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17화
삶과 죽음이 혼재되어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본질이 아닌 허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조차 허구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원념과 고통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렇다면…….’
이 절연사막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통과 비명 소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에 이토록 절실하고 괴로운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 추측을 긍정한 전륜성왕이 바닥에 있는 절연사막의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삶과 죽음이 중첩되어 있는 상태…… 이 한 줌의 모래에도 억겁(億劫)의 원한이 스며들어있는 이유이지.”
“그렇다는 건…… 이 절연사막은…… 살아 있다는 겁니까?”
“그래. 이 사막에서 지금도 살지도 죽지도 못한 존재들이 수없이 요동치고 있지…… 그들은 이 우주의 기준에서 생과 사, 어느 쪽으로도 분류할 수 없다…… 망령조차 아니지…….”
“…….”
나는 뼈저린 신음성을 내었다.
“크윽…… 그래서…… 삶의 범위를 얘기하셨던 거군요. 이 절연사막 또한 살아 있는 생명체나 다름없으니까!”
삶의 범위가 내 생각보다 훨씬 넓을 수도 있다는 얘기는 절연사막 또한 지칭하는 것이었던가? 확실히 절연사막 같은 지형(地形) 그 자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해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내 말에 전륜성왕이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백웅이여. 어찌하여 중원의 인간들이 생자에게 생명(生命)이라 하여 명(命)이라는 단위를 따로 붙이는지 아는가?”
“네? 갑자기 무슨…….”
“한자(漢字)의 기원으로서 생자에게 입(口)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을 명(命)이라 하였나니, 이는 바로 사황(史皇) 창힐의 의도이다. 본좌는 그대의 기억을 읽고서 그걸 깨달았다.”
사르륵
전륜성왕은 말을 이었다.
“사황 창힐은 언령으로 인간종족을 지배하려 했다. 그렇기에 한자를 이용해 삶이란 단위를 자기 언령의 제어하에 있는 것으로 제한했던 것이지. 그리고 그 한자를 쓰던 너희 인간족들은 자연스럽게 창힐의 의도대로 더욱 언령에 속박되어 신에게 저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네?!”
“또한 [삶]에 대한 해석도 무척 한정되어서 우주(宇宙)에 직결되는 신령스러운 힘에 접속하기도 무척 힘들어졌다. 이 모든 게 명(命) 한 글자의 언령으로 이뤄낸 일이다. 명의 입(口)은 바로 창힐의 입이었으니 너희 인간들은 자기 말에 순순히 따르라 그 말이었지.”
“……!!”
“허나 그대는 사황 창힐을 뛰어넘은 자. 생의 굴레에 대한 해석도 창힐 따위가 의도한 것에 갇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서…… 설마 이런 곳까지 창힐의 의도가 스며있었다고?
아무리 신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음모를 꾸밀 수 있었던 건가?
뜬금없는 사실에 내가 멍하니 있자 전륜성왕의 말이 이어졌다.
“백웅이여. 그러면 하나를 묻겠다. 절연사막에 생(生)과 사(死)가 혼재되어 있다면, 그대는 어떻게 절연사막을 죽일 것인가?”
“…….”
음…….
나는 전륜성왕의 말이 무척 난해했기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러고 보니 삶과 죽음의 중간에 있으면 어떻게 죽여야 하지……?’
그런 존재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무척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난해 한 과제가 코 앞에 들이대질 줄은 예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나는 열심히 머리를 짜내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 어쨌든 의지를 갖고 행동하고 있다면 생명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절연의 힘으로 잘 쳐 죽이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대는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생명의 기준으로 [의지]를 내세웠군. 그렇다면 의지가 없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대의 말 속에 답이 있군.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라.”
“……?”
이건 또 무슨 선문답이지? 내가 이미 답을 말했다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알쏭달쏭한 느낌에 내가 멍하니 있자 전륜성왕이 스윽 하고 한 자루의 검을 들어서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 원리로 삿갓의 무사는 절연사막을 죽일 수 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츠아아앗!!
다음 순간, 전륜성왕이 내뻗은 일참(一斬)이 순식간에 절연사막의 한편을 갈라서 지평선 끝까지 참흔(斬痕)을 만들어내었다. 그 압도적인 무위(武威)는 그가 신인지 무인인지 구분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정작 놀라운 건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촥!!
갑자기 나는 이 절연사막에 떠돌던 음침하고 어두운 사기(邪氣)가 정화(淨化)되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절연사막에 가득하던 사악한 존재감도 크게 그 기운을 잃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보았는가? 일부이긴 하지만, 나는 지금 절연사막을 죽였다. 아마도 삿갓무사도 똑같은 짓을 할 수 있겠지.”
“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백웅이여. 이는 무척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언젠가 그대가 심득을 얻기를 바라며 설명해주지…… 잘 들어보아라.”
전륜성왕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이 절연사막에 있는 생사의 혼재(混在)는 망령조차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존재들은 이 우주와의 연(緣)이 끊겨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혼백(魂魄)을 지니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혼대법의 대가인 그대나 제갈사조차 이 사막에서 이혼대법을 쓸 수 없는 이유이다.”
“으음!”
“그러나 그 존재들에게 최소한의 생(生)은 존재하는 이유…… 그것은 생사가 혼재됨으로써 이 절연사막만큼은 그 자들에게 인연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인연이 의지를 만들어내었으니, 그 의지로 하여금 외부에 사악한 영향력을 떨칠 수 있지.”
“…….”
“그러면 절연사막이란 무(無)인가 공(空)인가.”
“…….”
“자…… 충분히 해설했다. 이제 어떻게 하여 본왕이 절연사막을 죽였는지 알겠는가?”
음…… 씨발…….
어렵다……!!
나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왜냐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도 이해를 못 한 표정이군. 후우…… 단서를 줄 수밖에.”
내 표정만 봐도 알겠다는 듯 한숨을 쉰 전륜성왕이 한마디를 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그대는 지상으로 가서 이 말을 늘 되새기고 스스로 해석하거라.”
“본래무일물? 그게 뭡니까?”
“그대의 뛰어난 책사들과 부하들에게 질문한다면 아주 손쉽게 그 답을 알 수 있겠지. 허나 그러지 말라.”
전륜성왕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엄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답은 반드시 그대 스스로 생각하고 얻어내라! 남에게 의존해서 답을 얻으려 한다면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 절연의 힘을 깨닫지 못할 터이니.”
“……아, 알겠습니다.”
왜 이렇게 혼나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전륜성왕의 말이 너무나 심오한 깨달음을 담고 있었기에 내가 단숨에 깨닫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내가 구르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도를 닦아야만 알 수 있는 경지일 것이리라.
나는 문득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말했다.
“아니…… 그 삿갓무사란 놈은 대체 뭐길래…… 전륜성왕님 정도 되는 우주의 최상위 신격이 지닌 깨달음을 그렇게 자유자재로 쓴답니까?!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요!”
“글쎄. 그건 그대 자신의 업(業)이니 내가 뭐라고 말해줄 수 없다. 허나 이건 알아두어라.”
전륜성왕의 눈이 순간 냉철하게 번득였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自緣)이다. 또한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에 그대 앞에 존재하고 있는 현상이 있다면…… 그건 무조건 그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니겠느냐?”
“…….”
“더 이상은 그대와 더불어 수련하여도 의미가 없을 것 같구나. 이만 떠나도 좋다.”
“네? 절연의 수련을 더 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전륜성왕이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그대는 이미 절연에 대하여 상당한 저항력과 이해를 갖게 되었다. 모르긴 해도 그 삿갓의 무사가 최절정의 필살기술을 쓰는 걸 정통으로 맞지 않는다면 도망칠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무공의 깨달음에 따라서는 방어나 회피도 가능하겠지…….”
“아!”
“또한 더 이상 수련한다 하여도 방금 전처럼 절연사막에 쑤셔 넣어서 절연의 저항력을 키울 뿐이다. 허나 그대의 영혼이 과연 그 반복작업을 버틸 수 있을까?”
“…….”
할 말이 없다.
방금 전 지옥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차마 그걸 또 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육체의 고통과는 달리 영혼의 고통이라는 건 도저히 가볍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대가 다시금 본좌를 만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말해두지…….”
전륜성왕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만일 미래의 세계에 본좌가 존재하지 아니하다면, 그대는 명계의 업륜(業輪)을 반드시 복구하도록 하라.”
“업륜을요?”
“그렇다. 절연의 힘을 알려줄 수 있는 건 본좌 뿐이지만, 만일에 본좌가 존재치 아니한다면 업륜을 회전시키는 것만이 유일하게 그대가 절연에 대한 저항력과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불길한 말은 하지 마십시오. 전 다시 당신을 만나러 와서 또 수련을 할 겁니다.”
“후후…… 그랬으면 좋겠구나.”
마치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가볍게 웃던 전륜성왕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럼 이만 돌아가거라. 즐거웠다.”
파앗!!
나는 정신을 차린 순간 다시 지상세계에 와 있었다. 나는 멀쩡히 내 육체가 존재하는 걸 알아챘고 바로 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전륜성왕을 만났소?]
“흑웅.”
내 옆에 있던 흑웅을 쳐다본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 개새…… 하아, 아니다. 솔직히 너 나한테 불만 많았지?”
설마 흑웅이 대련 중에 진짜 나를 죽일 줄이야!
그러자 흑웅은 도리어 당당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럼 주인처럼 멍청하고 둔하고 욕심만 많은 인간을 모시면서 불만 하나 없을 줄 알았소?]
“뭐라고? 젠장.”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주인은 나의 창조주요. 나는 늘 주인에게 도움 되는 일만 할 것이며, 주인을 배신할 일은 없소.]
“…….”
나는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씩 웃었다.
“쳇, 이 나쁜 새끼야. 나는 원한을 절대 잊지 않으니까 기대해.”
[후하하. 언제는 안 그랬던 것처럼 말하는군.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호탕하게 웃은 흑웅이 말했다.
[그래서 전륜성왕에게서 뭔가를 얻었소?]
“흠. 절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나는 절연의 성취에 대해서 흑웅에게 말해주었다. 다만 전륜성왕의 말대로 본래무일물에 대한 것은 일부러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과제라면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흑웅이 말했다.
[전륜성왕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숨기고 있다니?”
[사실 주인을 전륜성왕에게 보낸 진짜 의도는 절연의 저항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도리어 절연의 힘을 주인이 쓸 수 있기를 바란 거였소. 신조차도 절단내는 그 강력한 죽음의 힘을 얻는다면 당연히 이득 아니오?]
“음, 그건 그렇지. 나도 사실 그러길 바랬는데…….”
[허나 전륜성왕은 주인이 적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력부터 만들어 주었소. 이치상 틀린 건 아니지만 왠지 석연치 않구려. 주인이 전륜성왕이 썼던 그 절연의 일격을 쓸 수 있기를 바랬는데…….]
“……흐음.”
흑웅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너무 의심할 필요 없어. 사실 전륜성왕이 나한테 더 알려준 깨달음이 있거든. 아마 그 깨달음을 소화하기 전에는 [공격]을 익힐 수 없는 걸 거야.”
[깨달음이 있다고? 왜 말해주지 않았소?]
“전륜성왕이 나 혼자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거든. 동료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 했어.”
[흠…… 그랬군……!! 그럼 어쩔 수 없구려.]
탄식하던 흑웅이 말했다.
[그럼 슬슬 투기장에 나갈 준비를 하시오. 나는 이번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테니 잘하고 오시오.]
“알았어.”
저벅
나는 흑웅을 놔두고 대기실에서 나가 투기장의 전면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어 나가서 투기장 위에 올라서자, 거기에는 익숙한 존재가 서 있었다.
[왔군.]
미래의 청면무사이자 용병왕.
검성(劍聖) 아지다하카가 나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나는 그런 아지다하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지다하카.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의 전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술법이나 마법이라도 쓸 생각이냐?]
“설마. 그런 더러운 수법은 안 써. 근데…….”
나는 검을 들어서 아지다하카를 겨누며 말했다.
“나는 지금 선언하마. 네가 오늘 전투에서 반드시 신역절기(神域絶技)를 쓰게 만들어 주지!!”
[……!!]
신역절기!
그것은 미래에 여동빈과 동료가 되어 신역백좌로써 활동했던 청면무사가 바로 아지다하카라는 걸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당연히 지금의 아지다하카 또한 신역백좌의 1인인 게 틀림없으니, 나는 저자를 상대하면서 신역절기를 이끌어내어서 상대해보고 싶었다.
과연 지금 내 암야참이 신역절기를 상대로 얼마나 먹힐까?
그리고 신역백좌의 진짜 실력이란 건 과연 어떤 것인가!
아지다하카는 침묵하다가 자신의 병장기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좋다. 그러면 나도 선언하도록 하지…….]
아지다하카의 눈이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그대가 신역백좌(神域百座)에 도달할 자격이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해주마!]
“어디 해 보시지!!”
콰광
다음 순간 나와 아지다하카의 첫 일섬(一殲)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나는 뇌신류 강기를 모은 이기어검을 날렸고 아지다하카는 그에 맞서서 아르겔도 류(流)의 검기(劍技)를 사용했는데, 서로가 직전에 공격의 궤도를 예측했기 때문에 거의 백중세로 허공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투웅
나는 땅을 박차고 뛰어가며 그대로 상단세로 찍어누르듯이 아지다하카를 베었다. 단순한 직도(直刀)로 종베기를 하는 초식이었지만 절대지경의 의념을 담아 내려 베었기에 아지다하카는 경시하지 못하고 마주 검을 튕겨서 내려베기를 박았다.
까앙 - !!
그 경쾌한 소리에서 나는 아지다하카가 어떤 수법을 썼는지를 알아챘다.
‘탄경(彈經)!’
그 짧은 순간에 여러 번의 탄경을 실어서 절묘한 힘 배합으로 내 내려베기를 튕겨내었다. 나는 이 한 합에서 내가 10의 힘을 썼다면 아지다하카는 고작 1의 힘을 써서 내 공격을 격퇴했다는 걸 깨닫고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어…… 엄청난 실력이군. 기(技)의 극한(極限)이다.’
절대지경이라 해서 다들 무예의 소양이 비슷한 게 아니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절대지경이란 그저 의념천주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것뿐이지 그걸 응용해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 수 있냐는 천지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미 검성 아지다하카는 다른 절대지경 고수들과 차원이 다른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지다하카의 기술에 비견할 수 있는 자는 고작해야 망념을 버리고 수련에 매진한 아수라 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도 순수한 기술만으로 아지다하카를 상대하면 무조건 질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나는 다음 순간 머릿속을 공(空)의 경지로 만들며 한 번의 일격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내 기세를 보던 아지다하카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크게 집중하는 태세를 갖추었고, 다음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일격을 날렸다.
무량단(無量斷)!
방금 전 시험하듯 날렸던 직도의 종베기와는 차원이 다른, 이 자체로 나만의 절대지경 오의라 할 수 있는 기술! 원리를 말하자면 아무런 잡념을 싣지 않고 그저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일참(一斬)을 베는 것뿐이었지만 내가 지니고 있는 가공할 내공과 의념 덕분에 무량단은 백련교주조차 감당하기 힘든 뛰어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서걱!
칼끝에 느낌이 왔다! 나는 내가 분명히 아지다하카를 베었음을 알아채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상당한 고통을 느끼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큭!”
촤좌좍
서로의 칼끝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빠르게 땅을 향해 원호를 그리며 피를 흩뿌렸다. 방금 전의 일 초 교환에서 나는 아지다하카의 손목에 손가락한마디 정도의 베인 자국을 만들었지만 나는 늑골 쪽에 비슷한 참상을 입은 것이다.
나는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맞찌르기?”
[그렇다. 너를 상대하기엔 그게 제일 낫겠더군.]
“…….”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맞찌르기라고는 하지만 방금 전 무량단을 써서 베어 들어갈 때 나는 분명히 확실한 손맛을 느꼈다. 맞찌르기만으로 서로가 딱 비슷한 부상만을 입고 상쇄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왠지 중간에 살짝 [공간]이 비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반문했다.
“그게 너의 절대지경이냐?”
[그러면서도 아니기도 하다.]
아지다하카의 입가에 미소가 맺히는 게 보였다.
[이것이 나의 절대지경…… 검제((劍帝) 불멸외천기(不滅外千機). 그 진짜 공능은 네가 알아내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