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6권 7화
나는 쓰러져 있는 롤랑의 몸을 관찰했는데 쓰러진 지 숨을 서른 번 쉴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그의 육신이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몸의 관통상도 빠르게 회복되었고 그가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약 반 식경이 걸렸다.
“……헉!”
[정신이 들었나.]
롤랑은 정신이 들자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
“나를 용서해 주시오!”
[……? 갑자기 웬 용서.]
“방금 내가 무례하게 도발했던 것을 사과하겠소. 당신의 진짜 힘을 보고 싶었기에 무례를 범했구려.”
나는 롤랑의 솔직한 사과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충 알고 있었어. 원래부터 남을 멕이는 성격은 아니잖나.]
롤랑이 솔직하고 착한 성격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방금 전의 도발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롤랑은 멋쩍은 듯 자신의 뒤통수를 긁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충분히 진소청의 앞에 설 자격이 있소. 나를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는 기량이라면 그렇고말고.”
[흠, 그런데 롤랑…… 너 약해진 거 아닌가? 예전에는 몸이 반토막났어도 순식간에 회복하던데 이번에는 몸에 구멍 뚫린 것 정도로 전보다 훨씬 많은 회복시간이 필요한 것 같군.]
내가 의문을 표하자 롤랑이 씁쓸하게 말했다.
“본디 내가 섬기는 신은 베헤모스가 아니었소. 아주 머나먼 고대에 봉인된 강력한 선신(善神)이었지. 하지만 츠쿠요미의 대재앙이 퍼지면서 그분과의 연결이 끊겼고, 임시로 베헤모스의 사도로 임명된 거요.”
[베헤모스의 사도가 되며 약해졌다는 건가?]
“원래 모시던 신격과 베헤모스의 성격이 다르므로 내림 받은 가호의 성격이 다르오. 생명력은 분명히 예전보다 수십 배 약해졌소. 대신 다른 권능을 얻었으니 꼭 약해진 건 아니지…….”
[그렇군.]
어쩌면 롤랑이 간절하게 동방의 무예를 수련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장기로 삼던 무한의 생명력이 약화 되었으니 적의 공격을 곧이곧대로 다 맞으면 버틸 수가 없게 되었고, 그만한 회피력을 갖출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리라.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없는 20여 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롤랑이 입을 열었다.
“백웅.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뭔데?]
“당신은 어떻게 의념을 쓰지 않고도 내 공격을 정확하게 반격한 것이오? 이건 도발과는 별개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소.”
[…….]
롤랑의 의문은 지당한 것이었다. 현재 지상에 있는 모든 절세고수들이 의념과 의념천주를 활용해서 싸우고 있으며 예외 같은 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의념이란 자신의 상상력대로 신체능력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공능이 있었기에 의념을 제외하고 싸우면 무척이나 불리했다.
나는 롤랑의 의문에 대꾸했다.
[롤랑. 나는 무예의 한계가 의념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조언을 실천해봤을 뿐이다.]
“의념의 극한에 이르는 게 무예의 극한에 도달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내가 극한에 도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극한을 논할 수 있지? 마찬가지로 의념만으로 무의 극한에 도달해야 한다고 단정 짓는 것 또한 오만한 행동이잖아.]
“일리 있군.”
롤랑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서 당신이 도달한 경지는 뭐란 말이오? 어떻게 반격했는지는 말하지 않는 거요?”
[암야(暗夜).]
“암야?”
[이게…… 보이지 않는 거지.]
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 바로 위를 가리키는 동작을 취했다. 롤랑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어리둥절해했지만 나는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롤랑. 너는 지금 내 경지를 궁금해할 때가 아니다. 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갔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수양할 때다.]
“으윽, 통렬하구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
롤랑은 쓴웃음을 짓다가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봅시다. 당신은 의념을 안 쓰고도 의념을 쓴 자보다 더 강하다는 소리요?”
[아마 아닐걸.]
“……방금 전이랑 말이 다르잖소.”
롤랑의 말에 나는 롤랑의 피가 묻어서 피칠갑이 된 손을 들어서 꽉 쥐었다.
[내게 의념이 없기에 나는 흐름만 읽어서 바로 받아쳤을 뿐이다. 네 공격은 심기체(心技體)를 온전히 얻지 못하여 헛점이 있었기에 쉽게 받아쳤지. 하지만 흠결 없이 완성된 절기를 상대한다면 방금 전처럼 상처 하나 없이 내가 이기진 못해.]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이란 말이오?”
[아마 그렇게 되겠지.]
롤랑에게 말한 대로다. 나는 암야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아마 암야참도 예전과 다른 완성도로 쓸 수 있겠지만, 그게 꼭 내가 예전보다 몇 배로 강해졌다는 뜻은 되지 못한다.
‘암야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무중생유(無中生有)에서 의(意)를 얻을 수 없어야 한다. 이건 무척 제한적인 기술이야.’
예전의 아수라가 무작정 암야참부터 쓰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암야’는 허(虛)이니, 반대로 존재함을 깨달아 의미를 얻을 수 없다면 역으로 아무 위력을 갖지 못한다. 아수라가 예전에 횡설수설하던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암야를 얻은 지금도 정상급 고수를 상대로 한다면 무척 위험하다. [흐름]을 읽어 암야로 상대방의 공세를 파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심기체가 정점에 오른 상대방은 마찬가지로 암야를 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야참은 무적의 필살기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조건만 갖춰지면 누구를 상대로도 지지 않아.’
그래서 아수라가 내게 암야참을 그렇게나 가르치려 한 것이다.
의념을 벗어났기에 그 한계 또한 탈피한 기술이 암야참!
언젠가 내가 몸을 얻게 된다면 진정한 암야의 위력을 시험해볼 수 있으리라!
롤랑에게 말했다.
[롤랑. 아까 말했듯 나는 토벌대의 제갈유룡을 만나러 여기에 왔다. 그리고 한 달 내에는 무조건 만나야 하니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더 빨리 만날 방법은 없겠나?]
“흐음…….”
롤랑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여기서 대기하는 게 아니라 직접 토벌대의 원정지로 가면 되오.”
[아, 그러면 되겠군.]
“하지만 그건 좀…….”
[뭔가 문제가 있는 거냐?]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 토벌대의 원정지는 지구의 내핵(內核)이오. 토벌대의 상황도 모르는데 섣불리 거기에 갔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소. 장소가 장소인지라 이곳에서도 토벌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지 못하는 상태요.”
[……?! 내, 내핵?]
지구의 내핵이라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내핵!
그것은 지구라고 하는 행성의 가장 내밀한 지역이자 어마어마한 열(熱)과 가공할 압력이 끓어오르는 중심지였다. 대웅제국 시절에 지구과학을 배운 적이 있어서 내핵이 뭔지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곳은 인간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웅제국의 과학력으로도 내핵은커녕 외핵도 제대로 탐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대체 토벌대가 거기는 왜 간 거냐? 차라리 암천향에 갔다고 하면 납득할 텐데 너무 생뚱맞잖아.]
“토벌대의 목적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신적 존재를 토벌하는 것이오. 목적은 아주 간단하지.”
나는 롤랑의 말에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 설마, 지구의 내핵에 [옛 지배자]가 있다는 말이냐?]
“그렇소.”
[그런 곳에 왜 있지?]
“지당한 의문이오. 우리도 처음에 상황을 보고받을 때는 당황했는데, 토벌대의 말로는 내핵에 존재하는 [균열]에서 엄청난 기세로 저승의 영혼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하오.”
[저승의 영혼을……?!]
“이대로 균열이 영혼을 흡수하는 걸 방치하게 된다면 명계는 소멸하게 될 것이고, 인과율 때문에 명계가 멸망한 피해는 현실 세상에 그대로 덮쳐온다고 하더군. 그걸 막기 위해서 내핵에 존재하는 의문의 [옛 지배자]를 만나기 위해 토벌대가 현재 [균열]을 공략하고 있소.”
[…….]
뭐지…… 어디선가 지구의 내핵에 관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내가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롤랑이 말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최전선에 사전정보 없이 가는 건 위험하오. 토벌대는 균열의 위험을 모두 타도하면서 전진하는 게 아니라 적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며 전진하고 있다 들었으니, 당신이 그들을 뒤쫓아가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될 거요. 그곳은 [옛 지배자]의 본거지이자 이계의 차원이나 다름없이 때문이오.”
[흠…….]
일리 있는 말이다. 인류최강의 전력이 모인 토벌대조차 정면공략이 아니라 최소한의 접촉으로 일단 목적지에 도달하는 걸 목표로 할 정도라면, 그 마경(魔境)의 수준은 악랄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내 본체의 힘이라면 그것조차 어렵진 않겠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힘을 잃어버린 상태. 고작 방대한 마력 하나만 믿고 그곳에 뛰어 들 경우 큰일 날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앞으로 내가 신앙을 얻어서 더더욱 신력을 축적하여 원래 힘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나는 지금 섣불리 모험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선 기다리도록 하지. 하지만 토벌대가 귀환하는 게 너무 늦다면 그땐 직접 찾아갈 생각도 있다.]
“그건 마음대로 하시오. 일단 일행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갑시다.”
[그래, 갈까.]
“그 전에 이거 받으시오.”
휙 하고 롤랑이 내게 무언가를 던졌다.
[음?]
나는 그 물건을 바로 받아서 잡아챘는데 바로 성검 듀란달이었다. 나는 듀란달을 받아들자 놀라서 말했다.
[이봐. 이건 틀림없이 천하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명검일 텐데 이걸 왜 내게 주는 거냐?]
“당신의 조언을 듣고 보니 내게는 과분한 물건이란 생각이 들었소. 나보다는 당신이 그 검을 올바로 써줄 것이라 생각하오.”
그렇게 말한 롤랑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요. 잘못된 경지를 잊어버리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들겠지. 허나 지금이라도 길을 바로잡았으면 어찌 20년이 아깝겠소? 나는 그저 당신에게 감사할 따름이오.”
[…….]
그 순간, 나는 롤랑에게서 후광 같은 것을 느꼈다.
‘롤랑은 지금 성검 듀란달을 버림으로써 자기 내부의 미혹을 털어버렸다.’
롤랑의 앞길은 험난할 것이다. 그가 말했듯이 잘못된 경지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년이 아니라 100년이 걸려도 성취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롤랑은 그걸 모두 감수하고 다시 시작할 각오를 했으니, 무인으로서 대단한 마음가짐이었다.
롤랑은 틀림없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나는 물끄러미 롤랑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여동빈이 백련교주에게 했던 말은 그런 뜻인가…….]
“무슨 말이오?”
[그런 게 있네. 아무튼 검은 잘 쓰지.]
롤랑은 씩 웃었다.
“건승하시오.”
꼭 계속 채워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버림으로써 얻는 게 있는 것이다.
나는 롤랑과 함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롤랑이 다시금 동료들에게 상황설명을 하자, 망량이 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재밌구려. 6개월 전에는 토벌대가 북극(北極)을 탐사하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사이에 목표가 지구내핵으로 바뀌었단 소리요?”
아마 망량은 6개월 전에 토벌대의 근황을 접했던 모양이고 지구내핵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이번에 망량도 처음 듣는 듯했다. 그러자 롤랑이 망량에게 말했다.
“북극에서 뭔가 정보를 얻은 덕에 명계의 이상 현상의 원인을 알게 되었던 모양이오. [옛 종족]과의 거래가 있었다고 알고 있소.”
“그랬군.”
“토벌대의 두뇌가 제갈유룡이라면 총 책사는 바로 망량, 당신이오.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소.”
“…….”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펄럭이며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러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대기하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명계에 들렀다 옵시다.”
나는 뜻밖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명계에?]
“그렇소. 어쩌다 보니 당신의 영토를 2배로 늘린다는 보조목표가 생겨서 그걸 위해 제갈유룡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지만, 사실 원래 당신의 주목표는 바로 명계에 가서 명경을 얻는 것이오. 그렇지 않소이까?”
[그렇지.]
“안 그래도 토벌대의 목표 또한 명계를 멸망시키려는 [옛 지배자]를 막으려는 것. 우리가 미리 명계에 가서 명경을 찾아내어 회수하지 않는다면 자칫했다가는 명경이 실종되거나 소멸될 우려가 있소. 빠르게 회수할 필요가 있는 것이오. 거기에 비한다면 사실 제갈유룡을 만나는 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닌 것이지.”
[……!! 그 말대로요.]
역시 망량은 머리가 좋아서 상황을 명쾌하게 해결할 능력이 있었다. 내가 내심 감탄하자 망량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명계에 가려면 나름대로의 준비는 해야겠군.”
[어떤 준비가 필요하오?]
“우선은 이 콘스탄티노플의 영주인 베헤모스에게서 가호를 좀 받아야겠소. 내가 가진 천계의 보물을 몇 개 바치면 될 것이오. 그 정도 가호는 있어야 현재의 혼란스러운 명계에서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지. 그리고…….”
망량은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백웅. 당신 지금은 전륜성왕의 권능을 쓸 수 있소? 그게 가장 중요하오.”
[…….]
나는 말없이 신력을 끌어올려서 생사부를 소환해보려고 했다.
치지지직
하지만 생사부는 소환될 듯 말 듯 반투명하게나마 떠오르려다가 갑자기 픽 하고 연기가 꺼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보다시피 신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너무 미약해서 생사부 하나 구현할 수 없소. 아직은 전륜성왕의 권능을 못 쓰는 것 같소.]
“그렇군…… 전륜성왕의 권능이 있으면 무척 쉬울 것 같았는데,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는 수밖에.”
망량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롤랑에게 말했다.
“당신도 우리를 따라오시오. 명경 탐사에서 전력은 하나라도 많을수록 좋으니까.”
“알았소. 맡겨 두시오.”
“나는 베헤모스와 교섭해서 가호를 받아오겠소. 준비하시게.”
잠시 후 어디론가 사라졌던 망량이 웬 조그마한 물고기의 성상(聖像)을 들고 돌아왔다. 낡고 오래된 듯한 그 성상은 무척 볼품없는 골동품처럼 보였기에 나는 신기해서 말했다.
[그 조그마한 성상에 무척 강한 신력이 응축되어 있군.]
내 말에 망량이 눈에서 이채를 띄었다.
“그걸 바로 느낄 수 있단 말이오? 웬만한 술법사는 그 존재조차 느낄 수 없을 텐데…….”
[신력이라서 그런지 바로 알 수 있소.]
“당신 말대로요. 베헤모스가 준 이 성상은 만일에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대신 희생하여 우리를 도와주게 될 거요.”
[근데 명계를 가는데 이렇게까지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요? 예전엔 이렇게까지 대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토벌대가 괜히 명계를 구하려고 하는 게 아니오. 지금의 명계는 당신이 예전에 봤던 명계와 완전히 다른 마경(魔境)이 되었으니, 대라신선조차 자칫하면 즉시 소멸당할 수도 있소.”
[으음.]
“그럼 갑시다.”
츠아아아 - !!
잠시 후 망량이 손에 들고 있던 성상이 맑은 빛을 뿜어내었고 그 빛이 차원의 통로를 만들었다. 우리는 망량을 따라서 명계의 내부로 들어갔다.
쿠우우우…….
[……!! 저 구멍은?]
나는 도착하자마자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있는 무식하게 거대한 암흑의 무저갱을 발견하고는 기겁했다. 확실히 이런 건 예전에 명계에 왔을 때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망량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명계의 인과율이 불안정해지면서 차원의 구심점이 무너진 것이오. 그와 동시에 법칙이 붕괴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여 우주 바깥으로 튕겨내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생겼지.”
[저기에 들어가면 우주 바깥으로 간다 그 말이군.]
“그것도 그냥 우주가 아니지. 명계와 직결되어 있던 심우주(深宇宙)의 또 다른 무저갱…… 저곳에 들어가면 신이라 해도 살아나기 힘들 거요.”
심우주라 하면 예전에 복희조차도 놀라는 미지의 존재들이 거주하는 장소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망량의 말을 이해하고는 질문했다.
[그래서 명경은 어디 있소? 저 무저갱에 이미 빨려들어 갔으면 큰일 난 거 아닌가?]
“저 지평선 끝에 있는 건물이 보이시오?”
[저기는…….]
“본디 염라대왕과 그 측근들이 일하던 명계의 궁궐. 그러나 저 코앞까지 차원의 붕괴가 도달했으니 서둘러야만 하겠소.”
촤아악
“시해지술이여, 붕파(崩破)와 괴멸(壞滅)을 서지(徐止)하는 다리를 만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