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6권 15화
십대제자 라운?!
아수라와 함께 수련했다고?
‘십대제자……?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게 뭐였…….’
어디선가 들은 것만 같은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라운의 검이 정직하게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왔다.
퓨웃!!
굉장히 빠른 쾌검(快劍)!! 아까 봤던 수준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기에 나는 이번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는 수밖에 없었다.
까앙 - !!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출수한 라운의 검이 튕기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몸에 두르고 있던 마력의 반탄력 때문에 그의 공격이 미처 내 방어를 뚫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라운의 공격이 튕긴 것과는 별개로 나는 격중당한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짜릿한 통증 때문에 몸을 비틀었다.
[……!!]
아, 아프다고?
지금 내가 아파? 강철의 몸인데?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마력도 뚫지 못한 위력의 첨격(尖擊)에 불과했는데 어째서 찔린 곳에서 통증이 느껴진단 말인가? 그것도 기계의 몸이라서 원래부터 통증 같은 건 느낄 수가 없는데도!
내가 당황하는 듯하자 라운이 씩 웃었다.
“역시 그렇구나. ‘이게’ 통하는 걸 보면 그대는 식(識)이 깨어 있는 존재구나!!”
촤아앗 -
폭광누멸검(爆光漏滅劍)
자광단월(紫光斷月)
익히 알고 있는 폭광누멸검의 필살초식이 재차 라운의 손에서 펼쳐져서 내 몸을 종횡무진 베려고 날아들었다. 나는 그의 폭광누멸검 초식이 아까와 비교해서 조금 더 빨라졌지만 그렇게까지 빠르다 느끼지 않았는데, 그와는 별개로 초식이 품고 있는 중후한 위력에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이건…… 완성된 초식이다!’
초식의 위력은 단순히 빠름(快)과 강함(强)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었다. 아예 극쾌나 극강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몇몇 초식을 제외하고는 공격 하나에 배여 있는 기술의 숙련도와 특성 또한 전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 초식이 완성되어갈수록 위력이 점진적으로 붙어서 겉으로 보이는 빠르기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완성된 강함을 내재(內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지에 오른 자들은 거의 모두가 절대지경이었지……!!’
그리고 방금 전까지 상대했던 라운의 숙련도를 보면 결코 이 정도의 초식을 발휘할 수준이 아니었기에 나는 곤혹스러워졌다. 이 자광단월의 초식이 겉으로는 피하기 쉬운 것처럼 보여도 두 번째, 세 번째의 초식으로 가게 되면 퇴로(退路)가 막힘과 동시에 방어가 뚫려서 급소에 일격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내게 지금 의념천주와 무공이 있었다면 자광단월의 완성도에 맞춰서 대응하는 초식을 펼쳤겠지만 지금 이 몸뚱이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별수 없이 나는 상대의 숙련도를 내 강함으로 눌러 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먹에 신력을 가득 불어넣고는 라운을 향해 도리어 뛰어드는 태세를 취했다.
타닷!
내 대응을 본 라운이 놀랐다는 듯 찰나의 순간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니. 과연 대단한 고수로군.”
촤좌잣 -
자광단월의 검강(劍罡)이 한없이 얇아져서 실선처럼 변하더니 이윽고 공기 중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모든 것을 절단하는 강선(罡線)이 되어 내 전신을 베어내려고 날아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광단월은 이런 역습에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된 초식이기에 지금 내 행동은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 되리라.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눈을 번쩍 뜨면서 아무런 잡념 없이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꽈앙 - !!
나와 라운 사이에 엄청난 충격파가 생겨나며 잠시 몸이 튕겨 나갔다. 원래대로라면 신법을 이용해서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소양이 없었기에 나는 억지로 마력을 분사하면서 몸을 공중에 엉거주춤 버텼다. 그리고 내가 땅에 천천히 내려앉았을 때는 라운이 쿨럭하고 피를 토해내며 말했다.
“그대는…… 아수라가 그토록 갈망하던 경지에 발을 내디뎠는가?”
내상(內傷)을 입은 것 같지만,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의 내공도 한계를 모를 정도로 심후했고 인간시절의 내가 지니고 있던 내공에 비견할 만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야 형체를 드러낸 상대방의 강함을 느끼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수라는 이미 이 경지에 도달하고도 남았겠지. 그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라운 네가 아수라의 지인이라는 건 맞는 말인 것 같군.]
“후후, 그런가…….”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며 중얼거렸다.
[나야말로 놀랐다. 이걸로 롤랑은 한 방에 보냈는데 네 녀석은 쉽사리 반격을 맞지 않는군.]
방금 내가 썼던 수법은 모든 의념천주의 작용을 멈춘 채 오로지 암야(暗夜)의 경지에 몸을 맡겨 [들리는] 곳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격을 꽂아 넣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잘 이해는 못하는 무공경지였지만 [들리는] 곳으로 자연스레 몸을 맡기면 이상하게도 원래 그곳에 몸이 가야 하는 것처럼 완벽한 시간차로 역공을 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수법을 쓰게 되면 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라 하더라도 반격 한 번에 절명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미 롤랑을 쓰러뜨리면서 증명된 바가 있었고, 나는 웬만한 고수는 전부 이걸로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놈은 달랐다. 내가 반격의 뇌신권을 꽂아 넣는 바로 그 순간에 또다시 의념천주로 검막(劍幕)을 치면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무(武)를 보는 관점 자체가 롤랑과는 차원에 다른 경지에 있다는 뜻이었고 내가 반격할 가능성 또한 처음부터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나는 라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새끼…… 처음부터 힘을 제약하고 싸우고 있었군. 네 진짜 실력은 초기 아수라에 비해 그리 뒤지지 않는구나.]
평범한 초절정의 고수처럼 연기하고 있었지만 사실 저놈은 아수라에 비견할 만한 절대지경의 고수!
그 정도라면 충분히 사천왕의 일좌인 지국천의 자리에 오를 만하리라.
그러자 라운이 말했다.
“아수라가 적멸무극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내가 바로 천축 최고의 고수인 대라한(大羅漢)이었으니까…….”
[너와 아수라는 무슨 관계냐?]
“함께 무를 연마하던 동지였다. 폭광누멸검은 녀석과 내가 함께 수천 번 대련하면서 완성한 절학이지.”
[아수라는 폭광누멸검이 자신의 독문절학이라고 하던데 네놈이 지어낸 거 아니냐?]
“나도 아수라도 완성한 이후에 후인에게 딱히 폭광누멸검을 전수한 적이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대꾸한 라운은 슥 하고 자기 입가의 피를 닦더니 말했다.
“백웅이여. 그대는 정(正)도 사(邪)도 아닌 것 같구나. 그러면서도 식(識)이 깨어 있고 반응을 하다니, 그대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나는 라운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식이 뭔데? 네 녀석은 무슨 수로 내게 고통을 느끼게 한 것이냐?]
내 반문에 라운이 피식 웃었다.
“후후. 신역(神域)에 발을 걸쳐놓고는 내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인간의 경지에 머물러있는 나를 기만이라도 하는 것인가?”
[…….]
“정말 모른다면야 설명해줄 수는 있으나 맨입으로는 안 되겠군.”
스윽
라운은 자신의 검을 집어 들더니 몸 가운데에 위치하게 하며 자세를 잡았다. 전형적인 찌르기의 기수식이었는데 그에게서 장중한 기세가 느껴지는 걸 보니 이번 일격은 방금 전의 자광단월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였다. 나는 이게 라운의 필살초식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긴장했다.
‘이 녀석, 세다…….’
설마 이런 놈이 또 천축에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천 년 묵은 천축의 절대고수이자 아수라의 옛 동료라니!
정말로 말세가 되니까 숨어 있던 기인이사들이 다 튀어나오는 것인가?
내가 라운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때 라운이 천천히 말했다.
“적멸무극의 위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나 또한 천여 년 이상 무(武)를 수련한 몸. 네가 이 폭광누멸검의 최종오의(最終悟義)를 받아낸다면 인정해주겠다.”
[최종오의가 따로 있었단 말이냐?]
“아수라와 무공을 거의 다 완성하고 마지막 오의는 각자의 취향대로 완성하기로 했을 뿐이다. 받아낼 자신이 있느냐?”
[…….]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주 권법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적멸무극도 어떻게 깨는지 알거든.]
“후후, 농담도…….”
스스스
나는 스산할 정도로 모여드는 라운의 기(氣)를 보자 내심 긴장했다. 저놈의 내공수위와 능력을 봤을 때 지금 날리는 공격이 적멸무극에 준한다는 건 헛소리가 아닐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 눈앞에 있는 라운이 사천왕 중에서 제일 강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젠장. 무공을 쓸 수 있을 때 싸운다면 재밌는 상대일 건데…….’
지금은 아쉽게도 기도 내공도 의념도 사용할 수 없어서 그저 암야라고 하는 새로운 경지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암야의 [흐름]은 알았으되 반격이 안 먹히는 상대를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의(眞意)는 얻었지만 그걸 필설(筆說)로 형용할 수 없는 상태!
심지어 내가 어떤 원리로 암야를 펼치는지도 남한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냥 닥쳐오면 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제대로 된 무리(武理)도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무공의 문외한이 되어서 던져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자 문득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는 경지인데 이런 걸 나한테 설명을 해준 28회차의 아수라는 정말 대단한 고수였구나.’
나도 노력하면 나중에 암야를 남한테 가르쳐줄 수준이 될 수 있을까?
‘…… 아니 적이 코앞인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왜 하는 거야.’
나는 내가 이렇게 잡생각이 많았는지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맥이 탁 풀렸다.
어차피 내공도 의념도 쓰지 못하는 데 집중을 해서 무엇에 쓰는가?
이 상태에서 아무리 집중해봤자 의념천주의 반응속도에 털끝이라도 따라갈 수가 있는가?
이제 물리적인 한계라는 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암야(暗夜)란 무엇인가.
내가 보고 있는 시꺼먼 밤의 영역은 과연 무(武)이긴 한 것인가?
그리고 내가 잡생각을 거듭하며 정신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진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라운의 일격이 짓쳐들었다.
절대지경(絶對之境)
폭멸굉천(爆滅宏天)!
고고고고 -
그 순간 나는 전신이 막 떨리면서 엄청난 심검(心劍)의 형상이 내 전신을 압박해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무예의 원리는 충분히 느껴졌다.
이 심검이 진동하면서 내 움직임을 완벽하게 제약할 것이고, 나는 이 찰나에 진동의 압박을 벗어나지 못하면 잠시 후 진동이 내뿜는 파괴적인 위력 때문에 그대로 갈려 나가게 될 것이다. 위력 하나는 끝내줄 게 분명했다.
나는 반투명한 이 거대한 심검이 짓쳐들어오는 동안 이게 진짜 심검일까 라는 생각을 했고, 이윽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심검은 아니다…….’
마치 마음을 담아낸 것처럼 꾸몄지만 이 검형(劍形)에는 여전히 초식이 묻어 있다. 초식이 묻어 있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초식이 묻어 있는 한 이 공격에는 진심(眞心)이 있을 수가 없고, 진허(眞虛)또한 표현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과거 검마가 무사시의 부처베기를 상대했을 때도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진짜 심검을 알고 있는 탓에 그렇지 못한 것의 단점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고, 동시에 나라면 심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기분!
그리고 머릿속에 과거 들었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심인은 하나의 칼날이다. 칼날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자신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초식의 굴레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날을 세워 심검을 만든다는 것은 그 굴레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여동빈은 그렇게 말했었다.
‘칼날’인가 아닌가.
심검과 심인의 차이라는 건 그렇게 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살상력이 없는 심검은 어째서 상대를 벨 수 있는 걸까?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이 새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공손대랑의 또 다른 한마디가 생각났다.
[모순의 칼날을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굴레를 뛰어넘는 정법(正法)일 뿐. 네게 그 정법을 보여주겠노라.]
그리고 공손대랑이 내가 보여주었던 것은 바로 자연검(自然劍).
공손대랑이 내놓은 정법이라는 해답은 바로 자연 그 자체를 검으로 삼는 것이었다.
나는 자연검 또한 심어검이자 심검이라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때의 공손대랑은 말 그대로 풀잎 하나, 공기 한 모금에도 검기를 실어서 마음을 실은 대로 뭐든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자연검이란 자연을 온전히 검에 담아낸 것이 맞단 말인가?
공손대랑은 그렇게 말을 했지만, 자연이란 게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면 - 사실 검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더 무량(無量)한 영역이 아니겠는가.
‘검에 담는 것은 마음……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흐름]…… 나는…….’
나는 잠시 후 뭔가를 느끼고는 서서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형(無形)과 무형(無形)이 부딪히는 그 순간을 본 적이 있다.’
아수라와 공손대랑의 대결.
지금의 나로서도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진짜’ 신역급 고수들의 일전을 생생하게 일천 초나 보았던 기억!
그리고 지금이라면 왠지 그걸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 검(一劍).
나는 팔의 상박과 하박을 자연스럽게 일 자(一字)로 곧추세워 팔 전체를 검(劍)으로 만들었다.
이 검(二劍).
그걸 [흐름]에 맡겨 휘둘렀다.
삼 검(三劍).
나는 팔 끝에서 폭멸굉천(爆滅宏天)이 흩어져 무(無)로 되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의 굉음도, 현란한 강기도 날아다니지 않았으며 그걸로 나는 상대의 최종절기를 멈출 수가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정적 속에서 나는 서서히 내 팔을 검(劍)에서 원래대로 되돌리며 입을 열었다.
[ 끝났다.]
“…….”
털썩!
라운은 다음 순간 경악한 표정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이윽고 소리를 쳤다.
“어, 어떻게 한 것이냐? 무슨 수로 내 심검(心劍)을 무(無)로 만든 거냔 말이다!!”
나는 그 외침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도 무사시와 같군.’
재능있는 존재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 - 극고의 재능으로 뭐든 성취할 수 있기에 멋대로 마음의 한계를 단정 짓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상상력을 재단하는 그 함정에 눈앞의 라운 또한 빠져 있었다. 어쩌면 이 함정은 천재일수록 벗어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이게 바로 암야참(暗夜斬)이다.]
암야참을 펼칠 때 꼭 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손대랑이 초목죽석(草木竹石)을 검(劍)으로 삼았던 것처럼, 나 또한 무형(無形)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내 말을 들은 라운은 경악을 멈추지 못한 듯 계속해서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기를 한참 후, 마침내 라운은 감정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내게 포권을 했다.
“내가 졌소. 그대를 인정하오.”
아까와 달리 공례(公禮)를 머금은 정중한 인사. 그것은 라운이 진심으로 내게 승복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그 예에 대꾸하지 않으며 그저 그를 응시했고, 내 시선을 받은 라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식(識)에 대해 알고 싶은가 보군.”
[아까부터 그렇게 말했잖나.]
“그러면 진실로 내 소개를 다시 해야 하겠구려.”
라운은 천천히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십대제자(十代第子), 밀행제일(密行第一) 라운(羅雲)이라 불리던 자요. 지금은 브라만교의 사천왕으로 있지만, 사실은 그저 세상을 떠도는 구름일 뿐.”
[…….]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설마…… 너는 수보리(須菩提)의 사형제란 말인가?]
“그렇소. 수보리는 나의 사형이오.”
[……!!]
생각지도 못했던 일!
눈앞에 있는 라운이 그 수보리의 사제였다니!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라운이 말했다.
“석가세존께서 [큰 굴레]에 입적하실 때 각각의 사형제에게 능력을 내려주셨소. 내가 받은 능력은 바로 상대방의 팔식(八識)을 인지(認知)하게끔 도와주는 능력이오. 나는 그 능력을 종종 전투에 이용했소.”
[내게 고통을 느끼게 했던 게 팔식을 인지하는 능력이란 말인가?]
“그렇소. 팔식을 인지하게끔 한다면 무생물(無生物)조차 생자의 감정과 인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오.”
그렇게 말한 라운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백웅 당신은 내가 미처 일깨우기도 전에 이미 식(識)이 트여 있는 존재였던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