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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46화 (1,545/1,615)

전생검신 87권 15화

치…… 치트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이해를 못하고 새하얀 가면에게 되물었다.

“치트키가 뭔데?”

그러자 새하얀 가면은 못마땅한 듯 말했다.

“치트키도 모르나? 하긴 게임도 잘 모르는 놈이 치트키를 알 리가.”

“제기랄. 잘난 체 그만하고 설명해 줘. 내 대답을 듣고 싶을 거 아니야?”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지. 게임이나 한 판 해봐라.”

게임?

파밧

갑자기 내 시야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는 커다란 대륙의 지형도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고 나는 웬 성의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성벽 밑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게 어떤 규칙의 놀이인지 머릿속에 스며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략…… 시뮬레이션……? 이 성의 세력을 양성해서…… 전쟁하고…… 다른 성을 굴복시켜서…… 대륙을 통일하는 게임!!’

생전 해본 적 없는 지식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나자 나는 이게 무엇과 비슷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마치 삼국지(三國志)같군.’

어찌 되었든 이 게임을 공략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잠시 후 눈앞에 떠오르는 반투명한 창을 보며 조작법을 익혔고, 열심히 내 영지를 양성하며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내정을 견실히 하고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군대를 키운다.

기본적으로 이걸 반복하기만 하면 세력이 강해지게 되어 있었다.

나는 열심히 내 성을 키우며 군대를 2만 이상 키우고는 잠시 후 조그마한 성을 쳐서 내 영토로 만들기를 반복했고, 그러다 보니 병력도 점차 많아져서 순식간에 10만 대군을 보유한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쯤 되었을 때 나는 저만치 먼 곳에 있는 대세력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걸 보고는 기겁했다.

“이런!!”

도저히 정면으로는 못 이기겠는데?!

나는 갈팡질팡하면서도 등용해둔 인재들을 잘 활용해서 전략적으로 되받아치기를 해야 이길 수 있음을 깨달았다. 방어선을 구축하며 버티다가 적의 빈틈이 생기자 바로 찔러 들어가서 적의 수도를 점령했고 군주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을 지나자 적의 세력은 한풀 꺾였고, 나는 그 틈을 타서 적의 세력을 흡수하고 다시 내 병력을 늘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어느새 최대세력이 되어서 대륙을 통일하게 되었다. 나는 통일에 성공한 순간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좋았어!!”

슈아앗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내가 즐기던 게임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성의 없이 걸터앉아 있는 새하얀 가면의 모습이 나타났다.

“…….”

내가 민망함에 우물쭈물하자 새하얀 가면이 히죽 웃는 것처럼 보였다.

“어때? 가볍게 만들어 본 게임이지만 재밌지?”

“재밌긴 한데…….”

“재밌다고 느낀 이유는 내가 네 수준에 맞춰서 난이도를 조절했기 때문이지. 방금 전에는 노멀난이도였다. 이번엔 슈퍼하드 난이도를 해 봐라.”

“야, 잠깐…….”

슈아앗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 게임의 세계에 빨려 들어간 나는 아까와 같은 초기화면이 뜨는 걸 느꼈다.

‘쳇. 또 클리어해야 나갈 수 있는 건가? 그럼 아까 하던 대로…….’

그리고 버릇처럼 인재를 모으고 군사를 모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우와아아

갑자기 성 밖에서 10만 대군이 몰려와서 내 성을 공격하는 게 보였다. 나는 지금 현재 병력이 5천밖에 없었기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무슨 이런 초반에 어디서 10만대군이…….”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막으려 했지만,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고 잠시 후 내가 서 있던 성벽이 붕괴하고 모든 영지가 불에 탔다.

화르르륵

그리고 눈앞이 시꺼멓게 변하더니 다시 새하얀 가면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새하얀 가면이 말했다.

“어때? 네 두뇌로는 못 깨겠지?”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씨발!! 이따위로 어려운 걸 대체 무슨 재미로 하라는 거야? 초반에 10만 대군이 공격하면 어떻게 깨라고.”

“그치? 어렵지?”

그러더니 새하얀 가면이 갑자기 허공에 웬 글자를 콕콕 눌러서 입력하는 게 보였다.

“자, 널 위해서 치트키를 입력했으니까 다시 해 봐.”

우웅

나는 다시금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 내 영지 상태를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

뭐야?! 모든 성의 능력치가 99999가 되어 있고 병력도 999만 명이라고?!

심지어 병력들은 전부 능력치 레벨업이 최종단계까지 되어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잠시 후 쳐들어오는 적을 상대로 병력을 출전시켰고, 이윽고 999만9999명의 대군이 가볍게 10만 적병을 몰살시켰다. 심지어 아군은 단 1명도 죽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어영부영 빠르게 게임을 클리어했고, 클리어하고 나자 새하얀 가면의 모습이 드러났다. 새하얀 가면이 나를 보며 말했다.

“치트키를 쓰니까 무척 쉽지? 올 치트에 무적까지 걸어줬다. 하는 김에 내정속도 10배도 걸었는데.”

“……쉬운 정도가 아닌데.”

“뭐 지능이 아메바 수준만 아니면 깰 수 있게 되어 있지.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보마, 백웅.”

새하얀 가면이 나를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네가 만약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임을 할 경우, 너는 치트키를 쓸 거냐 안 쓸 거냐? 쓴다 안 쓴다를 대답해다오.”

“…….”

나는 수상쩍은 눈으로 새하얀 가면을 쳐다보았다.

‘이 새끼는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정말 뜬금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왠지 저놈에게 있어서는 무척 중요한 얘기 같았기에 섣불리 회피했다가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새하얀 가면에게 말했다.

“당연히 치트키를 안 쓰는 게 정답 아니냐?”

“왜 그렇게 생각하지?”

“재미를 느끼려고 게임을 하는 거잖아. 근데 방금 전에 치트키라는 걸 쓰니까 정말 재미없더라고.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임이라면 당연히 치트키를 안 쓰고 게임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고.”

“흐흐흐흐. 그래. 정상적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지.”

왜인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새하얀 가면이 문득 정색을 하는 것 같았다.

“근데……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임의 승패에 따라 네 인생의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

“……?!”

“그래도 치트키를 안 쓸 거냐?”

뭐,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의 승패에 내 인생이……?’

전제조건이 그렇게 걸리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며 생각했고,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그러면 쓰지.”

“왜?”

“왜냐니…… 인생은 현실이잖아. 치트키를 안 썼다가 망하면 끝장인데 왜 안 쓰겠냐고.”

그러자 새하얀 가면이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치트키를 써서 게임이 재미없어지는 건 상관없는 거냐?”

“아니 뭐…… 아쉽긴 한데…… 재미 따지다가 인생이 망하면 큰일 나는 거 아냐? 당연히 더 중요한 쪽을 선택하지.”

“크큭큭. 그래서 나는 백웅이 아니라는 거다.”

슈슉!!

갑자기 새하얀 가면의 덩치가 크게 변하더니 근육질의 거한이 되었다. 놈은 위압적으로 내 쪽을 향해 얼굴을 크게 들이밀더니 말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치트키를 쓰는 놈 따위를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야.”

“…….”

어, 어쩌라고…….

내가 당황해서 어버버하고 있자 놈은 계속해서 내 코앞에 가면을 들이댄 채로 위압적으로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임이잖아. 어? 이 멍청한 놈아.”

“…….”

“인생이 망하면 뭐 어때서 그렇다고 그래? 네놈이 몇백몇천억 번을 다시 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재밌는 게임을 해볼 기회가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게임의 재미가 훨씬 중요한 게 맞지 않느냐.”

“윽 씨발 치워!!”

나는 급히 손으로 새하얀 가면의 면상을 밀어내며 거칠게 말했다.

“야이 미친놈아!! 게임보다 당연히 인생이 중요하지 당연한 거 아냐?! 죽으면 끝인데 무슨 되도 않는…….”

“아니지.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 순간 새하얀 가면의 눈두덩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그놈의 눈두덩에서 지옥처럼 어두운 무저갱을 볼 수 있었고, 그 무저갱 너머에서 기이하게 타오르는 불꽃 같은 걸 느끼고 말았다. 그 불꽃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망집은 순간적으로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넌 죽어도 전생(轉生)하잖아. 그러면 결말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아니냐? 재미만 추구해도 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냐?”

“……!!”

“내 말이 틀렸나? 게다가 네 녀석이 여기 들어오기 전부터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가 뭔지도 자알 알고 있지.”

새하얀 가면은 마치 조롱하듯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네 입으로 말했지? 그럼 똑같이 적용되는 게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 인생의 결과와 연동될지라도, 너는 과정을 즐겨야 하는 입장이어야 옳은 게 아닐까나?”

“…….”

이…… 이런 젠장…….

나는 상대의 논리적인 궤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했었던 말로 반박하니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도 논리적인 상대에게 공박당한 적은 많았지만, 왠지 눈앞의 이 녀석은 기이한 광기가 느껴졌기에 어떤 식으로 받아쳐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재미도 좋지만 나는 인생을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마감하고 싶어! 이 무한한 전생을 끝없이 하고 싶은 줄 알아? 내가 원하는 것만 달성하면 언젠가 나도 행복한 삶으로 마무리할 거란 말이다! 그래서 치트키를 쓸 수도 있다는 건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흐흐흐. 그래…… 그렇지…….”

새하얀 가면이 그르렁거리며 웃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그런 놈이니까 천암비서가 널 선택한 거다…….”

“……뭐?”

“아니, 너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러하지……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면서도 현실과 연동되면 망설임 없이 치트키를 집어 드는 자들…… 이게 나의 현실이 아닐 거라고 현실을 부정하며…… 어딘가에서 뚝딱하고 천운(天運)이 떨어져서 인생을 날로 먹기를 원하는 놈들이지…… 천암비서가 원하는 건 바로 그런 존재였어…….”

“…….”

“한없이 나약하고…… 현실을 초월할 수 없는 아욕(我慾)의 화신들…….”

새하얀 가면은 마치 먼 과거를 회상하듯 먼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네가 날로 먹고 싶어 하는 놈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나? 하지만 뭐…… 날로 먹고 싶어 하든 고매한 이념이 있든 사실 천암비서에 선택된 이상 운명이 달라지지는 않지…… 그래…… 결국 모두가 제물일 뿐.”

나는 그런 가면의 말을 듣고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 후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이제야 그게 궁금한가?”

“너는 내가 아니라고 했지만, 내 자신이 아닌 게 무의식의 표상으로 나타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넌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내 무의식에 나 자신도 아닌 무언가가 따로 잠들어있단 말인가?

여태껏 나는 그걸 전혀 인지도 못 하고 있었다고?!

그러자 새하얀 가면은 자신의 가면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이거 안 보여? 가면이잖아.”

“네…… 네가 설마 니알라토텝의 가면이냐!!”

그제야 나는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새하얀 가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나는 절대 그딴 하찮은 게 아냐. 나는 절대 니알라토텝의 가면은 아니지.”

“뭐?”

“혹시 해서 말해두지만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도 아냐. 이것만은 확실해.”

“그…… 그럼 너는 대체 뭔데.”

새하얀 가면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말했다.

“흐음. 그 전에 너는 기어오는 혼돈이 왜 가면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데?”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아직도 문제해결까지는 한참 멀었군. 이러니까 흉신이 출발선이라고 말하는 거지…… 젠장.”

왠지 모르게 투덜거리고 있던 새하얀 가면이 말했다.

“이야기를 바꿔보지. 기어오는 혼돈이라는 놈은 재미있는 행동밖에 할 수 없어. 그러면 그놈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임이 있을 경우 치트키를 쓸까 쓰지 않을까?”

“당연히 안 쓰지. 그 새끼가 치트키를 왜 쓰겠어? 재미 때문에 온갖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다니는데.”

내가 거칠게 대꾸하자 새하얀 가면이 말했다.

“그치? 근데 의외로…… 쓸 수도 있어.”

“……뭐?!”

“너는 재미의 양면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구.”

이윽고 새하얀 가면이 한 얘기는 정말 내 생각 밖의 이야기였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늘 정공법으로만 게임을 즐기는 놈만 있는 건 아니야. [치트키를 쓰는 한순간의 재미]도 느끼고 싶은 게 사람 아니겠어? 그렇다면 더더욱 치트키를 마련해둘 수도 있는 거지.”

“…….”

“표정이 왜 그래?”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아니 씨발…… 제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있지…… 그게 무슨 재미야!! 그냥 개억지 쓰는 것뿐이지!!”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새하얀 가면은 왜인지 내 반응이 무척 우습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그것은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웃겨서 웃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느낌에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지? 이 녀석은 왠지 니알라토텝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

나를 모멸하지만 왜곡된 악의가 없다.

영락없이 니알라토텝의 하수인이나 화신 같은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근본부터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이 [새하얀 가면]은 뭐지?

내가 의혹을 느끼고 있을 때 새하얀 가면이 말했다.

“그거 알아? 사실 네가 아무리 절연의 기운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건 룰 위반이야. 하지만 [큰 굴레]가 이어져 있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천암비서는 이 예외적인 상황을 인정하기로 했지. 그러니까 나도 아주 오랜만에 재미라는 걸 느끼는 것 같다.”

“뭐라는 거냐.”

“다음번에는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아올 수 없단 소리야. 최소한 한 번 이상 엔딩을 봐야 날 만날 수 있을걸.”

그렇게 말한 새하얀 가면이 검지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네 복잡한 상황을 쉽게 풀 수 있는 치트키를 하나 알려주지. 쓰고 말고는 네 선택이다.”

“……!!”

치, 치트키를?!

나는 흠칫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비유가 아니라 정말 치트키가 있단 말인가?

새하얀 가면은 씩 웃는 듯하다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두라고…… 이 멍청한 광대놈아…….”

잠시 후 새하얀 가면이 내 귓가에 한마디를 속삭였다.

***

파앗!!

나는 다음 순간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 눈앞에는 전륜성왕이 서 있었고, 전륜성왕이 말했다.

“그대의 정신을 절연으로 파괴했다가 본좌의 권능으로 원상복구시켰다. 사실 어찌 될지 모르는 도박이었는데 그대의 정신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데 성공했나 보군.”

“…….”

“그대의 무의식과 마주했나?”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륜성왕은 흥미를 느꼈는지 말했다.

“좋아…… 그러면 다시 한번 절연의 기운으로 그대의 의식에 힘을 흘려보내겠네. 이번에도 견딜 수 있을지를 한 번 지켜보도록 하지.”

스아아아!!

다음 순간 전륜성왕의 손에서 기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서 내 전신을 휩쓰는 걸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내 정신을 파괴했던 그 절연사막의 기운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와는 달리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기운이 절연사막의 침범을 막아주는 것 같았다.

츠츠츠!!

나는 그 기운의 도움으로 절연사막의 기운을 재빨리 뿌리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전륜성왕이 말했다.

“확실히 무의식에서 뭔가를 얻은 것 같군.”

“이런 힘을 얻을 걸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자신의 무의식과 마주한다는 건 자기 자신과의 인연을 강화한다는 이야기가 되지. 절연사막이 상대의 인연을 끊어 버리는 힘을 발휘했을 때 자신과의 인연이 견고해져서 저항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그랬군요.”

“무의식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

나는 잠시 후 거짓말을 했다.

“아무것도요.”

전륜성왕은 내가 무의식에서 보았던 걸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새하얀 가면]과 만났던 기억을 읽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분명하리라.

그리고 나는 지금 전륜성왕에게는 그 존재와의 만남을 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륜성왕조차 읽지 못하는 기억이라면 앞으로 흑요석은 물론이고 다른 자들에게도 숨길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입밖으로 꺼내서 누설할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나는 왜인지 모르지만 이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머릿속에 새하얀 가면이 말해준 한마디가 기억났다.

[가면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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