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06화
어둠의 공간 속에서 시바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비슈누가 의문의 존재와 싸우다가 스스로를 봉인하게 되었다. 너는 누구와 싸웠는지 그 정황을 아느냐?”
역시 그 일 때문이었군.
나는 짐작대로라고 생각했다.
‘형제와도 같은 비슈누가 종말까지 봉인 당한 거나 마찬가지인 일이다. 파괴신 시바가 아무리 천축의 삼대신이라도 무거운 엉덩이를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겠지.’
물론 나는 비슈누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나와 협력하려고 교섭한 끝에 천상윤회옥을 내게 주기로 하다가 카필라 성의 유적에 갔는데 하필 아난이라는 괴물을 만나서 싸우는 바람에 결국 대라육천세계라는 기술에 당해서 도주한 것이다.
하지만 시바가 말해달란다고 순순히 말해주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나는 시바를 예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비슈누와 너는 형제와 같으면서 왜 흉수를 모른다는 거지? 삼대신들은 서로의 행동을 알고 있는 게 아니었냐.]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아바타라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다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알 수 있다 하더라도 감시하는 거나 마찬가지기에 살피지 않았다. 게다가 비슈누에게 그 정도의 피해를 입힐 존재가 지상에 존재치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대꾸한 시바가 순간 분노와 격정이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과 네놈의 본거지를 파괴해 버릴 테니!!”
[…….]
도리어 협박이라…….
나는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시바가 분노하는 기운을 정면에서 받고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으며 기에 눌리지도 않는 것이다. 신력이 고갈된 상태인데도 시바의 신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낼 수 있는 요령 같은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그래. 아마 더 대단한 존재들을 상대해본 경험 때문이겠군.’
하도 위대한 자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들의 위압감을 어떻게 해야 받아넘길 수 있는지 나름대로의 요령을 터득한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시바. 나는 그 흉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가르쳐줄 수 없다.]
“왜인가. 네놈도 그놈과 한패라서?”
[아니. 이대로 네가 그를 찾아가면 죽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이대로 소멸하게 놔둘 수 없다. 너를 보호하고 싶다.]
“…….”
내 말에 잠시동안 시바가 당황한 듯한 기색이 보였다. 당황한 것은 시바뿐만이 아닌지 곁에 있던 여신 파르바티 또한 놀란 듯했다. 그도 그럴것이 천축의 삼대신 중에서 [파괴]를 관장하는 존재이자 싸움의 화신인 시바를 상대로 보호한다는 표현을 쓰는 건 그들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리라.
시바는 이윽고 어이가 없다는 듯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크…… 크…… 크하하하하!! 보호한다고? 네가 나를? 진심이냐.”
[그래, 진심이다.]
“크흐흐흐…… 웃기는구나. 지금 네놈 따위는 손가락 하나로 눌러 죽일 수가 있다.”
그렇게 말한 시바가 천천히 자신의 한쪽 손을 내밀더니 검지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 동작이 이뤄진 순간, 나는 마치 수백 배나 되는 중력이 내 몸에 작용하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쿠구구구!!
명백히 순수한 신력(神力)을 이용한 압박! 순수한 [힘]의 결정체이기에 위력은 단순하면서도 강했다. 같은 힘으로 되받아치지 않으면 절대 풀 수 없는 종류의 압박에 나는 강철몸뚱이가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던 시바가 말했다.
“네놈에게 속아서 지난번에 전욱인 줄 알고 불가침협정을 맺은 적이 있지. 네놈은 내가 전욱에게 뒤진다 생각하느냐? 천만에, 우리 삼대신 중 그 누구도 삼황오제 개개인에 뒤지지 않는다……!!”
[…….]
삼황오제 얘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왜 저래…….
나는 속으로 실소가 나는 것을 느끼며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어서 시바를 응시했다.
[비슈누가 이야기하지 않은 건가? 어째서 내가 너를 보호하려 하는지를.]
“그런 이야기 따위는 들은 적이 없다.”
[어? 파르바티가…….]
내가 파르바티를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크리슈나 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그대와 대화할 때도 외부의 시야를 차단하는 막을 시전하셨고요.”
[…….]
나는 시바가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기에 의아했지만 아무래도 동행했던 파르바티한테 크리슈나가 트리무르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일행과 좀 떨어진 곳에서 크리슈나, 망량과 셋이서만 얘기하긴 했지만, 그때 대화가 끝난 후 크리슈나가 파르바티한테 상황을 얘기해준 게 아니었나?
‘자신의 형제가 아닌 파르바티에게 얘기하기에는 신중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건가. 비슈누라면 그럴 만하지…….’
반응을 보니 비슈누의 아바타인 크리슈나가 겪은 일이 전혀 시바에게 전달되지 않은 건 사실인 것 같았다.
‘한 번 더 검증해주는 수밖에.’
나는 훗 하고 웃으며 잠시 후 내게 존재하는 미미한 신력을 응축시켜서 기술을 발현했다.
신기(神技)
트리무르티(三位一體)
치치칭
붉은 보석을 중심으로 정신세계에서 세 가지 속성의 신력이 배열된다. 나는 예전보다는 훨씬 신력이 강해졌으므로 얼치기처럼 트리무르티를 시전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시전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 지금 내 몸통에 감돌고 있는 ‘마력’ 자체를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도 가능할까?’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해 보기로 마음먹으며 기의 형태로 감돌고 있는 사룡왕의 마력을 끌어와서 붉은 보석이 분할 하는 3개의 공간 중 하나에 떨궈보았다. 그러자 치링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당연한 듯이 사룡왕의 색(色)이 정신공간에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되는군!’
트리무르티는 딱히 선천적인 신력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힘] 또한 융합시킬 수 있는 광범위한 기술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느끼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순식간에 세 칸을 채웠다.
사룡왕의 마력, 나 자신의 기(氣), 신앙으로 얻은 새로운 신력!
쿠궁!!
다음 순간, 내 전신에는 마치 흑룡(黑龍) 같은 기운이 갑옷의 형상으로 덧씌워졌고 동시에 시바의 신력이 누르는 압력을 튕겨내었다.
‘호오, 이 조합은 이런 효과인 건가? 갑옷을 소환하는 느낌이군.’
내가 압박을 풀고 다시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원상태로 되돌아오자 시바는 크게 경악한 듯 부르짖었다.
“아, 아니!!”
그것은 내가 융합한 트리무르티의 위력이 대단해서 놀란 건 아니었다. 나는 시바가 왜 놀라는지 알고 있었기에 히죽 웃었다.
[보다시피 이것은 전 우주에서 브라흐마만이 쓸 수 있는 기술, 트리무르티다. 그렇지 않은가?]
“……어, 어떻게 네가 그걸 쓸 수 있는가?”
[당연하다. 브라흐마가 내게 유지를 남기며 트리무르티를 전승해 주었기 때문이다.]
“……!!”
[또한 나는 브라흐마와 약속했지.]
나는 재차 합장을 하며 트리무르티를 시전했다.
고오오오!!
나는 이번에는 브라흐마에게 배운대로 비슈누와 시바의 권능을 구현했다. 비록 지금 브라흐마에게서 전해 받은 그들의 영혼 절반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연스럽게 소환이 되는 게 느껴졌다. 본체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미미한 능력이지만 분명히 비슈누와 시바가 지닌 [유지]와 [파괴]의 권능이 트리무르티의 2칸에 소환되었고 나는 거기에 이어 나 자신의 고유한 신력을 불어넣었다.
카강! 캉!
나는 내 강철의 몸이 갑자기 변형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내 몸이 이면사비(二面四譬)의 형태를 하며 시꺼먼 사룡왕의 기운을 두른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트리무르티로 천축 삼대신의 신력을 하나씩 넣을 경우 삼면육비로 변신하지만 두 명만 넣은 탓에 이면사비가 된 것이었다.
[내 이름을 걸고 브라흐마와 그 형제인 너희들을 파멸의 굴레에서 구해낼 것을.]
“…….”
[더 이상 증명이 필요한가?]
내 말에 시바는 한참 동안 몸을 떨었다. 그는 잠시 후 믿기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웅이여…… 그대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나로서도 도저히 그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다…… 도대체…….”
[시바. 네 이름을 걸고 앞으로 내 혈맹이 되어 내게 전적으로 협력하며 배신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나? 그걸 맹세할 수 있다면 내 정체를 알려줄 수 있다.]
“……맹세하겠다!! 알려다오!”
[좋아.]
촤앗
나는 합장과 동시에 이면사비의 트리무르티 상태를 해제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전생자(轉生者) 백웅. 30번 전생했다!]
“……!! 전생자라고……?!”
[그렇다. 브라흐마하고는 우연히 만나게 됐지.]
“…….”
시바는 물론 파르바티도 크게 놀란 것 같았다.
시바가 잠시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말로만 듣던 그 존재가 실존하는 것이었나…… 진정 놀랍구나.”
[놀라운 걸로 끝날 일은 아니지. 아까 말했듯 내가 브라흐마와 너희를 보호해주기로 약속한 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네가 비슈누를 봉인시킨 존재에게 가게 놔둘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내 형제인 비슈누에게 큰 부상을 입혔는가?”
[아난(阿難). 석가모니의 십대제자(十大第子) 중 한 명이다.]
내 대답에 시바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뭣이? 믿을 수 없다. 기껏 필멸자 석가모니 따위의 제자가…….”
[……?]
뭐지? 시바는 왜 이렇게 석가모니를 얕보고 있는 거지?
나는 당황스러워서 시바에게 말했다.
[시바.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어 [큰 굴레]에 접한 존재다. 왜 그리 얕보는 거냐?]
“그게 말이 되는가? 기껏해야 하찮은 사바세계에서 굴러먹던 자다. 우리처럼 억겁을 살아가는 전능한 신격이 아닌 하찮은 인간 필멸자 따위가 [큰 굴레]에 도달했다는 걸 믿으라는 말이냐.”
[…….]
“그건 전부 그 하찮은 미물들의 허언(虛言)에 불과하노라.”
시바의 단정적인 말투에 나는 신격들이 석가모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냥 정신수양을 했을 뿐인 하찮은 인간!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석가모니는 전혀 다른 존재였기에 나는 인지부조화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수보리는 자세한 사정을 얘기해주지는 않았지만,석가모니가 [큰 굴레]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했다. 그리고 아난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어째서 [큰 굴레]에 도달하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신격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거지?’
뭔가 이상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던 중 뭔가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인간 석가모니와 깨달음을 얻은 후의 석가모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말인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
필멸자에서 신격으로 승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신이라는 단계를 바로 뛰어넘어 [외신]들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단계로 승천(昇天)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사실이 전혀 천상천하에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니!
석가모니는 어떤 의미에서는 황제나 흉신조차 갈 수 없었던 길에 도달한 존재라는 뜻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수보리가…… 내게 뭔가를 숨기고 있었어……!!’
수보리가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은 부분은 바로 인간시절의 석가모니가 어떻게 해서 깨달음을 얻었는가, 그리고 [큰 굴레] 그 자체가 부처라 하면서도 인간 석가모니가 그 [큰 굴레]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였다. 수보리는 늘 그 얘기를 하지 않고 얼버무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뭔가가 있다.
그건 틀림없이 수보리가 어떻게 해서 [큰 굴레] 그 자체와 계약했는지에 대한 것과 연관이 있으리라.
내가 생각에 잠겼을 때 시바가 말했다.
“그래도 그대같은 존재가 말했다면 믿지 않을 도리는 없지.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말해보라.”
[그러지.]
나는 비슈누와 아난이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를 이야기해 주었고 연이어 브라흐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와 어떤 식으로 얽혔는지를 이야기했다. 사건의 전말을 다 이야기하자 꽤 긴 시간이 흘렀고 시바는 고뇌하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무척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파르바티가 말했다.
“시바 님. 이 남경성의 강한 존재들이 점점 제 결계를 깨고 있습니다. 오래 머물면 위험할 듯합니다.”
아마 남경성에 어둠을 불러와서 나를 납치한 것은 파르바티의 권능인 듯했다. 남경성에 있는 내 동료와 천계 신선들을 한순간에 차단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보면 과연 신이라 할 만했다.
“그런가, 나의 반려 파르바티여…….”
침음성을 흘리던 시바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그대 말대로 아난이란 존재와 싸우는 것은 피하겠다. 그 대라육천세계라는 기술의 정체도 위력도 전혀 짐작이 가지 않으니 너무 위험해 보이는구나.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뭐지?]
“그러면 그대라면 아난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대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
확실히 그랬다. 나와 싸울 때 아난이 그냥 무공으로 싸워줘서 그렇지 진짜 전력을 다한 대결을 펼친다면 나는 아마 아난의 손에서 삼 초도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비슈누마저 없앨 수 있는 존재를 상대하기에 지금 내가 가진 힘의 총량은 마치 벌레나 다름없는 것이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큰 굴레]의 과거에 놔두고 온 힘을 다 되찾으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만 말해두지.]
“그런가…….”
시바는 심대한 고민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백웅이여. 그렇다면 그대는 향후 동영에 있는 야마타노오로치와 스사노오를 쓰러뜨리러 갈 셈인가?”
역시 위대한 상위신격이라 그런지 이 세상의 큰일은 거의 다 알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나는 망설임없이 시바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놈들이 가장 츠쿠요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지상에 존재하는 대재앙의 근원이라 하니 그들을 물리쳐야만 세상이 정상으로 되돌아오지 않겠냐?]
“……그렇지 않다.”
[어?]
시바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대들은 전혀 모르고 있나 보군…… 이 사건의 배후에 존재하는 음모를.”
[음모라니? 뭔가 알고 있나?]
“나도 깊이 관련된 게 아니라서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지.”
이어진 시바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사노오를 쓰러뜨리는 게 도리어 월신 츠쿠요미의 봉인을 푸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 봉인이 풀리면 세계는 지금까지의 재앙은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
“그래서 나와 비슈누는 그걸 알고 향후 스사노오에게 도전할지도 모르는 너희 세력에게 접근해서 남몰래 방해할 생각이었다. 정해진 파멸을 맞이하느니 차라리 내버려 두는 게 스사노오를 내세워 음모를 꾸미는 츠쿠요미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라고?!
언젠가 힘을 모아서 스사노오를 토벌하러 갈 생각만 가득했던 나로서는 뜻밖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놀라고 있다가 말했다.
[하지만 스사노오와 이계를 놔두면 점점 피해가 커지지 않나? 아니 애초에 월신 츠쿠요미의 의도가 뭐냔 말이다.]
“글쎄…… 나도 그런 건 모른다. 하지만 츠쿠요미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며 현시점에서 이 우주에 전혀 존재치 않는 존재이다. 그렇게 특수한 존재가 이 세상에 드러나려면 뭔가 조건이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런 츠쿠요미를 남몰래 지원하는 누군가가 있다…….”
[…….]
“백웅이여. 그대가 정녕 전생자라면 이제 인간들의 얕은 지혜에만 귀를 기울일 이유는 없다. 그대는 이미 신들의 지혜와 음모가 얼마나 심대하고 깊은지 알고 있을 터…… 초월자를 상대하려면 그대 또한 초월자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시바의 말에서는 현기가 느껴졌다. 내가 해왔던 전생여정에 비춰보면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기도 했기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그래도 신은 신이라는 건가…….’
늘 전욱마냥 다 때려부수는 파괴마인 줄 알았기에 이런 시바의 모습은 의외였다.
시바는 잠시 후 내게 검지를 가리키며 주문을 외웠다.
“옴(ॐ).”
치지지직!!
그러자 내 몸통에는 갑자기 기이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ॐ이라고 쓰여진 그 문자를 쳐다보자 시바가 말했다.
“그대는 나의 혈맹이자 동료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천상에 손꼽히는 대신(大神)으로서 인과율의 제약 때문에 현세에 손쉽게 관여치 못한다. 만일 볼일이 있다면 그대가 직접 나의 만신전으로 찾아와주기를 바란다.”
[이게 있으면 시바, 너의 만신전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냐?]
“그렇다. 또한 어떠한 주문이나 의식, 마법진 없이도 나의 사도나 화신을 원하는 대로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호오.]
“다만 그들에게는 따로 대가를 줘야 한다…… 감당할 수 있다면 불러라.”
[…….]
뭐야 공짜가 아니잖아? 쳇…….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을 말해두지…….”
[뭐냐?]
파앗!!
잠시 후 시바의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시바와 파르바티가 사라지고 어둠 또한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까 모여 있던 동료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고, 저마다 결계를 깨려고 애를 썼던 모양이었던 것 같았다. 제갈유룡은 나를 보자 외쳤다.
“백웅, 무사했소!!”
[당신들이야말로 괜찮소?]
“……당황스러운 적이었소. 설마 토요의 힘을 쓰는데도 제대로 결계를 해제하는 게 불가능할 줄이야…… 최소한 상위신격이 인과율을 소모해서 일부러 이 자리에 강림했었던 것이오.”
[…….]
그 때 저 멀리서 미호가 빠르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쏜살같이 지상에 착지한 미호가 다급히 말했다.
“백웅 괜찮으냐?!”
[미호.]
“으으. 갑자기 이 정도의 적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제때 결계를 풀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하나같이 파르바티의 결계가 버거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시바와 파르바티가 얼마나 강력한 신격인지를 새삼 느낄 수가 있었고, 그들이 오제(五帝)에 버금가는 강력한 존재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시바가 내게 했던 말도…… 아마 사실이겠지.’
그만한 신격이 하는 말은 신들만 알 수있는 극비.
사실일 수밖에 없다.
나는 시바의 마지막 한마디를 기억해내며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백웅이여. 서왕모(西王母)가 곧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너희 앞에 출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