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12화
계급장 떼고 붙자고?
나는 그 말에 움찔하며 말했다.
“너 이 새끼 드디어 나한테 반란을…….”
흑웅이 기운 빠진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후우, 무슨 헛소리요? 그럴 거면 딴짓하고 있을 때 습격해서 대가리를 날려 버렸겠지.]
“아.”
[게다가 나는 주인의 그림자. 주인을 죽인다는 건 나도 죽는다는 뜻이니 그럴 리가 없잖소. 물론 주인이 정말 개 같은 놈이라면 그냥 같이 찔러 죽이겠지만,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니까.]
“…….”
아직은 이라니 참 말버릇이 곱구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갑자기 계급장 떼고 붙자니 반란이 아니라면 의도가 뭐야?”
[이해 못 했소? 아난은 전례 없는 초고수일 거요. 그런 자를 섣불리 잴 수 없다면, 가능한 빡센 상대와 싸워서 생사의 고비를 넘는 게 그나마 차후의 대결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오.]
스윽
[나 정도면 충분히 그런 상대가 되어줄 수 있소.]
“…….”
나는 내게 암창을 겨누는 흑웅을 보자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는 나도 마주 검을 들며 대꾸했다.
“그 말이 맞다.”
흑웅의 역량은 천지천상을 지배하는 상위신격조차 인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강하기까지 하니, 내가 흑웅과 겨룬다는 것은 어쩌면 내 수준에서 가장 빡센 상대와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동시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흑웅과 싸운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군…….’
흑웅은 언제나 내 편이었기에 굳이 적으로 돌릴 이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새삼 흑웅을 앞에 두고 있으니 나는 왠지 긴장되어서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흑웅은 강하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젠장…… 신력의 위압감이 크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쫄려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흑웅,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내일이 아지다하카랑 싸우는 날이거든? 너랑 싸우다가 다치거나 죽으면 너무 손해인데…….”
[이거 참. 전생자가 왜 이리 몸을 사리는 거요? 죽어도 31번째 생에 또 나를 소환할 수 있잖소?]
나는 그 말을 듣자 흑웅이 진심이라는 걸 느끼고는 소름이 돋았다.
‘이, 이 새끼 진짜 날 죽일 생각으로 덤비는 거구나!’
흑웅이 빈말을 할 성격은 절대 아니다. 실전처럼 임해야 얻는 게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덤빌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흑웅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기에 항변했다.
“아니 이번 30번째 생에 진행한 게 얼마나 많은데 죽으라고? 너 방금 전에는 날 죽이면 자기도 죽는다면서…….”
[또 전생자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군. 그런 미혹을 버리고 죽음도 받아들일 때 진짜 전생자의 강점이 생기는 것이거늘…….]
혀를 끌끌 차던 흑웅이 갑자기 뇌신류 창술의 기수식을 잡았다.
[헛소리 마시오! 주인, 그따위 정신상태로 어찌 차후에 신역에 이른 진소청을 대면할 생각이란 말이오!]
“……!!”
진소청!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흑웅을 바라보자 흑웅이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훈련 도중에 주인을 죽여서 나 또한 소멸하는 거? 그런 건 중요치 않소. 진짜 중요한 것은 주인이 죽음을 불사하고 무(武)의 진경(眞境)에 오르는 것! 그 정도 각오도 하지 않고 어찌 우주최강의 무예 천재인 진소청과 떳떳이 마주하려 드는 것이오!]
“…….”
흑웅의 눈에서 시꺼먼 빛이 튀었다.
[주인…… 한계를 넘어서시오! 그것이 바로 지름길이외다! 지금 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아지다하카나 아난 따위가 아니오! 언젠가 당신은 진소청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외다.]
“흑웅…… “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요. 지금이라도 주인이 싸움을 물리고 싶다면 물리겠소이다.]
나는 흑웅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진심으로 한 번 싸워보마.”
흑웅의 말대로다. 늘 안전한 길로만 가서야 어찌 아난이나 진소청 같은 무의 괴물들과 겨루겠는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사리다가 여태껏 수많은 함정에 빠졌으면서 또 함정에 빠질 뻔했던 것 같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흑웅 네가 얼마나 강한지 보자고!’
이제 이 우주의 운명 따위 알 바 아니다!
처억
흑웅과 나는 삼 장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보았다. 흑웅은 뇌신류 창술의 기수식을 잡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대항해 뇌신류 검술의 기수식을 잡고 있었다. 흑웅은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선공하겠소.]
퓨웅!!
다음 순간, 흑웅의 번개 같은 찌르기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그 찌르기가 단순하지만 막대한 위력과 속도를 싣고 있는 찌르기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창술의 기본에 무척 충실하다는 걸 알아챘다.
이름 없는 초식이며 찌르기이지만 강하다. 나는 그 찌르기에 대적하려면 쳐내는 게 아니라 내 방어범위를 좁히면서 마지막까지 살펴보다가 치명상을 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반 보를 뒤로 물러나며 끝까지 지켜보았다.
지이잉
흑웅의 암창이 마치 분영(分影)을 일으키듯 찰나의 순간에 창극(槍戟)이 떨리며 분열했고 마지막에 찌르는 위치를 헷갈리게 만든다. 나는 이것이 창술의 육극(六極)에 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 것을 깨닫고 내심 탄성을 냈다.
‘훌륭하다!’
육천합일창(六天合一槍)이라고 임시로 이름 붙인 그 수련의 결과는 흑웅 또한 공유하고 있었는데, 흑웅은 내가 못 보던 사이에 스스로 그 오의를 소화해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암창이 어디를 노리는지를 알아채고 내 명치를 찔러오던 궤도에 검을 갖다 대어 비껴나가게 만들었다.
타앙
슈슈슈슉
흑웅은 자신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며 더욱 빠르고 강렬한 기세로 천뢰무극창(天雷無極槍)의 초식을 연환하여 나를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나는 흑웅이 천뢰무극창으로 공격해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뭐? 천뢰무극창은 내가 다 외우고 있는 익숙한 초식인데…….’
심지어 백여 년간 수련하면서 변초도 외울 만큼 다 외웠기에 아무리 절묘한 변환을 시키더라도 내 실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흑웅이 나를 얕보나 싶어서 불쾌해졌지만 흑웅이 약 다섯 초식을 연환시키고 있을 때 갑자기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촤아악
갑자기 암창의 끝이 액체로 변하더니 허공에서 흩어지더니 내 방어초식을 꿰뚫고 다시 합성(合成)된다! 나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변화에 눈을 부릅떴다.
콰아앙!!
아슬아슬한 순간에 나 또한 그 변화를 감지해서 합성격(合成擊)을 튕겨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경탄하여 소리를 질렀다.
“사신지혼(四神之魂)?! 어떻게 이런…….”
틀림없이 방금 전에는 수혼화(水魂化)를 이용해서 창의 성질을 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본디 사신지혼이란 전신의 성질을 바꾸는 것인데 이런 부분변화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내가 놀라자 흑웅은 잠깐 창을 거두고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주인은 눈치채지 못했구려.]
“뭘?”
[화신류(火神流) 고대종사 심수력의 사신지혼 성취가 수십 년 이상의 수련 끝에 주인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오. 하지만 주인은 정작 심수력이 어떤 식으로 사신지혼을 발전시켰는지 잘 모르고 있었지. 나는 심수력이 이런 방식으로 사신지혼을 발전시킨 것이라 추측하오.]
“……!!”
[전체변화가 아닌 부분변화! 그것만으로도 실전성은 몇십 배나 강해지게 되지.]
정말 흑웅의 말대로였다.
‘지금은 수혼화로 간을 보여주었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사신지혼의 부분변화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
이건 분명히 뜻밖의 정보였다. 내가 사신지혼의 부분변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 흑웅은 암창을 뇌혼화(雷魂化) 시켰고, 순식간에 파직거리는 뇌창(雷槍)으로 변화했다. 뇌창을 거머쥔 흑웅이 말을 이었다.
[자, 이것도 받아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거요.]
투확
다음 순간 흑웅의 뇌창이 그의 손에서 놓아지듯 사라졌고 동시에 이기어창(以氣御槍)의 기세로 나를 공격해 왔다. 이기어창은 보통 무림인은 반응도 못하고 죽을 정도로 빨랐지만 나는 절대지경의 경지 이상에 올라섰기에 그 낌새를 감지하고는 가볍게 궤도를 피했다. 하지만 그 궤도를 피하는 순간 갑자기 뇌전이 번쩍하더니 말 그대로 뇌우(雷雨)가 터져 나가듯 수만 갈래의 번개가 비산(飛散)했다.
퍼펑
극히 찰나지간이었지만 나는 뇌신지혼을 응용해서 그 살인적인 절초마저도 모두 피해냈다. 하지만 번개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세 줄기의 살초(殺招)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고, 나는 이것만큼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정면으로 검뢰를 날려 대응했다.
타앙!
‘큭?!’
하지만 나는 전력을 다해서 검뢰를 펼쳤음에도 내 힘이 크게 달려서 밀리는 것을 느끼고는 당혹감을 느꼈다. 이윽고 세 줄기의 공격이 융합되어서 그 힘을 더하자 나는 버티지 못하고 튕겨나가고 말았다. 내가 공중제비를 돌아서 착지하자 흑웅이 훗하고 웃었다.
[어떻소?]
“어떻게 그런 위력을 낼 수 있지? 아무리 네가 쓰는 암창이라지만…….”
[암(暗)과 뢰(雷)의 속성이 융합된 거요. 복합속성이지.]
“……?!”
보, 복합속성?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놀라서 눈을 부릅떴고 흑웅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신지혼은 그 속성을 변화하면서 다른 속성마저 포용할 수 있는 성질이 있소. 나도 이걸 제대로 수련한 건 아니고 그저 응용만 해본 것이지만, 아마 심수력은 이 복합속성을 심화시켜서 위력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오. 지금 내가 암뢰속성을 쓴 것 이상으로.]
“……!!”
[재능 없는 주인이 이런 묘수(妙手)의 경지를 단시간에 깨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 일전에서 사신지혼의 새로운 가능성 정도는 깨닫길 바라겠소.]
츠츠츠츠!
다음 순간 흑웅의 좌완에는 흑염(黑炎), 우완에는 흑뢰(黑雷)가 감돌아서 제각기 선홍빛과 푸른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딱 보기만 해도 무척 강하고 멋있었기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외쳤다.
“아니 씨발!! 이런 게 어딨냐!”
[뭐가 이런 게 어딨소?]
“흑웅 너는 내 분신이잖아! 그럼 나랑 재능이 비슷해야 할 거 아냐? 어떻게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났냐고.”
[…… 이제 와서 그런 소리라니.]
흑웅은 큭큭 웃더니 말했다.
[나는 주인의 분신이지만 내가 형성될 때는 오제 전욱의 강대한 신력이 가장 큰 기반이 되었소. 주인이 전생하면서 가장 많이 모았던 게 전욱의 동상에서 흘러나온 신력…… 거기에다가 전욱과의 인연도 가장 깊었기 때문이오.]
“음.”
[나는 어찌 보면 전욱의 화신이기도 한 것. 그러므로 내가 가진 재능은 주인의 재능이 아닌 천신(天神)의 것이오.]
“…….”
[전욱하고 모의전을 해보고 싶소? 그러면 거기에 맞춰 드리리다.]
쿠구구구
흑웅은 본격적으로 뇌전을 머금고 있는 흑뢰의 암창을 소환하여 손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흑염의 철퇴를 쥐었는데 저기에는 불꽃의 기운이 흐르고 있어서, 저건 암염(暗炎)의 복합속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흑웅과 나의 실력 차를 절감하고 말았다.
‘이런 제길! 복합속성의 공격은 방금 느끼기로 순간적으로 단일속성보다 몇 배나 위력이 증가한다…… 흑웅과 내가 가진 힘이 비슷하더라도 이래서는 정면으로 부딪힐수록 나만 손해야!’
지금까지 늘 흑웅의 도움을 받아서 남과 싸우기만 했기에 흑웅이 이렇게나 강한 줄은 잘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두고 보니 어째서 흑웅이 탁록시대에서 수많은 신적 존재들을 패줄 수 있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흑웅은 이미 그 자체로 오제 전욱에 필적하는 신적 존재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적을 대단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지금 나는 적이 된 흑웅을 어떻게든 이기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내가 흑웅에 비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흑웅보다 나은 게 뭐가 있지……? 으음…….’
잠시 후 나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 트리무르티…… 그리고 암야참이다!!’
이 2개의 기술만큼은 흑웅이라도 현재 전수받지 못한 것! 왜냐하면 흑웅은 내 기억과 연동되긴 하지만 왜인지 저 2개의 기술은 아예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인지 내 심득을 전해 받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저 2가지 외의 거의 모든 기술, 힘, 능력치에서 흑웅에 비해 약했기 때문에 나는 전략을 잘 짜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해보자.’
나는 일단은 트리무르티로 대응하기로 마음먹으며 마음속에 세 개의 영역을 점해놓았다. 그리고 내 내면에서 세 가지 속성의 힘이 조합되기 시작하자, 그 낌새를 눈치챈 듯 흑웅이 말했다.
[신기(神技) 트리무르티로군. 과연 그건 내가 쓸 수 없는 기술이니 괜찮은 선택이오.]
“들어와 봐.”
[좋소. 어디 주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지켜보지!]
투확
다음 순간, 흑웅이 엄청난 기세로 쇄도하며 광풍(狂風)처럼 양손에 들려 있는 무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암창과 철퇴가 번갈아 날아오며 나를 찢어발기려 하자 나는 양손을 합장하며 트리무르티를 시전했다.
트리무르티(三位一體)
삼환방벽(三環防壁)!
콰광
세 개의 고리가 회전하는 신력의 방벽을 만들어내어 나 자신을 보호하자 흑웅의 공격도 내게 피해를 주지 못하고 폭발음만 내며 튕겨나갔다. 역시 아무리 사신지혼으로 일점파괴력을 높인다 하더라도 흑웅도 숙련도가 높은 게 아니기에 제대로 트리무르티를 이용해서 구축한 방벽을 뚫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흑웅은 포기하지 않고 흑염의 철퇴를 투척하여 내 신경을 분산시켰고, 내가 마저 신력을 집중해서 철퇴를 막는 사이에 흑웅이 다음 수를 쓰기 시작했다.
성라회천(星羅回天)
재귀발현(再歸發現)
흑웅의 투구에서 안광이 새어 나오며 그만의 고유기술, 성라회천을 시전하는 게 보였다.
트리무르티와는 달리 지금까지 내가 전생하면서 받아온 가호를 그대로 구현화하는 기술이었는데, 나는 성라회천의 낌새를 보자 어떤 기술인지 눈치채고는 깜짝 놀랐다.
앗, 저 기술은…….
대운중첩(大運重疊)
“으 씨발 이 비겁한 새ㄲ…….”
퍼버벅!!
내가 욕설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흑웅이 던진 암창이 던져져서 내 어깻죽지에 박혔다. 트리무르티로 만들어낸 삼환방벽은 가볍게 관통당해 있었고 흑웅이 창을 던진 자세 그대로 말했다.
[칭찬 고맙소, 주인.]
“크윽!!”
흑웅이 쓴 전법은 단순했다. 흑웅과 내가 지닌 신력은 같다고 볼 수 있기에 내가 전력으로 방어하는 트리무르티의 삼환방벽은 아무리 흑웅이라 하더라도 정공법으로 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운중첩을 이용해서 엄청나게 운(運)을 상승시켜서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내 방벽을 관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제기랄! 이런 전략이 있다니!’
나는 급히 내 어깻죽지를 관통한 암창을 뽑았지만 뽑아낸 곳은 회복되지 않았다. 원래 신력을 이용해서 물질의 상처를 단숨에 수복할 수 있지만 흑웅의 암뢰창은 그 자체로 저주를 머금고 있는 강력한 공격이었기에 아무리 신이라도 회복이 안 되는 것이다. 흑웅은 다시금 암창을 꺼내서 뇌신류 창술의 기수식을 잡으며 말했다.
[아무리 트리무르티가 대단한 기술이라도 신력의 응용에 있어서 주인은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소. 나는 수십억 년을 살아온 대신격들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신력을 내 몸처럼 쓸 수 있기 때문이오.]
“…….”
[더 보여줄 게 없다면 여기서 끝내주지.]
고오오오
나는 흑웅의 암창에 모여드는 전력을 보자 긴장하고 말았다. 힘 그 자체는 나와 비슷할지라도 그걸 응용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흑웅의 말이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 저 공격도 성라회천을 써서 어떻게 변형시킬지 모르고 사신지혼까지 쓰면 그 변주의 폭이 무한대나 다름없었다. 나는 흑웅의 주인이라서 흑웅의 기술을 거의 다 알고 있으며 공유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대응하기 힘들 정도니 흑웅을 마주치는 적들은 사신(死神)을 만난 것 같은 공포를 느꼈으리라.
‘신력의 응용에서 대적할 수 없다…… 그러면…… 트리무르티를 쓰더라도 흑웅을 이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흑웅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을 뿐.’
나는 어깻죽지의 통증을 참으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아채고는 이를 악물었다.
‘할 수 있을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보통 상대라면 몰라도 내가 가진 거의 모든 수를 공유하고 있는 흑웅이기에 중간에 눈치채 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검을 거머쥔 채 다시 전투자세를 잡았다.
…….
정적의 순간, 흑웅은 이번에는 암창을 투척하지 않고 그대로 내게로 돌진해 왔다. 마치 꼼수 없이 정면에서 끝내버리겠다는 듯한 태세였고 내가 어떤 수를 쓰든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나는 흑웅의 돌격 앞에서 원래라면 무쌍패라도 쓰면서 버티기에 들어갔겠지만 나는 무쌍패를 쓰지 않았다.
‘무쌍패를 쓰면…… 당장은 무승부로 버티지만…… 결코 이길 수 없다!’
도리어 상대에게는 무한히 공격할 기회만 주므로 미래 대웅제국의 표현으로 하자면 샌드백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상대가 흑웅이라면 더 그랬다. 그래서 나는 흑웅을 상대로 무쌍패를 쓰고싶은 유혹을 뿌리치며 대신에 전신전령을 다해서 일검을 전방으로 그었다.
콰과광!!
전력을 다한 검뢰(劍雷)가 암창에 부딪혔지만 역시 흑웅은 이미 사신지혼을 이용해 복합속성을 두른 듯 가볍게 회전창의 초식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를 상대로 우위를 차지했다. 검의 궤적이 튕겨 나가며 내가 바로 수세에 몰리자 나는 검술과 창술이 대적할 때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는 걸 직감했다.
‘검술가는…… 창술가에게…… 절대로 찌를 공간을 내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미 검술의 헛점 때문에 내 가슴팍이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 상태!
쿠와앗
아니나 다를까 흑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장 천뢰무극창의 연환초식으로 내 가슴을 관통할 셈으로 맹렬하게 공격해 왔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공세를 마주하며 순간 안광을 빛냈다.
‘그러니까…… 일부러 약점을 보여준 거라고!!’
흑웅이 무조건 무공으로 공격하게 유도해야 이길 가능성이 있으니까!
다음 순간, 나는 삼보절기(三步絶技)를 시전하며 [흐름]을 읽었다. 정상적이라면 허용되지 않을 정도의 빈틈 속에서 [흐름]을 읽는 게 가능할까 싶어서 조마조마했지만, 이윽고 나는 그 불리한 수세 속에서도 단 하나 내가 살아나갈 수 있는 맥(脈)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흐름]에 거부하지 않고 몸을 맡긴다.
동시에 삼보(三步) 중에 인(人)을 넘어 지(地)의 2보를 밟았다. 나는 내 공간을 확보하자마자 그대로 검을 내던져 버렸고, 검사로서 있을 수 없는 뜻밖의 행동에 흑웅은 순간 흠칫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흑웅 조차도 내가 검을 버리는 건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흑웅이 보인 찰나의 빈틈 덕분에 나는 그대로 내 팔을 검날처럼 만들어서 휘둘렀다.
암야참(暗夜斬)
슈칵!!
역의 역을 노린 계책이 성공한 것일까? 내 암야참은 무척 수월하게 흑웅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갈랐고 흑웅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크윽……!!]
“헉, 허억…….”
나는 나대로 갑자기 모든 기력과 심력을 소모한 느낌에 숨을 몰아쉬었다. 어찌나 지쳤는지 단숨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이마와 코끝에 땀방울이 맺혀서 떨어졌다. 원래 내가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체력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나는 이윽고 왜 그런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 기계의 몸일 때는 몰랐는데…… 이 암야참…… 아니 [흐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을 다 써 버리잖아!!’
기계의 몸일 때 별 무리를 안 느꼈던 건 애초부터 힘이 0이기 때문이었던 걸까? 반면에 기력이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는 죄다 소모를 해 버리니까 엄청나게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설마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위화감의 정체는 이거란 말인가?
흑웅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하다가 경탄했다.
[…… 훌륭하군……!! 주인이 암야참을 깨달았다는 건 이런 것인가!! 나는 절대로 쓸 수 없는 기술이오.]
“헉…… 흐억…… 헉…… 쓰읍…… 너…… 너는 왜 못 쓰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이 방금 썼던 기술의 원리를 전혀 알 수가 없소. 아마도 이것이 신역에 발을 들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인가 보군.]
그렇게 말한 흑웅이 다시금 암창을 소환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접근만 안 하면 의미 없겠군. 죽으시오.]
“어…….”
퓨퓨퓨퓽!!
갑자기 허공에 수백 개의 암창이 소환되어 쉴 새 없이 날아오자 나는 정신없이 구르고 뛰어다니면서 피했다. 실시간으로 내공이 채워지고 있어서 어떻게든 대처할 만했지만 나는 기가 막혀서 외쳤다.
“야 이 새끼야! 방금 전은 훈훈하게 덕담하면서 끝내야 할 상황 아니었냐?!”
[농담하시오? 시작부터 생사결처럼 한다고 말했잖소.]
흑웅의 안광이 강렬하게 빛났다.
[어디 한 번 한계를 넘어보시오! 나는 오늘 기필코 당신을 죽여 버리고 말 테니까!]
“……!!”
쿠콰콰쾅
콰앙
‘헉, 허억…… 으으윽.’
나는 그렇게 흑웅과 미친 듯이 싸우기를 수백 초식을 거듭했다. 이환웅과 싸울 때와는 천지 차이였고 나는 흑웅과 부딪힐 때마다 내가 크게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암야참으로 결판을 내려고 해도 흑웅은 두 번 다시 내게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고 신력이 소모되어 갉아 먹히는 일만 반복이 되었다.
아득하다.
나와 흑웅의 실력차이가 이토록 컸단 말인가?
‘으…… 젠장……!!’
하다못해 신역절기를 능동적으로 쓸 수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
암야참을 늘 [흐름]을 읽은 후 되치기로밖에 쓸 수가 없으니까 전술이 너무 제약된다고!
“어.”
설마 나한테 부족하다는 건……?
내가 뭔가 깨달으려고 하는 그 순간이었다.
나는 흑웅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한순간 트리무르티의 시전을 실수해서 삐끗했고 흑웅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흑염권(黑炎拳)을 수백 발이나 날리며 내 전신을 피떡으로 만들었다.
쿠콰콰콰쾅
내가 육편이 되어서 전신이 뭉개지며 허공으로 날아가자 아련하게 흑웅의 말이 들려왔다.
[그럼 이제 전륜성왕을 만나고 오시오.]
***
…….
내가 다시 의식이 들었을 때, 내 눈앞에는 전륜성왕이 서 있었다.
전륜성왕은 내 모습을 한 채 나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너는 참 특이한 놈이구나. 설마 자기자신의 정령에게 맞아죽다니…….”
“…….”
정말로 한 번 죽어서 저승에 왔단 말인가?
하지만 전륜성왕이 나를 봐주고 있으니 죽더라도 다음 전생이 시작되지는 않는 것이리라. 나는 그제서야 내가 과거의 굴레에서 잊고 있었던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미 나는 전륜성왕의 후계자로 낙점된 시점에서 죽음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걸.
욱씬
‘으윽!’
아무리 그래도 심하지 않은가? 설마 전신을 산산조각내다니!
흑웅 이 새끼 평소에 유감이 많았던 거냐?!
내가 아직도 죽을 때의 통증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말했다.
“백웅. 그래서 무엇을 깨달았느냐?”
“으윽…… 음…….”
나는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
“……흑웅이 당신에게 나를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야 흑웅이 대련하면서 나를 죽이려고 눈이 벌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처음부터 흑웅은 내가 전륜성왕을 만나서 새로운 힘을 얻기를 바랐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