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15화 (1,514/1,615)

전생검신 86권 3화

나는 망량에게 말했다.

[이만 돌아갑시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곳을 뚫을 수 없을 것 같으니.]

“…….”

내 말에 망량은 빤히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여유가 느껴지는구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겠지?”

나는 씩 웃었다.

[눈치챘소?]

“후…… 확실히 이곳은 얘기하기에 적절한 곳은 아닐 거요. 그럼 중원에 복귀하기 전에 세이메이를 만나보고 갑시다.”

[세이메이를?]

“그는 이전부터 당신이 귀환하면 스사노오 공략의 단서를 전하겠다 했소. 미리 들어두어서 나쁠 건 없을 거요.”

[알았소.]

파앗!

나는 망량의 술법을 따라 음양사 일족의 마을로 갔다. 거대한 나무 안에 살고 있던 세이메이는 예전과 같은 미동(美童)의 모습이었고, 망량과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망량. 심상치 않은 손님을 데려왔군.”

“어떤 점에서 심상치 않소?”

마치 시험하는 듯한 망량의 질문에 세이메이는 나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주력(呪力)을 사용하는 자…… 이 힘은 마치 제갈사가 쓰던 사법과 닮아있군. 그자도 배화교의 문하인가?”

세이메이의 말에 망량은 탄복한 듯 말했다.

“허어! 과연 동영 최고의 대음양사군. 한눈에 현재 백웅의 힘을 알아보다니.”

“……?! 배, 백웅이라고?”

깜짝 놀라는 세이메이에게 망량이 말했다.

“그렇소. 백웅의 혼이 이 세계로 되돌아온 것이오.”

[오랜만이다.]

나는 세이메이에게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세이메이는 차분하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놀라운 일이군…… 그 말대로라면 백웅 너는 이미 신이나 다름없군.”

[신이라…….]

나는 그 순간 문득 이세계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 아베노 세이메이. 혹시 너는 환인계획(桓因計劃)이란 걸 들어봤나?]

내 질문에 세이메이는 물론이고 망량의 시선도 내게로 향했다. 둘의 표정은 들어본 적 없다는 걸 여실히 표현하고 있었다. 세이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 듣는군. 환인이라는 게 한반도 전통의 신(神)이라는 건 알고 있네만 환인계획은 또 뭐지?”

[나는 탁록의 과거시대로 가기 전에 외우주로 갔었어. 거기서 인류의 또 다른 미래를 보았는데…… 거기서 이혼이라는 자가 신단수(神檀樹)를 이용해서 인류의 수호자가 될 환인이라는 존재를 소환하겠다고 하더군.]

“…….”

[나일라토프라는 초월적 과학자가 [신의 그릇]을 만들어주면 그걸 이용해서 인류를 위한 기신(機神), 환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기신에 대해서는 세이메이 너보다 잘 아는 자가 없을 거 같은데 그런 계획이 실제로 가능한 건가?]

외우주 때부터 품고 있던 내 의문. 그리고 이 환인계획이란 건 아마 십이율주의 진짜 음모와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기에 나는 기신제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세이메이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세이메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야 원. 진짜 백웅인지 시험을 해볼 셈이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겠군. 이런 기오막측한 이야기를 전생자 백웅 외에 누가 만들 수 있을까.”

[난 진짜 백웅 맞아.]

“후후…… 좀 더 자세히 전후 사정을 들어봐야 유추할 수 있을 것 같군. 외우주에 갔을 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 해주지 않겠나?”

[알았어.]

내가 한참 동안 자세히 그때의 일을 설명하자, 세이메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이 시대의 십이율주는 이미 신단수 내에 [신의 그릇]을 제작해 놓았거나 제작 중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도 그렇소.”

망량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십이율주가 그 미래시대에서 현시대의 과거로 온 존재라면 환인계획을 마땅히 이어받았을 터. 그리고 신의 그릇을 나일라토프의 도움으로 만들 수가 없다면 자력으로 따로 제작할 것이오. 십이율주가 수천 년 전부터 살아온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완성도 있게 신의 그릇을 제작했겠지.”

나는 그의 말을 듣고는 대꾸했다.

[근데 이상하군. 사실 수십 번 전생하면서 신단수에도 꽤나 내 집처럼 드나들었거든. 신단수 정상까지도 가봤는데 그 비슷한 것도 보지 못했잖아. 신단수를 폭발시킨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신의 그릇은커녕 비슷한 것도 없었어. 대체 놈은 그걸 어디 숨겨놓은 거지?]

“…….”

세이메이는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백웅. 전에 네 기억을 보았을 때 좀 수상한 순간이 있긴 했다.”

[수상한 순간?]

세이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웅 너의 전생 도중에 극호가 명룡자, 청월과 함께 신단수의 정상에 갔던 기억이 있지. 그때 극호가 뭔가를 발견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고 세이메이가 말을 이었다.

“망량을 통해 명경으로 간접적으로 전해 받은 기억이라 잘 살피지 못했나 보군. 아무튼 그 기억을 보면 신단수의 정상에는 사람 몸뚱이보다 스무 배는 거대해 보이는 거대한 뭔가가 있었다.”

[아……!! 맞다!]

“그 당시 극호, 명룡자, 청월은 무공밖에 모르는 무인들이라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지. 하지만 지금 네가 말해준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건 미래시대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고도의 인공구조물이다.”

[설마…….]

“아마 신단수의 정상에 있는 그 구조물이 [신의 그릇]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잠깐. 그렇다고 치면 그 전생에서 신단수가 폭발할 때 구조물도 같이 파괴된 거 아닌가? 그러면 [신의 그릇]도 같이 부숴졌다는 소리인데.]

“그 당시 십이율주는 너희가 배신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짐작하고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오월동주를 하는 판에 자신의 중요한 연구자료를 적들과 동거하는 신단수에 계속 놔두었겠나? 신단수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중요한 걸 외부로 빼돌렸을 것이다.”

[으음.]

“달리 말하자면 이건 재밌는 얘기지.”

세이메이는 씩 웃었다.

“십이율주가 경계를 덜 하고 있을 때 기습적으로 신단수의 정상에 올라가는 게 가능하다면, 그자가 만들어놓은 환인계획의 [신의 그릇]을 탈취하는 게 가능하단 뜻이다.”

[……!!]

“이번 생에서도 신단수의 정상에 가볼 필요는 있다. 십이율주가 갑자기 실종된 게 사실이라면 그자는 [신의 그릇]을 미처 처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놔두었을 확률도 높으니.”

[그렇군…… 그럼 나중에 신단수의 정상에 가봐야겠다.]

뜻밖의 소득!

나는 내심 횡재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기뻐졌다. 내가 기뻐하는 기색을 잠자코 보고 있던 세이메이가 말했다.

“신기하군. 사별삼일이면 괄목상대라지만 백웅 네가 이토록 머리를 잘 굴리는 편이었나?”

[뭐? 난 원래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고. 설마 내가 가짜라고 의심하는 거냐.]

내가 역정을 내자 세이메이가 피식 웃었다.

“칭찬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번 생에서 너는 꽤 많이 성장한 것 같군.”

[칭찬할 거면 좀 솔직하게 칭찬하라고…….]

“내가 혼네(本音)를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하…….”

보기 드물게 청량하게 웃던 세이메이가 말했다.

“자, 그럼 보조목표가 생긴 김에 네게 스사노오를 공략하는 법도 전해 주지. 그걸 듣기 위해서 온 걸 테니까.”

[세이메이. 굳이 내가 귀환해야만 전해준다고 한 이유가 있나? 다른 동료들도 강하니까 그냥 다른 자들에게 전수해줘도 되는 거였잖아.]

“네 전생동료들 사이에 큰 파벌의 대항의식이 생겼던 걸 감안해라. 섣불리 공략법을 전해줬다가 누가 못된 마음을 먹고 악용하면 결과적으로 네게 더 해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

음…… 그런 이유였군…….

생각보다 동료들 사이의 균열은 골치아픈 문제였던 것 같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 세이메이가 말했다.

“스사노오가 실종될 때 사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었다.”

[뭐! 어떤 식으로 실종되었는지 봤단 말이냐?]

세이메이는 고개를 끄덕일 때 말했다.

“스사노오가 있던 교토의 황궁 근처에 세 명의 신적 존재들을 상징하는 문양이 출현했지. 그 문양이 신력을 뿜어내어 결계를 만들었고, 그 안에 있던 스사노오가 한동안 그들에게 저항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계 안이 광세적인 어둠에 물들었고 스사노오는 그대로 실종되었다.”

[……!!]

“그 신적 존재들의 정체는 모른다. 생전 처음 보는 문양이었지. 하지만 하나하나가 무척 강력한 존재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가…….]

“그리고 스사노오가 타락한 악신이 되어 잠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나는 그자가 달(月)의 마력을 무척 팽배하게 머금고 있어서 그의 약점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지.”

[약점이 뭔데?]

“바로 해(日)의 속성이다.”

세이메이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사노오는 지금 자신의 것이 아닌 달의 마력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속성적으로 약점을 갖고 있다. 반대속성인 해의 속성으로 그를 공격하면 평상시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음! 해의 속성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데?]

“…….”

세이메이가 잠시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까 칭찬했던 게 민망해지는군…… 네가 전생마다 내게 찾아와서 내게서 가져가려 했던 힘이 무엇이냐?”

[아!!]

“눈치챘나 보군.”

삼귀자이며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힘!

아마테라스의 신력이나 주문을 사용하면 스사노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마테라스의 힘은 내가 심심하면 쓰던 것이었기에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게 바보 같은 일이었다. 내가 민망해서 강철 몸의 민머리를 긁적이자 옆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세이메이. 무척 좋은 공략이오.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저 백해(白海)를 둘러싼 마력은 사실 스사노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엥? 무슨 소리야?

내가 의아해서 망량을 쳐다보자 세이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사실 그것도 너희에게 바로 공략을 알려주지는 않은 이유지.”

[세이메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스사노오를 바깥에서 보호하고 있는 백해의 결계의 소유주는 스사노오가 아니다. 다른 신격이 따로 펼친 결계이지. 그것도 그 힘의 성격을 파악할 수가 없으니, 섣불리 스사노오의 약점만을 생각하고 진입하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뭐? 그게 스사노오의 것이 아니면 누구 건데?]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지.”

이어진 세이메이의 말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어쩌면 백해의 결계를 펼친 존재는 스사노오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

“스사노오의 타락과 납치도 자의가 아니었을 확률이 높은걸 감안 하면, 우리가 백해에 진입하는 건 터무니없는 전투가 될지도 몰라.”

[으음…… 그런가…….]

생각보다 더 빡센 도전이었잖아?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세이메이가 내게 뭔가가 담겨 있는 커다란 함을 내밀었다.

“이걸 가져가라, 백웅.”

[이건…….]

나는 함을 열어보고는 중얼거렸다.

[가짜 삼신기잖아.]

“그렇다.”

[이런 쓰레기를 왜 나한테 줘?]

그렇다. 함에 들어있는 건 그동안 동영 천황가가 월요 삼신기를 본떠서 정교하게 만든 가짜 삼신기!

당연한 말이지만 진짜 칠요도 다루었던 내게 있어서 이런 가짜 삼신기 따위는 거의 필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세이메이를 쳐다보자 세이메이가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지금 이 세상에 칠요는 없는 거다. 안 그런가? 네가 목갑에 칠요를 죄다 소유하고 있다가 갑자기 이세계에 넘어갔고 수련세계에서 상인의 권능을 상승시킨다고 죄다 팔아 버렸으니까.”

[컥…… 으, 그게…….]

“덕분에 이 세계에 남아 있던 동료들은 칠요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알아서 대비해야 했지…….”

그렇게 되네?!

내가 양심에 찔려서 컥컥대자 세이메이가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칠요가 소멸된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데도 삼황오제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이 세계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우리들은 다들 그 이유를 이상하게 생각했었지.”

[어…… 그렇네…….]

왜 그런 거지?

내가 의아해하자 세이메이의 말이 이어졌다.

“네 설명을 듣고 보니 이제 그럴듯한 가설이 세워졌다.”

[뭔데?]

“네가 외우주로 가고 [큰 굴레]의 과거로 갔던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너, 백웅의 존재와 그 소유물은 소멸된 걸로 치지 않았던 거다. 여전히 너는 이 세상의 인과(因果)에 귀속되어 있다고 보고 있기에 신격들에게 인과율의 부재로 인한 혼란이 전달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

뭔 소리야?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망량이 옆에서 말했다.

“쉽게 말해서 백웅, 당신이 허공록에 칠요를 돈으로 환산해서 바쳤던 그 행위로 인해 칠요가 소멸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단 말이오. 세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요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판정하고 있소.”

[어?! 그, 그게 되나? 말도 안 돼!]

“말이 되오.”

내가 깜짝 놀라자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연기(緣起). [큰 굴레]는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연기이며 [과정]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오. 당신이 앞으로 칠요를 다시 제작할 가능성이 있는 한 섣불리 소멸로 판정하지 않는 것이지.”

[응?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음…… 이것도 어렵게 느끼는 건가. 더 쉽게 설명하겠소.”

망량의 이어진 말에 나는 상황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인과율에 따르면 당신은 언젠가 [상업의 권능]으로 칠요를 다시 제작하게 될 거라는 말이오. 세계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동시에 [상업의 권능]에 칠요가 녹아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아……!!]

“말도 안 되는 것 같소?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걸로 따지면 당신이 이 세계에 귀환한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지. 현재로서는 이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오.”

[만일에 내가 상업의 권능으로 칠요를 안 만들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것은 [결과]요. 연기가 상징하는 [과정]의 영역이 아니지.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모든 결과는 불확정성(不確定性)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오. 어쩌면 그게 전생자의 특권일수도 있고.”

[……?]

“후후. 당신도 언젠가 스승님께 배워보면 좋겠구려. 아직도 인과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씁쓸하게 웃던 망량이 입을 열었다.

“세이메이. 당신이 이 가짜 삼신기를 준 것은 의도가 명확하구려. 그렇지 않소?”

“당연히 의도는 명확하지.”

망량과 세이메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 시선을 받자마자 그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앞으로 상업의 권능으로 칠요를 제작해야겠군. 이 가짜 삼신기는 그 견본품이고.]

“바로 그것이오. 바로 당신이 칠요를 세상에 부활시키는 거요.”

망량의 눈이 빛났다.

“그것도…… 만들기에 따라서는 옛 칠요보다 더 강력한 신(新) 칠요(七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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