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32화 (1,531/1,615)

전생검신 87권 01화

소을이 태공망에게 뛰어드는 신법(身法)을 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건…… 멸혼보(滅魂步)?’

신법에서 중요한 건 신법으로 인해 움직이는 동체(動體)가 아닌 발(足)이었다. 모든 신법은 발에서 시작해서 발로 끝나기 때문에 그 외의 변화가 어떻든간에 발의 움직임이 신법의 전체적인 구도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소을의 첫 이보(二步)는 멸혼보의 기초행로와 매우 유사했기에 그가 시전하는 게 멸혼보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삼보(三步)째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파핫!!

마치 소을의 전신이 안개처럼 스러지는 듯한 환영과 함께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건 풍백보(風魄步)의 변화?’

사라졌다고 느낀 건 나 뿐만이 아닌지 태공망 또한 눈썹을 꿈틀거렸고 다음 순간 소을의 몸은 태공망의 배후에 가 있었다.

촤좌좍 - !!

“비기(秘技) 흑룡쌍월참(黑龍雙月斬). 이걸로 진짜 용의 대가리도 베어 보았는데…….”

태공망의 뒤로 돌아간 사이에 무려 이십사참(二十四斬)을 날려 시꺼먼 검흔(劍痕)을 태공망의 법의(法衣) 위에 남긴 소을이 중얼거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방어력이군.”

그랬다.

소을의 시꺼먼 칠흑의 검강이 태공망의 몸을 난도질했음에도 그는 아까 양산박의 졸개들을 쓰러뜨렸을 때처럼 태공망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피해를 주기는커녕 소을이 만들어낸 시꺼먼 검흔은 마치 물감이 땡볕에 마르듯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태공망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피식 웃었다.

“인간계의 강자여. 팔괘자수선의(八卦紫綬仙衣)라는 걸 들어보았느냐?”

“……!!”

“물론 팔괘자수선의에 의존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6개의 보패가 있어서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하하…….”

그러자 태공망을 태우고 있던 사불상이 말했다.

[너 방금 시야에서 놓치니까 당황해서 팔다리 떨었잖아.]

태공망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놈, 사불상. 닥치지 못할까.”

팔괘자수선의에다가 보패가 6개나 더 있다고?!

나는 태공망의 현재 무장상태를 알게 되자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팔괘자수선의가 얼마나 막강한지는 과거 팽조와 싸울 때 익히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팽조는 검강따위는 아예 먹히지도 않았고 절세고수의 초식에도 스친 상처 정도밖에 입지 않았으니 실로 방어력에 있어서는 무적에 가까운 보패였다.

나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태공망에게 말했다.

[태공망. 팔괘자수선의는 서방으로 도주한 팽조가 갖고 있었을 텐데 당신이 왜 갖고 있소?]

“역시 기인이라 많은 정보를 알고 있군. 팽조는 대란(大亂)이 터지기 전에 진작 인간계 고수들과 협력해서 때려잡았소. 그리고 팽조에게 몰수한 보패를 천계의 비동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지고 나왔지.”

[으음…….]

그렇게 된 거였나.

태공망의 신분이라면 천계비동에서 보패를 원하는만큼 가져갈 수 있었을 테니 태공망이 쓸 수 있는 보패는 내 전생사상 최고로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렇다면 지금의 태공망은 말 그대로 무적상태나 다름없을 텐데 과연 저런 놈을 쓰러뜨릴 수가 있을까?

‘팔괘자수선의 하나 뚫는것도 엄청 힘든데 다른 보패까지 생각하면…….’

내가 내심 걱정하고 있을 때 태공망이 뒤에 있던 소을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살생은 하고싶지 않다. 지금이라도 물러선다면 다칠 일은 없으리라.”

괜한 오만이 아닌 절대적인 실력의 자신감!

실제로도 태공망은 현재의 혼란스러운 세계에서도 수위에 꼽힐만한 강자였고 소을은 그런 태공망에게 덤비기에는 힘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 사실을 소을도 느꼈는지 잠시 주춤거렸지만 소을은 끝내 투지를 잃지 않고 검을 다잡으며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할 테니 죽일 테면 죽여보시오.”

“고집이 세군…….”

“허나 나는 끝까지 당신에게 일검을 먹일 것이외다. 그것이 토벌대의 긍지요.”

스스스

소을의 검이 서서히 반월(半月)을 그리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반월을 느릿하게 그리는 동안 소을의 모든 기(氣)와 의념(意念)이 그의 칼날에 집중되는 게 느껴졌는데, 나는 저 초식이 사대무류의 어떤 무공에서도 본 적이 없는 동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백 년 넘는 시간 동안 사대무류를 수련한 내가 착각할 리가 없었다.

‘저건 대체 무슨 무공이지?’

아까부터 소을의 무공이 뇌신류(雷神流)와 구궁파천뢰(九宮破天雷)에 근간한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소을이 간혹 보여주는 변형(變形)은 뭔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사대무류의 틀에 제약되지 않는 ‘자유’가 느껴진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소을이 절초를 준비하자 태공망은 귀찮다는 듯 자신의 품 속에서 손바닥에 딱 들어올 만한 은빛 종을 꺼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래 놀아줄 수 없겠군. 이번 초식도 내게 타격을 주는 데 실패한다면 나는 이 보패 낙혼종(落魂鐘)으로 자네의 영혼을 뺏어 더 이상 생을 이어나갈 수 없도록 할 걸세.”

“…….”

“이것도 많이 봐주는 것이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게.”

낙혼종!

저것은 곤륜십이대선 중 광성자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한 번 흔들어 버리면 인간의 혼백(魂魄)을 뒤흔들며 두 번 부터는 바로 의식을 잃으며 세 번째 흔들렸을 때는 혼백이 그대로 봉신대를 향해 승천해 버린다는 전설의 보패였다. 아무래도 천계비동에서 저런 강력한 공격보패 또한 가져나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소을은 기가 죽지 않고 되레 당돌하게 말했다.

“만일 내가 일격을 먹인다면 어쩔거요?”

“하하. 그러면 오늘 나는 물러나 주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 말, 잊지 마시오.”

소을이 집중력을 가다듬는 듯 잠시동안 멈추었다. 그러고는 한 순간, 기합을 내질렀다.

“참(斬)!”

쿠와앗

다음 순간 소을의 발검(拔劍)과 함께 태공망의 전신이 갑작스럽게 흑월(黑月)을 연상시키는 시꺼먼 초승달 모양의 검강에 휩싸인 것 같았다. 아니, 저것을 검강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속도로 그 도신(刀身)을 넓혀가는 그 섬짓한 칼날 같은 기운은 단숨에 태공망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절반으로 토막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공격이 실패라는 걸 바로 직감했다.

‘안 돼! 팔괘자수선의에는 아무런 균열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어서인지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저 막강한 흑월의 검강이 태공망의 전신을 회치는 것처럼 보여도 근본적으로 상대의 방어가 지니고 있는 근간을 해체하지 못하므로 결국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실제로도 검강에 휩싸였는데도 태공망의 눈빛에는 귀찮음이 대신 감돌고 있었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그러나 바로 그 때 내 감각에는 기이한 것이 느껴졌다.

진천아류(振天亞流)

역광(逆光)

소을(小乙)의 내면에서 무언가 여러 개의 축(軸)이 회전하는 느낌! 그리고 동시에 소을의 머리 뒤편에서 후광(後光)이 번져나오더니 찰나의 순간에 그의 팔을 타고 검날까지 빛의 덩어리가 흘러내려갔다. 빛의 덩어리가 검신(劍身)을 타고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소을이 펼치는 무공의 성질이 일변하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바로 그 순간, 성질이 크게 변동된 소을의 흑월검강이 갑자기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흑(黑)에서 백(白)으로 변화하는 그 순간에 태공망의 표정도 크게 바뀌었는데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깜짝 놀라는 듯했다.

“으아악……?!”

태공망이 손을 허우적거리는 그 때 백월(白月)의 참격(斬擊)이 마치 달빛처럼 쏟아졌다.

쿠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발음!! 그리고 동시에 커다란 충격파와 바람이 휘날려서 나는 속절없이 뒤로 날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공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천근추 수법을 썼을 거고 마력을 쓸 수 있었다면 대지에 몸을 고정했을 테지만 지금은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는 무려 삼십여 장을 훨훨 날아간 끝에 땅바닥에 처박혔다.

타타탕

몇 번 깡통이 튕기는 소리!

나는 이런 식으로 내가 철인이 된 걸 실감하는 게 그리 맘에 들지 않아서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그래도 이럴땐 몸이 깡통인 게 다행이구나. 내장출혈 걱정할 일이 없어서.’

나는 간신히 착지 후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일어나서 날려온 곳을 향해 다시 뛰어가 보았다.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내에 다시 도착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 있었다.

치지지직…….

번개의 기운이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대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사불상을 타고 있는 태공망이 있었는데, 태공망은 무척이나 냉막한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전방에는 소을이 있었는데 그는 검을 든 채로 의식을 잃은 듯했다.

그리고 나는 태공망의 모습을 보자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 팔괘자수선의가…… 잘렸다!!’

그것도 정확히 소을이 펼친 절기의 흔적대로!

설마 천계에서도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보패 중 하나인 팔괘자수선의에 일개 무림인이 상처를 입힐 수가 있다니!

태공망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사실이 팔괘자수선의를 파해하는 데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태공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불상이 투덜거렸다.

[이 망할 놈아. 내가 응룡의 권능으로 충격을 무효화시키지 않았다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른다.]

응룡의 권능?

설마 영수 사불상은 차원이동 말고 다른 능력이 또 있단 말인가?

‘맞다…… 사불상은 천계 최고의 영수…… 사대신수 모두의 권능을 받아서 태어난 존재. 그렇다면.’

설마 사불상의 진짜 능력이라는 건…….

내가 뜻밖에 전생하면서 알게된 새로운 진실에 내심 놀라고 있을 때 태공망이 탄식했다.

“허허…… 고맙다, 사불상. 내가 너무 인간을 얕보았구나.”

태공망으로서도 나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정말 그는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고 맨몸으로 맞아주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 것인데 소을의 공격력이 그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소을이 태공망보다 강하다는 뜻은 되지 않으리라. 태공망은 그의 진짜 보패인 삼보여의주와 타신편도 쓰지 않았으며 최강의 영수 사불상을 활용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냥 방어도 회피도 안 하고 맨몸으로 맞아준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태공망이 가진 전력을 다 발휘한다면 여전히 천지간에 가장 강력한 신인(神人) 중 하나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다.

태공망은 뒤에 도착한 나를 발견하자 말했다.

“약속은 약속이니 오늘은 이만 보내드리지. 남경성주 백웅.”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약 올리듯 태공망에게 히죽거렸다.

[흐흐, 괜찮겠소?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기회는 오지 않을 텐데.]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나요. 허나 내 오만함으로 일을 그르쳤으니, 적어도 내가 한 약속만큼은 지켜야겠지.”

침통한 표정을 지은 태공망이 천천히 사불상을 타고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인간들이여! 진정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면 결국 삼황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오……!!”

파앗

[…….]

삼황의 뜻이라고…….

그러면 강동성의 태공망 또한 삼황의 지배를 받는 세력에 속해 있다는 말인가?

‘그럼 항우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나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머리를 흔들며 선 채로 기절해 있는 소을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소을의 현재 상태를 알아채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기혈이 뒤엉켜 있고 내공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즉 주화입마(走火入魔)!

소을의 내공 또한 심후한 것이었지만 방금 전의 수법을 쓰기에는 역량이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럴만도 한 게, 소을이 원래 가진 무공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팔괘자수선의를 뚫지 못하지만 특별한 무공수법으로 잠재력을 격발해서 일순간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공이 없었으므로 주화입마를 제대로 해결해줄 방법은 없었으나 소을을 살릴만한 지식은 충분히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뾰족하게 세워서 마치 침(針)처럼 기세를 세운 후 빠르게 소을의 혈도(穴道)를 점했다.

파파파팟!

화타 직전의 비술인 화씨백팔침과 화타오금희를 천하에서 가장 잘 쓸 수 있는 게 바로 나다! 내공이 없어도 화씨백팔침으로 적절하게 혈도의 흐름을 틔워놓기만 하면 주화입마 하나 치료하는 건 일도 아니지!!

나는 그렇게 약 반 시진동안 열심히 혈도를 누르면서 소을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내공이 있었다면 시간이 십분지일로 줄어들었겠지만 내공의 도움없이 침술만으로 해결하려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참 후 소을이 입에서 울컥 폐혈(廢血)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커헉!!”

소을은 죽은피를 입에서 게워내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런 소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안하군. 내공이 없는 상태로 시침과혈을 해서 네 진신내공이 일 할은 줄어들었을 거다.]

“……헉…… 헉…… 고, 고맙소.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군.”

[헌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냐?]

“물어보시오.”

이어진 내 질문에 소을이 흠칫했다.

[아까 태공망의 팔괘자수선의를 뚫을 때 썼던 그 기술…… 혹시 뇌혼(雷魂)을 다른 종류의 혼(魂)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이 아니었냐?]

“……!!”

소을은 정말 예상치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한동안 놀라서 표정관리를 못하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수법을 가르쳐준 것은 누구지?]

“진소청이오.”

[…….]

나는 그 말에 잠시동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작용과정은 거의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원리는 같다.

진소청 또한 사신지혼(四神之魂)의 원리를 깨우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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