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04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븐시나에게서 받은 이 몸통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혈도와 단전의 존재! 설마 기계덩어리 몸에서 이런 걸 느낄 수 있으리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내가 당황해하자 즐겁게 웃고 있던 이븐시나가 말했다.
“자네 말에서 유추했지. 지금 자네는 원래 극강의 무인이었는데 내공과 의념을 모두 잃어버렸다면서? 그러면 자네에게 내공과 의념을 되찾아준다면 누구보다 기뻐할 거라 생각했지.”
[…….]
“의념이라는 게 뭔지 나는 잘 몰라. 하지만 기(氣)와 단전(丹田)이라면 어느 정도 연구해두었으니 재현해낼 자신이 있었지!”
[잠깐만.]
나는 혹시나 싶어서 잠시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심법(心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뇌룡일기공(雷龍一氣功)!
청룡무관의 비전심법이며 동시에 뇌신류의 내공심법! 상당한 고급심법이기도 한 이 뇌룡일기공은 내가 하수였던 시절부터 내공을 쌓는데 거의 모든 노력을 투자했던 내공이었다. 그렇기에 이 뇌룡일기공을 시전했을 때 정말로 기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지를 알고 싶었다.
스스스…….
뇌룡일기공의 흐름에 따라 한 줄기 기운이 빠르게 혈맥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빠르게 중요 요혈을 지나가면서 내공이 빠르게 축기(築氣)되도록 자극했고, 이윽고 정수리의 백회혈까지 한 번 스치고 지나가서 마지막으로 단전으로 기운이 쑥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두쿵!
그리고 그 한 번의 소주천(小周天)이 끝났을 때, 나는 명확히 공기 중의 기(氣)가 내 몸에 빠르게 응축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에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정말로 기계의 몸으로 내공을 얻을 수 있다고?]
“으하하하. 놀랍지?”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는 것이오? 뭣보다 지금 나는 기계라서 호흡을 할 수 없는데 호흡을 제거하고도 내공이 쌓이는 이유가 뭐지?]
“오, 과연 전설의 고수답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군.”
이븐시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더니 근처의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맞아. 본디 기(氣)가 생체(生體)에만 쌓이는 이유는 바로 자네가 말한 그 호흡 때문일세.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삶을 위해서 호흡하는 그 행위가 바로 기공(氣功)의 근간이지. 그렇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기계는 기를 얻을 수가 없게 되어 있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지.”
[예외라니?]
“무림고수들의 고급기술 중에는 천령단(天靈丹)이란 게 존재한다고 들었네. 그렇지 않나? 그 천령단은 내공심법의 호흡과 관계없이 무한의 내공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네.”
흠칫
나는 그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령단!’
백련교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한의 내공!
나는 천령단이 여기서 나올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기에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 천령단이란 게 있지. 당신은 서역의 연금술사일 텐데 천령단을 어떻게 알고 있소?]
“껄껄껄…… 어떻게냐니. 자네는 지금 와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잊은건가?”
[낙양성…… 아!!]
“자네 생각대로일세. 천하에서 가장 천령단을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백련교주 독고운천이 내게 천령단의 비밀을 알려주었네. 내 연금술 연구에 필요하다고 하니 흔쾌히 알려주더군.”
[그랬군…….]
백련교주가 알려줬다면 누가 뭐라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할 말을 잊자 이븐시나가 말을 이었다.
“천령단이란 무한의 내공을 소환하여 자신의 몸에 형성되어 있는 기(氣)가 스스로 단(丹)을 이루게 하는 경지. 본디 바람의 기운과 같은 성질을 갖고 대기 중에 퍼져 있던 기가 단을 이룰 정도의 무시무시한 응집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물론 무한의 내공을 [옥좌]에서 소환하는 단말(段末)에는 신과의 계약이 관련되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신의 힘이 내공 그 자체에 손대는 건 아니잖나.”
[…… 무척 잘 알고 있군. 확실히 백련교주가 당신에게 천령단을 모두 알려줬나 보구려.]
나는 저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20번 이상 죽고 나서야 도달했던 것 같은데…….
내가 대꾸하자 이븐시나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응집력이 생길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공을 무한대로 빨아들일 수 있는 단말의 존재 덕분. 그렇다면 그 원리만 흉내 낸다면 호흡의 도움이 필요 없이 기만 반영구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기관을 제작할 수가 있는 것일세.”
[…….]
나는 이븐시나의 말이 약간 어려워서 이해하려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깨닫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 새로운 몸통에…… 천령단처럼 저절로 기(氣)를 어딘가에서 소환하는 장치를 넣어두었다 그 말이오?]
“맞네. 바로 그걸세.”
[그런데 어떻게? 천령단은 해신(海神)이 [옥좌]와 계약하여 간신히 만들어낸 신의 단말이오. 어찌 됐든 천령단도 신급 존재가 관여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당신은 결코 그 정도 존재도 아니고 그런 마력도 없을 터인데.]
이븐시나는 약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흐흐흐. 천령단의 원리를 베꼈다는 거지 천령단과 똑같이 만들었다는 건 아니야. 기를 소환하는 기관을 설치한 건 사실이지만 이 경우는 [옥좌]에서 무한의 기를 소환하는 게 아닐세.”
[그럼 어디서 기를 소환하는 거란 말이오?]
“저거.”
이븐 시나는 내 반문에 천천히 등 뒤에 있던 뭔가를 가리켰다. 내가 그 쪽을 보자, 아직까지 덜 해체되어서 눈을 번히 뜨고 있는 커다란 흑룡의 용두(龍頭)가 보였다. 당연히 저 사체는 사룡왕의 시체였다.
이븐시나가 말했다.
“자네의 그 몸통에는 사룡왕의 심장과 뇌를 전부 다 넣어 버렸어. 가장 귀한 재료였지만 아낌없이 넣었지. 그렇기에…… 지금 그 몸통은 생전 사룡왕이 지니고 있던 모든 마력(魔力)을 기(氣)로 정제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야!!”
[……?!]
“그런 의미에서는 아직 미완성.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마도구라고 할 수도 있겠군. 또한 드래곤의 생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혈맥이나 혈도 또한 구현할 수 있었던거지.”
뭐, 뭐라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실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때 마왕이었던 존재의 심장과 뇌가 모조리 녹아 있고, 그 마력을 모조리 기로 전환하는 중이라니?
그 정도의 기라고 한다면 확실히 호흡따위가 상관있을 리가 없다. 그냥 소화되는 기력만으로도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이븐시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문에 약간 부작용 같은 건 있을걸세.”
[부작용?]
“말했듯이…… 그건 인간을 기반으로 한 마도구가 아니야. 상고룡(上古龍)이 지니고 있던 강대한 육체를 기반으로 한 것이지. 그렇기에 지금 당장은 느끼기 힘들더라도 곧 위화감이 느껴지게 될 것일세.”
[…….]
나는 이븐시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즉시 눈치챌 수가 있었다.
[……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단전과 혈맥은 사실 용족(龍族)의 단전이자 혈맥이란 말이군.]
“바로 그걸세. 자네는 인간이 아닌 용(龍)으로써 기를 얻을 수 있게 된 거지.”
[음…… 근데 그렇다면 뇌룡일기공의 일주천이 운용된 게 이상한데 어찌 된 일이오? 용의 단전이고 혈맥이라면 인간의 내공심법은 안 통해야 하지 않소?]
“자네가 운용한 뇌룡일기공의 소주천이라는 게 무척 적은 기(氣)라서 그래. 용족의 단전과 혈맥은 인간에 비해 무척 크게 두꺼워서 사소한 마찰은 느껴지지도 않아. 하지만 만일에 자네가 기의 양을 키우고 큰 기술을 쓴다면…….”
[주화입마가 일어난다는 말이구려.]
“그래. 적어도 용의 몸뚱이에 어울리는 새로운 내공심법이 필요할것일세.”
[…….]
“어떤가? 조금 불확실하긴 해도 이 정도면 충분한 선물이 아닌가.”
기계의 몸에 용의 단전을 얻게 될 줄이야.
무척 기이한 경험이었기에 나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씩 웃으며 이븐시나에게 말했다.
[나쁘지 않군. 어디 한번 적응해 보겠소.]
“크크, 다행이군. 아무쪼록 자네가 그 육체에 빨리 적응하길 바라겠네. 모르긴 해도 완전히 용의 단전에 적응할 수 있다면 프랑켄슈타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야.”
[프랑켄슈타인? 생 제르맹이 만들고 있다는 그 전투용 호문클루스 말이오?]
“그렇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게 얼마나 강하오? 듣자 하니 궁금하군.]
“글쎄…… 나도 잘 몰라…… 다만…… 생 제르맹은 프랑켄슈타인의 코어(core)로 넣을 핵으로 고대신의 영혼을 이미 확보했더군.”
[……?!]
고대신의 영혼을 핵으로 하는 호문클루스라고?!
그렇다면 초상기인보다 더한 존재란 말이 아닌가!
‘대체 생 제르맹은 왜 그런 괴물을……?’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이븐 시나가 말했다.
“하나 충고해주자면 그 힘을 제대로 쓰려 한다면 용(龍)에게 어울리는 내공심법을 찾아야 할걸세. 기억해두게.”
[충고 고맙소.]
파앗!
나는 이븐 시나와의 볼일을 끝내고 미호와 함께 남경성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망량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는데, 망량은 침소에 앉아서 쿨럭거리더니 말했다.
“아주 잘했소…… 쿨럭…… “
[몸은 괜찮소?]
“내 걱정은 마시오. 그보다도 지금 신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소?”
나는 망량의 말에 지금 내게 있는 신력의 양을 한번 재어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솔직히 아난과 격전을 치른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직 고갈된 상태요.]
“역시…… 그렇다면 당장 신생칠요를 제작하는 건 무리겠군. 그럼 앞으로 몇 달간은 남경성에 앉아서 쉬면서 신력이 쌓이는 걸 기다리도록 하시오. 이제 막 인간들의 영토가 넓어지기 시작한 데다 천상윤회옥을 도시에 설치했으니 곧 신력이 빠르게 차오를 것이오.”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음…… 몇 달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놀기만 하면 된다는 말인가?]
“그렇소.”
[아무것도 안 하기는 좀 그런데…….]
“흐흐흐. 하도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일을 안 하면 불안해지는 증세가 생겼구려. 하하하.”
왠지 즐겁다는 듯 웃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당신 몸뚱이의 비밀이나 그동안 풀어놓으시오.”
[몸뚱이의 비밀이라면…….]
“고룡의 단전을 얻었지 않소? 그 용의 단전에 어울리는 내공심법을 얻어야 하는 데 그것만 하더라도 무척 바쁠 것이오.”
[흠!]
“다행히도 지금 남경성에는 전선(戰線)에서 귀환한 토벌대들이 많이 돌아와 있소. 당신은 그들과 함께 무(武)를 연마하면 좋을 것이오.”
[토벌대? 누가 돌아와 있소.]
“돌아와 있는 토벌대는…….”
나는 망량에게서 귀환한 토벌대의 명단을 듣고는 즉시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망량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한테 찾아갈지 마음을 정했나 보군.”
[몸 잘 추스리시오.]
“그럼 한 숨 자겠소…….”
이불을 크게 덮는 망량을 뒤로 하고 나는 즉시 토벌대들이 모여 있다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토벌대 중 한 명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외쳤다.
[어이!!]
스윽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동안 응시하다가 씩 웃었다.
“너는 정말 희한한 놈이군. 설마 그런 모습으로 귀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뭐 어떤 식으로든 귀환했으면 된 거 아니냐?]
“큭큭…… 말은 잘 하는군.”
스윽
“이걸 받아봐라.”
그는 천천히 근처에 있던 강아지풀을 뜯어서 들었다. 좌중의 시선이 모이자, 그는 툭 하고 강아지풀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내게 날려 보냈다.
‘이건……!!’
아무런 소리도 없고 빠르지도 않다.
그렇다고 막강한 내력이 실려 있는 내가중수법도 아니다.
그저 하늘거리며 날아오고 있는 강아지풀일 뿐이기에, 원래의 나였다면 이걸 보는 순간 장난치나 싶어서 방심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 나는 지금 이 한 수에 실려 있는 진짜 위력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무신궁(武神宮)에서 이미 이런 수법을 쓰는 상대를 상대로 뼈저리게 당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흐름].
[흐름]을 읽어야한다.
눈앞의 모든 현상은 거짓이니, 본질은 오로지 그 흐름에 있는 것이다.
즈즈즈즈
그리고 잠시 후 내게는 [흐름]의 파장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속도와 힘으로 막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채 오로지 심(心)만을 관조(觀照)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좀 더 이 경지에 숙련되어서 쓸데없는 과정을 배제하고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촤앗
나는 내 기계팔을 수도(手刀)처럼 만들어서 [흐름]을 가르는 일참(一斬)을 날렸다.
암야(暗夜)에 섞여 있는 그 일참은 무척 부드럽게 강아지풀의 진격을 막아내었고, 이윽고 반쪽내어서 땅에 떨어뜨리게 되었다.
투둑
강아지풀이 떨어지자 그 쪽에 모여 있던 토벌대 무인들이 놀란 듯했다.
“오오.”
“으음…….”
“저걸 막아낸 건 처음 아닌가?”
별로 대단할 것도 없어보이는 강아지풀의 위력. 그 위력을 이미 토벌대 무인들이 다 한 번씩 체험해보았다는 증거였다.
그러자 강아지풀을 날린 그 무인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암야참(暗夜斬)을 얻었구나. 축하한다, 백웅.”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약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서 말했다.
[축하하긴 뭘 축하한다는 거야?]
“음?”
[누굴 기만하는 거냐고.]
나는 질린 기색으로 땅에 떨어져 있던 강아지풀을 주워들고는 말했다.
[그러는 너는 20년 만에 자연검(自然劍)을 쓸 수 있게 되었구나, 아수라(阿修羅).]
완전히 공손대랑이 썼던 경지는 아니지만 -
자연 그 자체를 심의(心意)의 영역에 둔다는 것 또한 신역(神域).
눈앞의 무인은 그 경지에 이르러 있었고 그 한 수로 내 수준을 시험했던 것이다.
내 말에 아수라는 껄껄 웃었다.
“겸사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