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6권 18화
가면의 승려는 확 하고 자신의 팔을 떨쳤다. 그리고 팔에는 어느새 염주가 들려 있었는데, 그 염주는 완전히 먹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보는 이의 시야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젠장!’
살면서 갑작스러운 전투가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놈은 또 뭐란 말인가? 말 그대로 전생하면서 한 번도 못 봤던 놈이야!
나는 내심 투덜거리면서도 오레이칼코스의 팔에서 마력을 끌어내어 상대의 수법에 대비했다.
촤라락
가면의 승려가 염주를 투척하여 내 쪽으로 던졌다.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었고 무공을 수련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충분히 던질법한 속도! 게다가 내공이 실린 사물 특유의 정지되어있는 듯한 현상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저기에 내공이나 의념은 깃들어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살상(殺傷)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이는 무해해 보이는 행위 - 그러나 그 순간 망량은 뭔가를 느낀 듯 노호성을 내지르며 내 앞으로 뛰어들었다.
“피하시오!!”
다음 순간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휘두르며 만들어낸 투명한 장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투콰콱
[……?!]
승려의 염주 알이 망량의 방어막을 마치 두부를 깎아내듯 수월하게 파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망량의 술수는 시해지술일 텐데?!’
구천현녀의 권능을 그대로 불러오는 거나 다름없는 술법! 신의 경지에 한없이 가까운 술수라고도 할 수 있는 시해지술은 천계의 모든 술법 중에서 단연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시해지술로 펼친 망량의 방어가 마치 종잇장처럼 뚫리다니!
아니나 다를까 망량은 이마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버거워하더니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외쳤다.
“도, 도망쳐야 하오!”
꽈앙!!
다음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더니 사방에 자욱한 연기가 흘렀다. 그리고 축지법을 써서 순식간에 내 몸을 뒤로 물려서 피한 망량은 내 몸을 끌어안은 듯한 상태로 다급히 말했다.
“어설픈 신력으로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절대 아니오! 절대 정면 승부하지 마시오.”
나는 망량의 말에 움찔했다. 사실 망량이 말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신도들에게서 모은 신력을 이용해서 한번 싸움을 걸어볼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한 놈이란 말인가?’
지금은 기계의 몸이라서인지 육감이 많이 봉쇄되어 있어서 아까의 염주 공격에 어떤 위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부딪혀본 망량이 저토록 공포를 느끼는 걸 보면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현재의 망량은 단연 구천현녀의 수제자로서 팔선을 뛰어넘어 고대신선에 근접한 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망량이 단번에 못 이긴다고 단정 지을 정도면 상대의 실력은 가히 공포스러운 수준이리라.
[알았소. 당장 공간 이동으로 튑시다.]
“그게…… 저자가 나타난 순간부터 이 일대에서 공간이동의 술수가 봉쇄됐소. 틀림없이 저자의 능력으로 봉쇄한 것일 테니, 풀려고 하면 시간이 걸릴 것 같소.”
[……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소리군.]
“……반 식경, 아니 그 절반이라도 좋으니 버텨봅시다. 그럼 내가 어떻게든 공간봉쇄를 풀겠소.”
좋아, 내 차례가 온 건가?
[흐음. 나한테 맡겨보시오.]
“아니……!! 정면승부는 정말로 안 되오! 진짜로!”
[…….]
“내가 술법을 써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테니 제발 몸을 사려주시오!”
퍼엉
숨넘어갈 듯 다급하게 외친 망량은 즉시 품속에서 종이인형을 여섯 개 꺼내었고 그 종이인형들이 순식간에 거대한 이 장 크기의 지룡(地龍)의 형태로 변했다. 여섯 마리의 지룡을 소환한 망량이 손을 앞으로 향하며 외쳤다.
“물어뜯어라, 백골동의 육룡이여!”
쿠와아앗!!
육룡이 뛰어들자 무언가와 투덕거리는 듯한 소리가 연기 저편에서 들렸다. 워낙 연기가 자욱해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백골동의 육룡이 가면의 승려를 붙잡고 있는 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멋쩍어서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흠, 내가 나서지 않아도 소환술로 간단하게 저 녀석을 붙잡을 수 있겠군.]
“…….”
[망량? 헉!!]
나는 망량이 구슬땀만 흘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망량의 가슴팍에 주먹만 한 구멍이 여섯 개 뚫려 있는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저렇게 거대한 관통상이 생겼는데도 피가 하나도 흐르지 않는 게 이상했지만 망량의 안색이 파리한 걸 보면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망량이 새하얀 안색으로 말했다.
“……아까 그 공격, 내가 막은 게 아니오…… 시해지술로도 일 파(一派)만 막을 수 있을 뿐 저 승려의 염주는 내 모든 방벽을 가볍게 관통해서 내게 무형의 낙인(烙印)을 찍었소.”
[뭣…… 피가 흐르지 않는 이유는 설마.]
“저주를 박아 놓고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든 거지. 상대할 만한 수준인 척 방심하게 만들어서 당신마저 정면승부로 몰아가 손쉽게 끝장낼 생각이오. 실제로 실력 차이를 따지자면 나는 이미 첫 격돌에 죽은 목숨인 거요.”
[……!!]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해지술을 극성에 가깝게 익힌 망량을 일격에 죽이고도 남는 실력……?!’
그 정도면 천계에서도 상대할 자가 몇 되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아니, 애초에 웬만한 불멸자조차도 가면의 승려를 상대할 수 없음은 방금 전 크리슈나를 일격에 해치우며 증명된 것이다!
‘대체 저놈은…… 뭐냐?!’
내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망량이 오화칠금선으로 얼굴 하단을 가리며 말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오화칠금선에는 스승님의 권능이 있어서 내 부족한 실력을 보충해주고 있소. 이대로 잘 피해서 고비를 넘기기만 한다면…… 무난히 도주할 수 있을 거요. 절대 섣불리 나서지 마시오.”
[도망친다 하더라도 당신에게 찍혀 있는 저주의 낙인은 어찌한단 말이오?]
“그건 그때 일이오. 당신까지 싸잡혀서 저 자에게 살해당하는 게 우리에게 최악의 경우이니 저 자에게 좋을 일을 해주지 맙시다.”
[…… 알았소.]
쿠콰쾅
그때 폭발음과 함께 육룡(六龍)이 터져서 그 영체의 잔해가 허공으로 비산하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을 본 망량이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만 칠천 년 묵은 백골동의 육룡은 천계의 수호영수급으로 단단하거늘 반 각도 못 버틴단 말인가……? 괴물 같은 놈…….”
망량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정말…… 이 수단까지 쓰고 싶진 않았으나, 여기가 내 운명의 갈림길이로구나!!”
츠아아아 -
망량이 자신의 이마 한가운데에 손가락을 갖다대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여산(廬山)의 용맥(龍脈)이여…… 내게 감응하여 그 사악한 고대의 혼(魂)을 전수하라.”
그리고 잠시 후 망량의 전신에서 적흑색(赤黑色)의 고대어가 새겨진 문신 같은 문양이 가득 떠올라서 원래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메웠다. 동시에 망량의 눈에는 혼탁한 마기(魔氣)가 감돌기 시작했고 그의 이마에서 서서히 뿔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런 망량의 변화를 보며 깜짝 놀랐다.
[마…… 망량. 대체 뭘 하는 거요?! 지금 무슨 술법을 쓰려고.]
“강신술(降神術)…… 이오.”
[강신술?]
“당신이 [옛 지배자]와 싸울 때 동귀어진에 쓸 최후의 한 수로 쓰려고 아껴둔 거였지만…… 지금이 바로…… 내 목숨을 걸 때구려.”
이어진 망량의 외침에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비로소 깨닫고는 전신이 굳었다.
“와라!! 종말의 거룡이여 - !!”
번쩍 - !!
다음 순간, 망량의 전신이 적흑색의 용인(龍人)으로 변신했다. 그와 동시에 오레이칼코스의 팔조차도 잠시 기에 짓눌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魔力)이 망량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망량은 잠시 자신의 몸을 내려보다가 용인의 언어로 말했다.
[봉쇄가 풀리면 바로 도망쳐 주시오.]
투쾅!!
그 말을 끝으로 전방으로 박차고 나간 망량은 이윽고 연기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가면의 승려에게 덤벼들었다. 망량의 움직임은 이미 절대지경 고수가 의념으로 움직이는 속도의 한계치를 가볍게 넘어 있었고, 그런 망량이 팔을 휘두르자 천지가 터져 나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쿠콰콰쾅……!!
나는 뒤에서 그 전투를 보며 생각했다.
‘망량…… 팔부신중인 종말의 거룡의 혼을 자기 자신에게 강신했구나. 시해지술을 쓸 수 있으니 충분히 그런 무모한 강신술을 쓸 자격은 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룡의 혼을 오래 강신할 수는 없어!’
나는 이혼대법 술사이며 강신술을 써본 경험이 풍부했기에 지금 망량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본디 강신술로 강력한 혼을 불러낼수록 좋은 거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의 격(格)이 너무 높으면 강신술사가 큰 피해를 보게 되어 있었다. 지금 망량의 힘은 원래보다 몇 배나 강해져 있겠지만 자칫했다가는 거룡에게 잠식당해서 마물이 될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시해지술로 망량이 얼마나 자신의 혼을 보호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나는 이 위험한 판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망량의 힘을 믿고 끝까지 정면승부하지 않고 몸을 사려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망량에게 합류해서 합공을…….’
망량이 끼어들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시해지술의 시전자인 망량조차 상대의 주술공격을 일격도 막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방어가 뚫릴 정도면 마력방어막밖에 못 쓰는 지금의 나로서는 속수무척으로 일격에 당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망량만 혼자 싸우게 놔두면 결국 망량은 거룡의 혼이 잡아 먹혀서 용인이 되던가 아니면 그조차도 못하고 소멸당하고 말리라.
하지만 나는 잠시 후 내 마음을 정한 후 주먹을 꽉 쥐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같이 칩시다!!]
직감이 든다.
망량의 계산과는 달리 상대방이 너무 강해서 망량만 개죽음을 당할 거라는 직감이!
망량의 조언을 어기는 한이 있어도 지금은 내가 같이 싸우는 게 맞아!
타닷
그리고 내가 뛰어드는 그 순간, 나는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콰과광
[크학.]
용인이 되어서 엄청난 힘으로 돌격하던 망량은 가면의 승려가 내리친 불장(佛杖) 한 방을 얻어맞고 땅에 내리꽂히듯 쓰러졌다. 다시 망량이 일어나려는 걸 보니 당장 승패가 갈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실력 차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설마했는데 이렇게 빨리 패색이 짙어지다니!
순간 나는 사선(死線)의 감각을 느꼈다. 망량은 분명 지금 일시적으로 거룡의 혼을 이용해서 천계 최상위 투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얻었을 텐데 일격에 맥없이 고꾸라진다니! 그리고 철인이 된 이후 봉쇄되었다 생각했던 그 생생한 육감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놈은…… 격(格)이 다른 상대다.
단순히 어떤 급이라고 치부해서 측정할 수가 없다.
규격 외의 존재!
쿠콰쾅
망량이 빠르게 일어서며 꼬리를 휘둘러 가면의 승려를 내리쳤지만, 승려는 가볍게 한 손으로 막았다. 충격파만으로 이 카필라 성의 유적이 통째로 붕괴하여 지진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승려의 몸에는 스친 상처 하나 나지 않았고, 도리어 승려는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상반된 힘을 무작정 섞기만 하면 강해지는 줄 아는가? 하나의 세계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만용을 부리다니…….”
그리고 승려는 별로 힘도 쓰지 않고 팔을 휘적거렸는데 그 가벼운 움직임에 용인의 동체는 마치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지금의 망량이 지닌 신체적인 힘이 투선급 이상이라 생각하면 놈의 실력은 실로 경세적인 수준이었다.
콰앙!!
[끅!]
용인이 된 망량이 땅에 패대기쳐졌을 때 승려의 가면에서 파르스름한 신광이 흘러나왔다.
“세존의 대자대비(大慈大悲)에 감사하라. 진경(眞境)이란 이런 것이다!”
츠츠츠츠……!!
다음 순간 승려가 합장을 했고 합장한 가면의 승려의 몸을 둘러싸고 백색의 염주와 흑색의 염주가 대각선을 그리며 십자로 교차했다. 그리고 흑백의 염주가 교차한 사이에 가면의 승려가 눈을 번쩍 떴다.
“대라육천세계(大羅六天世界)!!”
파스슷
[……?!]
번쩍!
잠시 번갯불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환영이 일어난 후, 망량을 구하려고 막 뛰어들던 나는 갑자기 카필라 성의 폐허가 흔적도 없어지고 내가 성라(星羅) 한가운데에 뛰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한도 끝도 없는 무한의 암천(暗天)이 무엇인지 오랜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우주(宇宙)!!
설마 차원이동된 것인가? 아니면 환술인가?
하지만 나는 지금껏 모았던 신력을 내 몸에 두르는 순간 그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 수가 있었다.
‘아…… 아냐. 환술도 아니고 차원을 겹치는 장난질도 아냐. 이건…… 우주를 이 자리에 소환했……?!’
그런 게 가능한가?!
이게 과연 술법이긴 한 건가?!
스오오오
가면의 승려는 여전히 합장을 하고 있었고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을 증오하는 듯한 귀기어린 눈빛이 가면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면의 승려 뒤편에 흐르고 있는 시꺼먼 후광은 불가의 법존(法尊)들이 지니고 있는 성스러운 후광과는 완전히 반대의 것이었다. 이 모든 공간을 우주로 뒤바꾼 승려가 이윽고 천천히 망량에게로 손을 뻗더니 인(印)을 맺었다.
대천지공(大天之空) 계(界)
퍼억!!
[망량!!]
망량이 죽는다 생각해서 내가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질렀을 때였다. 망량의 몸은 커다란 충격파에 맞은 듯 피칠갑이 되어 날아갔고 이윽고 허무한 우주 공간 너머로 서서히 사라졌다.
이런 제기랄!! 망량을 죽여?!
나는 극한의 분노가 끓어올라서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는데 가면의 승려는 잠시 후 움찔하더니 몸에 힘이 풀린 기색이 되었다. 승려는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하찮은 인간을 위해 당신이 개입할 줄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쏴아아아
다음 순간 소환되었던 우주의 정광이 사라지고 사방은 카필라 성의 제단유적으로 뒤바뀌었다. 그리고 망량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죽지 않고 숨을 몰아쉬며 제단 밑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허억…… 헉…….”
“…….”
망량, 죽지 않았구나!
내가 기뻐할 때 가면의 승려가 냉담하게 말했다.
“경계의 제망량이 네 스승이었구나. 네 스승의 낯을 보아 세존을 능욕한 너를 한 번은 용서하도록 하겠다.”
쿨럭
망량은 피를 토해내었다. 기식이 엄엄한 듯한 망량이 나를 희미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백웅도…… 봐주시오…… 우리가 잘못했소…….”
그러자 가면의 승려는 내 쪽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전생자는 쳐 죽여야 한다.”
“……!!”
뭐? 저 녀석 어떻게 내가 전생자인 걸 아는 거지?
촤라라락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가면의 승려는 다시 한번 먹빛으로 물든 염주를 소환해서 손에 들고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놈이 내게 명백한 살의를 노출시키는 걸 알아챘고 황당함을 느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저 말도 안 되는 강함에다가 내가 전생자인 걸 또 어떻게 아는 거냔 말이다!
가면의 승려가 귀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미망(迷妄)을 헤매이는 운명의 광대여, 인과율을 조롱하는 방랑자여. 세상에 너와 같은 마라(魔羅)는 존재해서는 안 되느니라!!”
투웅!
가면의 승려가 아까 망량에게 했던 것처럼 먹빛 염주를 내 쪽으로 투척했다. 나는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는 급히 신력을 모조리 끌어내어서 마력방어막과 함께 펼쳤다.
콱……!!
[컥……?!]
나는 전신이 쇠꼬챙이로 꿰뚫리는 느낌에 몸을 뒤틀었다. 망량의 말이 전혀 거짓이 아니었고 내가 펼친 방어막은 모조리 두부처럼 관통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신력의 방어가 꿰뚫릴 때 받았던 섬뜩한 느낌은 마치 가면의 승려가 던진 염주가 신력 그 자체를 소멸시키는 듯한 기분이었다.
‘설마 저 녀석이 가진 능력은…….’
내 예상대로라면 내가 신력을 그대로 갖고왔어도 힘든 싸움일수도 있었다.
이거 정말 잘못 걸린 느낌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몸을 비틀거릴 때였다. 나를 끝장내려고 손가락으로 인(印)을 맺어서 내 쪽으로 뻗던 가면의 승려가 힐끔 위를 바라보는 듯했다.
“비슈누인가.”
콰아아앙!!
거대한 장인(掌印)이 내려치며 가면의 승려를 쥐포로 만들었다. 웬만한 산보다 거대한 신의 손이 갑자기 나타나서 가면의 승려를 공격한 것이다. 천공에서 뻗어져 내려온 거대한 팔의 주인은 아마도 크리슈나의 본체인 비슈누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비슈누가 강림하면서 천공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가모니의 제자여! 네 스승이 소멸한 한(恨)을 이기지 못하고 신에게 도전한 대가는 크게 치르게 될 것이다.]
서서히 천공에 비슈누의 신체(神體)가 구현화 되며 나타나기 시작했고 삼황오제에 맞먹는 비슈누의 힘이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비슈누가 어지간히도 분노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정도로 신력을 끌어온다면 인과율의 소모가 막심할 텐데…… 아예 말세에 개입할 여유조차 나지 않게 될 것이다.’
삼황오제들도 지금의 비슈누처럼 현신할 수 있겠지만 온갖 제약을 붙여놓고 쉽사리 강림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지금 비슈누의 행동은 굉장히 무모한 일이었다. 인과율을 무척 크게 손해 보는 데다가 자칫했다가는 자기자신에게 인과율의 역풍이 불어올 가능성도 적지 않았기에, 아무리 힘을 쓸 일이 있어도 대신격들은 본체를 내세우지 않고 화신이나 사도를 내세우는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가면의 승려가 그 정도의 강적이라고 비슈누가 인정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화신 크리슈나를 한방에 소멸시키는 저놈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저렇게 강한 놈을 내버려 두는 게 더 손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대가라…….”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비슈누의 거대한 손바닥이 누르고 있던 곳에서 가면의 승려가 그대로 염주를 휘두르며 그의 손을 쳐 냈다. 가면의 승려는 몸에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터엉!!
[이놈……!!]
신의 손을 가볍게 쳐서 비슈누를 주춤거리며 물러나게 만든 가면의 승려는 귀기 어린 눈빛으로 비슈누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참으로 부질없구나.”
촤라라락……!!
흑색과 백색의 염주가 십자로 교차하며 가면의 승려를 감쌌다.
가면의 승려는 울부짖듯이 외치며 합장했다.
“비슈누! 도솔천(兜率天)으로 가거라.”
대라육천세계(大羅六天世界)
쿠와아앗
아까처럼 가면의 승려가 세상 전체를 우주 공간으로 바꾸어 버렸지만, 비슈누는 공간의 변화에 전혀 개의치 않고 신광(神光)을 손가락 끝에서 쏘아내었다.
[할 수 있다면 해 보거라.]
번쩍!!
‘크으윽…….’
신광이 한 번 폭발하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온통 새하얗게 점멸했다. 나는 이곳이 만일 진짜 우주 공간이라면 비슈누의 신광 한 번에 행성계 하나 정도는 가볍게 날아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비슈누의 전력은 아니었지만, 비슈누는 틀림없이 진심으로 가면의 승려를 상대하고 있었다.
치지지직!!
하지만 놀랍게도 신광 한가운데에서도 가면의 승려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그를 지키고 있는 흑백의 염주는 너무 견고해서 아예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가면의 승려가 멀쩡한 것을 본 비슈누는 뭔가를 알아챈 듯 당황했다.
[어떻게…… [가면] 따위가 그 힘을?]
큭, 큭큭.
가면의 승려는 뒤틀린 웃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웃음소리에서 극심한 광기를 느꼈다.
자신의 힘에 취한 오만함이라기보다는 밑바닥에서 긁어내는 듯한 감정이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위잉!
위잉!
다음 순간 가면의 승려를 기점으로 전 우주가 흑(黑)과 백(白)으로 나뉘었다. 승려는 흑의 세계와 백의 세계를 천천히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고, 그와 동시에 우주는 원처럼 회전하며 크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우주 전체가 흑과 백의 왜곡에 휘말리자 비슈누의 본체는 거기에 저항하는 것 같다가 서서히 변곡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지기 시작했다.
쿠드득!
[크아아아악……!!]
비슈누의 본체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신이 고통을 느끼고 비명 지르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기에 깜짝 놀랐다.
‘신은 고통 자체를 원래 느끼지 않아! 저것은 존재 자체가 소멸의 위기를 느끼고 근원적인 공포를 느낄 때나 나오는 반응……!!’
대라육천세계가 일으키는 변화가 설마 신의 본체조차 찢어발길 정도란 말인가?
찌지직! 찌지직!!
비슈누의 사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와중에 가면의 승려는 가면 아래로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광기에 차서 절규하기 시작했다.
“거짓된 세계의…… 거짓된 신이여…… 찢어져라……!!”
[크으…… 으아아아아아!!]
비슈누는 속절없이 당하다가 갑자기 거대한 빛의 폭발을 내뿜었다.
콰아아앙……!!
마치 초신성이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빛이 사방을 물들였다. 나는 비슈누가 소멸했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도망쳤어……!!’
비슈누는 도저히 이 대라육천세계의 공간에서는 가면의 승려를 이기지 못함을 깨닫고 나가 버린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크나큰 신력의 소모와 인과율의 손해를 당했으니 앞으로는 거의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게 되리라!
하지만 비슈누의 손해라고도 할 수 없다. 비슈누가 이 자리에서 계속 싸웠다면 그는 틀림없이 저 가면의 승려에게 살해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기보다는 도망치는 게 훨씬 나은 것이다.
슈우우…….
신력이 남은 잔향이 안개처럼 퍼져 나오자 그 안개를 물끄러미 보던 가면의 승려가 묵묵히 염주를 들어서 나를 겨누었다. 틀림없이 선명한 살의였기에, 나는 지금 남의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 내가 제일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이길 수 있을까?
정면승부에서 삼황오제에 버금가는 비슈누 본체조차 박살 내버린 저놈을 상대로?
‘게다가 내 생각대로라면 저놈은 신력을 무효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본디 온갖 권능에서 최상위의 상승을 갖고 있는 것이 신력. 그런 신력을 정면에서 분쇄해 버릴 수 있는 건 가면의 승려가 갖고 있는 힘의 크기 자체가 삼황오제보다 더 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놈이 휘두르는 힘의 성격 자체가 신력에 완전한 극상성(克相性)이기 때문이다. 힘의 크기만이라면 삼황오제가 훨씬 강하겠지만 놈은 신을 살해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내가 갖고 있는 건 강대하긴 하지만 어차피 필멸자 수준인 세계수의 마력.
그리고 비슈누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은 신력.
어떻게 봐도 내가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게다가 신조차 분쇄하는 이 대라육천세계를 파해할 방법조차 없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가면의 승려가 공격하려 하기 일보 직전에 외쳤다.
[이봐, 잠깐!! 할 말이 있는…….]
콰과광
나는 그대로 날아든 염주 때문에 죽을 뻔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피해낸 덕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개새끼…… 유언도 안 들어주냐!]
가면의 승려는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일단 살아남은 나를 보자 뭔가를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꿈속에서 네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주받은 자여.”
[뭐라고 지랄하는 거야.]
“네 고통은 끝이 없으리라. 실로 영원한 굴레 속에서…… 네가 긍정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너의 고통뿐이다!!”
촤라라락
다시금 가면의 승려가 자신의 몸 주위에 흑백의 염주를 소환했다. 나는 아까 비슈누를 소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그 공격을 내게 가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정말 답이 없다.
이렇게 답이 없는 상황도 오랜만이다.
그나마 조그만 신력을 쓸 수 있게 되어서 숨통이 트였다 생각했는데 아예 신력에 극상성인 괴물이 출현해서 다짜고짜 날 죽이려 들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그러나 그렇다고 얌전히 죽어줄 순 없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으리라.
나는 가면의 승려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주먹을 쥔 채 말했다.
[나는 네가 왜 지랄하는지 모르겠다. 이 개새끼야.]
“…….”
[내 고통이 무한할 거라고? 거기에 네 고통도 추가하면 좋겠다!!]
내가 으르렁거리자 가면의 승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 또한 굴레일 뿐이다…….”
쿠구구구구…….
우주 전체가 뒤흔들린다. 대라육천세계의 모든 것이 가면의 승려의 의지에 따라 끌려 들어가 왜곡되며 사라지려 했다. 그리고 그 인력의 중심은 바로 나를 향하고 있었고, 나는 비슈누조차 분쇄해 버린 저 인력에 저항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육천세계…… 왜 육천세계지? 원래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순간 놈의 기술명이 신경 쓰였다. 가장 넓은 세계의 단위를 가리켜 삼천세계라고들 불렀는데 놈의 기술명은 육천세계였고, 삼천세계의 2배라고 할 수 있었다. 왜 굳이 삼천세계가 둘씩이나 있다고 하는 것일까?
세계가 두 개라…….
바로 그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세계가 끌려 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세계가 놈의 가슴팍에 수렴하기 전에 고도의 흐름이 원형을 이루는 것을 느꼈고, 나는 그게 내가 아는 태극(太極)과 무척 유사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또한 얼마 전에 제갈유룡이 해줬던 말 또한 머릿속에 떠올랐다.
‘좋아…… 해 보자!’
[흐름]을 느낀다.
의념도 내공도 쓸 수 없지만, 암야(暗夜)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기에, 내 주변의 [흐름]을 읽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리고 [흐름]이 자연스럽게 유동하는 사이에 나는 [힘]이 [흐름]보다 나중에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렇다.
아무리 빠르고 강한 힘이라 하더라도 [흐름]보다 앞설 수는 없다.
[흐름]은 속도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우주 만물이 변화하기 전에 존재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흐름]을 알 수 있다면 아무리 강력한 힘과 속도에도 대응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태극권(太極拳)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우주만물의 인력(引力)이 대라육천세계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내 모든 집중력을 발휘하여 [흐름]을 암야(暗夜)에 태웠다.
암야(暗夜) 무쌍패(無雙覇)!
끼이이익 -
무언가가 맞물리지 않고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실재하는 소리가 아니었고 내가 만들어낸 [흐름]이 상대의 [흐름]에 부딪히는 과정이 형이상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 나쁜 마찰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상대가 나를 끌어당기는 인력이 사라진다는 걸 알아채고는 나는 끝까지 무쌍패를 유지했다.
파앙!!
“……!!”
상대의 술수가 끝까지 전개되지 않고 도중에 풀려서 우주가 다시 시꺼먼 암천과 성라(星羅)로 뒤덮였다. 그리고 어둠을 등지고 있던 가면의 승려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씩 웃었다.
[어떠냐.]
암야의 경지에서 펼치는 무쌍패!
방금은 내가 강제로 없앤 게 아니라 가면의 승려가 스스로 없애게 만든 것이다!
의념과 의념천주를 쓰지 않기에 무쌍패 특유의 강대한 무화(無化) 현상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 대신 음양(陰陽)으로 해석될 수 있는 상대방의 공격에 균열을 일으켜서 제풀에 무너지게 만드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무쌍패를 쓰게 되면 상대가 자멸도 각오하고 끝까지 힘을 시전했을 때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지만, 상대의 술수는 그런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는 침묵하는 놈에게 말했다.
[네놈의 그 술수는 음(陰)의 세계와 양(陽)의 세계가 중첩되게 만드는 건가 보구만. 그렇다면 같은 음양으로 대적해 주마!]
“…….”
음양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어찌 되었든 무쌍패로 상대할 수 있다!
물론 놈이 그냥 같이 죽자고 술법을 끝까지 쓰면 난 죽을 수밖에 없지만, 방금 놈은 스스로 시전을 멈추었다. 그 말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가면의 승려가 말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연기(緣起)를 깨달았구나. 오만한 전생자가 [큰 굴레]의 경지를 얻으려 하는 것이냐?”
[엉? 무슨 말을…….]
“타고난 불성(佛性)을 지닌 존재는 아닐 터. 너는 이미 무수한 연기에 얽매여 있다.”
그렇게 말한 가면의 승려는 염주의 전개를 멈추고 염주알 하나를 꺼내서 들었다.
번쩍!!
염주알이 빛나는 순간 나는 다시금 전 우주에 퍼지는 듯한 충격파를 암야 무쌍패로 받아내었다. 하지만 충격파를 받아내긴 했으나 몸의 내부가 크게 뒤틀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기계라서 고통은 느끼지 않지만, 이 정도면 몸이 꽈배기처럼 뒤틀리기 직전에 간신히 멈춘 셈!!
염주알이 뿜어낸 힘에 대항하려고 암야의 기술을 썼는데 그 반동이 그대로 몸에 찾아온 것이다. 인간의 몸이면 진작 죽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당황했다.
‘왜…… 몸이 꼬이지?!’
그리고 나는 다음 순간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암야의 경지는 만능이 아니야……!! 충분한 인과율과 넉넉한 의념 같은 게 받쳐주지 않은 상태에서 암야만 계속해서 쓰면…… 몸에 역풍이 와서 자멸한다!’
아수라는 물론이고 암야의 경지에 접한 신역의 고수들이 있을 텐데도 그들이 암야만 남발하지 않은 이유! 그것은 결국 반무공(反武功)이며 신역고수를 상대하기에 좋은 기술이기에, 역으로 평소에 평범한 의념의 필살기보다 훨씬 약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그 사실을 어째서인지 눈치챘기에 평범하게 힘을 퍼붓는 기술로 대응하는 것이고, 나는 이런 식으로 가면 도저히 암야무쌍패로는 몇 번 상쇄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뻗어 버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어보다는 공격이다.
먼저 놈을 쳐서 넉넉하게 공격할 여유를 없애는 게 도리어 방어가 되리라!
치치칭
나는 쥐꼬리만 한 신력을 오레이칼코스의 팔에 불어넣었고, 신력이 방대한 마력과 감응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빠르게 물질을 연성했고, 이윽고 내 앞에는 한 자루의 장검(長劍)이 들렸다.
타닷
나는 검을 중단세로 거머쥐고는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가면의 승려는 자신과 나의 간격이 좁혀지는데도 마치 정면으로 받아주겠다는 듯 피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잘됐다 싶어서 그대로 놈을 베어 버렸다.
암야참(暗夜斬)!
역륜(易輪)이 회전하며 상대방과 나 사이의 공간을 찢어 버렸고 연이어 승려의 몸뚱이마저 베어 버렸다. 암야참의 참흔(斬痕)이 허공에 잔류하더니 이윽고 수십 개의 참격소리를 허공에 울려 퍼지게 했다.
촤악!!
‘베었다!’
나는 칼끝에 확실히 감각이 있었기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뒤돌아보았을 때 가면의 승려가 몸 여기저기를 베여서 출혈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상은 없었고 모두가 가볍게 베인 정도라서, 놈의 몸이 무척 단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암야참을 정면으로 받은 가면의 승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전생자가 무신의 길을 걸을 리가 없거늘…… 재밌구나.”
후웅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부상을 멀쩡하게 회복한 가면의 승려가 처음으로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보인 듯했다.
촤르르륵
아까처럼 또다시 흑백의 염주가 가면의 승려를 감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검을 들고 경계했다.
[대라육천세계는 안 통해. 같이 죽고 싶다면 끝까지 네놈에게 한칼이라도 먹여주겠다.]
“걱정 말아라…… 네게 어울리는 수법으로 상대해 주마.”
[뭐?]
그때 나는 기괴한 현상을 발견했다.
[……?!]
키기긱!!
승려가 쓰고 있던 가면이 갑자기 다른 것으로 뒤바뀐다!
나는 마치 변검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승려가 가면을 완전히 바꾼 순간, 놈의 기세가 일변했다. 가면의 승려는 가면이 바뀌자 중얼거렸다.
“네가 무(武)를 고집하겠다면 신살(神殺)을 위해 벼려낸 이 쌍염주를 쓸 필요는 없다.”
[…….]
“받아라.”
타앗!!
가면의 승려는 자신의 불장을 거머쥐고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그게 술법이 아니라 무학(武學)이라는 걸 깨달았고 고명한 신법의 일종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직도황룡(直刀黃龍)의 아주 단순한 베기로 불장을 내려치는 순간,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까강 - !!
나는 간신히 불장의 참격을 받아내었지만, 힘이 너무 딸려서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의념도 내공도 쓰지 못하지만, 상대는 완전히 의념을 충천시켜서 나를 공격해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비틀거리며 약점을 노출시키자 가면의 승려가 몸을 세 바퀴 회전시키며 절학을 시전했다.
대력금강퇴(大力金鋼腿)
소림사(少林寺) 칠십이종 절예의 하나이자 천하십대퇴법 중의 하나! 위력 하나만으로는 강호에서 손꼽히는 대력금강퇴가 내 명치 쪽을 때려오자 나는 전력을 다해서 마력과 신력을 집중시키며 그 공격을 막았다.
꽈광!
대력금강퇴를 겨우 막았지만, 가면의 승려는 연이어 불장을 고쳐잡으며 내 약점을 찔러왔다. 무려 108번이나 되는 절격(節擊)이었다.
두두두두
콰콰쾅!!
‘빨라!!’
나는 마력을 강화시켜서 미처 내 눈과 반응속도로 쫓지 못하는 공격은 어떻게든 맷집으로 맞으면서 버텨냈다. 백 개가 넘는 공격 중에서 구십 개 정도는 걷어냈지만, 나머지는 고스란히 처맞을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몸이 우그러졌다.
타닷
가면의 승려는 조금도 봐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불장을 내질렀다. 일 초 만에 무려 십팔타(十八打)를 뻗어오는 불장의 타격은 이윽고 나를 한계에 다다르게 만들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흐름]을 듣는 행위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했던 것처럼 [흐름]을 따라간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상대의 공격이 강맹하더라도 파해법이 저절로 얻어질 것이다!
‘지금인가!!’
부웅
하지만 내가 그 [흐름]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일 검을 내지른 순간 가면의 승려는 딱히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유연하게 몸을 뒤로 뺐다. 그 신법 또한 불가정종의 것이었고 기울어짐 없이 완벽한 숙련도라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
[흐름]을 느끼고 완벽하게 들어간 것 같았는데 피했다고?
여태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스으으
내가 내심 당혹해하고 있을 때 가면의 승려는 불장을 아래로 내리며 한층 더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승려는 살기인지 광기인지 모를 기운을 내뿜으며 기음(奇音)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으으으…….
으으아…… 아아…….
마치 야생동물의 것과 같은 그 기이한 소리는 광기를 머금고 있었고 도저히 절세고수가 낼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소리에서 생생한 어둠의 반향이 들려오며 내 심장을 옥죄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은 상대의 살기가 지고지순하게 벼려져 있다는 걸 의미했다.
‘온다!’
그 순간,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속도로 승려가 출수하여 불장을 내게 휘둘러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승려의 초식을 생전 처음본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고…… 아무런 성격도 없다…… 하지만 순수한 살기만이 무형(無形)을 형성하고 있단 말인가?’
이게 절대지경일까? 확신조차 되지 않는다.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이 또한 무언가의 경지.
나는 이토록 철저한 무색(無色)의 무공을 처음 보았기에 잠시동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롤랑의 풍신류 기술이나 라운의 폭광누멸검처럼 특별한 성질을 가진 무공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나는 [흐름]을 잡는 게 무척 어색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사소한 흠결은 있을 수밖에 없는 법 - 나는 찰나의 순간에 [흐름] 속으로 나 자신을 내몰면서 빠르게 침잠해 들어갔고, 연이어서 삼보(三步)로 내 흐름을 이어나갔다.
‘최후의 순간까지 믿을 건 보법(步法)……!!’
진소청과 함께 수련한 이 삼보절기는 어떤 상대를 맞이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하나 -
둘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이 찰나 그 자체가 암야(暗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었다.
타앙!!
무형의 시공간에서 갑자기 나와 승려의 일 초식(一招式)이 격돌하여 정면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이번 대결에서 손해를 본 것은 승려인 듯, 그는 한쪽 손이 너덜너덜해져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불장을 타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물론 내 손도 검과 함께 조금 더 찌그러졌지만 애초에 기계인 덕에 아프지는 않았다.
승려는 손해를 보자 묵묵히 자신의 손을 내려보다가 중얼거렸다.
“수파리(守破離)에서 파(破)의 단계가 요동치는구나.”
나는 이를 부드득 걸고는 놈을 노려보았다.
[이 개자식아. 이제는 무공의 가면으로 바꿨다 그 소리냐? 네가 수보리냐고.]
“……수보리도 아는가. 전생자라면 이상한 일도 아니지.”
[뭐?]
“전생자여, 만환(萬患)의 근원이여…… 나의 이름을 말해주마.”
이어진 가면의 승려의 말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놈과 싸웠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의 이름은 아난(阿難)이다.”
[…….]
나는 그 이름을 어디선가 들은 바가 있었기에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억을 끄집어내고는 깨달았다.
‘그랬던 거였나.’
내 앞에 서 있는 건 바로 전우주에서 유일하게 공존(共存)에 성공한 [가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