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6권 6화
나는 롤랑에게 말했다.
[무(武)로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도 나는 지금 무공을 못 쓰는데.]
촤악!!
[…….]
내가 변명을 한 것과 동시에 롤랑의 검강이 내 목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봐도 단숨에 목을 벨 수 있었지만, 일부러 빗나가게 한 것이었기에 내가 힐끔 목 옆을 내려다보자, 롤랑이 말했다.
“무공을 못 쓰는 게 백웅이오? 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래서는 내심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동료들이 훨씬 많을 것이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억울했기에 항변했다.
[아니…… 그렇게 말해도 못 쓰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의념을 못 쓴다 그 말이오?”
[그래. 의념도 내공도 의념천주도 쓸 수 없어.]
내 말에 롤랑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핑계가 유구하군. 기계가 되어도 의념을 쓸 수 있어야 진짜 고수가 아니겠소?”
[고수인 게 문제가 아니고…….]
“자, 가겠소!”
파앗!!
그 순간 나는 롤랑의 자세가 일변하더니 색다른 기수식을 잡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자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풍신류(風神流)…….]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롤랑의 몸에서 진동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저것은 의념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 주위에 인위적인 진동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나는 풍신류가 어떤 식으로 진동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급히 마력을 돋우어서 그 공격을 피하려고 전력을 다했다.
퓨퓨퓽
다음 순간 열다섯 갈래나 되는 풍인(風刃)이 내가 있던 자리를 타격했다. 나는 그 모든 풍인을 널찍하게 피했기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땅바닥을 굴렀기에 크게 빈틈이 노출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내 빈틈을 놓치지 않고 롤랑은 추격하듯이 자신의 거검을 세게 부여잡고는 내 쪽으로 휘둘렀다.
쿠콰콰쾅!!
이번에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마력을 죄다 오레이칼코스의 팔에 모아서 마력장벽으로 상쇄했다. 마력이 강력한 덕분에 롤랑의 공격에서도 무난하게 일격을 버텨냈지만, 다음 순간 나는 내 손바닥에 커다란 검상(劍傷)이 새겨졌음을 알 수 있었다.
롤랑은 계속해서 나를 몰아칠 수 있음에도 잠시 공세를 멈추었다. 롤랑은 다시금 풍신류의 기수식을 잡으며 말했다.
“백웅. 내가 방금 무슨 기술을 썼는지 알아보겠소?”
나는 그다지 평정심을 쓰지 않고 대꾸했다.
[풍신류의 접도난무(蝶刀亂舞)와 풍신검형(風神劍形)이군. 접도십육난무가 가능한 걸 보니 도법을 검법으로 바꿔서 펼치는데도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어. 그런데 후자는 사신검형(四神劍形)일 텐데 그걸 진소청이 네게 가르쳐줬단 말인가?]
“……!!”
내가 한눈에 롤랑의 수법을 모조리 간파하자 롤랑은 크게 놀라서 잠시 얼이 빠졌다. 그러고는 불신 어린 기색으로 말했다.
“……정말 의념도 내공도 못 쓰는 거 맞소? 그렇게 정확하게 알아볼 줄이야.”
정확하게 알아볼 수밖에 없다. 나는 수련세계에서 백여 년 이상 미친 듯이 수련하면서 사대무류의 무공을 절차탁마했었고 고대 화신류 고수인 심수력과 함께 연마했다. 주로 수련했던 것은 사신지혼이었지만, 그 사신지혼을 배우는 도중에 내가 예전에 배웠던 풍신류의 기술들이 역시 자연스럽게 체득되고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침묵하자 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소청이 가르쳐준 게 맞소. 진소청에게 무예의 가르침을 청하자, 그는 내게 풍신류가 맞을 것이라 하며 풍신류를 사사했소.”
[사신검형은?]
“풍신류를 배우다가 깨달음이 막히자 진소청이 알려준 기술이오. 그게 사신검형이란 건 뒤에 알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든 잘 쓰고 있소이다.”
[…….]
나는 그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 진소청은…… 그 말대로라면 이미 풍신류도 극성으로 터득한 데다 내 전생 기억 속에 있던 사신검형마저 복원했다는 말인가?’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전생동료들에게 내 기억을 넘겨주었고 그 기억 속에는 풍신류의 기술을 배웠던 기억과 용중일의 절대지경인 사신검형을 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소청은 내 흑요석을 받지 않았다! 그냥 내 가르침을 받았을 뿐…… 진소청은 그냥 내 전생동료들에게서 전해 들은 것만으로 사신검형을 복원했단 말인가?!’
정녕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풍신류야 백련교주가 동료가 되었으니 풍신류 고수들에게도 배울 수도 있겠지만 사신검형은 그냥 상대만 해봤을 뿐 어떤 무공인지 제대로 익히지도 못했다.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2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복원해서 가볍게 롤랑에게 전수할 정도의 숙련도로 만들 수 있단 소리인가?!
도대체 현재의 진소청은 어떤 경지에 이르러 있는 거지?!
내가 충격 때문에 굳어 있자 롤랑이 말했다.
“진소청은 줄곧 당신을 보고 싶어 했소. 무언가 당신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더군.”
[…….]
진소청이 내게 얘기하고 싶은 게 뭘까.
틀림없이 무예에 관한 것이리라.
“하지만 의념도 못 쓰는 한심한 상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실망을 하겠소? 당신은 최소한 나 정도는 가볍게 쓰러뜨릴 정도로 강해야만 하는 거요.”
롤랑이 나에게 성검 듀란달을 겨누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저 정도에 평정심을 잃을 정도의 애송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도발이 상당하군. 그래서 의념도 못 쓰는 나를 상대로 무술자랑을 계속 하겠단 소리인가?]
“그래야만 한다면…….”
[흠.]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가겠소.”
스스스스……!!
롤랑의 전신에서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투기(鬪氣)가 새어 나왔다. 롤랑의 눈에서 투기를 가득 담은 안광이 흐르며 그의 검이 움직였다. 그리고 풍신류 도법을 검법으로 바꾼 어색함마저 감추어지는 검무(劍舞)가 시작되었고, 그 하나하나의 검리(劍理)가 그가 여태껏 수련을 얼마나 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느릿하게 검무를 시전하고 있던 롤랑이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의념을 못 쓴다니 뒷말 못 하도록 미리 내 절대지경의 이치를 알려주겠소. 나는 이 경지를 풍운단혼(風雲斷魂)이라 하여, 검무 속에서 단 하나의 실검(實劍)으로 적을 베어 버릴 것이오.”
[풍운단혼이라.]
“받아보시오!”
쐐애애액
다음 순간 나는 롤랑의 검무가 만들어내는 검운(劍雲)에 휘말렸다. 나는 그 검운의 소용돌이에 들어온 순간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검기(劍氣)가 폭풍처럼 휘몰아침을 알 수 있었다.
티티팅
마력으로 방어막을 친 덕분에 검기만으로 몸이 난도질당하지는 않았지만, 강호의 웬만한 고수들은 이 전조증상만으로도 빈사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진짜 문제는 절대지경 풍운단혼의 기예가 극점에 이르게 되면 이 휘몰아치는 검운 속에서 단 하나의 진짜 공격이 날아와서 엄청난 위력의 일격을 가할 텐데, 아마 내 경험상 그 일격은 웬만한 절대지경의 집중력을 넘어설 게 분명하다.
‘풍운단혼의 극점을 막거나 피해내려면 나 또한 의념천주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감지할 수 없어. 하지만…….’
나는 지금 절대지경의 능력을 쓰기는커녕 의념도 내공도 쓸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절대지경의 기술을 막아내다니, 무술 초짜가 공수입백인으로 달인의 공격을 막아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생각할수록 롤랑의 무예에 대적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기랄…… 정말 내가 의념을 왜 못 쓰는 거지?!’
500년 후의 대웅제국에 생존해 있던 안드로이드 신승은 분명히 의념을 쓸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의념천주는 쓸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멀쩡히 의념을 실은 무공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신승과는 달리 티끌만 한 무공도 쓸 수 없고 외력에만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마력과 팔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과연 그게 정말로 내가 바라는 승리일까?
롤랑도 악의가 있어서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그는 현재 진소청의 제자뻘로서 내 앞에 서 있었고 내게 무(武)의 자격을 증명하기를 원한다. 그 증명이란 바로 한 가지를 상징했다.
내가 지금의 진소청 앞에 설 자격이 있는지를!
뿌드득
나는 억울해서 이를 갈았다.
‘제길!! 사신지혼(四神之魂)을 고되게 수련했던 그 시간이 모조리 쓸데없었단 말이냐? 내가 얼마나 많은 심마에 부딪히고 얼마나 벽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막상 원래 세계에 돌아오니 의념기 하나 쓰지 못해서 빌빌대는 꼴이라니!!’
…… 잠깐, 사신지혼?
나는 지금 사신지혼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백련교 뇌수화풍의 본질은 오행에 속박당하지 않아. 설령 세계를 이루는 오행의 법칙이 끊기더라도 여전히 작동할 수 있는 힘일세. 그게 가능한 건 바로 ‘그릇’을 통째로 움직이기 때문이고, 그걸 움직이는 방법을 호월은 사신지혼이라고 칭했네.]
심수력의 말이 기억난다. 그와 동시에 찰나 간에 내가 사신지혼을 수련했던 기억이 흘러갔다.
‘그릇…… 사신지혼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혼(魂)의 그릇이다.’
혼의 그릇을 옮겨 다니는 과정이 바로 사신지혼에서 뇌신지혼, 풍신지혼, 화신지혼, 수신지혼을 옮겨 다니며 변환하는 과정이었으며 이 변환 자체가 거대한 힘을 파생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게 있다.
과연 나는 지금 사신지혼을 그토록 수련하면서 얻었던 혼의 ‘그릇’이 뒤바뀐 상태인 것인가?
‘그릇’은 지금 어떤 상태인 걸까?
‘…… 신무(神武)를 받아들일 힘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사신지혼의 수련. 만일에 내가 세계를 넘은 것만으로 그 그릇이 사라지는 거라고 가정하면…….’
다음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아냐……!! 그런 가정은 있을 수 없다!!’
절대지경(絶對之境)
풍운단혼(風雲斷魂)
절기(絶技)
단혼일검(斷魂一劍)
쿠콰콰쾅!!
풍운단운 최후의 절초인 실검(實劍)이 수천 조각이 넘는 검기 속에서 소리소문없이 날아와서 내 급소를 찔러왔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사방은 먼지구름이 휘날려서 눈앞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롤랑은 먼지구름이 사라졌을 때 드러난 내 모습을 보고는 경악했다.
“……!!”
확실히 막아냈다.
빠지직…… 빠지직……!!
철인의 몸 내부에 있는 회로가 뒤틀리며 전기충격을 흘리고 있었으며 형태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오레이칼코스로 만들어지지 않은 평범한 강철 팔을 이용해서 롤랑의 일격을 막아내었고, 롤랑의 검은 내 팔의 정중앙을 관통하여 꽂혀 있었고 빠지지 않았다.
보기 좋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히 롤랑의 절대지경을 막아낸 것이다!
롤랑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약간 당황했다.
“정말…… 의념을 못 쓰는 상태인 건가? 마지막까지 살펴보았지만, 당신은 의념은 커녕 의념천주도 발동하지 않았소!”
[…….]
“하지만…… 마지막에 어떻게 단혼일검의 궤적을 정확하게 알아맞힌 거지? 의념을 못 쓰는데도 그게 가능하단 거요?!”
나는 롤랑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바로 대꾸하기에는 롤랑의 일격에 상당한 피해를 입어서 몸의 내부가 살짝 망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롤랑의 일격은 틀림없이 절대지경의 반열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걸 의념으로 제대로 받아내지도 않았는데도 겨우 이 정도 피해로 끝난 게 기적이다.
나는 천천히 내 손바닥에 꽂혀 있는 롤랑의 검을 뽑아내며 말했다.
[풍운단혼의 경지도 진소청이 네게 가르쳐준 거냐?]
롤랑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아니오. 풍신류와 사신검형을 전수받고 난 후 내 독자적인 수련으로 도달한 경지요. 이게 나와 가장 잘 맞는 절대지경이라 생각해서.”
[틀려먹었어.]
“뭐라고?”
롤랑이 눈썹을 꿈틀거리자 나는 롤랑의 듀란달을 완전히 뽑아내어 손에 들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내 자세는 방금 전 롤랑이 펼쳤던 풍운단혼의 직전 기수식과 완전히 동일했다.
나는 기수식을 잡은 채 말했다.
[너는 타고난 생명력과 괴력으로 정면에서 밀어붙이는 전사였다. 이런 식으로 환(幻)을 추구하면 장점을 전혀 살릴 수가 없어. 끝까지 강검(鋼劍)의 극한으로 갔어야 더 강해졌을 텐데 동방무예의 신묘함 때문에 눈앞이 흐려졌던 것인가?]
“…….”
[진소청은 네게 부족한 속도와 정밀성을 풍신류와 사신검형으로 보완하여 단점이 없는 경지를 추구하라 한 거겠지만 가야 할 길을 잘못 해석했군. 20년의 세월이 아깝다.]
내 말에 롤랑은 화가 난듯 외쳤다.
“의념도 못 쓰는 주제에 내게 감히 훈수를 두는 것이오?”
[조용히 해봐.]
“뭐라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뭔가 들리지 않나.]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아까부터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흐름]이 들린다.
본디 절대지경의 공격은 의념의 육감으로 감지하여 사전에 차단하는 느낌이지만 방금 전 내가 롤랑의 공격을 막은 것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흐름 그 자체가 내게 자연스러운 길을 속삭이는 것 같았고, 나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른 것뿐이다. 일종의 도박이었지만 그 흐름을 따르는 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내게 들려오는 이 [흐름]이란 무엇인가?
그때 나는 머릿속에 과거 아수라에게서 들었던 말이 기억났다.
[잘 들어. [흐름]이야. 다섯 개나 되는 의념이 보조를 맞춰서 하나의 흐름에 섞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생기는 인위적인 흐름. 만일 상대가 그 하나의 흐름을 파악해서 이음새를 베어 버릴 수 있다면.]
[적멸무극은 완전히 무력해진다.]
나는 이미 그 아수라의 가르침을 신역의 고수 공손대랑과의 대결에서 체현한 바가 있다. 그때 나는 [흐름]을 읽어서 공손대랑의 한 수를 받아넘겼고, 공손대랑에게 신역의 초입에 도달했다는 칭찬을 받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감각은 그때와도 다르다.
‘읽는 것’이 아니다. 그냥 ‘들려 온다’.
왜 그때는 억지로 읽어낸 것이고 지금은 들려온 것일까?
…….
설마…… 이것이 암야(暗夜)에 이르는 길인가?
“크아아아!!”
롤랑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금 풍운단혼의 강검을 내려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의 가능성을 너무 쓸데없는 환검의 영역에 낭비했고 강검의 수준이 결코 다른 절대지경의 고수에게 위협적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롤랑의 공격의 낌새나 궤적을 읽지 못하는데도 전혀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다.
의념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내공도 쓸 수 없다.
의념천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마력을 가득 머금은 팔을 내질렀다.
뇌신류(雷神流)
정권(正拳)
꽈앙!!
굉음과 함께 피 분수가 치솟아 올랐고 롤랑의 가슴팍을 내 주먹이 관통하고 있었다. 롤랑이 쇄도해온 순간 정확하게 반격을 먹였기 때문이었다. 롤랑은 본디 인간이라면 죽었어야 정상인 중상을 입고도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또…… 의념을…… 쓰지않…….”
[…….]
“하지만…… 가까워진 순간…… 마치 내 속도를 이용하듯이…… 어떻게…… “
풀썩
롤랑은 내가 주먹을 빼내자 그대로 기절했다. 즉사할 상처를 입고도 기절에 그치는 것은 그가 신의 사도로써 가공할 생명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나는 안 봐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쓰러진 롤랑을 보며 중얼거렸다.
[백련교의 만종(萬宗)이 추구한 신무(神武)라는 게 정말 존재한다면 내가 단련한 그릇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다.]
그래.
무신이란 놈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깨달았다.
[…….]
머리 위를 올려다본다.
빛의 기둥 대신에 새까만 어둠이 보인다.
의념도 의념천주도 쓸 수 없는 지금의 상태 - 그러나 그렇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것이 바로 암야(暗夜)의 의미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