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16화
망량의 등장에 나는 무척이나 반가운 기분과 함께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망량이라면 나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인정해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험받는 상황이라 생각하니 서운했다. 하지만 여태껏 망량이 나를 도와준 공을 생각하면 도저히 싫어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었기에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나 같아도 의심하겠지.’
나는 다소 감정을 차분하게 만든 후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백웅이란 걸 증명할 수 있겠소?]
내 말에 망량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것을 내게 묻는 것이오?”
나는 침착하게 망량의 말에 대꾸했다.
[그렇소. 어차피 지금 당신의 술법으로 미호의 분신들을 멈춘 이유도 우리와 대화하려고 온 것. 그리고 목적이 내 진짜 정체를 확인하는 거라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당신 입으로 방법을 제시해도 좋지 않겠소이까?]
“…….”
망량은 잠시 침묵하다가 뭔가 밝게 웃었다.
“……하하하. 당신이 만일 진짜 백웅이라면, 이세계에 간 동안에 정말 많은 일을 겪었겠구려. 그대의 말에서 이전보다 더욱 숙성된 경륜이 느껴지는군.”
[내 몸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당황만 해서 뭘 하겠소? 나는 이렇게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보구려.]
“흐음. 당신의 정체를 확인하는 방법이라면 간단하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우리 앞에서 증명하면 되는 것이지. 기억전송술만으로 백웅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키면 할 거요?”
[물론.]
“좋소.”
내 확답을 받은 망량이 씩 웃더니 말했다.
“만상지투, 쓸 수 있소?”
뜻밖의 제안에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으음. 꼭 써야 하오?]
“백웅의 기억에 따르면 만상지투를 쓸 수 있는 건 천하 아래 신투지존과 백웅, 단 두 사람뿐. 사실 이것만 쓸 수 있어도 웬만해서는 백웅으로 인정해줄 수 있소이다.”
[…….]
“쓰기 싫은 거요, 아니면 못 쓰는 거요? 못 쓰는 거라면 미리 말 하시오. 다른 증명방법도 있으니까.”
나는 씁쓸하게 대꾸했다.
[쓰기는 싫소.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야…….]
만상지투는 웬만해서는 안 쓰겠다고 맹세했지만 원래세계로 귀환한 후 구망의 손에서 살아남을 때 어쩔 수 없이 구명절초처럼 쓰고 말았다. 그때 겉으로는 표현을 안 했어도 입맛이 썼는데 지금은 또 동료들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써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쳇,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성큼성큼 망량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망량이 나를 빤히 쳐다볼 때 이 장 바깥에서 바로 만상지투를 시전했다.
만상지투!
슈슉
그 순간 내 손에는 망량의 오화칠금선이 들려 있었다. 말 그대로 흔적조차 없이 깔끔하게 빼낸 솜씨였기에 내가 생각해도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뺏기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역시.”
[호오.]
[굉장하군…….]
내 만상지투에 놀란 것은 망량 뿐만이 아닌 듯 검마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이 감탄성을 내었다. 그들이 감탄한 이유는 만상지투를 시전하는 순간 어떤 식으로 상대의 소지품을 훔쳤는지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왜냐하면 만상지투가 극쾌의 성질을 갖고 있긴 하지만 훔치는 그 순간은 물리적으로 판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와 신투지존의 대결처럼 같은 만상지투의 시전자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아니면 애초에 내 만상지투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자. 받으시오.]
나는 오화칠금선을 망량에게 던져주었고 망량은 얼떨결에 다시 받았다.
망량이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대, 대단하군. 대라신선의 술법으로 여러 겹 방어를 해놓았는데도 그걸 전부 무시하고 가볍게 훔치다니…… 하긴 그대는 황제 공손헌원에게도 만상지투를 성공시킨 적이 있으니 이런 시험 따윈 필요 없었겠구려.”
[…….]
“그런데 왜 그리 만상지투 시전을 꺼려하시오?”
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다른 세계로 간 후, 나는 너무나 위대한 존재에게 만상지투를 썼다가 크게 피 박살이 난 적이 있소. 그때 만상지투에만 의지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던 것이오. 하지만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이렇게 맹세를 깨어 버렸으니 스스로에게 환멸이 나는구려.]
“…….”
망량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 서…… 설마 외신에게.”
[…….]
“하하하!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 내가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게 있다고 하면 당신의 기억일 것이오!”
망량이 이윽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는 옆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호. 이 정도면 그가 백웅이라고 봐도 되지 않겠소? 그 누가 백웅의 기억을 가지고 만상지투까지 쓸 수 있겠소.”
슈욱!
그 말이 끝나자마자 미호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장내에 등장해 있던 미호의 여덟 꼬리가 동시에 금빛 섬광으로 변하여 미호에게 흡수되었다. 미호는 무척이나 복잡한 감정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확실히…… 의심하는 게 큰 의미가 없구나.”
나는 미호의 말에 크게 반색했다.
[미호! 내가 백웅이라는 걸 믿어주는 거냐?]
“……어째서 그런 기계의 몸으로 이 세계에 돌아온 거냐? 너무 생뚱맞아서 너를 쉽게 인정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해. 어떻게 된 거냐면…….]
내가 막 설명을 하려고 할 때 망량이 자신의 오화칠금선을 들어서 제지했다.
“잠깐. 방해꾼이 출현했군…… 잠시 입을 닫으시오.”
파아앗!!
다음 순간, 우리가 서 있던 주변의 허공에 무려 16명이나 되는 신선(神仙)과 32명의 신장(神將)들이 출현했다. 신선들이 내뿜는 영기는 상당히 적대적이었고 신장들은 아예 그들의 병기를 꺼내 들고 있었기에 결코 호의적인 목적으로 나타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저 신선들은 뭐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신선 한 명이 옥음(玉音)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공천사(地空天師) 망량. 그대는 미호를 도와 침입자를 퇴치하러 파견되었는데 어찌 신속히 적을 퇴치하지 않는가?]
그 말에 망량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 보고 있다가 나타나 놓고 잘도 말하는군. 저자가 진짜 백웅인지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소.”
[그것은 금천재의 뜻이 아니다.]
“구천현녀의 제자로서 이 땅에 강림한 천선(天仙)이여. 미안하지만 나는 금천재를 따르지 않소. 지금까지 편의상 균형을 위해서 남경에 협력하고 있었을 뿐…….”
[뭣이.]
신선이 약간 노한 듯 으르렁거렸지만 망량은 그의 반응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미호를 쳐다보았다.
“미호, 당신은 어떻소? 금천재가 우선이오 백웅이 우선이오?”
“흥, 같잖은 말을 하는구나.”
이윽고 미호가 코웃음을 치더니 순간 자신의 여덟 개의 꼬리를 크게 부풀리며 쫙 폈다. 동시에 미호의 눈에서 찬란한 금광(金光)이 쏟아져 나왔다.
[백웅이 우선이다!!]
번쩍!!
신광(神光)이 뻗어 나옴과 동시에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수많은 신선과 신장들이 순식간에 돌풍에 휘날리듯이 날아가고 말았다. 그들은 빛의 바람에 밀려 나가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명백히 미호의 힘이 훨씬 위에 있다는 증거였다.
[크으윽.]
[이놈들이…….]
스아아앗
하지만 그들이 무너지자마자 주변에는 또다시 다른 신선과 신장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용병왕 아지다하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작정을 했군. 천계의 모든 신선이 몰려오는 것 같아.]
“후후, 이를 말이오? 천계붕괴 이후 천계 신선의 4할은 모두 이 남경에 와 있고 그나마도 내성에 늘 머물러있거늘 그대들은 잘도 이런 천하제일의 요새에 쳐들어왔구려.”
무언가 즐겁다는 듯 웃던 망량이 촤악 하고 자신의 오화칠금선을 펼쳤다.
“그러니까 정면승부는 피합시다.”
후와아악
망량의 말이 끝나는 순간 우리 일행을 둘러싸고 거대한 화염의 막(幕)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것을 과거에 오화칠금선의 술수 중 하나로 쓰는 걸 본 적이 있었기에 그리운 마음이 들었는데, 위력은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순식간에 신선들의 영기가 모두 차단되었다. 그 말은 바깥의 모든 신선을 합친 것보다 이 화염방어막이 더 강력하다는 뜻이다!’
이 정도 술법이면 망량의 술법실력은 팔선(八仙) 이상인 게 아닐까?
내가 내심 놀라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백웅. 사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바깥의 신선들을 전멸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소. 하지만 당신의 목적이 이 남경성의 신선들을 몰살시키러 온 것이오?”
나는 망량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나는 그저 금천재와 만나서 그의 협력을 받기 위하여 온 것이오.]
“어떤 협력 말이오?”
[사실 나는…….]
나는 이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할 시간이 없어서 제갈사의 협력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일만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짧은 시간동안 내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확실히 명경을 가지러 저승에 가려면 금천재의 도움이 필수적일 것이오. 왜냐하면 지금 저승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전부 막혀 버렸으니 그의 강력한 권능으로 억지로 차원을 비틀어 여는 수밖에 없지.”
[맞소. 이제 금천재에게 내가 백웅이라는 것만 밝힌다면 그가 협력할 것이오.]
“그건 아니오.”
[응?]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어리둥절하자 망량은 쓴웃음을 지었다.
“금천재는 지금 당신이 백웅이라는 걸 알아도 순순히 협력해줄 사람이 아니오. 그는 언제부턴가 반골(反骨) 정신이 생겨서 우리 전생동료들을 싫어하게 되었고 만사에 태업하게 되었소이다.”
[…… 그렇단 말인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금천재의 협력을 받을 수 있소?]
“…….”
망량은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백웅. 당신은 금천재를 얼마나 싫어하시오?”
[원래부터 굉장히 싫어하지…… 사실 내 원수 중 하나인데 너무 하찮아서 이번 생에 대충 괴롭히며 은원을 풀어볼까 했소.]
“하지만 황제나 십이율주 정도로 싫진 않을 거요. 그렇지 않소?”
[뭐…… 그놈들은 씹어먹을 정도로 죽이고 싶지. 촌장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오. 동네의 싫은 친구 정도라고 할까. 이제 와서는 살의도 들지 않소.]
차라리 이광이 백 배는 더 싫지…….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러면 되었소.”
망량이 씩 웃더니 말했다.
“하나의 계책을 일러줄 테니 이 계책으로 금천재를 설득하시오. 그러면 될 것이외다.”
[어떤 계책이오?]
“그건…….”
망량이 알려준 계책에 나는 잠시동안 멍해졌다. 그러고는 당황했다.
[음…… 그렇다는 건…… 그래서 금천재가 여태 지랄을 했던 거로군.]
“어떻소. 내 계책대로 해 보겠소?”
[알았소. 해 보지.]
“이제 술법을 풀고 금천재에게 가는 통로를 바로 열겠소. 거기에는 당신 혼자 가서 결판을 내고, 결판을 낸 후에는 여동빈의 사당으로 찾아오시구려.”
나는 망량의 말에 걱정스럽게 말했다.
[또 그놈이 나를 쫓아낼 텐데.]
망량은 훗 하고 웃더니 내 어깨 위에 오화칠금선을 톡톡 두드렸다.
“나는 구천현녀의 수제자이자 대천사(大天師)의 직위를 갖고 있소. 내가 술수를 걸어준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오.”
파앗!!
나는 망량이 만들어준 차원의 통로를 따라서 들어갔고, 그 통로를 나오자마자 아까 금천재가 있던 도화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도화원을 가득 메우고 있던 고기 냄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도화원을 가득 채우던 미남미녀들도 모두 사라져서 따사로운 햇볕과 싱그러운 복숭아 냄새만 나고 있었다.
저벅…….
저벅…….
나는 천천히 도화원을 걸어서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커다란 의자와 함께 그 의자에 몸을 뉘고 있는 금천재의 모습이 보였다.
금천재는 한 손에 술병을 든 채 혼탁하게 취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왔구나, 이 깡통 놈아.”
[촌장.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백웅이다.]
“흥…… 헛소리도 자꾸 들으니까 질리는군. 꺼져라.”
휙
금천재가 손을 흔들었다. 원래라면 거기에는 강대한 구천현녀의 신적인 권능이 담겨 있어서 나는 속절없이 공간이동 당해 버리고 말았으리라.
…….
하지만 금천재의 권능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금천재는 권능이 먹히지 않자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서 고쳐앉았다.
“뭣이? 왜 안 통하지?”
츠츠츠
나는 내 몸의 전면에 고대의 상형문자가 떠올라서 빛을 내는 걸 알 수 있었다.
‘시해지술(尸解之術)!’
틀림없이 방금 전 망량이 내게 걸어준 보호술법일 것이리라! 아무리 금천재가 구천현녀의 계약자라도 시해지술의 대가인 망량이 걸어준 술법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속성의 권능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효화시키기가 쉬웠다.
나는 이제 금천재가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는 걸 자신하고는 입을 열었다.
[촌장…… 나는 금만재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금천재의 얼굴이 그 순간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그는 잠시 후 부들부들 떨면서 호통을 내질렀다.
“네놈이 감히 내 아들을 언급해!!”
쿠콰콰쾅
그 순간 사방의 도화원이 통째로 찢어 발겨졌다. 말 그대로 차원이 금천재의 언령(言靈) 한 번에 찢겨나가면서 시공간이 혼돈의 틈새로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이런 짓은 웬만한 마왕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나는 금천재가 구천현녀의 권능을 대리하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젠장…… [옛 지배자]나 다름없군…….’
나는 혼돈의 흐름 속에서 마력을 이용해서 내 몸의 중심을 잡았고 금천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 아들인 금만재가 죽은 건 내 탓이 아니야. 그렇지 않은가?]
“……!!”
금천재는 얼굴이 완전히 시뻘게져 있었다. 그 얼굴에는 노화가 가득 끼어 있었지만 동시에 싫은 기억을 떠올려 버린 절망감 또한 느껴졌다.
그렇다.
금천재의 아들인 금만재 - 나를 유년시절에 괴롭히던 그 자식이 죽어 버린 것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20년 사이에!
나는 금천재를 향해 한 걸음을 더 성큼 다가서며 말했다.
[망량한테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어. 하지만 그놈 나름대로 의(義)를 위해서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더군.]
“…….”
[너는 그 일로 나와 내 동료들을 원망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가 금만재를 죽게 내버려 두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금천재는 잠시 침묵하다가 약간은 냉정해진 얼굴로, 하지만 상당한 살기를 담은 채 말했다.
“정말 네놈이 백웅인 것처럼 말하는구나, 깡통 놈아. 그러나 네가 백웅이든 아니든 나는 네놈을 용납할 수가 없다.”
[왜 용납할 수가 없지?]
“네놈이 진짜 백웅이면 뭐 어쩌란 말이냐? 그렇다 해서 죽은 내 아들을 되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놈은 그저 내 자리와 권능을 뺏으러 온 게 아니냔 말이다. 그럼 더더욱 가만둘 수 없지!”
쿠오오오
금천재의 몸 주변에 화려한 태극(太極)이 여러 개 떠올랐다. 나는 그 태극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걸 알아차렸고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저건 태극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 고도로 응축된 신력(神力)! 금천재 이 새끼도 술법 같은 건 모르니까 그냥 구천현녀의 힘 자체를 무식하게 휘두르는구나.’
하지만 저 단순한 공격이 어쩌면 본격적인 시해지술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었다. 단순한 만큼 온갖 술법저항을 다 무시하고 관통해 버릴 수 있는 힘의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내 철인의 몸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공격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
나는 금천재가 막 공격하려는 마음을 먹기 직전에 그의 흐름을 끊으며 불쑥 말했다.
[살려낼 건데?]
멈칫!
그 순간 금천재가 크게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라고?”
[아직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다 이야기하지 못했지. 내가 여기 온 까닭은 저승에 있는 명경을 찾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너도 알다시피 저승에 갈 수만 있다면 네 아들인 금만재의 혼 또한 찾아내어서 되살릴 수 있지.]
“무, 무슨…….”
[무슨 말은 무슨 말이겠냐. 네가 날 도와주기만 하면 금만재가 되살아난다는 말이다!]
“……!!”
금천재는 당황한 듯 허둥거렸다. 그래서인지 그가 소환해낸 태극도 갑자기 색이 옅어지는 게 보였다. 금천재의 공격의지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명백하게 공격의 낌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금천재가 실전경험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챘기에 더욱 느긋하게 말했다.
[금천재. 내 동료들이 내가 전륜성왕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전륜성왕에게 있어서 네 아들쯤 살려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이래도 내게 협력하지 않겠느냐.]
“하…… 하지만 신선들은 츠쿠요미의 [밤] 때문에 모든 차원계가 오염되어서 절대로 저승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억지로 신력으로 길을 뚫어도 되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너 같은 깡통이 무슨 수로 저승에 가서 내 아들을 살려낸단 말이냐.”
[지금은 깡통이지만 나는 내 본체의 힘을 서서히 되찾고 있다. 나중에 힘을 다 찾으면 아마 삼황오제와도 싸워볼 만하겠지.]
“……!!”
[촌장. 내가 이번 생에 너를 마구 휘두른 건 미안하다. 하지만 너도 어느 정도는 인과응보였다는 걸 알 텐데? 너와는 이제 큰 원한이 없으니 네 직위를 뺏거나 해코지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둬라.]
“…….”
금천재가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한마디를 했다.
“정말…… 소똥이…… 아니 백웅이냐?”
[그래, 촌장.]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금천재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 시선에서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 촌장은 매번 전생할 때마다 망량보다도 더 먼저 만나는 존재인 것이다.
“……허허.”
금천재는 순간 다 늙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좀 더 일찍 오지 그랬소…… 크흐흐.”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안하군. 그래도 오긴 왔잖아.]
“후우…… 난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
금천재가 잠시 후 뜻밖의 한마디를 했다.
“신농(神農)이 내 아들을 살려주겠다 했는데 당신과 신농 중에 누구를 더 믿어야 한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