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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41화 (1,540/1,615)

전생검신 87권 10화

선지자의 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사서? 진정한 신?’

여태껏 전생하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정보! 게다가 사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갑자기 짚이는 게 있었다.

나일라토프를 파리 잡듯이 책장을 접어서 잡아 버렸던 그 존재.

어둠의 책의 주인.

누구냐는 물음에 내게 의지를 담은 고동으로 답했던 그 존재 -

‘분명…… 그 존재는…… 내게 자신이 [굴레 바깥에 있는 사서(司書)라고 했었다!’

틀림없다. 그 존재 외에는 있을 수가 없으리라.

그렇다면 갑자기 출현해서 나일라토프를 잡았던 그 존재가 사실은 허공록의 사서이며 외신이었다는 말인가?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다가 문득 말했다.

“선지자. 나는 알 카르다흐를 만나 봐야 하는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

“왜 갑자기 말이 없어?”

내가 재차 물어보자 선지자가 스윽 하고 자신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더니 말했다.

[방금 전의 정보는 네게 주는 공짜선물 같은 거였다. 흉신의 체면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이 이상은 대가를 받아야겠군.]

“대가?”

[왜 모르는 척이지? 네가 전생자라면 이미 무수히 나와 거래를 했을 터…… 이 세상에 정말로 공짜가 있을 거라 생각했나.]

“쳇.”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 스리슬쩍 공짜정보를 계속 얻어내려 했는데 역시 선지자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은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정보료를 원하냐? 적당한 선이라면 내겠다.”

선지자는 음충맞게 웃었다.

[흐흐. 허세 부리는구나. 흉신에게서 받은 정보라면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고 싶은 정보일 터. 하물며 우리 종족의 신에 관한 거라면…… 전생자인 네가 어느 정도로 갈망할지 알고 있다.]

“…….”

에잇…… 젠장…… 역시 선지자다. 바로 이쪽이 아쉬운 처지라는 걸 들켜 버렸단 말인가?

내가 낭패스러움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릴 때 선지자가 말했다.

[흉신이 직접 나섰다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우리는 이 판에 뛰어든 종족으로서 자격조건 정도는 확인해야 한다.]

“……?”

[우리 종족의 신, 알 카르다흐를 소환해서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준비물이 필요하다. 그 준비물이 뭔지 알고 싶다면 ‘우리 종족이 알 수 없는 지식’을 가져오도록 하라.]

“……뭐라고?”

선지자의 종족이 알 수 없는 지식을 가져오라고?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조건이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선지자에게 말했다.

“야! 그냥 마법의 보물 같은 거 받으면 안 돼? 신력이라던가 그런건 안 되는 거냐? 예전엔 그런 거 잘만 받더니만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안 된다. 어차피 전생자에게 있어서 아무리 귀중한 보물이라 할지라도 일생에 스쳐 지나가는 외물(外物)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전생자가 우리 종족의 지혜를 뛰어넘을 정도의 역량이 있는지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그걸 너네가 왜 확인하는데?”

[그런 능력도 없는 존재를 알 카르다흐께 알현시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불경(不敬)이기 때문이다. 외신의 분노를 사게 된다면 네가 책임질건가?]

“…….”

에잉…… 저놈의 새끼는 항상 말빨이 좋아서 오래 얘기해서 내가 좋을 게 별로 없군…….

나는 속으로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결국 포기하고는 말했다.

“……좋아. 너네가 모르는 지식이기만 하면 어떤 정보든 상관없는 거지? 별로 어렵지도 않은 거 아니냐고.”

그러자 선지자는 무척 웃긴 소리를 들었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흐흐흐. 정말 그럴까?]

“어? 너네가 우주의 모든 지식을 아는 것도 아니고 너무 오만한 거 아냐? 우주 저 끝에서 아무거나 알아 오면 너네가 어떻게 알 거냐.”

[맘대로 해 보아라. 네 생각보다 이 과제는 어려울 터이니…….]

“…….”

뭐야? 저 자신감은?

나는 수상쩍은 느낌을 받으면서 선지자에게 말했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한 가지 확실히 알아두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이냐?]

“알 카르다흐를 만나면 선택지가 생길거라고 흉신이 내게 말했다. 너는 혹시 짐작가는 게 있냐?”

[…….]

“정보료가 더 필요하다면 말만 해. 몇만년이 지나더라도 알아올 테니까.”

[정보료까지는 필요 없다…… 원래 그게 알 카르다흐 님의 권능이니까…….]

“뭐?”

내 반문에 선지자가 대답했다.

[허공록의 사서로서…… 그 분께서는 전지자의 지혜를 일부분 공유하신다…… 그리고 그분을 알현할 자에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하는데…… 그 선택지는 [큰 굴레]마저 초월하는 것이기에…… 필멸자의 상식을 아득하게 뛰어넘지.]

“으음.”

[우리 종족 또한 예전에 그분의 시험을 통과한 덕에 이 우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얻게 된 것이다…… 지혜의 시험을 통과한 자는 그만한 대가를 얻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

선지자의 종족이 이만큼 강해진 것도 외신 알 카르다흐의 덕이라는 말인가!

‘하긴 외신을 뒷배로 둔 종족이니까 당연한 걸지도…….’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의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종족은 어째서 자신들의 신이 외신이라는 걸 굳이 숨기는 것일까?

그걸 밝히기만 해도 천지천상의 모든 신들이 은연중에 두려워하게 될 거고 훨씬 더 살기 편할 것인데…… 어째서 저놈들은 알 카르다흐를 비신(秘神)으로 취급하며 꽁꽁숨기는 거지?

“…….”

뭔가 선지자가 내게 숨기고 있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선지자에게 말했다.

“좋다. 그 ‘정보료’라는 걸 조만간 갖고 오지.”

[기대하지.]

“근데 만일 이번 생에 죽을 경우 다음 생에 또 도전할 수 있는 거냐?”

[물론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생자라지만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선지자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어? 그 자신감 뭐냐고…….”

[흐흐흐.]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차피 선지자에게 직접 도전해야 알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아무튼 그럼 우리를 지구로 돌려보내 줘. 해야 할 일이 많거든.”

[잘 가거라.]

파앗!

나는 잠시 후 정신을 차려 보니 흑웅과 함께 레무리아 제국의 수도로 되돌아와 있었다. 과연 마도왕 선지자답게 엄청난 마법을 써서 시공간을 뛰어넘게 해준 것이다.

나는 레무리아 제국으로 귀환하자마자 대기실의 숙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차가운 얼음주스를 마시고 있던 미청년에게 외쳤다.

“이환웅!!”

이환웅은 내 부름을 듣자 눈을 끔벅거리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말했다.

“지하를 탐사하러 간다더니만 잘 갔다왔어? 백웅.”

“……그게.”

나는 이환웅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고나자 이환웅은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이환웅에게 말했다.

“물론 쉽게 못 믿을 일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분명 [큰 굴레]를 넘어다니고 있고 지금은 과거로 잠깐 와 있는 상태다.”

“못 믿을 게 뭐가 있겠어? 지금 나만 하더라도 당신을 따라서 천암비서 내부에 있다가 얼떨결에 수만년 전 과거로 온 셈인데…… 충분히 믿는다.”

이환웅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백웅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군. 선지자의 시험을 통과해서 알 카르다흐를 만난 후 정보를 얻어서 명경을 통해서 [큰 굴레]의 미래로 간다. 맞지?”

“그래.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이환웅은 갑자기 장탄식을 흘렸다.

“……하아!! 이거 엄청 어려울 거 같은데. 미친 거 아냐?”

“어려울거라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이환웅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웅. 혹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라는 개념을 들어봤나?”

“아카식 레코드? 그게 뭐냐?”

“내가 살던 시대에는 꽤나 보편화된 개념이고, 나는 스승님께 직접 들은 얘기지만…… 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무한(無限)의 정보귀속처라고 할 수 있어. 쉽게 말하자면 전 우주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그곳에는 이 우주의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거야.”

“…….”

“내 시대에는 수많은 초상능력자들이 자신이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서 무한한 지혜를 얻었다고 주장했었어. 하지만 죄다 거짓말쟁이였지. 사실 내 스승님조차도 아카식 레코드는 존재하되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고 인정했었걸랑.”

“나일라토프가……?”

나는 움찔하고 말았다.

나일라토프는 [과학]의 가면으로서 전 우주에서 손꼽히는 강함을 자랑하는, 삼황오제 이상의 힘을 보유한 존재였다. 그런 나일라토프가 지닌 힘과 지혜는 내가 일월지혼을 쓰지 않으면 도무지 상대도 안 될 정도였는데, 그런 어마어마한 상위존재조차도 아카식 레코드에는 접속할 수 없었다니!

이환웅은 앞으로 자신의 상체를 숙이며 신중하게 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선지자와 그 종족들은 아카식 레코드를 쓸 수 있는 것 같아…… 지금까지 당신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래.”

“어? 아카식 레코드를 쓸 수 있다고?”

“그래. 감이 안 와? 무한의 정보가 담겨 있는 도서관…… 그 도서관의 사서가 바로 외신 알 카르다흐…… 그 알 카르다흐의 가호를 받는 게 선지자의 종족이잖아. 그게 바로 아카식 레코드의 계승자가 아니겠냐고.”

“……!!”

“그리고 아카식 레코드를 쓸 수 있는 자들이라면 사실상 전 우주의 어떤 정보든 간에 알 수 있어. 다만 지금 당장 갖고 있지 않을 뿐인 거지.”

나는 이환웅의 말에 멍청히 서 있다가 말했다.

“그럼 수십억 광년 밖에 있는 이름 모를 행성에서 난생 처음 보는 광석을 채취해서 그 밑바닥에 있는 원소 배열 같은 걸 맞춰보라고 해도 맞출 수 있을 거란 말이냐?”

“큭큭큭. 백웅 당신은 그런 식으로 선지자의 시험을 통과하려 했단 말이야? 그 정도면 삼황오제 정도만 되도 다 알 수 있을 텐데.”

뭔가 우습다는 듯 킥킥댄 이환웅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식으론 통과 못 할 거야. 그자들은 지금 당장은 그 지식을 모를지 모르지만, [검색]하면 다 나올 테니까.”

“……?!”

“뭐…… 대우주버전 검색엔진이 있다고 이해하면 편하려나?”

뭐, 뭐 그런 게 다 있다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선지자의 종족이 지닌 능력이 그 정도였다니!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흑웅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통과하는 게 불가능한 시험이 아닌가? 그 말대로라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지 않은 기록을 선지자에게 제출해야만 한다는 소리인데, 그건 전제부터가 모순인 이야기다.]

이환웅은 흑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모든 게 기록된] 도서관이니까 거기에 존재치 않는 지식을 제출한다는 건 말도 안 돼.”

[선지자가 일부러 함정을 판 것인가.]

“아니, 내가 볼 때 그건 아닐 거야.”

[근거가 뭐지?]

이환웅은 느긋하게 몸을 늘어뜨리며 차가운 주스를 한 모금 홀짝였다.

“선지자는 전생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전생자를 둘러싼 외신들의 음모에 대해서도 약간은 알고 있는 걸로 보이지. 그렇다면 이 시련을 내놓은 이유는 하나야.”

이환웅의 눈이 번득였다.

“……전생자의 능력이 [굴레 바깥]에까지 먹힐 만한가…… 그것을 증명하라는 소리다. 이 우주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내놓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외신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이 소리겠지. 합당한 시련이야.”

[건방진 놈이군. 제 놈이 뭔데 감히 주군에게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인가?]

“아카식 레코드를 사용할 수 있는 종족이라면 그럴 자격은 되지. 도리어 이 우주에서 선지자의 종족이 과소평가되어 있을지도.”

그렇게 말한 이환웅이 나를 쳐다보았다.

“백웅. 내가 볼 때 이 과제는 지금 당장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게 아냐.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눈앞에 있는 일부터 처리하면서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게 어때?”

“눈앞에 있는 일?”

“깜박했어? 당장 며칠 후인데.”

이어진 이환웅의 말에 나는 그제서야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데미우르고스 레덴에서 승점을 다 모아서 1위 패왕에게 도전할 자격이 생겼잖아.”

“아……!!”

그렇다.

우주검성이자 투기장의 패왕 아지다하카!

미래에는 용병왕으로 만나게 될 그 존재와의 대결이 바로 코앞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미래에서 만났던 아수라의 말이 생각났다.

[백웅. 사실 나는 네가 어떻게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 눈치챘다.]

[과거로 가게 되면 반드시 아지다하카와 싸워봐라.]

신역의 경지를 높이는 데 필요한 징검돌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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