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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21화 (1,520/1,615)

전생검신 86권 9화

다음 순간, 나는 젊은 청년의 빠른 손이 내 소지품을 훔쳐 갔다는 걸 알아차렸다.

[……!!]

빠르다!!

이 정도 소매치기 실력이라면 적어도 중원에서는 신투지존 빼고는 아무도 비교할 수 없어!

‘이 정도면…… 절대지경 고수한테서도 훔칠 수 있어.’

느껴진다.

이 녀석은 보통 도둑이 아니라 틀림없이 대도의 반열에 올라있다.

내 품에서 비상용 은자를 몇 푼 훔쳐 간 젊은 청년이 히죽히죽 웃었다.

“잘 부탁하오. 토벌대 소속, 천하제이대도(天下第二大盜)인 쾌영(快影)이라 하오.”

[…….]

“하하하. 내게 속절없이 당한 걸 보니 이제 천하제일이라 부르셔도 좋소.”

자신감 가득한 녀석이군.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인류최강의 정예가 모인 토벌대에서 일할 수 있는 거겠지?

‘쾌영…… 분명 검마가 그랬었지.’

금천재의 성으로 가는 동안 검마와 비행선 안에서 얘기했던 기억이 났다.

[아마 자네를 제외하면 세계최고의 대도(大盜)일 것일세. 아수라를 상대로 정면에서 도둑질을 성공했거든.]

[마왕의 본거지에 가서 영핵을 훔쳐 와서 도시 하나를 구원하기도 했네. 그는 현재 전생동료의 토벌대에 합류해서 대활약 중일세.]

[아니…… 그가 쓰는 건 뭔가 다른 기술이었네. 본인이 숨겨서 그 기술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자도 굉장히 잘 훔치는 존재일세. 절대로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검마는 상당히 쾌영을 고평가했던 것 같다. 검마는 절대로 쭉정이를 높게 평가하지 않기에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대단한 실력일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말로 검마가 말했던 대로 쾌영이 훔치는 순간은 나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쾌영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상당한 실력이군. 헌데 천하제일의 칭호는 다음번에 노려야 할 것 같은데.]

“흥. 나한테 코앞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고도 그런 소리요? 당신이 인정 안 하더라도 만인이 내 실력이 더 뛰어남을 보았단 말이오.”

[내 비상용 은자를 훔쳐 갔군. 확실히 네가 훔치는 순간은 잘 느끼지 못했는데…….]

촤락

[글쎄 뭐…… 네 단검 값으로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보군.]

“……!!”

내 손에서 갑자기 두 자루의 단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쾌영은 경악했다. 그는 급히 자신의 허리춤을 보았는데, 그의 단검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서 내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쾌영은 너무 놀랐는지 입을 쩍하고 벌렸고, 나는 손가락 끝으로 단검을 튕겨서 그에게 돌려주었다.

[받게.]

쾌영이 자신의 단검을 잡아챘다. 그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듣던 대로의 실력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졌다고 생각하진 않소. 겨우 이걸로는 나와 동수인 거요.”

[그래? 알았어. 그럼 일단 충고 하나 해주고 싶은데.]

“뭐요.”

촤륵

쾌영의 바지가 쑥 하고 내려갔다. 나는 쾌영의 바지를 묶고 있던 천을 어느새 손에 들고 있었고 여유작작하게 웃었다.

[바지 좀 잘 입고 다녀.]

“으으윽!!”

쾌영의 얼굴이 크게 붉어지며 급히 자신의 바지를 끌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던 아하스 베루스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듣던 대로군. 인간을 초월한 그 신투에 다다른 실력…… 동방의 희망이라 불린 백웅이 맞는 듯하오.”

[별말씀을.]

쾌영 또한 중원 제일의 도둑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나와 신투지존이 없다면 말이다.

“그런데 듣기로는 인간이었다 하던데 왜 철인이 되신 것인지?”

[사정이 있소. 그보다…….]

나는 제갈유룡에게 말을 걸었다.

[제갈유룡. 당신에게 긴히 부탁할 게 있소이다.]

“……?”

나는 제갈유룡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제갈유룡은 설명을 모두 들은 후 말했다.

“음…… 남경성의 영토를 두 배로 늘리는 법이라…… 확실히 그건 토요를 이용하면 간단히 할 수 있소.”

[어떤 방법이오?]

“그런데 그것보다 일단 먼저 토벌대의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소.”

제갈유룡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 셋이 먼저 귀환한 것은 현재 토벌대의 상황이 안 좋기 때문이오. 직접 전선에 나가지 않는 우리가 긴급히 전령으로 전달할 게 있소.”

[무슨 일이오?]

“…….”

이어진 제갈유룡의 말에 좌중이 얼어붙었다.

“토벌대 대장 진소청의 전언이오. 지구의 중심내핵에 있는 존재를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니, 조만간 모든 토벌대가 철수할 예정이오.”

뭐라고?!

나는 믿기지 않아서 외쳤다.

[진소청이 못 쓰러뜨리는 놈이 있다고?! 그럴 리가.]

“……진소청이 못 쓰러뜨리는 게 아니오. 물리적으로 그 자에게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오.”

[그건 무슨 말이지?]

제갈유룡은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아무리 지구의 내핵이라 하더라도 내화술법과 신의 가호를 걸고 전진하면 반드시 적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수십만 도의 고온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지. 하지만…… 어느 정도 이차원의 결계인 [균열]을 뚫었을 때 우리에게 진정한 절망이 보였소.”

[절망?]

“궁전(宮殿).”

제갈유룡이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량대천(無量大天)이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우주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소. 그것은 [차원]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마치 또 다른 세계를 끌어와서 덮어씌운 것만 같았소.”

[……!!]

“신들에게 기원하여 그 무량한 공간의 정체를 질문했더니 ‘궁전’이라고 하더군. 내핵에 존재하는 [옛 지배자]가 본디 다스리던 영지가 그대로 그와 함께 지구에 강림한 것이오.”

또 다른 우주?

궁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제갈유룡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했지만 제갈유룡의 옆에 있던 아하스 베루스가 말했다.

“진소청이 아무리 강해도 우주 자체를 격해서 적을 벨 순 없는 법. 이번 원정은 사실상 실패요. 하지만 섣불리 후퇴했다가는 궁전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한 존재들에게 기습당해 전멸할 수 있으니 인원을 나눠서 천천히 퇴각할 예정이오. 그리고 우리는 최초로 퇴각한 토벌대요.”

[어…… 그러니까…… 또 다른 우주라고 하는 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 우주가 출현했다는 거요?]

“그렇소.”

[신들이 만들어낸 이차원 같은 게 아니라서 공간을 찢거나 부수는 게 안 되는 것이오?]

“직접 보면 알 수 있소. 무한히 겹쳐진 그 밀도는 차원의 경지에서 논할 게 아니오. 지구 내핵에 존재하는 그 [옛 지배자]가 다스리던 또 다른 우주인 거요.”

[…….]

“탐색 술수로 수십만 개의 광성(光星)과 은하(銀河)를 직접 보았소. 의심할 여지가 없소.”

우주 그 자체가 영지이며 궁전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닌 듯 토벌대를 제외한 모두가 경악했는지 얼어붙어 있었다. 한참 후 망량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거대한 규모의 모험에도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지배자]라는 존재들은 볼 때마다 상상을 넘어서는구려. 도대체 어떤 자이길래 그런 막강한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이오?”

“자세한 건 알지 못한다. 그자는 지배자들 사이에서도 이질적인 자이며 본디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온 존재라 하더군. 또한 드높은 격을 지니고 있기에 황제나 흉신조차 그를 경시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으음.”

“강대한 신의 지원이 없으면 결코 그자를 쓰러뜨리기는커녕 그 앞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잠시동안 우울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때 문득 과거의 기억이 났다.

‘어라?’

왜인지 비슷한 녀석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거 같은데……?

나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 행성의 중심에 거하는 그 존재가 먹은 것은 돌려줄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먹은 것은 다 돌려주었다…….]

[나만이 영혼을 먹을 권리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직접 전륜성왕을 약화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그 존재…… 그자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먹고 있었지…….]

[이 행성의 중심에 존재하는 자는…….[궁전]에서 유폐되어 강제로 오게 된 자라고 알고 있다…….]

[그자의 진짜 이름은 나도 모른다…… 다만 아주 오래된 자…… 이미 세상에 이름을 떨친 강대한 대신(大神)들과 달리 은명(隱名)하였으며 자신의 실체를 철저히 숨기고 있는 존재이다…….]

[그자는 원래부터 [계시] 같은 건 관심 없어 보였다…… 아주 높은 곳에 있었던 자였던 것 같더군…… 그래서 황제나 고대신들도 그자의 존재감을 느끼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만나고자 한다면…… 물리적으로 이 행성의 내핵에 접근한 후 악몽(惡夢)을 꿈꾸는 균열으로 진입하면 될 것이다.]

[나처럼 그자도 영혼을 먹기 좋아한다. 신선한 영혼을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촉룡이 분명 내게 그런 정보를 이야기해줬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놈…… 촉룡이 말해준 게 바로 지금 토벌대가 마주친 그놈이다……!!’

[지구 중심에 있는 옛 지배자]……!!

틀림없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지? 분명 촉룡은 탁록시대에서 만났으니 수만 년 전에 말해준 정보인데, 설마 수만 년 전부터 지구 내핵에서 은거해 있는 존재였단 말인가?

동시에 나는 촉룡에게서 들었던 조언이 떠올랐다.

‘영혼을 먹는 걸 좋아하니 신선한 영혼을 준비하면 좋다고…… 그게 공략법일수도 있겠어.’

하지만 이게 공략법이 맞을까?

애초에 신선한 영혼을 준비한다는 게 인신공양 아닌가?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알아낸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칫했다가는 정확하지도 않은 공략법을 전달해서 토벌대 전체를 전멸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뭔가 더 확실한 게 없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뭔가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때 촉룡이 말하기를 전륜성왕을 약화시키는데 그놈이 나섰다고 했지. 탁록시대 이후의 일인 것 같은데 어째서 지구 내핵에 있는 지배자는 전륜성왕을 공격한 걸까? 단순히 혼을 먹고 싶은데 전륜성왕이 방해되니까?’

아니, 격이 높은 존재라면 단순히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촉룡의 말투로 보면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이란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주식 같은 게 아니다. 딱히 없어도 상관없지만, 간식처럼 심심할 때 까먹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일례로 촉룡은 내가 조건을 걸고 영혼을 토해내라고 하니 수조 개나 되는 영혼을 단숨에 토해낼 정도로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하찮은 걸 먹기 위해서 전륜성왕 같은 최강급 신격에게 싸움을 걸어 약화시키는 모험을 할 수는 없으리라.

촉룡은 단순히 전륜성왕이 패퇴한 후 비어 있는 명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잡아먹은 모양이지만 그놈의 경우는 다르다. 전륜성왕에게 도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건 절대로 인간의 영혼 따위가 절실해서가 아니다.

전륜성왕을 약화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궁전에 유폐된 존재…… 유폐된 존재가 전륜성왕을 왜…….’

뭔가 잘못해서 유배를 온 놈이 전륜성왕한테 시비를 걸 이유라는 건……?

번뜩!

그 순간 나는 믿을 수 없는 직감이 스쳐 지나갔기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유배를 풀고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공을 세워야 하니까……?]

내가 중얼거린 순간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향했다. 망량이 어리둥절해 했다.

“백웅. 갑자기 무슨 말이오?”

[어…… 내가 그냥 다른 생각이 나서 한 말이오.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나는 망량에게 질문했다.

[전륜성왕을 공격하는 게 신적 존재들에게 있어서 공(功)일 수가 있소?]

“……으음…….”

망량은 의외로 내 질문을 받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맥락으로 내가 질문했는지 분석하는 게 힘든 모양이었다.

망량 대신에 입을 연 것은 바로 제갈유룡이었다.

“전륜성왕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보시오.”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

“고대에 전륜성왕이 상징하고 있던 것은 바로 균형이자 중용 그 자체. 그가 사라진다 함은 혼돈과 질서의 충돌을 막아주던 제어력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즉 전륜성왕을 제거해서 덕을 보는 자는 우주에서 평화보다는 격렬한 혼돈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존재인 것이오. 혹은 전륜성왕을 제거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던가…….”

[……!!]

설마?!

“허나 내가 듣기로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을 축적했다 하니 또 다른 것도 생각할 수 있겠지. 나는 감히 측정할 수 없으니 마음껏 머리를 굴리시오.”

[아니오. 감이 잡혔소.]

나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놈은 어쩌면 나랑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뭔가 알고 있나? 말해주게.”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소. 제약이 있어서.]

“흐음……?”

제갈유룡은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고 좌중의 대부분이 그러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다들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일부러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계약]에 걸려 있으니까.

‘미쳤군…….’

십중팔구는 내 추측이 맞을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든다.

하지만 도대체 나 이외의 누가 이런 걸 알아낼 수 있을까? 이런 미세하고 우연한 정보로 유추하는 게 가능할 리가 있을까? 내가 소름이 돋는 것은 진정으로 우주의 고차원적인 존재들이 꾸미는 계획이란 건 내가 몇십 번씩 죽었다 깨어나야 간신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토벌대를 뒤로 물리시오. 내가 나중에 그 지배자와 담판을 짓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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