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18화
망량은 언뜻 과거와 비교해 변한 점이 없어 보였다. 물경 2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는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외모였고, 그 말은 그가 전혀 노화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당연히 구천현녀의 수제자이자 천사가 되었으니 노화에서는 자유로울 것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낯섦을 느꼈다.
‘어쩐지 그는 인간과 많이 멀어져 버린 것 같다.’
단순한 존재나 종족의 변화가 아닌 거리감이 느껴진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낯선 기분이 들까?
‘……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적과 싸우는 일이 너무 많았어. 괜한 생각이야.’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털었다. 망량에게서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고 내 직감이 괜히 날이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전투만 반복했으니 마주치는 모든 것을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게 아닐까?
내가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망량이 입을 열었다.
“백웅. 내가 어째서 이곳으로 당신을 부른 건지 궁금할 것이오.”
[그렇소. 사실 그 자리에 당신이 있었다면 동료들과 한 번에 일을 의논했을 텐데.]
게다가 이곳은 하필 낙양 근교라서 아직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백련교주와 준비없이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망량이 그걸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도 여기로 우리를 부른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당신과 일대일로 만나서 하고싶은 얘기가 있었소. 그걸 위해서 일부러 다른 자들이 개입하지 못하게 했소.”
[…….]
나는 자욱한 운무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지만 역시 이 오리무중의 연무(煙霧)는 망량이 의도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동시에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망량에게 말했다.
[다른 동료 앞에서 하지 못할 얘기라도 있소?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해 보시오.]
“후우, 허심탄회라…….”
왠지 쓴웃음을 짓던 망량이 말했다.
“백웅.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게 있소.”
[말하시오.]
“지금 전생동료들의 결속은 그리 단단하지 않소. 원래부터 서로 큰 연관 없는 삶을 살던 자들이 당신이라는 구심점을 바탕으로 모였지만 사실 본디 평생을 가도 만나기 힘들었던 인연. 일례로 백련교주와 미호 같은 경우는 수백 년을 지나도 만나지 않았을 자들이오. 그래서 다들 생각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많은 대립이 있소. 낙양과 남경의 대립은 그중 하나일 뿐이오.”
[…… 으음.]
“그렇게 대립이 심하기에 내 말이 다른 자들에게 어찌 해석될지 알 수가 없소. 괜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당신을 따로 불러서 말하고싶은 것이지.”
[대체 무슨 말을 하고싶길래 그러시오?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렇게까지 관용이 없는 동료들은 아닐텐데.]
내 반문에 망량이 충격적인 말을 했다.
“백웅. 나는…… 스승님의 힘을 빌려서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었소.”
[……?!]
“적어도 당신이 귀환하기 전까지는 말이오.”
뭐, 뭐라고?!
난데없는 한마디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도저히 망량의 입에서 나온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대의(大義)를 선호하는 게 바로 망량이 아니었던가!
나 또한 그런 망량의 이상에 감화되어서 그동안 전생하면서 딴 길로 새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망량의 한마디는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 망량이 세계멸망을 계획하고 있었다니!
하지만 이윽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믿기지 않는군. 왜 그런 생각을 했소? 적어도 내가 귀환한 후 지금까지 보았던 인간계는 그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건만.]
“음, 그 말대로요. 당신 덕분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류가 쉽게 생존했지.”
망량은 그렇게 대꾸한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허나 우리는 이 재앙의 원흉인 월신 츠쿠요미를 척살하기는커녕 그 흔적조차 찾지 못했소. 게다가 천상의 신들조차 인류의 생존을 어쩐지 마뜩잖아하는 기색이 되었지. 이대로 가면 최악의 방식으로 고통받으며 인류가 멸망할 테니, 차라리 그 전에 내 손으로 인류를 수습하려 했소.”
[수습이라면 어떤 식으로 말이오?]
“예전의 사제 같은 방식이오. 당신이 28회차의 막바지에 꿈의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사제가 모든 인류를 환몽의 세계로 집어넣었지.”
[아……!!]
그랬었다. 28회차에서 망량의 사제인 천우진이 세계멸망을 피할 수 없자 그가 가진 꿈의 권능으로 모든 인간을 꿈의 세계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내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탄성을 흘리자 망량이 말했다.
“꿈의 세계에 인류를 봉인한 후에는 스승님의 도움으로 숨어 살며 당신이 되돌아올 때까지 버티려 했소. 인류 전체를 살리는 건 너무 힘드니 차라리 그게 쉽다고 생각했지.”
[…… 그거 말인데, 궁금한 게 있소.]
“무엇이오?”
[한 번 꿈의 세계에 인류를 봉인할 경우 다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오? 그렇다면야 별 상관없는 건데…….]
그러자 망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가능하오. [꿈]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는 건 아주 특별한 존재이거나 꿈의 권능을 다룰 수 있는 망량선사의 사도뿐. 일개 인간 따위는 한 번 꿈의 세계에 들어갈 경우 두 번 다시 현실로 빠져나올 수 없소.”
[으음.]
“이렇듯 최후의 수단이기에 인류에게 고통은 없음에도 인류를 멸망시킨다 표현한 거요. 내가 이런 생각을 품었다는 게 동료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져서 좋을 건 없으리라 생각했소.”
[그래서 나만 불러서 따로 얘기한 거군.]
“그렇소. 당신한테만은 속일 수가 없으니까.”
[…….]
세상에 망량이 꿈의 세계에 인간을 봉인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어찌 보면 망량다운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대의를 추구하며 인간의 생명을 중하게 여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고통을 피하는 방식을 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 지배자]에게 학대당하는 결말이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었기에 망량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잠시 심사숙고하다가 망량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게 그 이야기를 했다는 건 이제 그 생각을 접었다는 거겠지?]
“반반이오.”
[반반이라니…….]
망량이 약간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아직 당신이 이세계에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경과로 귀환한 건지 듣지 못했소. 그리고 당신조차도 이 세계를 구원할 방법이 없다면,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오. 차라리 당신에게 짐이 되는 인간종족을 봉인하고 따로 전생동료끼리만 신들과 싸우는 게 훨씬 신경 쓸 게 적을 수도 있겠지.”
[으음!]
“그러니 백웅,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지금 흑요석을 쓰지 못함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건 어떻게 알고 있소?]
“남경성에는 내 이목이 되는 술법이 많이 깔려 있으니 말이오.”
[알았소. 좀 길 텐데 앉아서 얘기할 수 있겠소?]
“물론.”
이윽고 망량의 술수로 탁상과 의자가 만들어졌고 나는 거기에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귀환하고서 제갈사이래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망량은 문득 술법으로 술병을 소환해서 술잔을 따랐다. 술잔이 반 정도 채워지자 그는 내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죽엽청이오. 한 잔 드시오.”
[나는 기계의 몸이오만.]
“철인 또한 인간을 흉내 내어 만들어진 만큼 인공위장이 만들어져 있소. 마시는 건 문제없을 거요.”
망량의 말대로였다. 한 잔을 들이켜자 마치 인간 때처럼 술을 마시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기계라서 전혀 취하지는 않았다.
‘죽엽청이라…….’
아주 예전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죽음을 앞두고 망량이 건네주는 죽엽청을 마셨던 것 같다.
내가 술을 마시자 망량이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희망이 보이는구려.”
[그럼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취소할 생각이오?]
망량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인간을 구원할 방법이 있으니 취소할 거요. 하지만 당신의 각오가 필요하오.”
[내 각오?]
망량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뜻밖의 한마디를 했다.
“백웅. 신(神)이 되어줄 수 있겠소?”
……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아까 인류멸망 얘기보다 더 황당해져서 눈을 크게 뜨고는 말했다.
[어…… 그러니까 빨리 신력을 되찾으라는 소리요?]
“아니오. 물론 그것도 해야 하겠지만…… 내 말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요. 인간의 신(神)이 되어줄 수 있겠냐는 말이오.”
[……!!]
“앞으로 당신의 행보는 그게 전제가 되어야 하오. 그렇지 않다면 뿔뿔이 흩어진 전생동료들을 규합할 수도 없고 신들과 맞서 싸울 수도 없소.”
나는 망량이 헛소리를 하나 생각했다.
사람보고 신이 되라고 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여태껏 신력을 휘두르고 다니긴 했지만 그건 신으로서 권위를 행사했다기보다는 그저 쓸 만한 힘이 생겼다는 느낌이었다. 나 스스로가 신이 된다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망량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나더러 부처나 [옛 지배자]처럼 숭배를 받는 존재가 되라 그 말이오?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 현인신(現人神)으로 추앙받으면서?]
망량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렇소. 대웅제국의 황제도 해보았으니 못할 것도 없잖소?”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신은 좀 다르지. 황제야 기나긴 중원역사 속에서 수만 명 이상이 자신을 황제로 자칭했잖소? 나도 그걸 아니까 황제 놀이 같은 건 가볍게 했었지. 하지만 신이 된다는 건 스스로를 부처와 같은 반열에 놓는다는 건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내가 못내 찝찝해서 당황해하자 망량은 진중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를 너무 낮게 생각하는구려. 내가 볼 때 당신은 자격이 차고 넘치는 자요.”
[무슨…….]
“당신은 전생자로서 전 우주를 아우르는 외신이나 [옛 지배자]를 상대로도 대등하게 겨루는 자요. 심지어 그들의 음모를 분쇄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봉인했지. 게다가 지금 인류가 생존해 있는 건 어디까지나 당신이 전생자로서 쌓아온 능력과 지식을 인간에게 베풀었기 때문이오. 당신이 아니었다면 월신 츠쿠요미의 재앙은커녕 그 전에 요괴들이 준동한 것만으로도 대명제국은 가볍게 멸망했을 것이오. 심지어 지금은 토벌대가 마왕이나 사도를 때려잡고 있는데, 당신이 없었다면 토벌대는커녕 진소청이라 해도 지나가는 대요괴한테 소리소문없이 사망했을 거요.”
[…….]
“심지어 당신 말대로라면 탁록의 시대에 만신(萬神)들을 상대로 압도하며 그 시대를 주름잡은 존재가 되지 않았소? 그 시대의 하급신조차 현세에서는 두렵기 짝이 없는 존재일진대, 당신은 그런 자들을 패대기치며 고대제국마저 보호했소.”
열변을 토하던 망량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백웅 당신은 인간의 신이 될 만한 자요. 아니, 당신 외에는 그럴 수 있는 자가 없소!”
[…….]
“제갈사도 그 사실을 아니까 당신을 [섬김받는 자]라고 표현한 것이오. 그 또한 나와 마찬가지와 마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오.”
섬김받는 자……!!
나는 그 말을 듣자 왠지 모를 뿌듯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신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으면서도 불안하다.
정말 신이 되어도 되는 걸까?
전생자의 직감에 의지해보려 해도 시원치 않다. 내 직감은 명확하게 이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지 않았다.
즉…… 이건 온전히 나만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리라.
[…….]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망량에게 말했다.
[모르겠소.]
내 대답에 망량은 당황한 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모르겠단 말이오? 굳이 내가 말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이 가진 능력이 인간보다는 아득히 신에 가깝다는 걸 실감하고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이오.]
“……?”
[어쩐지 이 선택은…….]
낯익다.
나는 그 말을 애써 목구멍으로 삼켰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되지 않는 직감이었기 때문이다. 낯익기 때문에 섣불리 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데, 이런 소리를 망량이 어찌 이해해 주겠는가?
내면에서 갑작스럽게 한마디의 말이 심상을 어지럽혔다.
시 작 과 끝 이 그 대 에 게 있 거 늘
[…….]
왜 그 한마디가 생각나는 거지?
나는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대신에 말을 돌리며 말했다.
[아무튼…… 난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오. 제갈사도 아직 깨어나지 않았으니 그와도 의논해보고 싶소.]
“그렇다면 제갈사와 이야기해서 결론이 난다면 신이 될 생각이 있다는 말이오?”
[물론이오. 제갈사까지 찬성한다면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소.]
“후후후. 다른 자들은 신이 될 수 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하며 거침없이 천하지존의 직위를 누릴 터인데…… 당신은 정말 특이한 자요. 하긴 황제의 자리조차 당신에게는 그저 이색적인 경험일 뿐이었으니…….”
왠지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은 망량이 자신도 잔을 소환해서 죽엽청을 한 잔 들이켰다.
그는 죽엽청을 마신 후 말했다.
“내 과거 이야기도 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당신에게 더 급한 일이 있으니 나중에 남경성으로 가서 마저 술잔을 나눕시다.”
[더 급한 일이라니……?]
“스승님이 그대를 보고 싶어 하시오.”
[뭐……?!]
“백련교주는 내가 해결할 테니 볼일보고 남경으로 오시구려.”
스아앗!!
다음 순간 안개 속으로 망량의 모습이 사라졌고 그가 소환한 모든 게 사라졌다.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자욱한 안개 속으로 단 하나의 길이 트여 있는 게 보였다.
오두막으로 가는 오솔길이다.
[…….]
나는 홀린 듯이 천천히 그 오솔길을 따라서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오솔길로 완전히 접어들자 주변에 자욱하던 안개가 많이 사라져서 어느 정도 사방의 정경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도대체 몇십번을 보았는지 모를 이 오솔길이었지만 새삼 오랜만에 보니까 정겹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오솔길의 중간쯤 왔을 때였다. 갑자기 길을 가로막은 한 마리의 흑묘(黑猫)가 보였다.
그 흑묘는 귀를 쫑긋거리며 말했다.
[네가 경계(境界)를 부수고 있구나.]
망량선사였다.
나는 망량선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익히 예상했기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또 알아먹지 못할 말을…… 어라?”
어째서 기계음이 아니라 육성인 거지?
나는 순간 어리둥절해서 내 몸을 내려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어?!”
인간의 육체!!
그것도 변용하지 않은 전생 직후의 모습이다!
분명히 강철의 육체일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놀라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이 곳은 [꿈] 속이다. 꿈 속에서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 않으냐?]
“아…… 그래. 꿈은 그런 거였지.”
나는 과거 제갈사와 함께 항아와 맞서 싸우던 중에 질리도록 그 얘기를 들은 바가 있었기에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왠지 아쉬워서 쓴웃음을 지었다.
“강철 몸은 꽤 불편하거든. 이 꿈속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육체를 되찾았으면 좋겠는데.”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그것은 세계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다.]
“뭐?”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망량선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배가 고프구나.]
“……“
[어서 간식을 내놔라.]
…… 왠지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망량선사에게 간식을 내놓지 않으면 정보를 말해주지 않을게 뻔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뭔가 줘야만 했다.
‘아…… 나 지금…… 천암비서도 목갑도 없잖아!!’
당연히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예전 같았으면 목갑에서 쟁여둔 간식 아무거나 줬을 건데!
내가 낭패를 느끼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줄 게 없느냐? 그러면 곤란하구나.]
“아, 아니 잠깐 기다려 봐…… 끄응.”
이 세상에 돌아온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구망 앞에서 살아남으려고 애를 썼을 때도 이 정도로 낭패스럽지는 않았는데! 이놈의 미친 고양이는 변덕쟁이라서 이번에 간식을 주지 않으면 다음에는 만날 수도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급한 대로 칼을 꺼내 들며 내 손을 내밀었다.
“내, 내 손 먹어볼래?”
아프겠지만 손을 잘라서 고기를 다진 후 버무리면…….
타악
그러자 망량선사가 앞발로 내 손을 쳐내었다. 할퀸 손이 아파서 주춤거리자 망량선사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이 몰상식한 놈. 지금 그 몸은 기껏해야 꿈의 일부일 뿐이다. 꿈에 귀속되지 않은 걸 공양하라는 말이다.]
“아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서 목갑이고 뭐고 없는데 어떻게 하라고!”
[흠…… 그렇다면 말해줄 건 없…….]
망량선사가 실망한 듯 고개를 돌리려 할 때였다.
슈아앗!!
바로 그때 알 수 없는 연기 같은 게 근처에 나타났다. 그 연기는 안광 같은 걸 화르륵 불태우더니 말했다.
[위대한 망량선사시여. 나는 렐크로바우스! 인과율에 따라 내가 대신해서 공물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러더니 툭 하고 아주 맛있어 보이는 소고기를 소환해서 망량선사 앞에 놔두었다.
[백웅 대신에 공양하겠습니다.]
[…….]
“……“
저새끼는 뭐야?
나와 망량선사는 너무 뜬금없는 존재의 출현에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저 연기 같은 것은 아마 영체일 것인데 본체의 모습은 틀림없이 완전히 다른 것이리라.
‘렐크로바우스?’
뭐…… 뭐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아주 익숙한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는지 머리가 안 돌아가서 내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을 때 망량선사가 빤히 렐크로바우스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희에게 함부로 나오지 말라고 주의해 두었을 텐데.]
그러자 렐크로바우스가 움찔하더니 말했다.
[이야기가 진전되어야 우리도 할 말이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회원으로서의 인과율을 쓰는 것이니 불쾌히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위대한 분이시여.]
[…….]
망량선사는 소고기를 덥썩 물어서 암냠냠 하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먹었을 때 말했다.
[경계가 무너진 탓에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이게 모두 백웅 너의 업보이다.]
“아니 갑자기 또 무슨 말인데? 거기 너,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니가 왜 나 대신에 공양을 해주는 건데.”
렐크로바우스가 뭔가 말하려다가 눈치를 보듯 망량선사를 쳐다보았다.
[그건…….]
망량선사는 암냠냠 하고 소고기를 계속 먹었고, 한참 후에야 다 먹은 듯했다. 망량선사는 자기 발을 핥아서 몸을 단장하며 말했다.
[어차피 너희 얘기를 하려 했으니 이제 다 나와도 좋다.]
[감사합니다. 그럼…….]
파아아앗!!
“……!!”
다음 순간, 나는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
망량선사 뒤편으로 무려 수백이나 되는 영기(靈氣)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기의 선두에 있던 렐크로바우스가 나를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會長). 우리는 아주 오래 기다린 것 같소…… 하필 이 지상계가 멸망하기 직전이라니…….]
렐크로바우스는 잠시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배당…… 어떻게 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