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7권 03화
나는 이븐시나의 말에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그 용을 잡는 게 그리 중요한 일이오? 어차피 세상이 망할 위기인데…….]
이븐시나의 의뢰는 이해가 안가는 점이 있었다. 현재 츠쿠요미가 펼친 [밤] 때문에 대홍수가 일어나고 전 세계가 마력에 오염되어서 빠르게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고 있는 와중이고, 요괴와 마물들은 자신들에게 좋은 환경이 생겨서 한층 더 날뛰게 되었으며 각지에서 [옛 지배자]와 사도들이 준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껏 사룡 한마리 잡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건지 의아하게 여겨진 것이다.
그러자 이븐 시나가 껄끄러운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아나톨리아의 사룡왕(死龍王)을 정말 잡을 수 있나? 그놈은 마왕이면서 용왕인데.”
[그정도면 꽤 쎈 놈이군. 그럼 필멸자 수준에서 거의 못잡는다는 거 알면서 내게 시킨거요?]
“자네는 필멸자도 아니잖은가? 도대체 강철 몸에 빙의하면서 신력까지 써대는 놈이 왜 기껏 용을 두려워하는 건지…….”
[두려운 게 아니라 왜 잡아야 하는지 이해도 납득도 가지 않아서 그렇소. 왜 잡아야 하는 건지 말이나 해 주시오.]
이븐 시나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크흠. 사왕(死王)이라고도 불리는 그 사룡왕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연금술의 재료일세. 놈을 죽여서 그 시체를 이용해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하는 데 쓰려고 하네.”
[프랑켄슈타인? 그게 뭐요?]
“셍 제르맹과 친하다면서 듣지 못했나? 그자가 호문클루스의 실패를 이겨내기 위해 새로이 제작하는 연금술의 역작이지.”
[아……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군.]
나는 셍 제르맹 얘기가 나오자 기억이 났기에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하지 마!!! 하, 하지 마라!!! 이봐! 날 도와줘!! ‘그것’의 부품이 되는 건 절대…….]
[페섹테어 포토툽(Perfekter Prototyp)이여. 너는 이제 프랑켄슈타인의 심장(Herz von Frankenstein)이다.]
[끄아아아아악 - !!]
[내가 따로 만드는 연금술의 역작이 존재하는데 그 이름이 바로 프랑켄슈타인. 그건 혼합변종(Chimäre)으로서 내가 호문클루스의 실패를 딛고 새롭게 연구 중이던 놈이었소. 나는 기존의 실패작을 프랑켄슈타인의 심장으로 만들어 부품으로 쓴 것이오.]
[응? 그것도 호문클루스 같은 건가?]
[…… 아니오. 완전히 다른 계통. 다른 의미에서 영생(永生)과 강력한 힘을 추구한 결과물이오. 인간을 근본으로 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서…… 애초에 제물용이 아니오.]
[전투용…… 이지.]
진짜 셍 제르맹은 황궁에 침투한 가짜 연금술사이자 실패작인 호문클루스를 찾아내자 [이름]을 이용해서 그놈을 산산조각내버렸다. 그때 셍 제르맹은 놈을 그냥 죽인 게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일부로 만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주 예전의 기억이라 흐릿했지만 어떻게든 기억해내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건 전투용 호문클루스 같은 건데…… 이븐시나 당신도 프랑켄슈타인의 제작에 관여하고 있단 말이오?]
“그렇네.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그에게 새로운 재료를 마련해줄 것을 요청받았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프랑켄슈타인에 어울릴만한 재료는 마왕급의 육체인데……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마왕을 잡을 수 없었다는 걸세.”
[그래서 나한테 아나톨리아의 사룡왕을 잡아달라는 건가.]
“뭐, 자네에게 귀찮기만 한 일은 아닐걸세. 사룡왕을 잡고 놈의 시체를 가져온다면 그걸 이용해서 자네의 신체 파츠를 더욱 강화시켜주지. 어떤가?”
[…….]
나는 힐끔 옆에 있던 미호를 쳐다보았다. 미호가 내 시선을 받자 태연하게 말했다.
“백웅. 걱정 말거라. 내가 너 대신 그 용을 잡아주마!”
[음, 너한테 위험한 일을 시키기는 싫은데…….]
“아하하. 본녀가 기껏 용 한 마리 못 잡는다 하면 다들 비웃을 것이다. 걱정 말아라.”
[그래도…….]
“흐응. 나를 그리도 걱정해주는 것이냐? 미래의 아내라서?”
미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관자놀이를 긁었다.
[장난 그만쳐. 세상이 말세에 가까워질수록 강력한 괴물들이 튀어나온다는 거 알잖아.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까 좀 신중하게 가고 싶어.]
미호가 그 사룡왕이란 놈보다 강하다는 건 아마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마물, 특히 마왕쯤 되는 존재들은 자기만의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으므로 자칫했다가는 말려들어서 당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마왕이라 불릴 정도라면 세간의 대요괴 따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강맹한 존재였기에 얕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도 내 전생횟수가 꽤 쌓이는 동안에도 인간동료들끼리는 칠요 없이 마왕을 한 마리 토벌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정도였다.
“백웅 네가 나를 도와주면 되잖느냐?”
[그래도 상처 하나 없이 쉽게 이기고 싶어.]
“흐응…… 그렇다면야 도와줄 놈을 더 데려가면 그만이다.”
[도와줄 놈?]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기다려 보거라. 몇 놈 데려오마.”
슈슉
이윽고 미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미호가 데려온 존재들을 보자 나는 기겁을 했다.
[아, 아니 무슨…….]
“이 정도면 만족하느냐?”
[…… 만족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과한 것 같은데.]
“쉽게 잡고 싶다면서? 본녀는 이렇게 가면 좋을 것 같느니라.”
[알았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나와 미호의 대화를 옆에서 보던 이븐 시나는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미, 미, 미친 건가…… 백웅 자네는 어떻게 저런 존재들을 부릴 수 있는 거지?”
[뭐 어쩌다 보니 그리됐소.]
“이거 내가 너무 잡스러운 일을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해질 지경이군. 그러면 아나톨리아의 사룡왕이 있는 곳을 알려줄 테니 다녀오게나.”
[알았소.]
“아, 그 전에 자네한테 먼저 오레이칼코스의 팔다리를 용접해 줘야겠군…….”
위잉…….
치이이익
한 차례 내 팔다리를 새 걸로 갈아 끼우는 작업이 끝나자 나는 완전히 이전과는 반응속도나 기초적인 내구도가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기계라서 그런지 몸을 갈아 끼우면 무척 손쉽게 강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손발의 감각을 확인하자 이븐 시나가 말했다.
“팔 하나로만 마력을 쓸 때와는 차원이 다를 게야. 너무 큰 마력을 한 번에 쓰지 않게 조심하게.”
[알았소.]
파앗!!
잠시 후 나는 미호가 열어준 차원 문을 타고 음습하고 어두운 거대한 동굴 안으로 갈 수 있었다. 이븐 시나가 진작 사룡왕이 거하는 거대한 동굴을 찾아내어 탐색해두었기에 손쉽게 온 것이다.
‘아나톨리아 최악의 금지(禁地)라는 마룡의 동굴…… 듣던 대로 이계화 되어 있군.’
동굴 여기저기에는 이계의 촉수는 물론이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마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왕이 지니고 있는 마력에 오염되어서 현실의 법칙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경(魔境)에 평범한 인간이 온다면 즉시 마력에 오염되어 마물이 되거나 타락하여 미쳐 버릴 것이리라.
미호는 동굴의 마력을 느끼듯이 잠시 호흡하더니 미묘한 미소를 흘렸다.
“사도이자 마왕이며 용왕…… 좋아 보이는 간판은 전부 달고 있는 놈답게 강한 마력을 갖고 있구나. 이 정도면 인간들 기준으로는 재앙신이라 할 만하도다.”
[그런 것치고는 전혀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너 같으면 긴장하겠느냐?”
[하긴.]
나는 미호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동굴의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과 같은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공동의 깊은 곳에서 끔찍한 용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키우우우우 -
섬찟한 마력을 싣고 있는 울음소리는 웬만한 생명체를 그대로 미쳐 죽게 하는 힘이 깃들어있었다. 아마 내가 절대지경에 이르지 못한 채 칠요 하나 들고 여기에 왔다면 이쯤에서 바로 허우적대다가 즉사했으리라. 정말 꽤 급수가 높은 놈이라고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용의 심어(心語)가 좌중에 울려 퍼졌다.
[너희는 누구냐? 특히 거기 은빛의 여우여…… 그대는 무척 강력한 존재 같구나…….]
일단 대화를 건다는 건 사룡왕 또한 미호의 마력을 쉽게 여기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의 미호는 여덟 개의 황금의 꼬리를 휘날리며 자신의 힘을 전혀 숨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영향력만으로 천계의 신선들을 죄다 죽여 버릴 정도로 강대한 마력…… 그래서 미호가 남경성에 머무르기 위해 일부러 유정에게 부탁해서 살생염주로 마력을 억제하려 했던 건데…… 지금의 미호는 그 마력을 전혀 억제하지 않고 있다.’
마왕 달기를 이미 토벌하고 그 달기의 마력을 흡수하여 몇 차례나 진화를 거듭한 여우신!
그 말은 삼황 여와의 음신(陰神)을 갖고 있다는 소리였으므로 세간의 일개 마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였다. 현재의 미호가 내 전생동료 중에서 최강자 중 한 명이기도 한 이유인 것이다.
미호는 팔짱을 끼고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큼 커다란 이계를 만들 정도면 인간계에 꽤나 행패를 부린 놈이겠구나. 수천을 잡아먹고 수만을 불태웠겠지? 네놈이 본녀의 손에 오늘 사라지는 건 하늘의 천벌(天罰)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크르르르
사룡왕은 미호의 도발에 화가 났는지 으르렁거렸다.
[…… 감히…… 네가 격조 높은 마왕이라는 건 알겠으나 내 진정한 주인께서 마신(魔神)이자 [지배자]라는 걸 알고도 시비를 거는 것이냐?]
“아하하하! 이 말세(末世)에 기껏 마신 하나에 겁먹을 정도라면 삼황오제하고는 어찌 싸우겠느냐.”
도리어 비웃음을 짓는 미호의 말에 사룡왕은 약간 당황한 듯했다.
[뭐…… 삼황오제? 너는 대체 누구냐.]
“흐흥. 알고 싶으냐? 그렇다면 건방지게 어둠 속에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거라.”
[…… 좋다……!!]
쿠구구구!!
크으아아아 - !!
잠시 후 심연 속에서 시꺼먼 폭풍이 몰아치듯이 거대한 신형이 떠올랐다. 몸뚱이가 가히 수십 장이나 되는 데다가 날개를 아직 다 펼치지도 않았는데 천지가 가득 차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전신에 서려 있는 농도 짙은 마력은 저 존재가 용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마왕의 반열에 올라있는 자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실로 마룡(魔龍)!
사룡왕은 자신의 육중한 동체를 드러낸 후 하늘로 크게 치솟더니 거대한 기둥 위에 올라앉았다. 사룡왕의 파충류 눈빛이 우리 쪽을 살기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체를 밝혀라. 당장!]
“싫구나.”
[뭣이?]
“너 따위는 쉽게 때려잡을 수 있겠지만 오늘 백웅이 원하는 건 우리 손을 쓰지 않고 편하게 적을 토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너는 우선 내 부하들부터 꺾어야 내 정체를 들을 자격이 생길 것이다.”
[후후…… 정말 얕보였구나. 어디 한 번 부하라는 걸 꺼내 보아라.]
사룡왕은 거대한 살기를 내뿜으며 용의 포효를 내질렀다.
[모조리 용의 입김으로 녹여 버릴 테니!!]
쿠구구구
사룡왕의 기세에 산 전체를 깎아서 만든 동굴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런 괴물을 상대로 만용을 부리는 건 절대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너 따위가 녹일 수 있을까.”
그러자 미호가 방긋 웃더니 자신의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보패
환롱조화망(幻朧造化網)
키이잉
미호의 장심에서 은빛 그물 같은 게 흘러나왔다. 본디 저 환롱조화망은 팽조의 고대보패중 하나로 눈앞에 있는 것을 모조리 휩쓸어서 손바닥에 심은 보패에 봉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환롱조화망의 능력은 빨아들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미호는 손을 휙 하고 앞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나오거라, 북두칠성(北斗七星).”
슈아악 -
잠시 후 신령스러운 구름과 함께 일곱 명의 선녀(仙女)가 환롱조화망에서 뛰쳐나와 장내에 출현했다. 그녀들은 천계에서 구천현녀를 수행하는 선녀들로 알려져 있었으며 사실 천계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북두칠성의 칠선녀들이 뿜어내는 영기가 그리 강하지 않자 사룡왕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고작 그런 부하들을 믿고 내 앞에서 설친 것이냐? 기껏 그 정도라면 당장 한 번에 소멸시켜주마!!]
쿠콰콰쾅!!
사룡왕은 곧장 시꺼먼 용의 입김을 내뿜어서 우리를 향해 내뿜었다. 나는 그 입김에 강렬한 산성이 스며들어있으며 동시에 농밀한 마력이 응축되어 있어서 웬만한 신선조차 한 방에 없앨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실로 극악한 공격이었기에 원래라면 이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싸울 준비를 했으리라.
‘팔부신중 급은 되는군. 적어도 긴나라 같은 두뇌파보다는 몇 배나 강해.’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싸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악한 무리가 감히.]
번쩍!!
그 순간 북두칠성의 수좌(首座)인 옥형(玉衡)이 진신(眞身)을 드러냈다. 찰나지간에 아름다운 선녀의 모습에서 휘황찬란한 광휘를 뿜어내는 광인(光人)으로 변한 옥형은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을 뿜어내며 그대로 한쪽 손에서 뇌전(雷電)을 투사했다.
꽈르릉!!
퍼버벙
[크아악?!]
옥형의 손에서 전개된 뇌전의 광선은 순식간에 사룡왕의 용의 숨결을 지워 버리고 도리어 사룡왕의 날갯죽지를 크게 관통해 버렸다. 순수한 힘의 격차로 인해 벌어진 현상이었고 사룡왕은 날개를 잃자 당황한 듯 퍼덕였는데 다음 순간 다른 여섯 명의 선녀들 또한 진신으로 되돌아갔다.
번쩍!
번쩍!
번쩍!!
순식간에 출현한 일곱 명의 광인! 선녀옷을 두르고 있지만, 그 광인들은 여인의 아름다움보다는 이계(異界)의 초월적 존재들이 품고 있는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북두칠성이 초월적인 존재들이라는 걸 알아챈 사룡왕이 잠시 후 땅에 착지하더니 경악하며 외쳤다.
[서…… 성좌(星座)!! 어째서 성좌가 일곱 명이나……?!]
옥형은 잔잔한 목소리로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
[구천현녀의 대리인인 금만재의 명으로 미호의 토벌임무를 도와주러 왔다. 북두칠성은 지금부터 사악한 존재를 멸하라.]
촤라락!!
선녀옷이 펼쳐진다. 사실 저건 선녀옷처럼 보여도 이 세상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신력(神力)의 칼날이나 다름없었고, 그 잠재력을 파악한 듯 사룡왕이 발악했다.
[크아악. 이대로 질 것 같으냐.]
잠시 후 일곱 명의 성좌, 북두칠성의 선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사룡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룡왕은 처음에는 온갖 주술과 마법을 쓰면서 버티는가 싶더니, 북두칠성이 모여서 권능을 발휘하자 속절없이 당하기 시작했다.
북두멸절진(北斗滅絶陣)!
번쩍
성좌 일곱 명이 동시에 신력(神力)을 내뿜으며 사룡왕을 포위해서 광선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성좌 또한 신격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신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으며 심지어 법칙도 바꿀 수 있다는 게 무서운 점이었다.
콰릉
복잡한 룬어로 만들어진 고도의 중첩마법진은 마치 유리처럼 깨부숴졌다. 광선 한방 한방이 사룡왕의 모든 술법을 관통했으며 무지막지하게 강했던것이다. 날개가 쫙쫙 찢어지던 사룡왕이 이윽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 살려다오. 어찌 너희처럼 강한 초월자들이 기껏 나를 상대로 합공을…….]
[닥쳐라!]
퍼벅
콰광
콰지직
오래지 않아 천권(天權)과 요광(搖光)이 사룡왕의 팔을 잡아 뜯었고 개양(開陽)과 천선(天璇)이 배를 갈랐으며 천추(天樞)와 천기(天璣)가 다리뼈를 부쉈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듯이 옥형(玉衡)이 거대한 신력을 머금은 일권(一拳)으로 사룡왕의 머리를 깨부쉈다.
콰과광
쿠웅…….
성좌 옥형의 일격에 절명한 사룡왕은 잠시 비틀거리더니 힘없이 쓰러졌다. 옥형은 아무런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토벌 완료.]
[…….]
나는 그 광경을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저 북두칠성의 성좌가 얼마나 강한지 외우주에서 이미 보고 온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셋이서 아무렇지도 않게 곤륜십이대선을 상처 하나 없이 학살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으니, 사실 북두칠성 중에서 사룡왕보다 약한 존재는 단 하나도 없으리라. 사룡왕도 자기보다 강한 우주급 존재들이 합공씩이나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처절하게 울부짖은 것이었다.
미호가 깔깔 웃었다.
“오호호. 아주 편하지 않느냐? 구천현녀가 우리 편이라는 게.”
[…… 그렇긴 한데, 성좌의 힘을 함부로 빌려 써도 인과율이 괜찮은 거냐?]
“아무렴 어떻느냐. 인과율을 내는 건 내가 아니라 금만재이니라.”
[…….]
…… 왠지 북두칠성은 이 정도 싸움에 꺼낼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이없어하자 미호가 웃었다.
“백웅. 내가 너의 흑요석을 받고 나서 제일 어이없었던 게 뭔 줄 아느냐?”
[뭔데?]
“기껏 힘은 힘대로 모아놓고 써보지도 못하고 돌연사하는 것이었느니라.”
[…….]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시원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는 게 전생자다운 거 아니겠느냐? 아하하.”
미호의 말은 왠지 정곡을 찌르고 있었기에 나는 어이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피식 웃고 말았다.
[…… 크큭.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긴 지금까지 뭔가 열심히 준비하다가 갑자기 죽어 버려서 기껏 비축해둔 성과를 쓰지도 못하고 죽은 게 대체 몇 번이었던가? 미호의 말대로 나는 너무 미래를 대비해서 자원을 아끼는 걸지도 몰랐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시원시원하게 할 수 있는 걸 다 해 보는 게 최선인 게 아닐까?
‘미호 말대로 앞으로는 괜히 힘과 자원을 아끼지 않고 팍팍 써 볼까…….’
지금은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미호가 보패 환롱조화망의 흡수능력을 이용해서 사룡왕의 시체를 모두 수습했고 나는 미호와 함께 이븐 시나에게 되돌아가서 토벌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이븐 시나는 무척 놀란 듯 말했다.
“아…… 아니 무슨 한 시진도 안 되어서 사룡왕을 죽여 버린단 말인가? 천 년 이상 서방대륙을 공포에 몰아넣은 강력한 마왕이거늘.”
[그렇게 센 놈은 아니었소.]
“……그대들이 과하게 강한 건 아니고?”
질린 듯 중얼거린 이븐시나가 이내 껄껄 웃었다.
“흐하하. 이렇게 되면 약속대로 사룡왕의 시체를 이용해서 백웅 자네의 신체파츠를 좀 더 강화해주지. 기대하게나.”
[뭘 강화한다는 거요? 오레이칼코스만으로도 강화는 충분한 거 같은데…….]
“팔다리는 바꿨어도 아직 몸통은 안 바꿨잖나.”
[몸통?]
이븐 시나는 내 반문에 씩 웃더니 말했다.
“그래. 사룡왕의 심장을 오레이칼코스에 흡수시켜서 자네의 몸통을 새로 만들어주지.”
[용의 심장이라…… 그걸 넣으면 뭐가 달라지는 거요?]
“뭐가 달라지냐고…….”
까앙 까앙
이븐 시나가 공방에서 자신의 망치로 뭔가를 열심히 두드리더니 히죽 웃었다.
“듣자 하니…… 신외지물이라고 내 발명품을 폄하했다 말했지.”
[사실이니까.]
“무림인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나같은 연금술사 장인에게 있어서 그 말은 모욕이나 다름없네.”
이윽고 휙하고 활활 불타는 용광로 속에 용의 심장을 던져넣은 이븐 시나가 집념을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번에 만드는 몸통은…… 자네가 무예의 길을 잊고 의지할 정도로 뛰어난 불가일세(不可一世)의 역작이 될걸세! 기필코 그 정도 능력을 갖게 해주지!”
[…….]
아니, 왜 그런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거야?
나는 기가 막혔지만 어쨌든 보물을 준다는 걸 안 받기도 뭐 했으므로 한나절을 기다린 후 몸통을 용접받았다. 그리고 새 몸통이 끼워지자 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위화감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 이, 이건 대체 뭐요? 기계의 몸통이 맞소?]
이렇게 이상한 감각은 처음이다.
나는 기계의 몸에 빙의된 이후로 제일 크게 위화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흐흐흐흐흐.”
[웃지만 말고 말해 보시오. 대체 이 몸통에 무슨 짓을 한 거요?]
“흐흐흐흐흐…… “
[말해 보라고!! 대체 왜…….]
실성한 듯 괴이쩍은 웃음을 짓는 이븐 시나를 보던 나는 기어코 역정을 내고 말았다.
[이 강철 몸뚱이에서 단전(丹田)과 기경팔맥(氣經八脈)이 느껴진단 말이오!?]
그랬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 이 강철의 몸뚱이에서 분명히 단전과 혈도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