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45화 (1,544/1,615)

전생검신 87권 14화

와, 이건 너무 어려운 얘기 같은데…….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깃들어있는 깊은 현기를 이해할 수 없어서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아무리 내가 전생자라지만 자아를 버림으로써 죽음을 초월한다는 생각은 해본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저기……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아가 되면 죽음조차 사라진다는 게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 표면적인 개념은 알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경지에 도달한다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전륜성왕께서는 그 방법을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겉핥기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그 방법을 깊게 이해하여 수련에 이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세상 모든 앎이라는 게 그리 간단했다면 공부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방법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나인 동안에는 추구할 수 없지.”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일전에 말했듯, 본왕의 목표는 해탈의 경지가 아니라 가련한 약자들을 혼돈과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보호하여 안식처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신적 존재들의 쟁탈전을 멈추는 우주적인 중용을 이룩하는 것이지. 그러므로 내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해탈의 방법을 알고 있어도 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

“허나 본왕이 행할 수 없다 하여 그대까지 할 수 없는 건 아니지. 그러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섣불리 단정 짓지 말라.”

그렇게 대꾸한 전륜성왕이 슥 하고 나를 향해 다시금 손을 내뻗었다. 나는 방금 전에 겪었던 극악한 고통이 생각나서 움찔했고, 전륜성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보아라. 그대는 고통에 민감하여 고통을 피하고자 두려움을 느낀다. 허나 그것은 잘못되었다.”

“그거야 고통 때문에 경직되면 전투에서 지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니, 전투의 효율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대쯤 되는 존재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칠정(七情)에 예속되어 있는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말이지.”

“저는 인간이니 칠정에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신조차도 칠정을 벗어날 수 없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항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칭 신이라 하는 삼황오제나 [옛 지배자]들이 존재의 소멸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온갖 행위를 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과 경우는 다르더라도 신들에게도 두려움은 존재하였으며 칠정 또한 다른 형태로 존재했다.

전륜성왕이 말했다.

“그래.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신이 존재의 소멸을 두려워하고 칠정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사실 신으로 칭하고 있을 뿐인 불완전한 존재들임을 뜻한다. 그들은 모두 가짜 신이라고 할 수 있지.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우주에서 극소수뿐이겠지만…….”

“……?!”

“그러므로 그대는 그들을 뛰어넘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진실에 도달하는 최소한의 조건이겠지.”

가짜 신?!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했다. 그래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가…… 가짜라니. 그럼 진짜 신은 따로 있단 말입니까?”

“외신(外神) 중에서도 절대신이라 할 수 있는…… 세 손가락에 꼽히는 자들만이 진신(眞神)이라 할 수 있으리라.”

“…….”

“그리고…… 거짓된 창조신…… 종말에 나타나게 될 거짓 창조자는 다섯 가지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다. 편법을 써서 그 경지에 도달하여 신왕(神王)이 되려는 마법사들이 무수히 많은 듯하나…… 그들은 사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네?”

“본 왕의 추측으로 그건 처음부터 필멸자들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 것이다. 특정한 존재를 가리키는 대명사일 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전륜성왕이 말을 이었다.

“본 왕은 그대가 어떤 존재일지는 아직 모른다. 허나 인과가 여기까지 흘렀다면 그대는 최소 그에 걸맞는 존재겠지. 그러므로 칠정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으음…… 칠정을 초월한다니…… 어떻게 노력해야 합니까?”

“고통이란 생존을 위한 본능의 발현이다. 그리고 생체를 초월해서도 고통은 느껴지게 마련인데, 그 이유는 존재가 소멸한다는 공포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生)을 위한 집착…… 열생(咽生)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가?”

“…….”

“바로…… 무위(無爲)이다. 우주의 근간에 맞닿아 있는 허무의 개념 그 자체이지.”

무…… 무위?

어디서 들었던 얘기 같은데…….

나는 그 얘기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

역근세수경의 책 안에서 도신대사와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했었던 거 같은데……?!

[마음이 뭐 어쨌단 거요?]

[당신의 식(識) 너머에 있는 무의식…… 그 자체가 [꿈]을 부르고 있소. 그 꿈이란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원시적인 근원의 혼돈…… 당신이 이 세계의 시련에서 많은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당신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어두운 실체가 일깨워질지도 모르오.]

[당신은 스스로의 무의식과 무위(無爲)를 얼마나 깨닫고 있소?]

그때 나는 도신이 무슨 개소리를 하나 싶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잘난 척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 눈앞의 전륜성왕 또한 무위를 이야기하자 갑자기 뭔가가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 무위…… 그게 바로 칠정의 근원이란 말인가?’

…… 아니, 어쩌면 설마 그건 신역절기(神域絶技)의……?!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뻗었을 때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팔식(八識)……?”

그러자 전륜성왕이 처음으로 경탄하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호오……!! 본왕과 만나기 전에 어딘가에서 심득(心得)을 얻었었나 보군.”

“…….”

나는 곰곰이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륜성왕에게 말했다.

“저는 미래의 세계에서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생체가 아닌 기계육체인 저에게도 강제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라운과 아난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석가모니가 그들에게 알려준 가르침 자체에 그런 능력이 부여되어 있는 게 틀림없으리라.

“흠…….”

“설마 그들의 능력이라는 게 팔식(八識)이자 무위(無爲)의 경지에 연관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훌륭하군. 거기까지 깨달음이 진행되어 있다니…….”

탄식하듯 말하던 전륜성왕이 나직이 말했다.

“백웅이여. 잘 생각해보거라. 기계에는 어째서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네? 그거야 당연히 살아 있는 육체가 아니라 그냥 철 덩어리일 뿐이니까…….”

“아직도 고정관념에 갇혀있군.”

“고정관념이라니요. 빼고 말 것도 없는 객관적인 진실인데 이게 어째서 고정관념이라 하십니까?”

전륜성왕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팔짱을 꼈다.

“기계가 살아 있으면 안 되는 것인가?”

“…….”

“왜 그대는 기계에게 삶(生)이 없다 생각하는 것이지?”

엥? 그, 그게 뭔 소리야?

나는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이야기에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 그거야 인간이 빚어내었고…… 자율의지도 감각도 없고…… 그냥 도구일 뿐이니까…….”

“그 이야기는 신격들 또한 그대 인간들에게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종족은 신이 권능으로 빚어내었으며 신들이 볼 때 인간은 자율의지와 감각도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 벌레취급이라도 해주면 다행이라는 건 그대도 알고 있을 터.”

나는 당황해서 항변했다.

“다, 다르잖습니까? 그건 그냥 격의 차이일 뿐이고 기계는 정말로 생명이 없다고요!”

“그래? 그렇다면 전뇌자와 미래 대웅제국의 신승 명호대사는 무엇인가?”

“…….”

“그저 자기가 생명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안드로이드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고도로 발달된 지능을 갖고 있으니까 생명체죠…….”

“그 고도로 발달된 지능의 기준은 무엇이지? 그대가 상상할 수 없는 초지능을 지닌 존재에게 있어서 그대 또한 원시생물이나 아메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극히 주관적 기준으로 생명을 판별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아, 그게…… 하아…….”

대체 내가 무슨 궤변과 싸우고 있는 거지? 한낱 기계가 생명이 있다니 말도 안 되잖아?

하지만 전륜성왕의 말을 어떻게 논파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나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말했다.

“백웅이여. 삶이란 주관(主觀)이다. 주관자의 시야를 지닐 수 있는 존재는 모두가 삶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관이라고요?”

“그렇다. 세상 만물이 객관(客觀)이라 생각하는 것은 필멸자들의 짧은 생각일 뿐. 존재와 삶을 동위(同位)라 한다면 그대의 생각보다 삶의 기준은 굉장히 넓은 것이다.”

그렇게 말한 전륜성왕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들이 가진 그 능력이란 만물에 주관을 부여하는 것. 그리하면 전신이 기계라 할지라도 충분히 고통을 느낄 수 있겠지. 그것이 팔식(八識)을 깨달은 자의 특권일 것이다.”

“……?”

“너무 추상적이라 이해가 안 되나 보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전륜성왕은 차디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덥석 하고 내 머리를 움켜잡았다.

“죽음과 삶을 깨닫기 위하여…… 이 절연사막의 기운으로 그대의 정신을 파괴하겠다.”

“네?!”

“그대는 의식을 넘어선 경지에서 스스로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노라!!”

콰직!!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

여기는 어디지?

아니…… 어디라고 할 것도 없다. 나는 수많은 경험 덕분에 실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허무맹랑한 세계의 실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느껴왔었던 꿈속의 세계가 분명하리라.

‘근데 망량선사의 꿈속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이 허무로 가득 차 있는 이 공간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의식만 존재한 채 공처럼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침묵과 허무의 시간을 보냈을까…….

나는 갑자기 내 앞에 알 수 없는 혼돈이 꾸불텅거리며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꾸르륵…… 쿠륵…… 쿠륵…….

마치 촉수 같은 게 잔뜩 허무 속에서 뻗어 나오더니 이윽고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윽고 하나의 형태를 가지는 듯했다. 나는 깔끔한 형태로 완성되어 이 공간에 나타난 형체를 보자 흠칫하고 놀랐다.

‘…… 가면(假面)!!’

저건 틀림없는 가면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라면 저 가면에는 아무런 색이나 문양도 칠해져 있지 않았으며 모양도 극히 단순하고 맨들맨들해 보였다. 그냥 눈코귀입만 뚫어놓은 새하얀 가면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 그 새하얀 가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는 백웅이다.”

…….

나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과 혐오감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단순히 상대가 나를 사칭한 것뿐이었지만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불쾌한 분노가 내 전신을 지배하는 것만 같았다. 내 존재 자체가 ‘저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분노였다.

내가 부들부들 떨자 갑자기 그 새하얀 가면이 빙긋 웃었다.

“장난이야. 나는 네가 아니다.”

씨발……!! 뭐냐고!

슈슈슉

내가 불쾌감과 분노로 떨고 있자 그 새하얀 가면에게는 천천히 몸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나, [백웅]의 몸뚱이를 소환한 그 새하얀 가면은 나를 마주 본 채 털썩 그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무척 지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삶을 느끼기 위해 나와 마주하려 했다니 참 귀여운 시도로군. 뭐, 그런 것도 아주 예전에 겪어본 것 같지만.”

나는 한참 후에야 억지로 내 몸이 경직되어 있는 감각을 견뎌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네 무의식(無意識)에 잠들어있는 표상(表象)이다.”

“네가 나라고……?”

새하얀 가면은 질렸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라고 이미 말했는데 정말 멍청하군. 나는 네가 아니야.”

“…….”

“왜? 나와 진정한 백웅이 누구인지 말싸움이라도 할 거 같았나? 유감이지만 나는 너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아.”

대놓고 내게 모멸감을 드러내는 그 새하얀 가면은 잠시 후 피식 웃었다.

“뭐…… 멍청할 수밖에 없지. 처음부터 그런 게임이었으니까.”

“이 개새끼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새하얀 가면은 마치 재밌는 생각이 났다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모처럼 찾아온 김에 하나 물어보자. 별로 대단한 질문은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해줘도 돼.”

“어떤 질문인데.”

새하얀 가면은 양손에 검지를 하나씩 치켜세워서 든 채로 말했다.

“네가 만약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임을 할 경우, 너는 치트키를 쓸 거냐 안 쓸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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