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14화
쿠쿠쿠…….
남북두성군을 해치우자 장중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성문이 천천히 열리는 게 보였다. 나는 검마, 유정과 함께 그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투선만 해치우면 열린다니, 이런 약점을 왜 놔둔 건지 모르겠구려.]
“성(城)에 귀속된 존재들이기에 성 또한 그들의 운명과 연동되어있는 것일세. 인과율이 부족한 대신 그런 형태로 현신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격이 도리어 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걸세.””
[흠. 이제 어디로 가면 되오?]
“중앙에 있는 내성으로 쭉 가면 될걸세. 다만…… 평범한 방법으론 힘들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힘들다고?
나는 검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윽고 성내에 진입해서 성의 풍경을 보자 무슨 뜻인지 실감했다.
‘이런…… 증기관이 천지에 깔려 있구나.’
본디 평범하게 깔려 있어야 할 대로 대신에 좁은 거미줄 같은 길이 사방에 나 있었으며, 철차를 타고 올 때 보았던 고가도로가 너무 많이 있었다. 고가도로가 어찌나 많은지 땅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도로 때문에 경관이 가로막힐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길은 마치 미로(迷路)처럼 꼬여 있었으며 앞으로 백 장 바깥이라 해도 내가 똑바로 나가고 있는지 알기가 힘들 정도였다.
치이익 -
뿐만 아니라 그 길은 물론이고 각지에 증기관이 김을 뿜으며 마치 복잡한 시장바닥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아직 시장통도 아닌 것 같았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 때문에 정신이 사나울 지경이었다. 내가 잠시 기가 질려서 멈춰 서 있자, 검마가 웃었다.
“껄껄…… 중원의 장강 이남에 있던 모든 인간을 남경성에 수용했지. 남경성을 최대한 넓게 짓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천만 명이 넘는 인간을 수용하기엔 공간이 부족했어. 그래서 남경의 인구밀도는 폭발했고 어쩔 수 없이 도시 자체를 개조하게 된 걸세.”
[큰 도로를 죄다 없애고 대신에 주거구를 최대한 확장 시켰구려. 그 대신에 통로를 하늘로 뻗어서 통행에 쓰게 된 거구려.]
“그렇네. 그래서 도시 전체가 미궁처럼 변해 버렸지. 지도가 없으면 아무리 고수라도 단숨에 내성 근처까지는 가기 힘들어.”
그렇게 말한 검마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후, 정작 근처까지 가더라도 또 금천재가 권능으로 쫓아내겠지만 말일세.”
[그건 정말 문제구려.]
“어떻게든 구천현녀의 권능에 저항할 방법이 없나? 저자가 우리 말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려면 강제추방의 권능에서 버텨낼 수 있어야 할 걸세.”
[…….]
권능에 저항하려면 마찬가지로 신력을 갖고 있거나 강력한 주술방어막을 쳐두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신력을 쓸 수 없으니 주술 쪽으로 방어법을 시도해야 할 것인데, 문제는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건 순수한 마력과 이혼대법 뿐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전투에 한해서는 어떻게든 쓸 만했지만, 방어막처럼 고도의 주술은 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신력만 있었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음…… 혼원지순을 써 볼까?’
내가 거의 유일하게 잘 쓰는 상급술법 중 하나! 단순하게 충격을 흡수하는 방어막을 만들어내서 중첩시키는 것뿐이지만 신력을 이용해서 시전했을 때는 엄청난 방어력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물론 혼원지순으로 만드는 방어력은 대부분 물리력에 대응하는 것이었기에 구천현녀의 권능에 저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마력을 끌어모아서 혼원지순을 시전해 보았다.
[혼원지순!]
치지지직!!
하지만 혼원지순을 영창했을 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거무튀튀한 흑암의 마력이 응축되더니 마치 구체처럼 내 앞에 떠오를 뿐 갑옷의 형태로 뒤덮이지 않은 것이다. 내가 당혹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유정이 말했다.
“마력으로는 술법을 쓰기 지난하오. 쓸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술법은 근본적으로 삼황 복희와의 계약하에 인간이 내려받은 것. 복희와 충돌하는 다른 마력을 시전하는 자들은 술법을 시전하려 하면 커다란 반발작용 때문에 제대로 주문이 시전되지 않는 것이오.”
[내 기억으로는 마력 사용자들도 종종 술법을 쓰곤 했던 것 같은데…….]
“그건 그 자들이 워낙 뛰어난 경지에 이르러서 그 반발작용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였거나 아예 마력을 술법에 적응시킨 경우일 것이오. 그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식으로 순수한 마력만이 활성화될 뿐 주문이 시전 안 될 거요.”
[흠.]
결국 나는 마력과 세피로트만 쓸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세피로트 계열의 전용술법으로 구천현녀의 권능에 저항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기초 중의 기초인 세쓰와 3대운용만을 알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주문은 거의 모르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검마가 말했다.
“제갈사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나?”
[…… 그렇소.]
“뭐 그리 오래 잔다는 말인가? 자네 말대로면 이미 상당한 시간을 잔 것 같은데…….”
검마가 약간 투덜거리자 유정이 말했다.
“제갈사라니 정말로 그 배교지존이 시주의 몸에 잠들어있단 말이오?”
[그렇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해 주시구려.”
유정의 요청대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자 유정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빈승에게 설명해준 사정대로라면 제갈사는 꽤 오랫동안 잠들어있을 확률이 높소이다.”
[왜 그렇소?]
“제갈사가 백련교주에게 패했다 하지 않았소? 적의 합공이든 어쨌든 그때 육체를 소실할 정도의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오. 그가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사실 그 정도 부상이면 웬만한 술법사는 재기불능할 정도의 커다란 영력 손실을 입게 되오. 그는 자신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 오랫동안 잠들어 있게 될 것이오.”
나는 유정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당황했다.
[으음…… 그러면 곤란한데. 제갈사를 빨리 깨울 방법이 없겠소?]
“빈승이 이혼대법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모르겠소. 어쩌면 당신과 제갈사는 힘과 영혼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니, 당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빨리 회복될지도.”
[…….]
“그럼 지금으로서는 금천재를 상대할 대책이 없는 거군. 정말 이대로 내성으로 가도 되겠소?”
유정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쩌다 보니 검마의 편을 들게 되었지만 동시에 금천재에게 고려 유민들의 생명을 빚지고 있기에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나게 생긴 것이다.
그 말에 검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내키지는 않지만, 용병을 고용하세.”
[용병?]
“따라오게.”
검마는 바로 근처에 있던 옷가게로 들어가서 몸을 크게 덮을 수 있는 옷을 구해서 우리에게 주었다. 얼굴과 몸을 크게 가리는 두꺼운 원단의 옷을 입자 검마가 말했다.
“지금부터 찾아갈 곳은 꽤 무뢰한들이 많은 곳일세. 싸우게 될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게.”
[대체 어디로 가길래 그러오?]
“이 남경의 어둠에서 살아가는 어둠의 용병왕을 만날 걸세.”
[……?]
용병왕? 그런 놈도 있단 말인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검마가 앞장서서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빛조차 거의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골목에 도달하자 웬 조그마한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계단을 따라서 한참을 내려가자, 그곳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 있는 어둡고 넓은 광장 같은 게 있었다.
우오오오 -
오오 -
함성과 함께 광장의 한가운데에서는 두 명의 인영이 격렬하게 싸우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자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들고 싸우는 걸 보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초절정고수……?]
그랬다. 둘 다 강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고수! 저 정도면 사실 중원에서도 꽤 수위권에 들어가는 존재라 할 수 있었는데 그런 자들이 이런 지하결투장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검마가 좀 더 광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웬 덩치 큰 자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이봐.”
“초대장을 보여줘.”
검마는 가볍게 대꾸했다.
“그런 건 없다. 용병왕을 만나러 왔다.”
“뭐? 어르신께서 너 같은 놈을 만날…….”
덩치 큰 놈이 으름장을 놓으려 할 때였다. 그자는 검마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흠칫하더니 안색이 크게 달라져서 황급히 말했다.
“검마?! 아,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의아해서 검마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순한 양처럼 된 것이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네. 저번에도 저 친구가 날 막아섰지.”
[아하.]
그렇다면 검마에게 떡이 되게 얻어맞은 것이리라.
내가 상황을 이해했을 때 더욱 비밀스러운 공간의 문이 열렸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외계의 언어가 우리들의 귀에 들려왔다.
[검마…… 또 나를 귀찮게 하러 왔구나.]
어둠 저편에 누군가가 있다.
희미한 빛 때문에 그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劍)을 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외계어인데 그대로 뜻이 이해되는 건 그렇다 치고 어디서 들은 목소리인데?
그 외계의 언어는 왠지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검마는 그 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용병왕. 염치불구하고 또다시 도움을 빌리러 왔소.”
용병왕이라 불린 자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후…… 전에 내게서 빌려 간 용병은 네 밑에서 수행한 임무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고 했다. 그 아이는 사실 내 제자이기도 한데 내 얼굴이 민망해지더구나.]
“그렇소? 사실 이번에 부탁할 일은 더더욱 힘든 일이오.”
검마의 말에 도리어 용병왕이 약간 놀란 듯했다.
[뭣이? 저번 임무는 토벌대 전력이 부족해서 마왕토벌에 참전한 거였다.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로 왔단 말이냐?]
“그렇소. 그렇게 강한 용병을 빌릴 수 있는 건 용병왕 당신 뿐이기 때문이오.”
[웃기지 말아라.]
용병왕은 약간 역정을 내는 듯하다가 약간의 호기심이 생긴 듯 말했다.
[…… 어떤 일인지 내게 상세히 설명해라. 그 때처럼.]
“본디 그건 용병업의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네가 지금 내게 의뢰하려는 일은 이쪽 업계에서는 초특급(超特級) 난이도의 임무다. 저번에 파견했던 그 아이는 내 수제자이자 우리 유파의 미래나 다름없었기에 간신히 마왕을 상대하고도 생환했지만, 그것보다 더한 임무라면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지.]
“일리가 있군.”
검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금천재를 상대로 싸워서 제압하는 임무요. 빌려줄 용병은 무투계나 술법계 어느 쪽이든 좋소.”
[…….]
용병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기가 막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농담하러 왔느냐? 그 구천현녀의 계약자이자 이 남경의 성주이며 천재만재교의 교주인 금천재를 암살한다고? 마왕토벌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인데.]
“농담 아니오. 암살은 아니고 제압이오.”
[썩 꺼지거라. 네가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그런 임무에는 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금천재는 현재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다. 삼황오제가 직접 강림하지 않는 한 누구도 쓰러뜨릴 수 없지. 그런 자와 싸우는 데 용병을 빌려줄 순 없다.]
“단정지을 필요 없소. 내 말은…….”
용병왕의 단호한 말투에 검마가 계속 말하려 하자,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하지 못한다 말했을 텐데.]
스스스
나는 지금 무공을 못 쓰는 상태였지만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투기(鬪氣)!’
살기가 형상화되는 지경을 넘어서 이 공간 전체가 강제력을 지니고 의념을 당장에라도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로 뒤바뀐다! 나는 눈앞에 있는 저 용병왕이 틀림없는 절대지경이며,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사시의 끝모를 살기보다 그 농도는 덜했지만 이 의념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달인의 기예는 무사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했다.
역대급 강자!
이 정도면 내 본체가 오더라도 신력을 안 쓰면 무공만으로 이기기 힘들지도 모른다!
무공만으로는 여동빈이나 장삼봉에 버금갈지도 모른다!
‘도…… 도대체 누구지? 내가 모르는 이런 강자가 세상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어쩐지 친숙한 느낌도 든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검마가 서서히 자신의 검을 들었다.
츠아앗
그 순간, 용병왕이 발한 어마어마한 투기가 검마의 일검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는 그 한 수에 나도 모르게 탄복하고 말았다.
‘검마 또한 대단한 경지에 올랐다.’
정확하게 의념의 간합을 살필 수 있었다면 두 초고수의 대결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마는 압력을 걷어낸 후 천천히 말했다.
“용병왕. 이 길은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니오.”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니면? 네 옆에 있는 깡통과 땡중이 그 정도 실력이 있단 말이냐? 내가 볼 때는 절대 아니다만.]
“잘 들으시오. 본디 인류를 이끌어야 하는 진정한 왕이 바로 여기 있소.”
[……?]
용병왕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나와 유정을 차례로 쳐다보는 듯했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더니 말했다.
[저 깡통이 말인가?]
“그렇소.”
검마는 또렷한 말투로 말했다.
“바로 이자가 소을성주이자 인류의 왕, 백웅이오!”
[…….]
용병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빤히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검마. 나는 너와 같은 절세고수가 헛소리를 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맞소.”
[허나 이자는 듣던 것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백웅은 내게 못지않은 절세무공의 소유자인 데다 그 미모가 송옥과 반안을 뛰어넘는 절세미남이라 했는데 이토록 하찮은 깡통의 모습이라니…….]
“그는 현재 본체가 다른 세계에 있소. 그러나 꿈의 세계를 통해 잠시 동안 이쪽 세계로 넘어와서 철인의 몸을 빌려서 강림한 것이오.”
[…… 흐음.]
용병왕이 무척이나 떨떠름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솔직히 못 믿겠다만…….]
이런 젠장!
얘기가 뭐 이렇게 겉돌아?!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복장이 터지는 걸 느꼈다. 그러고는 성큼 앞으로 걸어 나와서 말했다.
[이보시오. 뭐 그리 잘났길래 내 동료인 검마를 이토록 곤란하게 만드는 거요? 용병왕이라는 게 대체 뭔데?]
[검마에게 얘기를 듣지 않았나? 내가 누구인지.]
[알게 뭐요? 어차피 외계인이나 이족일 텐데. 어디 그 잘난 면상이나 나한테 보여주시오.]
[그래? 어디 보거라.]
저벅
용병왕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좀 더 밝은 빛 아래에서 용병왕의 모습을 보자, 나는 그가 청면(靑面)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몸에 달려 있는 다섯 자루의 대검을 보자마자,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나는 약간 눈을 크게 떴다.
[…… 아, 아지다하카?!]
[……!!]
내 말에 아지다하카가 흠칫 놀랐다. 놀란 건 아지다하카 뿐만이 아닌지 옆에 있던 검마도 꽤 놀란 듯했다.
“백웅. 자네는 저 용병왕의 본명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그게…….]
뭐라고 해야 하지?
나는 하도 설명할 게 복잡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너무 해야 할 말이 많았기에 이내 포기하고는 아지다하카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르겔도 유파의 검성(劍聖)이란 것도 알고 있소, 아지다하카. 과거 레무리아 제국의 투기장에서 패왕(覇王)이었다는 것도.]
신역백좌의 한 명인 청면무사, 검성 아지다하카!
은하계에서 몇백만 명이 넘는 문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아르겔도 유파의 수장!
저 자는 내가 이 시대로 되돌아오기 직전에 목숨걸고 싸웠던 사이였으니 모를 수가 없다!
아지다하카는 내 말을 듣자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긍정이라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이야기가 잘 되어간다 생각했지만 이내 아지다하카가 퉁명스레 말했다.
[어디서 내 뒷조사를 잘 해놨나 보군. 미안하지만 네가 말한 것은 웬만한 은하계의 호사가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신역절기의 백좌라는 건 모르고 있을 것이오.]
[……!!]
아지다하카는 내 말에 놀란 듯했다. 지금의 내 한마디는 그를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았다. 나는 아지다하카에게 말했다.
[당신, 레무리아 제국에서 나와 한 판 붙지 않았소? 그 때 분명 후일을 기약하며 내가 투기장에서 패왕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면 싸우기로 약조했을 텐데.]
[…….]
[어째서 이런 곳에서 용병왕 일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때 이래로 유망(榆罔)을 이겼소? 유망을 최고의 고수로 인정한다고 내게 말했잖소.]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유망을 알고 있나.]
유망 얘기가 나오자 아지다하카는 정말 당황한 듯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널 모르겠다. 레무리아 투기장에서 패왕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갑자기 레무리아가 멸망하는 바람에 도망쳐서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너와 같은 자를 싸워서 결투를 약속했던 적은 없다.]
어?! 뭔 소리야? 나랑 약속해놓고!
나는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레무리아가 갑자기 왜 멸망했단 말이오?]
[지하에서 뭔가 폭발하면서 르 뤼에가 부상했다. 그래서 흉신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다 죽었지.]
[…….]
[그건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었는데 넌 모르나.]
젠장, 그렇게 되는 거였나? 레무리아가 멸망한 건 결국 그 때 그 일을 원인으로 흉신이 르 뤼에를 떠올리는 바람에 멸망했던 거였나!
뜻하지 않게 탁록시대의 미래를 미리 들은 느낌에 나는 찝찝해졌다. 하지만 고개를 털고는 아지다하카에게 말했다.
[잘 생각해보시오. 나는 그때 당신의 불멸외천기가 구백구십구식이며 터득한 타 유파의 검기가 그 열 배라는 얘기까지 들었소. 그리고 다시 싸우면 당신이 신역절기를 실전에서 쓸 수 있지만 안 쓰는 이유도 알려준다 했었고…….]
[…….]
[젠장, 지금 무공만 쓸 수 있었어도 직접 보여줄텐데…….]
내가 아쉬워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아지다하카는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뭐지……? 나는 분명 너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왠지 그런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