武神)에 도달하겠다는 일념으로 수만 대(代)를 걸쳐 태어나서, 수련하고, 죽어왔다. 우리 아르겔도 류(流)야말로 무(武)의 조종(祖宗)에 가깝다 자부할 수 있노라.]

“…….”

[백웅이여. 그대의 무(武)는 우리가 지닌 검성(劍聖)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넘어설 수 있느냐?]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 그 말대로라면 몇억 년에 걸쳐서…… 무예를 수련했다는…….’

세상에 이런 일족이 있었다니!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검제 불멸외천기의 실체에 나는 잠시동안 멍해지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무예에 진심인 종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내가 저 일족만큼이나 무(武)에 진심인가?

…….

절대 그렇진 않다. 늘 다짐하고 생각하고 이루려 하지만 그건 내 하나의 생(生)에서 바라는 염원일 뿐이다.

수만 대를 이어서까지 노력하는 저 종족의 집념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 너희들만큼 진심이 되지는 못했다. 언젠가 무신(武神)이라는 놈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은 전생자로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도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예에 가지고 있는 마음 또한 얕은 것이 아니다.”

채앵

나는 앞으로 뻗어져 있는 아지다하카의 검에 마주 내 검을 갖다대며 말을 이었다.

“너희가 도달하고 싶은 경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분명 지금의 나 따위는 상상하지도 못하는 높은 경지겠지. 그리고 내가 무(武)를 세상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한 결코 무신이 내게 길을 보여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

[…….]

“하지만, 세상을 구한다는 목적을 무시하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너희들처럼 무신(武神)이 되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무(武)를 수련하는가? 힘을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 그런 게 아냐.”

나는 아지다하카의 말을 부정하고는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는…… 내가 재밌어서 수련하는 거다.”

내 말에 아지다하카는 뜻밖인 듯 나를 쳐다보았다.

[재미라고?]

“그래.”

[겨우 그런 하찮은 마음으로 무예의 극한에 도전하고 있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군.]

“……하찮아서 미안하군. 하지만 난 그래.”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수도 없이 생각했었다. 나는 재능도 하나도 없는데 뭐하러 이렇게 무예에 달라붙어서 열심히 노력하는 건지…… 이렇게 열심히 해봤자 진소청을 절대로 못 이길 텐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수련세계에서 아마 수백만 번은 생각했을 것이다.”

[…….]

“생각을 해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어. 근데……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여서 수련하니까…… 재밌더라.”

끼기긱

잠시동안 검음(劍音)이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지다하카의 기세가 일변하는 걸 느꼈다.

[음…….]

아지다하카가 침음성을 내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지다하카는 더 이상 내 헛소리를 듣고 있기가 싫어서 문답무용으로 전투를 재개하려 했지만, 아지다하카가 첫 동작을 시작하기 직전에 내가 먼저 [흐름]을 읽어서 그의 움직임을 후발선제(後發先制)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언뜻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우리 정도의 수준에서는 첫 동작을 제압당한 것만으로도 이후의 전개에서 천양지차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지다하카는 멈출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리고 사실 나도 아지다하카의 전조를 어떻게 알아서 먼저 제압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진짜 천재들에게는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음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 해서 무신이라는 놈의 뒤꽁무니만 쫓아서 그 환영에 나 자신을 맞추기 위해 따라가고 싶지도 않아. 난 그저…… 지금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걸 추구하겠다.”

[무예의 달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구나. 마치 갓 무예를 익힌 초심자 같은 소리를…….]

“초심자같은 게 뭐 어때서 그래? 대체 왜 무예를 익히는데 그렇게 진지해야만 하는 거지? 나는 왜 즐기면 안 되는 거냐?”

나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말했다.

“재능이 없으면…… 즐기면 안 되는 거냐고!”

[……!!]

끼기긱!!

다시 한번 검음이 울린다. 이번에는 확실히 내가 더욱 후발선제에 성공했기 때문인지 나는 한 걸음을 전진하고 아지다하카는 한 걸음을 물러섰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나는 나도 모르는 무의식의 경계에서 확실히 [흐름]을 읽는 능력을 다루게 된 것이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던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는 언젠가 신역백좌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무신과 마주하게 되겠지. 무신과 한 번 마주친 자가 그 경지에 경외심을 품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정도냐?”

[그대가 직접 만나보면 알 것이다. 그 존재는…….]

뭔가 말하려던 아지다하카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침묵하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대만 한 고수가 향후 무신이 되고 싶지 않다면 대체 무엇이 되고 싶단 말인가? 대답하라, 백웅!!]

“…….”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 말은 왠지 내게 큰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사실 지금까지 전생하면서 그저 [목적]만을 추구했을 뿐 나 자신이 어떤 것이 되겠다는 다짐은 거의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재능도 미천한 바에 무예에 있어서는 그저 고수가 되겠다는 생각 외에는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고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고수가 되었으니 내가 어떤 경지로 나아갈지를 정해야 했고, 신역의 고수인 검성이 묻는다면 대답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검성? 검성이라…….’

그러고 보니 지상에도 검성이라 불리는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있었다. 물론 그 노부츠나보다는 지금의 아지다하카가 백 배 강하니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의외로 검성이라는 칭호는 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멋지고 대단한 게 있을까?

…….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검신(劍神).”

카강!!

나는 검음(劍音)을 흘리며 아지다하카의 검을 튕겨내었다. 아지다하카는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세 걸음을 물러섰다.

나는 내 의지를 담아서 외쳤다.

“최소한 검(劍)의 경지에서만은 신(神)이 되겠다!!”

그 정도는 되어야 진소청에게 이길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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