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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39화 (1,538/1,615)

전생검신 87권 08화

스으으

나는 어둠으로 가득찬 우주 내를 유영하며 생각했다.

‘흉신이 거하는 ‘바다’인가.’

솔직히 우주에 또다시 바다 같은 게 출현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그땐 많이 놀랐었다. 하지만 새삼 또다시 그걸 두 눈으로 보게 된다고 생각해도 이제 놀랍지는 않으리라. 왜냐하면 그런 거에 하나하나 놀라기에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막중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옆에 따라붙어서 오고 있는 흑웅에게 말했다.

“흑웅.”

[말씀하시오, 주인.]

“나는 사실 이 상황을 한번 겪은 적 있다.”

[……? 무슨 말이오.]

나는 잠시 멈춰 서 흑웅에게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흑웅은 놀란 듯 굳어 있다가 잠시 후 말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그렇다면 주인에게 있어서 지금의 이 세계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간 선이라니.]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망량선사는 내가 지금 시점으로 회귀해서 연기라는 걸 얻어야 한다더군.”

[연기라는 게 무엇이오?]

나는 연기에 대해서 흑웅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흑웅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주인은 망량선사의 능력으로 한 번 [큰 굴레]의 과거로 되돌아올 때마다 더욱 과거로 가고 있소. 그렇다면 다음 번에 또 돌아오면 계속 과거를 향해 간다는 얘기가 아니겠소.]

“그럴 거 같다.”

[그럼 이 행위를 반복하게 되면 결국 주인이 [큰 굴레]의 과거로 오기 전의 시점까지 되돌아간다는 얘기가 아니겠소?]

“……?!”

어?

그런 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내가 흑웅의 말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짓자 흑웅이 말했다.

[지난번에 주인이 ‘별을 뒤트는 자’의 가면을 얻어 원래 세계의 시간대로 되돌아갔을 때는 결국 그 명경(冥鏡)에 갔었소. 그렇다면 이번에도 주인이 해야 할 일은 일단 과거를 바꿔놓고 나서 그 명경까지 가서 잠에 빠지는 것이오.]

“흠……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소.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하오. 흉신과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간에 주인은 반드시 다시 그 명경 앞으로 도주하는 데 성공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겠군. 고맙다, 흑웅.”

[고마울 거 뭐 있소? 나는 주인의 그림자…… 나는 내가 소멸할 때까지 주인에게 충성할 것이오.]

그렇게 대꾸한 흑웅이 말을 이었다.

[부디 이번에 주인의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 있기를…….]

그렇게 나와 흑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는 새삼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암천(暗天)의 바다!

일전에 봤었던 그 기이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거성(巨星)조차도 한낱 부유물에 지나지 않아 수면에 떠 있는, 미칠 정도로 광대한 바다! 일전에는 이 바다의 위압감에 압도당했었지만, 이번에는 도리어 마음속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촤앗

나는 이 극열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신력으로 만든 옷을 창조해서 걸치며 생각했다.

‘굳이 저번처럼 안쪽까지 뛰어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잠시 후, 내 귀에는 강렬한 신언(神言)이 들려왔다.

[본디 공간을 유지하는 데 방해되어서 황도십이궁의 빛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대의 신력이 간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성좌의 모습을 비추고 말았구나.]

쿠구구

어둠의 저편에서 출현한 신적 존재를 보자 나는 나직이 말했다.

“[별을 뒤트는 자]인가.”

[과연 내 정체를 알아채다니 역시 범상치 않은 신격이구려.]

“…….”

혹시나 했지만 역시 [별을 뒤트는 자]가 하는 말은 이전에 내가 마주쳤을 때 들었던 말과 대동소이했다. 내가 그동안 숱하게 느껴왔던, 전생을 거듭할 경우 똑같은 상황에서 상대가 똑같은 말을 하게 된다는 법칙은 저놈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왠지 안심이 되어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서 나가주기를 정중하게 부탁드리러 왔나?”

[이야기가 빠르군. 더불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동의해야겠군.”

[후후.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래 주면 고맙겠소.]

원래라면 [별을 뒤트는 자]의 말에 동의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동의해봤자 이미 흉신 입장에서는 부전협정을 박살 낸 것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했고 원한다면 언제든 나를 해치워서 전과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런 불안요소를 놔두고 멀쩡히 바깥에서 행동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어려운 관문을 피해 가서는 안 돼.’

그런 직감이 든다. 나는 주먹을 꾹 쥐면서 [별을 뒤트는 자]에게 말했다.

“르 뤼에의 수호의식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약속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조만간 내 앞에 흉신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별을 뒤트는 자]는 내 말에 흠칫하더니 도리어 웃는 듯했다.

[거기까지 파악했으면서 여태 도주하지 않는 다라? 정녕 그대의 힘으로 나의 주를 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오?]

“글쎄, 대적할 이유가 있을까?”

[……?]

“나는 대화를 하러 왔거든.”

[…… 말도 안 되는 소리. 주께서 그대 같은 침입자와 대화를 할 이유가 없소.]

“그건 지켜보면 알겠지.”

쿠구구…….

나와 [별을 뒤트는 자]가 서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갑자기 거대한 바다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진동과 함께 천공에 떠 있던 황도십이궁의 별자리가 무엇인가에게 잡아먹히듯 암천에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이윽고 허공의 암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 바로 흉신이었다.

덜컹!!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또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제길……!!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도저히 저놈의 존재감은 익숙해 지지가 않아!!’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흉신에게서 느껴지는 절대무비한 압박감은 정녕 차원이 다른 것이었고 어쩌면 종말의 직전 합체의 경지에 이른 황제 공손헌원조차 뛰어넘을지 모르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신이라지만 외신도 아니면서 이 정도의 힘을 지닌 놈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잠시 후 발밑의 바다가 공명(共鳴)하며 끓어오른다. 그리고 어둠의 열해가 끓어오르면서 생겨난 소용돌이는 점점 더 넓어지더니 그 중심에서 찬란한 적색거성이 떠올라오는 것을 알아챘다.

‘곧 적색거성에서 빛이 날아 온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신력으로 장막을 만들어서 빠르게 대비했다.

파파팡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힘의 격차가 딱히 좁혀지는 건 아닌지, 적색광선에서 날아오는 우주적인 힘의 광선에 전신이 아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흑웅이 초조해하며 외쳤다.

[주인, 정말 괜찮은 거요? 도망치려면 지금뿐인 데!!]

“……괜찮아.”

나는 이를 악물며 흐릿하게 웃었다.

“나를 믿어라, 흑웅!”

잠시 후 수평선 너머에서 적색거성을 제물로 바치고 흉신이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거체를 드러낸 흉신이 내게 말했다.

[금기를 범했는가, 전생자여.]

좋아, 지금부터가 진짜다.

나는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흉신의 말에 대꾸했다.

“진작 범했지. 그리고 지금부터 금기를 넘어서겠다!”

[…….]

내 말에 흉신이 잠시 날개를 펄럭였다. 침묵하고 있던 흉신이 말했다.

[우자(愚者)여…… 네 뒤에 천상에서 떨어진 자의 환영이 보이는구나.]

“…….”

[말하라. [큰 굴레]의 금기를 깨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역시.

이 놈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흉신의 힘에 눌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흉신. 네 녀석은 저번에 내가 말하지도 않았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내가 살던 원래 시간대에 있던 너, 흉신과 교섭을 했기 때문에 [큰 굴레]의 과거에서 네가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어. 하지만 너는 마치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했지.”

[…….]

“난 그게 정말 이상했다. 책사들에게도 그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줄곧 위화감이 있었어. 아무리 위대하고 강하다지만 어떻게 [큰 굴레]의 미래에 있을 일을 이미 알고 있는 건지. 하지만 내가 직접 [큰 굴레]를 넘어 보니까 짐작이 가는 게 있었어.”

나는 잠시 후 날카로운 눈으로 흉신을 노려보며 외쳤다.

“흉신…… 네 녀석도…… 직접 다녀온 거지? 나처럼.”

흉신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도리어 반응을 보인 것은 내 주변에 있던 두 신적 존재였다.

[호오……?]

[별을 뒤트는 자]는 정말 놀란 듯 흠칫하는 반응이었고 내 옆에 있던 흑웅이 당황해서 말했다.

[주, 주인이여!! 그게 무슨 말이오? 아무리 흉신이라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오?]

“가능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흉신 저 녀석은 지난번에 나한테 분명 이렇게 말했었거든.”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가 [큰 굴레]의 금기를 어겼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기억을 읽었느냐고 물어봤을 때 무량한 굴레를 넘을 수 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어!!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서, 설마…….]

“그래. 저놈이 말하는 [무량한 굴레]라는 건…… 바로 큰 굴레다.”

나는 30번째 전생 만에 알아낸 진실을 마침내 입 밖으로 외치고 말았다.

“흉신 저놈의 진짜 능력은…… [큰 굴레]를 마음대로 넘어 다니는 거라고!!”

이제서야 아귀가 맞춰지는 것 같다.

[종말(終末)이 이 세계의 운명인 이상, 그 종말의 계시자는 종말이 시작되었을 때 무량(無量)의 힘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흉신(凶神)이 [아버지]에게 받은 진정한 인과율이다.]

황제 공손헌원의 말.

[저게 흉신의 권능이라고?]

[그래. 무량(無量)한 시공간을 제패한다는 바로 그 능력이야…… 수많은 [옛 지배자]들이 경외하는 절대적인 초상능력!]

경외를 품고 있던 전뇌자의 한마디.

[나는 신자의 왕이자 구주의 사도. 그러므로 주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함께 쓸 수 있을 따름이오…… 무량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 능력을 이용해 은하를 제패했나니.]

전욱과 싸울 때 [별을 뒤트는 자]가 했던 말.

그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눈앞의 흉신은 [큰 굴레]를 이동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는 손을 부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흉신!! 내 말이 틀리냐!”

내가 발악하듯이 외친 말에 한참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흉신이 말했다.

[그래…… 이렇게까지 해야 깨닫는 것이 바로 우자(愚者)가 아닌가.]

“……뭐?”

[일말의 진실에 도달한 소감은 어떠한가…… 전생자…… 아니…… 그리 부를 수 있을까…… 우자의 가면을 쓴 자여.]

마치 조롱하듯 말하는 흉신의 한마디에 나는 잠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고 있었기에, 흉신의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설마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전에 문답무용으로 부전협정을 깨고 나를 공격했던 흉신의 그 행위가, 설마 흉신이 [큰 굴레]를 넘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깨우치기 위한…… 흉신의 계책이었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 어!! 말도 안 돼!!’

흉신이 그렇게까지 원대하고 심원한 계책을 짤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내 행보는 죄다 흉신에게 농락당했을 뿐이라는 걸…… 인정하란 말인가!!

그리고 잠시 후 흉신의 말이 이어졌다.

[우자여…… 그렇다면 그대는 알 것이다.]

흉신의 두 눈빛에서 흉광(凶光)이 일어났다.

[그런 나에게 거역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가를…….]

“……!!”

그렇다.

지금 나는 단 한 번 [큰 굴레]를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얻고 있는데, 흉신은 이런 짓을 원하는 만큼 반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놈은 나중에 얼마나 큰 힘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일까? 흉신이 무한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갑자기 납득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죽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이를 악물었다.

“씨발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그리고 네놈이 그런 존재라면 이상한 게 있거든!”

[무엇인가…….]

“그럼 네놈은 전생자보다 더한 존재인데 왜 진작 우주를 지배하지 않았겠냐고! 그리고 내가 지금보다 더 보잘것없고 약할 때 어째서 나를 노예로 만들지 않았냐고! 안 그래?”

[…….]

“내 추측이지만…… 흉신 너는 뭔가 큰 제약이 걸려 있어!! 그리고 그 제약을 풀기 위해 날 이용하려는 거다! 그렇지 않냐!!”

내 외침에 흉신이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는 한마디를 말했다.

[이 싸움은 전지(全知)가 전능(全能)에 도달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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