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07화
나는 제갈유룡, 제갈부 등과 함께 처소에 있던 망량을 찾아갔다. 그리고 망량은 내게 전후사정을 듣자 정말 놀란 듯했다.
“아니 그런?”
[시바가 앞으로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으니 다행인 듯싶소.]
“으음…….”
망량이 힐끔 제갈유룡에게 시선을 향하자, 제갈유룡 또한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시선을 교환한 책사들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제갈유룡이 말했다.
“백웅. 시바가 말한 대로라면 우리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겠소.”
[어떻게 수정한다는 말이오?]
“원래 우리는 당신의 힘을 키워서 빠르게 지상의 세력들을 제압하여 당신의 신력을 더 빨리 늘리려 했소. 그런데 서왕모가 언제 기습해올지 모르는 데다 스사노오 토벌계획 자체가 무효가 되었으니, 지상의 세력을 제압하는 건 조금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소.”
[그럼?]
내 반문에 대답한 것은 침상에 앉아 있던 망량이었다.
“최대한 빨리 힘을 축적한 후 바로 내 스승님께 가는 거요.”
[망량선사에게 가는 거라면…….]
“연기(緣起)를 얻기 위해 [큰 굴레]의 과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오. 본디 이 시기가 조금 늦어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고 힘을 넉넉하게 모아서 가는 게 안정적일거라 생각했는데, 서왕모의 기습이라는 변수가 생겨 버렸으니 말이오.”
[흠.]
“한 달 내로 스승님께 가시오. 그리고 연기를 통하여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낸 후 다시 현재의 시대로 되돌아오는 게 좋겠소.”
[알았소. 나야 뭐 상관없지. 그런데 말이오.]
“뭔가 궁금한 게 있소?”
[서왕모가 혼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나타난다고 시바가 말했었소. 근데 서왕모에게 동료라 할 만한 존재가 있었단 말이오?]
“…….”
망량은 두려운 듯 살짝 몸서리를 치더니 말했다.
“……사실 내 지혜로도 짐작이 가지 않소…… 허나, 만일 그런 존재들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들이 출현하는 순간 이 남경성의 전력으로는 못 막아낼 것이오. 지금 당신이 힘을 보태줘도 마찬가지지.”
[구천현녀의 힘을 빌려도 안 된다는 건가?]
“서왕모는 화신일 뿐이고 그녀를 조종하는 진짜 흑막이 누군지 알잖소?”
[……!!]
“동시에 그 말은 한 번 서왕모가 공격해올 경우 구천현녀조차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적들이 한꺼번에 나타난다는 말……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소.”
꾸욱!
그렇게 말한 망량이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백웅…… 제발 뭔가 변수를 만들어 주시오! 이대로라면 무조건 모두 몰살당할 테니…… 두려워서 어쩔 도리가 없소이다.”
나는 이런 망량의 모습이 의외였다. 언제나 의연하고 강해 보였던 망량이 왜 이리 약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나는 그래서인지 약간 당황하며 대꾸했다.
[뭘 그리 두려워하시오? 서왕모가 아무리 강해도 지금까지 만나왔던 신적 존재들이 얼마나 많소.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당신이 없는 20여년 동안…… 분명 우리 인간들은 수많은 신적존재와 외계인, 초능력, 마법을 접하며 무수한 싸움을 했소. 그래서 익숙해진 건 사실이지…… 하지만…… 하지만…… “
망량의 손 끝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졌고 뛰어난 술수를 다룬다 해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인간이오…… 전생자의 존재를 아는 덕에 공포심이 덜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끝없이 두려운 존재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들 대부분은 두려움을 억지로 참으며 마모되어가고 있다오.”
[……!!]
“힘…… 그저 그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공포를 이겨내 왔으나…… 언제 우리의 정신력에 한계가 찾아올지 모르오. 이런 건 나뿐만이 아니니……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하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한층 더 강하게 내 손을 움켜잡았다.
“전생자가 신보다도 위대하여 이 세계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단 말이오.”
[…….]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멍청히 서 있었다. 망량이 이렇게 약해져 있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망량은 강대한 술력과 시해지술의 권능 덕에 정신력이 약해질 때가 없었다. 아난의 염주에 당해서 술력이 흩어지는 바람에 원래 인간의 정신력으로 되돌아온 걸까…….’
아니, 그런 건 다 사소한 이유다. 사실 우주를 주름잡는 신격들과 평범한 인간들이 맞설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내 귀에 제갈유룡의 말이 들려왔다.
“현이의 말대로요. 당신에게 굳이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인간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으며 수뇌부 또한 많이 지쳐 있지. 당신이 과거 소을촌이라는 구심점을 만들지 않았다면 진작 모두 미치고 타락했을 것이오.”
[그 정도였소……?]
“당신이 [큰 굴레]의 과거에서 무엇을 얻으려는 지는 모르겠소. 망량선사가 주는 기회가 무엇인지도 사실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 허나 현이의 말대로 현재로서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요소가 없으니, 당신이 그 기회를 이용해 변수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소.”
[…… 으음.]
나는 고뇌하다가 잠시 후 힘있게 말했다.
[내게 맡기시오! 뭐라도 하면 되겠지.]
나는 책사들과의 회의를 마치고는 다시 아수라 및 토벌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상황을 얘기해주자, 아수라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대체 연기를 얻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망량선사가 하면 좋다고 하니까 하려는 거지.]
“그것 참 묘하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아수라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럼 한 달 동안 우리하고 같이 수련하지 않을 테냐?”
[같이 수련하자고?]
“그래. 나하고 대련하면 얻는 게 많을 거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그 새로운 사신지혼이라는 걸 우리한테도 전수해줘.”
[흠, 사신지혼을…….]
아수라는 좌중을 쓱 둘러보더니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다들 한가락하는 경지에 이르렀거든. 사신지혼으로 이녀석들이 더 강해진다면 신적인 존재들과도 어느 정도 맞서싸울 수 있지 않겠냐.”
[좋아, 가르쳐주지.]
“그럼 시작하자고.”
나는 그 후 토벌대 무인들에게 사신지혼을 전수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아수라와 대련하거나 내 몸에 존재하는 용의 힘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원래부터 잠이 없었던데다가 기계의 몸까지 되니까 쉴 새도 없이 수련을 했고,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났다.
고오오오
한 달 후, 나는 전신에서 내공을 끌어올려보았다. 그리고 내 몸에 휘감겨 있는 뇌령지기의 기운을 보던 아수라가 말했다.
“아냐. 이걸론 부족해.”
[음, 역시 그런가.]
“사룡의 혈맥이란게 무척 용량이 광대한가 보군. 고작 한 달이라지만 네 적공속도는 일반 무림인의 몇십 배는 되는 것 같았는데, 그만큼 내공을 쌓았어도 아직 용의 거부반응이 일어날 정도의 임계점에 이르지 못하다니…….”
[사신지혼을 쓰려고 하면 여전히 바로 막혀 버리는데.]
“그만큼 사신지혼이 대단한 무공이라는 거지. 인간세계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무공이 아니야.”
그렇게 대꾸한 아수라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것보다 너, 정말로 신역의 경지가 진도가 안 나가는구나.”
[…… 젠장. 아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흠…… 제대로 깨달은 신역의 경지가 암야참 뿐이라니…… 여전히 신역의 고수들은 너를 반쪽짜리로 대할 수밖에 없겠지.”
[놀리는 거냐?]
“놀리는 게 아냐.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신역고수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건 알잖아.”
[하지만 암야참으로 상대의 공격은 맞받아칠 수는 있어도 반격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는 게…….]
그렇다. 이게 한 달 동안 아수라와 대련하면서 느낀 내 고민이었다.
아수라가 자연검이나 다른 기술을 썼을 경우 나는 바로 암야참을 꺼내서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쇄로 끝나 버리고 전혀 반격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대결양상은 아수라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고 나는 방어로 상쇄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상황만 반복되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상대에게 반격을 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기겠는가?
내 고민에 아수라가 말했다.
“백웅. 사실 나는 네가 어떻게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 눈치챘다.”
[어?! 빨리 말해줘!]
“하지만 안 말해줄거다.”
[왜.]
“혼자서 깨달아야 의미가 있거든.”
[…….]
또 이러는구만…… 그냥 가르쳐주면 편한데!
하지만 경험상 아수라가 정답을 바로 안 알려준 덕에 내가 도리어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게 사실이기에 답답해도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짜증나는 표정을 짓자 아수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해봐라.”
[뭘?]
“이제 신력이 충분히 쌓여서 연기에 도전하는 거지? 그건 [큰 굴레]의 과거로 간다는 건데, 과거로 가게 되면 반드시 아지다하카와 싸워봐라.”
용병왕 아지다하카!
그는 신역백좌의 고수이자 현 시대에는 용병왕이었다. 그리고 [큰 굴레]의 과거에서는 이미 전 우주를 아우르는 검의 종사로서 나와 대결하기로 예약되어있는 존재였다.
[……? 그냥 지금 아지다하카를 불러서 대련해볼게.]
“아니, 그건 안 돼. 지금의 네가 아지다하카를 상대로 싸워봤자 얻는 게 없어.”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싸워보면 알아. 도리어 지금 싸우는 건 네게 해가 될 거다.”
[……?]
나는 아수라의 뜬구름 잡는듯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수라가 하는 말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잘 갔다와라.”
[좋지!]
파앗
나는 이윽고 미호와 동행하여 순간이동술로 망량선사가 있는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망량선사의 마을에 들어가자 머지않아 미호의 모습이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고, 나는 빠르게 잠이 드는 걸 느꼈다.
그리고 꿈 속의 오솔길에서 눈을 떴을 때, 망량선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기를 얻으러 왔느냐?]
“……그래.”
나는 망량선사의 꿈 속에서 새삼 육체를 되찾아서 육성이 나오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해져서 말했다.
“전부터 몰라서 그러는 건데 연기를 얻는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야? 그리고 이런 짓을 왜 해야 하는 거지?”
[지극히 단순한 이유이다. [과정]을 손에 넣는다는 것뿐.]
망량선사는 차분하게 내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지금 이 사태를 꼬아 버린 존재는 사실 네가 [큰 굴레]를 과거로 돌리기 전부터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너는 현재 상태로는 그 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대항하고자 한다면 그자도 측정할 수 없는 새로운 인과율이 필요하며, 네가 과거에서 얻었던 것을 현재로 계승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
나는 흠칫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흑막 같은 놈이 내가 [큰 굴레]의 과거로 갈 것을 예측해?”
[그렇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아? 애초에 그건 전뇌자의 도움을 받아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야!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는 건데 그걸 무슨 수로 아는 거냐고. 신조차도 [큰 굴레]는 인식할 수 없다면서!!”
[…….]
“애초에 그놈이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이유가 뭔데!! 알고 있으면 가르쳐 줘!”
[그럴 수 없다.]
“왜?!”
[언제나 후수(後手)를 둘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네가 전말을 알게 되면 도리어 그걸 이용해서 더욱 깊은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세상에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망량선사조차 그 능력을 경계하여 섣불리 정보를 줄 수 없을 정도의 존재라니! 망량선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담장에서 폴짝 뛰어내려와서 내게 말했다.
[네가 저번에 행했던 연기로 인해 너는 한층 유리한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중대한 선택이 뭐냐고 물어도 대답 안 해줄 거지?”
[…….]
“알았어. 빨리 보내주기나 해.”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대꾸했다.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
[자신감이 넘치는군. 어디 할 수 있는데까지 해 보아라…….]
스스스스
잠시 후 내 주변을 운무가 뒤덮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잠에 빠지고 말았다.
***
“…….”
엉?
뭐지?
나는 별안간 거대한 우주공간 한가운데 와 있다는 걸 깨닫고는 눈을 비비적거렸다. 어째 익숙한 풍경인데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주인이여. 왜 그러시오?]
“흑웅.”
내 옆에는 흑웅이 와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 난 후 뒤를 돌아보자, 뒤에는 아련하게 열려 있는 차원문이 보였고 그 뒤편으로는 잔뜩 학살당한 괴물들의 시체가 보였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지금 내가 어느 시점으로 와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헉!!”
지, 지금은 설마…….
레무리아 제국에 있던 지하동굴의 마물들을 학살한 후…….
막 흉신의 본거지로 들어온 시점인 건가?!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몸이 뻣뻣이 굳고 말았다.
‘씨발!!’
망했다.
처음부터 저 경계를 안넘었다면 최선이었겠지만 이미 경계를 넘은 상태였다.
즉, 이미 흉신의 본거지에 침입해 버렸다는 소리!!
그리고 흉신의 본거지에 침입했다는 건…….
‘ 나와의 부전협정을 깰 근거를…… 흉신에게 이미 줘 버린 상태야!!’
이렇게 되면 흉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이전과 같은 상태가 반복될 수 있었다.
좀 더 유리해지긴 했지만, 이전상태와 딱히 크게 바뀐 것도 없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제 와서 저 문으로 되돌아간다 해서 흉신 같은 놈이 봐줄 리가 없을 텐데!!
오히려 우주 끝까지라도 무조건 쫓아올 놈이었다. 저승으로 대피하더라도 무조건 쫓아올 테니 똑같은 상황이 또 반복되리라!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잠시 후 내가 뭘 해야 할지를 깨달았다.
“……좋아.”
[왜 그러시오, 주인?]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는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거…… 미래를 바꿔보는 수밖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서 흉신을 설득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