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16화
나는 전륜성왕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절연의 기운에 저항할 수 있으니, 그 삿갓을 쓴 놈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겁니까?”
“그건 확실치 않다.”
“네?”
“방금 전에 본왕은 정제되지 않은 기운만을 내뿜었지만, 그자가 쓰는 것은 어찌 되었든 무(武)의 영역. 그자의 숙련도와 경지에 따라 위력이 달라질 수 있겠지.”
“……!!”
나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다.
‘맞는 말이다!’
삿갓무사놈이 쓰던 그 기묘한 도법(刀法)! 그것이 만일에 특수한 무예라면 그 무예에 담긴 무리(武理)에 따라 얼마든지 위력이 변할 수 있지 않은가? 무예의 고수인 나는 전륜성왕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전륜성왕이 말을 이었다.
“그대는 이제 절연의 기초를 얻었을 뿐이다. 아직 그 자에게 대항하기엔 남은 단계가 많지.”
“다음 단계를 알려주십시오.”
“이제 그대는 절연사막이 품고 있는 악랄한 망집(妄執)과 사념(邪念)의 근원을 느끼고 흘려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다음 단계다.”
“흘려내라고요?”
“무학의 단계로 이해하면 쉽지 않은가? 기초적인 방어력을 얻었으면 이제 기술을 이용해 흘려낼 줄 알아야 하는 법.”
“아.”
발경(發勁)을 얘기하는 거군.
‘그렇군. 방금 전 내가 나 자신과의 인연을 강화시킨 것은 무술에서 체간(體幹)을 단련하여 적의 힘을 버텨내는 기초적인 체력을 기른 것이었고, 이젠 절연이라고 하는 경력(勁力)을 흘려내는 기술을 익히는 건가?’
의외로 전륜성왕의 가르침은 체계적이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전륜성왕이 이번에는 칼을 소환하여 내게 던져주었다.
덥썩
내가 칼을 움켜잡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무쌍패를 쓰든 신역절기를 쓰든 상관없다. 본 왕이 지금부터 내뿜는 절연의 기운을 최대한 흘려 내보도록 하거라.”
“으음…… 그게 될까요?”
나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라면 내 기술에 자신감이 있겠지만, 예전에 겪어본 바로 전륜성왕의 기술은 사실 삿갓무사의 기묘한 검기에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삿갓무사를 상대로 제대로 방어해본 적이 없다는 걸 고려하면 그 어떤 기술도 통하지 않을 게 분명한 것이다.
전륜성왕은 쌍장(雙掌)을 휘두르며 외쳤다.
“일단 해 보아라!!”
투투퉁!!
전륜성왕이 내뿜은 통강(通罡) 같은 기운이 수십 줄기나 날아들었다. 언뜻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나는 사실 이것도 전륜성왕이 많이 봐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예 주위를 뒤덮는 운무(雲霧)나 정밀한 도참(刀斬)으로 날려오면 감지조차 못하고 당할 텐데, 그냥 막으라고 일부러 쉽게 공격했군.’
무형(無形)을 막아내는 것은 무예의 최상승 경지로도 부족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만 적의 공격이 유형(有形)하다면 기술로 막기는 훨씬 쉬워진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내게 날아드는 절연의 기운을 일단 무쌍패로 막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검원(劍圓)
무쌍패(無雙覇)!!
검을 내 손의 연장처럼 여기며 펼쳐낸 무쌍패!! 본디 무쌍패를 펼칠 땐 검같은 병기가 방해가 되어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펼치는 게 제일 안정적이었는데, 나도 이젠 무쌍패에서 제법 경지에 올랐기 때문인지 검을 써도 무쌍패를 발현하는 게 가능했다. 잘은 표현할 수 없었지만 절대경지에서도 숙련도가 차등적으로 쌓이는 느낌이었다.
촤아아악
검이 만들어낸 원형의 결계 같은 기운이 무쌍패를 이루며 무위전변을 성립시키자, 마치 물안개처럼 통강이 사라지며 사방에 물기가 흩어졌다.
‘좋아! 무쌍패로 확실히 절연의 힘을 무력화시켰어!’
나는 잘 막아냈다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바로 다음 순간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후두두둑
“…… 어……?”
갑자기 검과 함께 내가 검을 들고 있던 손과 팔이 모조리 시꺼먼 숯처럼 변해서는 조각조각 갈라지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팔에 감각이 없었으며 잠시 후 검과 팔 전체가 다 타 버린 숯덩어리처럼 변해서는 쿵 하고 떨어졌다.
“……!!”
이, 이럴 수가?
영락없이 절연의 기운에 당해 버렸잖아!
내가 경악하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잘못 이해했구나.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자, 잘못 이해했다니 무슨 말입니까?”
“너는 외력(外力)을 무효하는 요령으로 무쌍패를 펼쳐서 유형의 기운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절연 그 자체와 마주하지 않고 형이하학적인 해석에 멈춰 버렸기에 죽음의 본질은 가차 없이 네 생명을 거둬간 것이지.”
“…….”
“다시 한번 방금 전의 대결을 떠올려보라. 그대는 무쌍패라는 무적의 방패를 내세워 절연의 악랄함을 회피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았느냐?”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고는 전륜성왕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무리 무쌍패라고 하더라도 절연의 기운이 지니고 있는 [죽음] 그 자체와 마주치지 않고서는 무효화시킬 수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다. 그건 훌륭한 절세의 무공이지만 무위전변으로 모든 기운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패력(覇力)이 일단 상대의 힘과 접촉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 그렇기에 설령 무쌍패의 창시자인 장삼봉이라 하더라도 절연의 기운 자체를 해석하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
“물론 장삼봉이라면 그것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대는 그대 나름대로 절연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놓아야 한다.”
그렇다는 건…….
무쌍패로 막는다 하더라도 그 악랄한 악의(惡意)를 그때마다 절감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건가?
그나마도 [죽음] 그 자체를 해석하는 데 실패하면 즉사하고?!
나는 절연의 기운에 포함되어 있던 그 사악하고 집요한 악의를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쌍패를 펼칠 때마다 그걸 이겨낸다는 건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못했다. 무쌍패로 이론상 막을 수야 있겠지만 몇 번 부딪히고 나면 정신력이 모두 고갈되어서 알아서 미쳐 죽고 말리라.
하지만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직접 막을 수가 없다면 내가 지닌 어떤 수법으로 공략해야 하지?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라면 하나 더 있긴 한데…….’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시 한번 해 보겠습니다.”
“좋다.”
슈욱
전륜성왕이 내 팔을 회복시켜주고 다시 검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자세를 잡아 전륜성왕이 다시금 쌍장을 휘두르며 기운을 날렸다.
투투퉁!!
나는 이번에는 무쌍패를 펼치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모든 집중력이 고조되고 한계에 이르렀을 때, [흐름] 그 자체를 읽으며 일 보를 앞으로 내디뎠다.
암야참(暗夜斬)
투쾅!!
방금 전과는 달리 소리소문없이 절연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대신에 마치 암야참과 정면으로 격돌하듯 전륜성왕의 통강이 회전하며 그 기세를 더했고, 나는 그 힘에 지지 않으려고 [흐름]이 끝까지 유지되게끔 모든 정신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기운의 충돌은 사라졌고, 절연의 기운이 서서히 힘을 잃고 공기 중으로 휘발되었다.
나는 제대로 된 방어에 성공하자 뛸듯이 기뻐서 외쳤다.
“됐다!!!”
이게 되다니!!
내가 기뻐서 날뛰자 전륜성왕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과연…… 그렇게 막는 방식도 있겠군. 암야참을 써서 절연과 정면충돌한다라…….”
“하하하. 저 천재 아닙니까?”
“어떤 원리인지 알고 한 건가?”
“…….”
“몰랐나 보군.”
나는 전륜성왕이 정곡을 찌르자 우물쭈물했다. 사실 그의 말대로 암야참이 어떤 원리로 막을 수 있는지는 잘 이해도 되지 않았고 일단 내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써 보자는 생각으로 덤벼든 게 맞았기 때문이다.
전륜성왕이 말했다.
“암야참이 절연의 기운을 상쇄시킬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리]를 역회전시킬 때 모든 혼돈을 허무의 영역까지 되돌리는 ‘끈’이 생겨나며 그 끈을 이용하여 상대를 베는 기술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끈이라는 게 하필이면 절연의 기운을 상쇄시킬 수 있는 성질이 있는 것이다.”
“네?! 그랬던 겁니까?”
내 반문에 전륜성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로 추구하는 것은 다르지만 암야참은 기묘할 정도로 절연의 기운과 닮아 있는 기술이다. 마치 어느 한쪽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것처럼…….”
“그럼 이제 저는 삿갓무사의 공격을 암야참으로 대항하면 되는 겁니까?”
“삿갓무사가 지금의 나처럼 공격을 보기 쉽게 통강으로 만들어서 날린다면 그렇겠지.”
“아…… 설마…….”
내가 불길한 예감에 인상을 찌푸리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그대도 겪어보았듯 삿갓무사의 일참은 전조조차 없으며 그 자체로 무형(無形)이나 다름없는 공격이다. 그대가 [흐름]을 읽어내어 암야참을 정확하게 날려서 상쇄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일에 실패한다면…….”
“……단숨에 죽겠군요.”
“그래. 암야참으로 방어하는 건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지.”
“…….”
나는 삿갓무사놈의 공격이 얼마나 골때린지 이제야 실감할 수가 있었다. 아무런 전조조차 없는 인과무시의 무형참이 날아오는데 내가 가진 [흐름]을 읽는 능력이 그걸 못 따라잡으면 단숨에 죽는 게 아닌가! 난이도를 생각하면 최소 수백만분의 1의 확률 이상인 게 뻔했기에 암야참으로 맞치기는 실전성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럼…… [흐름]을 읽는 능력을 앞으로 더 키워야 하겠군요…….”
“정석적인 무(武)의 경지로 치면 그리되겠지. 진소청 같은 자라면 도리어 삿갓무사를 일패도지시킬 수도 있으리라. 허나 그대가 그 초월경(超越境)에 도달할 때까지 삿갓무사가 기다려주겠나?”
“…….”
“그대는 좀 더 실전적인 방어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지금 본왕이 알려주도록 하마.”
“오오!! 어떤 것입니까?”
덥썩!!
쿠궁
갑자기 전륜성왕이 내 머리를 움켜잡고는 그대로 절연사막의 안에 세게 집어넣었다. 나는 순식간에 목만 남기고 모래 속으로 몸이 파묻혔고 이게 뭔가 싶어서 눈을 끔벅이며 전륜성왕을 쳐다보았다.
전륜성왕은 내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말했다.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아라. 그대는 기술로도 힘으로도 정석적으로는 절대 그의 공격을 맞상대할 수 없다…… 그러면 남은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도, 도망치는 겁니까?”
“아니…… 더더욱 상대방의 힘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그걸 겪고 깨닫는 수밖에 없다. 동시에 저항력도 키워야 하지.”
“서, 설마.”
씨발!!
안 돼!!
이게 무슨 수련이야!!
내가 전륜성왕이 뭘 하려는지 깨닫고 몸부림쳤지만 이미 절연사막에 빠져 버린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신력이고 뭐고 무효화되는인 곳이라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전륜성왕은 여전히 가부좌를 한 채로 말했다.
“이제 곧 사막의 힘이 네 몸을 잠식하며 끝없이 죽음을 불어넣을 것이다…… 너는 계속 죽을 것이지만…… 본왕이 그대의 진정한 소멸을 막기 위해 그대를 보호하며 최대한 버티게 해 주겠다.”
“……!! 모, 못합니다!! 그 잠깐 동안도 그렇게 아프고 괴로웠는데 이걸 계속……?!”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전륜성왕은 내 말을 무시했다.
“백웅이여. 불가에서 어찌하여 법리(法理)에서 괴로움(苦)을 강조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
빠지지직! 뿌드득!
“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벌써부터 죽음의 기운이 손발을 통해서 파고들며 내 정신을 끔찍하게 유린하며 고통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여태껏 겪어봤던 고문 중 웬만한 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고통에 내가 눈을 까뒤집으며 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도 전륜성왕의 말이 계속되었다.
“삶 그 자체가 괴로움…… 허나 삶과 죽음은 표리일체…… 그러하다면 삶에서 버려진…… 죽음의 영역에 있는 자들의 고통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서 버려진 존재들이 어찌나 끔찍한 꼴이 되는지 가끔은 사악한 신들조차 동정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 깨달음이 [큰 굴레]에 도달했던 석가모니는 이미 죽음의 고통조차 이해했던 것이겠지.”
“……!!”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본 왕을 이어 죽음의 지배자로서 인정받고자 한다면…… 우주의 죽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밖에!!”
퍼버벅!!
정신적 충격에 이기지 못하고 뇌수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죽고, 죽고, 또 죽는 환영 속에서 아득하게 정신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
[…… 들리는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나는 환상 속에서 아득해진 상태로 멍하니 눈앞을 쳐다보았고, 잠시 후 환영 같은 존재가 말을 거는 것처럼 들렸다.
[…… 내 말이 들리는가…… 백웅…….]
나는 그 환영의 존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환영의 존재가 바로 백련교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전생 속의 백련교주가 아니다.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몰골과 어둠 속에서 끓어오르는 목소리, 낡은 헝겊으로 몸을 둘러싼 모습…….
나는 저 모습을 한 백련교주를 단 한 번 마주쳐본 적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통은 끝이 없고…… 의념과 욕망과 감정은 그 고통을 부추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무념(無念)이 되지 않는 한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열반(涅槃)또한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성적 작용으로 왜 이런 환영 속에 있는 것조차 맥락을 못 잡는 지경이었다.
[기억나지 않는가…… 이미…… 그대는 일월지혼(日月之魂)을 이룰 때…… 위대한 목소리를 들었지…… 내가 그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도 그분의 자비심…….]
그분……?
백련교주는 조용히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월지혼 때를 기억해내게…… 이 세상 모든 게 실존(實存)이 아닌 관념(觀念)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그대라면 할 수 있네…….]
그리고 백련교주의 환영은 사라졌다.
나는 방금 전 봤던 게 환영인지 실제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속의 관념이 만들어낸 환영인지 아닌지 알 게 뭐란 말인가?
관념.
실존이 아니라 관념이라는 건가.
하지만 세상에 실존이 없으면 삶과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실존이 없다면…… 어째서…… 이 사악한 망집을 지닌 자들은 엄청난 괴로움과 고통을 내게 호소한단 말인가?
그 고통조차 허상이어야 하지 않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꾸불텅하고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와서 농밀하게 내 몸을 뒤덮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숨을 쉬는 이 순간에도 계속 죽어 나가며 이미 이성조차 별로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고통이 너무 심각하면 아예 고통을 객관화시켜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현상이 생기는데 그게 너무 심해져서 나는 이미 반쯤 미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죽음에 시달리던 동안 나는 뭔가를 알 수 있었다.
이건…….
“더 이상은 안 되겠군. 갈(喝)!”
쿠궁!
갑자기 전륜성왕의 외침과 함께 나는 모래에서 튕겨 나와서 콜록거리며 제정신을 되찾았다.
지금까지 전륜성왕이 최대한 자신의 힘으로 내 존재를 유지시켜주었지만, 이 이상은 한계라고 본 것 같았다.
전륜성왕은 모래에서 튕겨 나온 나를 보더니 말했다.
“백웅이여. 뭔가를 얻었는가?”
“…….”
나는 혼탁한 눈으로 그 자리에 누워서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염산으로 만든 탕에 절여져 있다가 갓 나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전륜성왕……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보라.”
나는 힘겹게 하나의 질문을 했다.
“절연사막…… 여기에서…… 생(生)을 느꼈습니다…….”
“…….”
“왜죠…… 제…… 착각입니까…… 살아 있는 존재이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은…….”
내가 말하고도 뭔지 몰라서 횡설수설하고 있을 때였다.
전륜성왕은 우울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착각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절연사막이 궁극의 죽음인 이유이다.”
“…….”
나는 그 순간 절연사막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장소라는 걸 깨달았다.
삶과 죽음이 중복되어 혼재(混在)하는 것.
그것이 최악의 죽음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