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05화
나는 아수라를 포함해 이 자리에 와 있는 토벌대 전원을 살펴보았다.
‘명룡자, 성진, 무사시, 신승, 무영검제!’
원래부터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던 존재들이 모조리 토벌대에 참여해 있었다. 게다가 기운을 살펴보니 하나하나가 모두 20년 전보다 훨씬 더 고강해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의념을 쓰지 못하여 그들이 절대지경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들이 진소청의 깨달음을 전수받았다면 대개 절대지경에 이르러 있으리라.
나는 아수라에게 말했다.
[이제 토벌대가 전부 다 퇴각한 건가?]
“전부는 아니지. 진소청과 극호, 용중일, 현천도인 등 아직 남은 자들이 있다.”
[흠.]
“최근 소을이 크게 부상당해서 요양 중이라 하더군. 네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망량에게 대략 들었지만 그래도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으니 얘기해줄 수 있겠냐?”
[좋아.]
나는 아수라를 포함한 토벌대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무려 한 시진이란 시간 동안 서로 문답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해준 결과 그들은 내게 생긴 일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기색이었다.
아수라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뭔가 상당히 복잡하군. 즉 네 진짜 몸은 아직 탁록시대에 있고 지금은 이총이라는 기계인간의 몸에 빙의해 있다는 상태이며 나중에 망량선사의 도움을 받아 임시로 탁록시대에 되돌아갈 거란 얘기지?”
[그래. 망량선사 말대로라면 연기(緣起)라는 걸 쌓아야 하는 모양이야.]
“대충은 이해했다. 그렇다면…….”
아수라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백웅. 지금 상태에서 그 사신지혼이라는 무공을 연마할 수 있겠나?”
[……!!]
“무(武)의 성장을 고려한다면 그게 가장 중요한 과정일 것 같군.”
그랬다.
아수라의 말대로 지금 이븐 시나가 준 이 강철몸뚱이로도 기를 다룰 수 있다면 사신지혼을 연마하는 게 제일 나은 것이리라. 나는 아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번 시도해보지.]
나는 바로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내기(內氣)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시험 삼아서 뇌룡일기공을 일주천시키자 여전히 잘 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기에서 좀 더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으며 사신지혼의 기초단계를 발동시키기 위하여 뇌령지기(雷靈之氣)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치지직!!
아직 얼마 쌓지 않은 내공이지만 그 성질이 뇌전으로 변화하면서 뇌령지기가 생겨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여기까지도 문제가 없자 드디어 진정한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구궁파천뢰(九宮破天雷)!
심수력과 함께 연마해서 발전시킨 새로운 사신지혼의 근본이 되는 뇌신류 최강의 무공이자 심법! 뇌룡일기공과는 차원이 다른 뇌령지기를 다룰 수 있으며 절세의 위력을 보이는 구궁파천뢰가 내 심중(心中)에서 회전을 시작하며 빠르게 대기 중의 기를 빨아들이는 게 느껴졌다.
츠오오오
이윽고 엄청난 기세로 빨려 들어오는 기가 뇌령의 크기를 더욱 크게 만들었고 이윽고 뇌혼(雷魂)과 뇌백(雷魄)으로 분화시킬 수 있는 각이 보였다.
‘좋아, 지금이다.’
나는 곧장 사신지혼의 수혼화(水魂化)를 시도할 셈으로 집중하여 혼백을 나누어 회전시키려 했다. 하지만 뇌혼과 뇌백에 간섭하려고 의지를 뻗은 바로 그때였다.
파지지직!!
갑자기 전신에 어마어마한 뇌류(雷流)가 휘몰아치더니 내 몸을 온통 번개로 감쌌다. 인간이라면 진작 죽고 남았을 정도의 뇌전! 나는 기계인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번개가 내 몸을 감쌈과 동시에 지금까지 흡수한 모든 뇌령지기가 산산이 와해된 것을 느끼자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
이럴 수가…… 사신지혼이 시작부터 실패하다니?!
내가 당황하자 수련과정을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수라가 말했다.
“백웅. 방금 전 뇌기가 분화되기 직전에 네 내면에서 강렬한 어둠이 몰아쳐서 그대로 뇌력을 잡아먹어 버리고 말았다. 너도 느꼈느냐?”
[……? 못 느꼈는데.]
“흐음. 아무래도 혼(魂) 그 자체가 작용한 모양이군.”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백웅…… 지금 너의 그 몸뚱이는 사룡왕의 것이라 했지. 그렇다면 사룡왕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엉? 갑자기 무슨 소리야. 분명 뒈졌는데.]
“그러니까 너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몸에는 사룡왕의 잔류의식, 혹은 혼이라 부를만한 게 남아 있다는 소리다. 그 사룡의 혼이 자신과 다른 기운이 형성되어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걸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의아해져서 아수라에게 말했다.
[아수라! 정작 사신지혼을 운용하던 나는 그런 걸 못 느꼈는데 너는 어둠을 느낀 이유가 뭐냐.]
“혼이라고 하기엔 무척 미미한 잔류의식 같은 거였다. 내가 그걸 느낄 수 있는 건 식(識)이 그 경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지. 너도 신역에 걸쳤다면 내가 무슨 소리하는 지는 알 텐데.”
[으음.]
“본디 네가 갖고 있는 힘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사룡왕이자 마왕의 넋이라도 네게 영향을 주지는 못할 텐데…… 아무래도 몸에 네 것이 아니다 보니 정기신이 일치하지 않아서 불완전한가 보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아수라가 말했다.
“백웅. 사신지혼을 수련해서 예전의 역량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네 안에 존재하는 그 사룡(死龍)부터 제압하도록 해라. 그놈을 억압하든 복종시키든 해야 네가 그 몸으로 의념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젠장. 그렇게 말해도 사룡의 혼 같은 게 안 느껴지는데…….]
“지금 당장은 모를 거다. 네가 몰아일체의 경지에서 순수하게 정념(精念)을 초월한 단계에 손이 닿는다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
“그렇다 해도 뇌룡일기공 같은 인간계 수준의 무공은 연마할 수 있겠지. 우선은 사룡의 혼에 견제되지 않을 정도로 기초역량을 키워도 될 거다.”
나는 아수라의 조언이 다 새겨들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주의 깊게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어찌 되었던 신역급 고수의 조언인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툴툴거리며 아수라에게 삐죽거렸다.
[젠장. 진소청이 대체 너한테 뭘 가르쳐준 거냐? 원래부터 네가 절대지경의 한계에 도달한 고수이긴 했지만 겨우 20년 만에 신역을 가볍게 넘게 해 주다니…….]
“글쎄. 나도 사실 그놈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른다고?]
“그래. 녀석이 쓰는 기술은 뭔지 알지만, 그 기술을 해석할 수가 없어. 크크큭…… 매번 싸울 때마다 진화를 하니 원.”
왠지 자조적으로 웃던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하나 말해두자면 지금의 진소청은 신역의 기술을 쓸 수 있지만, 신역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 그런 게 어딨어?]
“너도 그렇지 않느냐? 암야참은 쓸 수 있는데 깨달음이 온전치 못해서 본격적인 신역의 기술을 다 구사하긴 힘드니까.”
[…….]
음……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는데…….
내가 뒤통수를 긁적이자 아수라가 말했다.
“물론 진소청과는 경우가 다르긴 하지. 놈은 신역을 모두 이해하고 쓸 수 있지만, 일부러 그 기술을 잘 쓰지 않아. 게다가 신역백좌에도 들지 않았지.”
이건 꽤 뜻밖이었기에 나는 놀라며 반문했다.
[왜 그러는 건데? 신역백좌에 들어가면 좋은 거 아니냐?]
신역백좌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신역의 고수로 인정 받았다는 걸로 끝이 아니다. 좌(座)에 존재하는 자신의 자리로 가게 되면 타 고수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으며 전투경험마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막대한 이득을 무공광인 진소청이 포기했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소청이 내게 말하길, 자신은 백웅 너를 위해 무신(武神)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알아내고 싶다고 하더군. 그러기 위해서는 백좌에 가입할 수 없다던데…… 사실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
무신이 숨기고 있는 진실?
그런 것도 있단 말인가?
내가 생각이 깊어져서 잠잠해지자, 그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미야모토 무사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그 녀석은 그저 오만할 뿐이다! 혼자만 모든 걸 다 아는 척하지만 언젠가 내가 놈을 꺾을 것이다.”
무사시의 말에 아수라가 피식 웃었다.
“무사시. 너는 진소청의 삼초지적(三招之敵)부터 벗어나고 나서 얘기하는 게 어떠냐?”
“……!!”
그 말에 무사시는 수치를 느낀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눈매가 무척 사나워졌지만 딱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걸 본 나는 다시금 놀라서 말했다.
[뭐? 무사시가…… 진소청의 삼초지적이 못 돼?]
“이 놈!! 닥쳐!”
무사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아수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낄낄 웃었다.
“크크크, 그래. 늘 무사시 저놈이 진소청을 이겨보겠다고 도전하지만 삼 초 만에 털리고 나서 진소청한테 가르침 받고 나서 또 털리고…… 최전선에서는 맨날 그랬다.”
[……!!]
세상에 그럴 수가?!
이런 말세에 워낙 강한 존재가 많아서 무사시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적어도 그는 동영 역사상 최고의 무공천재이자 불후의 기린아였다. 중원의 기라성같은 초절정고수들도 무사시의 무시무시한 일검 앞에 모조리 초살당했던 것이다. 무사시가 절대지경에 이른 후 천하에서 무사시를 상대할 자는 투선 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무사시를 삼 초 만에 제압하는 진소청의 실력은 전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경악을 느끼다가 문득 아수라에게 물었다.
[아수라 너는?]
“나? 나는 대략 이삼백 초수 정도. 물론 진소청이 진심으로 하지 않긴 하지만 그럭저럭 놈의 대련상대이다.”
[…….]
“백웅. 너무 놀랄 필요 없다. 사실 너도 신역에 도달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대충 알고 있지 않나?”
아수라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진소청에 대해 너무 환상을 품을 필요 없다. 그 녀석도 때때로 혼란스러워하고 번민하는 인간일 뿐이니까. 어차피 진소청이 마지막 퇴각조이니 몇 년 후에는 만날 수 있을 거다.”
[금방 퇴각하는 거 아니었나? 몇 년 이라니.]
“얘기를 자세히 못들은 모양이군. 진소청을 포함한 최후미 퇴각조는 지금 [옛 지배자]의 궁전에 계속 출현하는 마신급 존재들을 상대로 계속 싸우는 중이다.”
[……?!]
“또 하나의 우주에 존재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계의 마왕과 마신들이 거울에 비친 환영처럼 계속 소환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진소청이 그것들을 썰어 버려서 틈을 만들어준 덕에 우리가 퇴각할 수 있었던 거니 진소청은 제일 마지막에 퇴각할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진소청을 구해야 해!!]
진소청이 나보다 무력은 강할지 몰라도 신력이나 마력, 경험 같은 다른 요소를 생각하면 내가 도와줘야 진소청을 살려낼 수 있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지금 아수라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했지만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러자 아수라가 말했다.
“침착해. 지금 진소청을 구원하려면 삼황오제라도 힘든 일이다. 그 [옛 지배자]의 궁전은 뭔가 차원이 다른 곳이야.”
[하지만 이대로라면 아무리 진소청이라도 죽지 않냐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진소청이라도 한계는 있지. 이대로 혼자 놔두면 죽을 가능성이 높아. 우리는 그걸 다 알면서도 살아남아야 했기에 진소청을 놔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아수라는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빨리 강해지면 된다.”
[……!!]
“신력을 모으고, 망량선사의 연기를 얻어라. 진소청이 무공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부분을 네가 해결해서 그를 무사히 구출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 알았다!]
드디어 내가 제대로 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군!
진소청에 대한 질투심과는 별개로 진소청 또한 나의 귀중한 전생동료였다. 그가 악전고투하는 걸 구출해내는 건 최우선 작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힘을 빨리 모아서…… 망량선사의 연기를 통과하고…… 진소청을 구해낸다. 그 후에는 아난과 결판을 내고 이 세상을 종말에서 구하면 되는 거다!’
내가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슈슉!!
갑자기 급히 제갈유룡과 제갈부가 시공간을 이동하는 술법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제갈유룡이 그 답지 않게 꽤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피해라! 갑자기 괴물 같은 놈이 쳐들어 왔…….”
쿠르르르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 전체의 하늘에 엄청난 속도로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하늘이 시꺼멓게 물들었다. 코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칠흑이 덮쳐왔지만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존재하는 자들을 기감(氣感)으로 감지하고 있었기에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기감 마저 꺼지더니 방금 전까지 코 앞에 있던 아수라, 제갈유룡 등 모든 사람들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이게 무슨 현상인지를 알아차렸다.
‘차원의 장벽이 쳐졌다.’
차원간에 막을 형성시켜서 하나하나를 분리시키고 적을 해치우는 방식은 전생하면서 종종 보아왔다. 그리고 이런 기이하면서도 막강한 술수를 쓸 수 있는 자들은 거의 절대다수가 신급에 이른 존재들이었기에 나는 이 자리에 덮쳐온 자의 능력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는 서서히 안개 같은 빛이 나타나더니 그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스스
그 형상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나는 눈앞에 두 명의 존재가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남일녀(一男一女).
그 자들은 하나같이 강대한 신력(神力)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 수준이 북두칠성의 성좌를 훨씬 뛰어넘어 있었다. 그리고 여자 쪽은 모르겠지만 남자 쪽은 이미 몇 번이나 보았던 존재였기에 보는 순간 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앞에 출현한 자를 묵묵히 쳐다보았고 이윽고 그 사내가 입을 열었다.
“백웅. 네게 비슈누의 일을 이야기하러 왔다.”
나는 그 말에 차분히 대꾸했다.
[시바인가.]
나타난 것은 바로 천축의 삼대신이며 파괴의 시바!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자는 여신 파르바티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