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6권 10화
내 말에 쾌영이 당황했다.
“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중원제일신투라는 건 인정하겠지만 이번 일은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이오. 그 무시무시한 마신(魔神)을 상대로 어떻게 담판을 짓겠다는 거지.”
[…….]
“그 무량한 우주를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있소. 이 공간의 주인이란 건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위대한 존재라는 걸…… 웬만한 신조차 그 앞에서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발 객기 부리지 마시오.”
쾌영의 말은 나를 깔보는 게 아니라 원초적인 두려움을 여과 없이 투영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궁전]에 숨어 사는 그 [옛 지배자]가 너무나 엄청난 존재라서 인간은 절대 이길수 없다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 어린 쾌영의 조언에도 그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상당히 격이 높은 자겠지. 하지만 나는 전혀 두렵지 않소.]
“이런 미친…… 우리 앞에서 객기를 부려봤자 무의미하다니까.”
[객기가 아니오. 나는 그 자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 앞에서도 살아남았소.]
“……?!”
좌중이 경악하고 있을 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날 믿으시오. 내가 조금만 더 강해지면…… 그자와 담판을 지어서 세상의 멸망을 막아주겠소.]
지금 당장에라도 그 중심 내핵의 지배자를 찾아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내가 너무 약하면 상대방은 얘기조차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벌레 취급하여 순식간에 죽여 버릴 수도 있다.
최소한 상대가 얘기를 들어줄 정도로 강해져야만 하는 게 전제조건인 것이다.
…….
잠시 후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희망을 느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본인들도 자신의 변화를 믿지 못하는 듯했고, 망량이 제일 놀라서 말했다.
“방금 전 대단한 설득력이 느껴졌소.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라면…… 당신의 말 자체가 무게를 갖고 있구려.”
[기왕 할 거면 한다, 하지 않는다 외엔 없잖소? 나는 마음먹은 이상 어떻게든 할 것이기에 날 믿어주면 좋소.]
내 말에 제갈유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대를 믿어보지. 나중에 한 번 더 토벌대의 안전한 퇴각을 위해 내핵에 가게 될 건데 그때 토벌대 대장에게 전해두겠소.”
[고맙소.]
어찌 되었든 제갈유룡에게 최소한의 믿음을 준 모양이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그보다 토요를 이용해서 영토를 넓힐 방법이 있다는 거 무슨 말이오? 제갈부가 그런 얘기를 하던데 정말 방법이 있소?]
“그야 당연하지.”
제갈유룡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토요를 [옛 지배자] 공략에 사용하며 알게 된 거지만 토요에 잠재되어있는 능력은 술법무효화 뿐만이 아니오. 선천팔괘를 이용하면 신의 저주조차 해제할 수 있지.”
[그 말은…….]
“합당한 제물만 바친다면 토요는 방대한 영역을 모조리 정화하여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 것이오. 선천팔괘라면 충분히 츠쿠요미의 [밤]에 의한 저주를 정화하고도 남소.”
나는 방법이 나타나자 뛸 듯이 기뻐서 말했다.
[오!! 그 얘기였구려. 근데 왜 지금까지 그 방법을 알면서 사용하지 않은 것이오?]
“제물로 삼을 만한 게 없으니까. 정확히는 인신공양을 하려 했지만, 그대의 동료들이 극구 만류하기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소. 허나 인신공양을 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몰락한 인간문명이 토요의 힘을 대량으로 끌어내기에 필요한 제물을 바칠 수 없지.”
[천계의 보물을 바치면 안 되오?]
“토요는 같은 보물보다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더욱 높게 쳐 주지. 천계의 보물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효율이 너무 좋지 않아서 그동안 망설였소. 그리고 천계의 보물이 갖고 있는 뛰어난 공능을 생각하면, 인간이 조금 비좁게 사는 게 차라리 나아서 안 하고 있었소. 인간이 편하게 산다고 해서 신을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니까.”
[…….]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효율으로만 보는 저 관점은 참 오랜만이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데 쓸데없이 냉혹하다는 게 그의 특징이었다.
‘그래, 이게 제갈유룡이지.’
나는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이제는 인간의 복지를 추구하는 게 신살에 도움이 되게끔 상황이 바뀌었소. 내게 협조해 주시오.]
“무슨 말인가?”
나는 제갈유룡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놀란 듯 말했다.
“정말 신앙만으로 신력을 얻을 수 있단 건가…… 그러면 도와줘야지.”
[방법이 없겠소? 인신공양을 안 하고 제물을 바칠 방법이…….]
“……있긴 있소.”
[무엇이오?]
제갈유룡의 눈이 빛났다.
“초상기인…… 그것뿐이지.”
[…… 아니, 그거…… 또 돌고 돌아서 초상기인이오? 근데 금천재가 그러던데…… 남경성에는 초상기인이 하나도 없다고 그랬소.]
내게 성주직을 넘겨준 금천재는 성의 근황을 보고하면서 이 성에는 초상기인이 없다고 했다. 초상기인 자체가 천계에게는 불쾌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락없이 초상기인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갈유룡이 초상기인을 말하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갈유룡은 고개를 저었다.
“남경성에 초상기인은 있소. 그것도 사상최고의 걸작이 있지.”
[…… 뭐?! 금천재도 그렇고 아무도 그런 게 있다는 거 몰랐는데? 대체 무슨…….]
“당연히 당신들이 알 리가 없소.”
이어진 제갈유룡의 말에 나는 역시 제갈유룡이라는 걸 느꼈다.
“나와 제갈사가 진시황을 능가하는 초상기인을 목표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비밀리에 만들고 있었던 거니까.”
[뭐?!]
그런 게 있었다고?!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닌지 망량 등 다른 모든 동료들이 놀라는 모습이었다. 나는 당황하다가 이윽고 냉정해지며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진시황이라는 건 초상기인 진(秦)을 얘기하는 거냐?]
“……과연 듣던 대로군. 제갈사는 그대가 모든 일을 알고 있다 생각하고 의논하라 했는데 그 말대로야.”
제갈유룡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 이상은 그대와 단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소.”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다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어. 초상기인에 대해서 그냥 말해도 되지 않냐?]
“그럴 거라면 이야기 자체를 거절하지. 애초에 그대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이 일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가 백웅이기에 말하는 것일 뿐 그게 아니라면 평생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이오.”
[…… 으음.]
나는 망량을 쳐다보았다. 망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말이 지당하오. 아무리 친밀한 동료라 하더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게 있고 아닌 게 있소. 그걸 원한다면 향후 우리에게 굳이 밝히지 않아도 좋소.”
[그럼 좋아. 단둘이서 얘기하도록 하지.]
내가 동의하자 제갈유룡이 망량을 쳐다보았다.
“현아. 나와 백웅만을 남경성으로 보내 다오.”
“알았소.”
파앗!!
나는 망량의 술수로 제갈유룡과 함께 남경성으로 왔다. 남경성 내성의 상층부에 서 있던 제갈유룡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초상기인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묻고 싶은 게 있소. 제갈사는 어떻게 되었소?”
나는 그 말에 움찔했다. 그걸 왜 물어보냐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제갈유룡이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렀는데 그놈이 당신과 접촉하지 않았을 리가 없소. 애초에 그대는 구궁파천뢰의 심혼을 통해 제갈사와 엮여 있는 사이. 서방까지 나를 만나러 왔는데 제갈사를 만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역시 제갈유룡 또한 두뇌가 뛰어나다. 게다가 제갈사와 나 사이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제갈사와 평소 협력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또한 진실로 보였다. 나는 숨길 이유도 없었기에 상황을 털어놓았다.
[사실 제갈사는…….]
내가 이세계에서 겪은 일과 제갈사가 내 몸에 혼의 형태로 잠들어있는 이야기를 대략 하자, 제갈유룡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제갈사가 잠들어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군. 이상한 일이야.”
[왜 이상하오?]
“제갈사라면 자기 혼의 의식을 살려놓은 채 그대 곁에서 행로를 조언하는 것만으로 그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를 리가 없소. 적어도 지금보다는 몇 배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 그런데도 과도한 힘을 쏟아서 오랫동안 수면 상태에 들었다는 건 책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음…….]
“두 가지로 해석되는군. 하나는 그대를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서 불확정적인 변수 하나하나를 수집하게 만들고 동시에 당신이 진짜 백웅인지를 지켜보려는 것. 또 하나는 당신과 함께 성장하려는 것이오.”
후자는 정말 의외였기에 나는 제갈유룡에게 반문했다.
[성장?]
“그렇소. 향후 성장하여 힘을 얻기에 당신보다 좋은 그릇은 있을 수 없소. 어쩌면 제갈사에게는 백련교주에게 당해서 몸을 잃었던 시점에서 또 다른 계획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릇이라…… 찝찝한 울림이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제갈유룡이 일부러 내가 찝찝하게 느낄 단어를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야 내가 좀 더 그의 말을 솔깃하게 들을 것이기 때문이며 언어의 기술이었다. 그는 타고난 책사이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대꾸했다.
[흐음…… 어찌 됐든 난 상관없소. 어차피 제갈사를 믿기로 했으니 그 정도쯤이야.]
“마음대로 하시오. 어차피 이혼대법 술사를 이해할 수 있는 건 같은 이혼대법 술사뿐이니.”
대수롭지 않게 말한 제갈유룡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초상기인의 위치를 숨기려면 금천재의 이목을 차단할 필요가 있소. 방법이 따로 있소?”
성 내부 어딘가에서 틀어박혀서 놀고먹고 있을 금천재겠지만, 여전히 구천현녀의 계약자였다. 그가 강력한 신력의 보유자인 건 변함 없었기에 자칫하다가는 신의 감각에 의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지당할 위험이 있었다.
[…… 딱히 없군. 지금 갖고 있는 티끌만 한 신력으론 불가능할 거 같소.]
“그 티끌만 한 신력, 내게 넘겨줄 수 있겠소? 그럼 방법이 있을 텐데.”
[알았소.]
아직 남경성 사람들이 나를 별로 믿고 있지 않아서 보유한 신력은 말 그대로 극미량이었다. 이 정도 신력에는 딱히 연연할 것도 없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어 제갈유룡에게 신력을 넘겨주었다.
쿠우우
빛의 구 형태로 손바닥 위에 신력을 구체화시켜 떠올린 제갈유룡이 놀란 듯 말했다.
“……저, 전혀 티끌이 아닌데…… 이걸 티끌이라 느꼈단 말이오?”
[무척 적은 양 아니오? 많소?]
“웬만한 신물의 몇 배를 훨씬 넘어서는군. 이걸 티끌이라 여길 정도로 원래 갖고 있던 힘이 컸다는 얘긴가…….”
감탄하듯 중얼거린 제갈유룡이 잠시 후 외쳤다.
“와라, 토요!!”
촤아아악!!
다음 순간 허공에 토요 팔괘도가 소환되어 제갈유룡 근처에 떠올랐다. 나는 그 토요 팔괘도가 품고 있는 힘이 심상치 않은 걸 느꼈고, 이윽고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해방(解放)된 건가……? 해방 토요란 말인가!!]
틀림없다. 원래 내가 느끼던 토요의 영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저 정도 영기를 내뿜기 위해서는 해방된 칠요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러자 제갈유룡이 훗하고 웃었다.
“현이가 구천현녀의 직계가 되어 시해지술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삼황오제도 지상의 일에 간섭하지 않음이 확인되었소. 토요를 해방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럼 설마 토요의 정령 또한 각성한 것이오?]
“직접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