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9화
나는 잠든 제갈사에게 다시 몇 번이고 말을 걸었지만 제갈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이, 제갈사!! 어이!!’
나는 제갈사가 난데없이 잠든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다. 그보다 잠이 든다는 개념이 생소했기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이 잠든다……? 그럴 수도 있나? 예전에 제갈사가 이혼대법으로 내 몸에 옮겨탔을 때 제갈사는 딱히 잠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혼의 성질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것 같다. 나는 별생각 없이 눈앞의 거대한 장벽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혼이 잠든다면 혼도 꿈을 꾸는 걸까?’
그렇다면 혼이 꾸는 꿈은 생명체의 꿈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만일 같은 것이라 한다면, 혼과 생명체는 사실 별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러면 혼과 생명이 동시에 겪게 되는 [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나는 나답지 않게 철학적인 생각을 하자 점차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잠시 머리를 털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이딴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천재만재교의 교주인 금천재를 만나자.”
제갈사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게 말해줬던 것은 바로 교주 금천재를 만나라는 것이었다. 금천재가 있는 정확한 장소는 제갈사도 모르는 듯했고 일단 정보를 모아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흠. 일단 성안에 진입해야 하는데…… 이 성벽은 뭔가 이상하군.’
평소였다면 뛰어난 신체능력을 이용해서 성벽을 그대로 뛰어넘었을 테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느껴졌다. 나는 성벽 위를 힐끔 쳐다보았는데 잘 보니 경비병이 보이지 않았다. 성벽이라면 마땅히 성에 수상한 병력이 접근하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어야 할 텐데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왜 경비병이 없는 걸까?
너무 성벽이 길어서?
‘아냐. 어차피 차고 넘치는 게 중원의 인간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경비를 세워두지 않을 리는 없어. 그럼 왜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 성벽 자체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인간이 굳이 감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경비병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약 오십여 장 앞에 있는 거대한 성문을 쳐다보았다.
성문 앞 역시 경비병이 하나도 없고 그저 거대한 강철 문이 꾹 닫혀 있을 뿐이다. 인적이 하나도 없기에 내가 성문에 가까이 있는데도 공격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생각했다.
‘성벽을 뛰어넘어야 할까 아니면 성문을 정면돌파할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윽고 제 3의 선택을 했다.
‘아냐. 좀 더 기다려보자. 성에서 출입하는 놈이 있을 건데 그놈이 성문을 열 때 몰래 잠입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군.’
내 원래 몸이었다면 다소 소동을 벌이더라도 수습할 자신이 있겠지만 지금은 온전치 못한 기계의 몸인 데다가 제갈사의 영혼까지 같이 책임지고 있는 상태였다. 섣불리 행동했다가 기계 몸이 파괴되는 상황이 오면 나는 몰라도 제갈사의 혼이 어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성문에서 좀 더 떨어졌지만 성문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 백 장 바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세쓰를 발동했다.
우우우우 -
세쓰를 통해서 전신의 마맥(魔脈)으로 세계수의 마력이 웅대한 기세로 흡수되는 게 느껴진다. 아까까지 전투하면서 소모했던 마력이 단숨에 다 채워지고도 모자라서 내 마력의 그릇 자체가 빠른 속도로 넓혀지는 게 느껴졌다. 세쓰란 무공으로 치면 전신의 혈도이자 단전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세쓰가 방대하게 깔려 있는 내 상태는 무림인으로서 임독양맥이 타통되어 환골탈태한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츠츠츠츠
마력이 엄청난 기세로 모이더니 갑자기 내부의 한 점으로 몰려들어서 응결(凝結)되기 시작했다. 응결된 힘의 조각은 마치 관처럼 되어 있는 세쓰의 통로에 보석 덩어리 같은 형태로 변해서 또르륵 하며 굴러 들어갔고, 마력의 흐름은 다시 안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특이한 과정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렇군. 내공과 달리 별도의 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알아서 마력이 다른 형태로 저장되는 거구나.’
아마 방금 보석의 형태로 저장된 마력은 유사시에 세피로트 사용자가 강대한 주문을 발동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마치 무림인이 선천진기를 평소에 모아서 나중에 폭출할 수 있는 무공을 쓰는 것과 같아 보였다. 나는 새로운 힘을 닦아 올리는 게 재밌게 느껴져서 수련에 몰두했고, 그 상태로 약 세 시진의 시간이 흘렀다.
…….
내 마력은 더욱 강대해졌지만, 아직도 제갈사의 영혼은 깨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이에 시간이 꽤 흐르자 드디어 인적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인적은 머나먼 사막에서 증기를 뿜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치치칙 -
치익 -
요란하게 증기를 뿜으며 달려오는 철차(鐵車)! 그 형태는 낙양에서 내가 탔던 것과 대동소이했지만 다른 점이라 한다면 좀 더 거대한 크기였으며 그 안에는 사람들이 한가득 타고 있는 듯했다.
“으아아.”
“이 새끼야. 밀지 마!”
“아악, 똥 냄새.”
거칠고 요란한 욕설과 함께 안쪽에서 콩나물시루처럼 넘쳐서 차창 밖으로 팔다리가 허우적거리며 뻗쳐 나오고 있었다. 저 꼬라지를 보면 아마도 안에는 원래 적재할 수 있는 인간보다 몇 배나 되는 인간들이 가득 눌러 담겨 있는 게 분명했다. 뒤로 다섯 칸의 차량이 더 있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로 보였고, 이 철차에 들어가 있는 건 최소 수백 명 이상인 걸로 보였다.
나는 그 꼬라지를 보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여긴 분명히 철로(鐵路)가 없는데 어떻게 철차가 달릴 수가 있는 거지? 낙양의 철차와 다른 구조인가?’
아닌 게 아니라 저 철차는 철로도 없이 붉은 사막을 그냥 횡단하고 있었다. 저렇게 하면 철차가 사막의 모래에 푹푹 빠져서 움직일 수 없을 텐데도 잘만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잘 관찰하다가 왜 그게 가능한지 알 수 있었다.
‘…… 바퀴가 미세하게 허공에 떠 있어!! 뭐지!?’
아예 사막에 바퀴가 안닿으니까 안 빠지는 것이었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어느덧 증기로 움직이던 철차는 성문 앞에 멈춰 섰고, 맨 앞에 있던 철인이 불쑥 튀어나와서 뭔가 빛나는 시꺼먼 돌 같은 걸 앞으로 내미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지금이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자!’
타닷
나는 재빨리 뛰어서 증기철차의 지붕 위에 올라탔다. 거미처럼 납작 엎드려서 달라붙자마자 증기철차는 다시 움직여서 성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별 이상 없이 남경 내부로 들어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성내의 증기(蒸氣)였다.
뿌우 -
치치칙 -
정말로 이 도시는 증기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증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일반 민가는 물론이고 모든 건물 위에 증기관이 매달려 있고 거기서 쉴새없이 증기가 터져 나오는 중이었으며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쳤다. 그래서인지 증기철차에 타고 있던 인간들이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 씨발!! 더워!!”
“소리지르지 마 새꺄!! 다 왔다고!”
“옷에 똥 묻히지 마! 개…… 으으윽…….”
…….
아무래도 안쪽에서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굳이 보고싶지는 않았다.
쿠르르릉
이윽고 증기철차가 가도를 넘어서 점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철로 자체가 하늘에 붕 뜨기 시작한 듯했다. 아무래도 허공또한 허투루 쓸 수 없는 공간이라 생각해서 고가도로(高架道路)를 만든 것 같았다. 허공에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생겨 있는 고가도로를 보자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제국 시대에도 고가도로가 있었지. 하지만 여기의 고가도로는 더욱 투박하고 원시적이군…….’
쿠르릉! 쿠르릉!!
이윽고 한참을 이동하자 드디어 증기철차는 성의 깊은 곳까지 온 것 같았다. 그제서야 증기철차는 정차역에 멈춰 섰고,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아아 - 차장이 말씀드립니다. 역사에 도착하였사오니 질서 있게 하차해 주십시오.]
덜컹!
우르르르
그의 말과는 달리 문이 개방되자 역한 냄새와 함께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인간들이 홍수처럼 차에서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땀에 가득 젖은 채 구토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필사적으로 기어서 앞으로 뛰어가는 자들도 있었다. 나는 그 처절한 광경을 지붕 위에서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이 인간들은…… 어디서 잔뜩 막노동 일을 하고온 듯한 행색인데.’
내가 지붕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 내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인이여. 넌 누구냐?”
내가 힐끔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도복(道服)을 입은 장년의 도사가 차량 위에 서 있었다. 그자는 한 손에 불진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검(劍)을 들고 있었기에 아마 무공과 술법을 둘 다 쓸 수 있는 자로 추측되었다. 장년의 도사는 약간 노한 듯한 기색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까는 차량에 사고가 날까봐 건드리지 않았지만 당장 네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처치하겠다.”
[…….]
아마 이 차량을 호위하는 존재인 것 같군.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이총이라고 하오. 금천재 님을 뵙기 위해 천재만재교에 찾아왔소.]
“이총이라고? 들어본 적 없는데…… 너는 어디서 왔나?”
[저 멀리 낙양에서 왔소.]
내 말에 장년도사가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지 마라! 낙양에서 여기까지 수천 리 마경(魔境)이 펼쳐져 있는데 일개 철인이 그 길을 홀로 왔다고? 어디서 헛소리를 하고 있느냐.”
[정말이오. 게다가 나는 금천재 님의 오래된 지인이오.]
“남경성이 만들어진 이래 그런 헛소리를 하는 놈이 수천 명이 넘었지.”
스으으
장년도사는 내게 검을 들이밀며 서늘한 검기를 맺었다. 그는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무릎을 꿇고 저항을 관둬라. 그렇지 않으면 베어 버린다.”
[그렇게 한다면 금천재 님에게 안내해 주시겠소?]
“그럴 리가. 너는 철인용 교도소로 가서 조사받을 것이다.”
[그러면 곤란한데…… 난 급한 사정이 있어서 괜히 시간 낭비하기 싫소.]
“네 사정따윈 알 바 아니다! 더 이상 헛소리를 듣기 싫구나.”
파앗!
다음 순간 쏜살같은 검기가 피어오르며 내 가슴팍을 꿰뚫으려 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기에 역시 눈앞의 장년도사가 절정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나는 재빨리 그 검기를 회피했다. 내가 검기를 피하자 도사는 흥미롭다는 듯 외쳤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구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빠져나가진 못할 것이다!”
휘익
도사가 불진을 휘두르자 갑자기 퍼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그와 같은 복장을 한 도복의 검수(劍手)들이 십여 명이나 출현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자 도사가 말했다.
“모산대(茅山隊), 저놈을 포박하라!”
타타탓!!
다음 순간 십수 명의 도사들이 일제히 나를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합공을 재빨리 마력으로 향상된 신체능력만으로 피해내기 시작했지만 역시 무공의 의념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상대의 흐름을 읽는 게 한계가 있는 듯, 조금씩 공격이 몸뚱이에 스치는 것 같았다.
퓨퓻
쏴아앗
‘젠장.’
수많은 검기의 폭포수 속에서 나는 몇 개의 생채기를 내며 간신히 피했는데 나는 약간 굴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안맞아도 될 공격을 괜히 맞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념과 내공을 못쓴다는 건 무림인에게 있어서 육감이 다 차단된 거나 다름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젠장, 무공만 제대로 쓸 수 있어도 상처 하나없이 저놈들을 다 제압할 수 있는데 지금 상태로는 그냥 다 때려죽일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도리어 장년도사가 당황해하는 게 보였다.
“이…… 이 무슨? 고작 철인의 실력이 이 정도라고? 우리 모산대는 모산파 일대제자로만 구성된 정예인데…….”
나는 그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왠지 낯이 익다 싶었는데 모산파 사람들이었군. 도산법사(道山法師)는 잘 지내오?]
“……!!”
[망량이 당신네한테 가르침을 줬던 은혜가 있을진대, 그 망량의 동료인 내게 이런 대접을 하다니 뒷감당 가능하시오?]
내가 모산파 장문인과 망량을 언급하자 장년도사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는 뭔가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망량을 알다니…… 이총 당신은 망량과 무슨 관계요?”
말투가 달라진 게 느껴지자 나는 내심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멀리 파견나갔던 소을촌 출신의 고수요. 오도(吳刀)의 사건도 알고 있지. 나를 금천재 님과 대면하게 해준다면 즉시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소이다.]
“으음……!! 이를 어찌해야 하나…….”
장년도사가 크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그렇다면 일단 대룡관(大龍館)에 함께 가 주시오. 그곳에서 대룡관주에게 당신의 신분을 증명하면 될 거요.”
[대룡관? 그게 뭐요. 나는 이 성이 생기기 전부터 비밀작전을 해서 이 성에 사정을 잘 모르오.]
내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자 장년도사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으음…… 이 남경성에서 최고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장소요. 동시에 소을촌 출신도 매우 많지.”
[…….]
“당신이 정말 자신의 신분에 자신이 있다면 그곳에서 우리의 감시를 받아주시오. 우리는 불온한 분자들을 결코 감시 바깥에 놔둘 수 없소.”
[정녕 무례하군. 내 당신을 꼭 기억해 두겠소.]
“크윽……!! 그래도 어쩔 수 없소…….”
[…….]
나는 고민했다. 대룡관이란 곳에 소을촌 출신의 고수들이 많이 있다고?
‘그렇다면 옛날에 알던 얼굴을 만날 가능성도 높은데…….’
과연 그들이 지금 내가 백웅이라는 걸 믿어줄까?
솔직히 너무나 몸뚱이가 달라져 버려서 확신이 없었다. 미친 철인이 헛소리한다고 베어 버릴 가능성이 훨씬 더 큰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금천재를 못만날 것 같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룡관으로 안내하시오.]
밑져야 본전!
일단은 사람을 만나고 보는 거다!
치이익 -
쿠르릉 쿠르릉
잠시 후 나는 장년도사와 함께 또 다른 증기차량에 탑승했다. 내 맞은편에는 장년도사가 앉아 있었고 내 주변에는 모산파의 도사들이 모두 검을 뽑아든 채 나를 겨누고 있는 형상이었다. 나는 따끔거리는 검기가 나를 노리고 있자 불편해져서 말했다.
[거참 의심도 많군.]
“입장 바꿔 생각해보시오. 당신이 얼마나 수상한 자인지.”
나는 짜증이 나서 으르렁댔다.
[알고 있소. 하지만 나는 속이 좁은 인간이기에 당신에게 기필코 복수하고 말 것이오.]
“…….”
[당신 이름과 별호를 말하시오. 반드시…… 씨발…… 개 같이 복수해주지!]
내가 이를 갈아붙이자 장년도사는 우물쭈물하다가 손을 내리는 자세를 취했다.
“손을 거둬라.”
모산파 도사들이 칼을 내리고 검기를 거두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장년도사가 헛기침을 했다.
“거…… 내 이름이나 별호 같은 건…… 알 거 없소이다. 난 그냥 내 임무를 다했을 뿐이요.”
나는 느긋하게 손사래를 쳤다.
[하하, 나도 농담이었소. 내가 찌질하게 복수 같은 거 할 리가 없잖소.]
“…….”
장년도사의 얼굴이 불신으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체감상 약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차량이 치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서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서 장년도사를 따라가자 이윽고 역사를 벗어난 시가지가 나왔고, 시가지 또한 매우 생소한 느낌이었기에 나는 놀란 소리를 냈다.
[호오.]
뭐라고 해야 할까? 낙양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낙양은 그래도 과거 한족 문명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놔둔 채 개축을 했다면 이곳은 그런 과거의 건축양식이 거의 남지 않았고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보는 느낌이었다. 현란한 빛을 내는 간판은 물론이고 은회색의 건물, 그리고 바퀴 달린 새로운 이동수단도 많이 보였다. 심지어 길거리에 다니는 자들도 인간보다 철인이 훨씬 많아 보였다.
그리고 나는 걷다가 또 색다른 걸 발견하곤 놀랐다.
[이…… 이족?]
틀림없다. 외계의 종족들이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내가 아는 그 도마뱀 종족인 랩틸리언이었다. 내가 황당해서 경악한 소리를 내자 장년도사가 말했다.
“정말 당신은 어디서 온 거요? 저 존재들은 초창기부터 있었건만.”
[이족은 위험한 존재들이오. 안 무섭소?]
“걱정마시오. 금천재 교주님께서 착한 이족만 도시에 받아들이셨으니. 저자들의 기술이 이 도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오.”
[…….]
“거의 다 왔소. 이쪽이오.”
이윽고 나는 대룡관이라고 써 있는 커다란 무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무려 그 크기가 십여 층이나 되었으며 층 하나의 넓이는 청룡무관의 다섯 배나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거대한 무관은 처음 보았기에 나는 신기했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중 위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허(黃墟) 도장!! 그대가 방문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었는데?]
쿠웅!
잠시 후 누군가가 사량발천근의 수법으로 십 층에서 떨어져 강렬하게 땅 위에 착지하여 굉음이 일어났다. 팔짱을 끼고 있던 그 존재에게서 어마어마한 투기(鬪氣)가 뿜어져 나왔고, 그 투기에 모산파의 제자들은 단숨에 혼절을 한 것 같았다.
“꺼억.”
“흐윽…….”
단숨에 고수들을 기세만으로 기절시킨 그 존재는 여전히 기세를 늦추지 않고 황허를 노려보고 있었고, 황허는 그래도 절정고수라서인지 팔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정신줄을 잡고는 말했다.
“미, 미안하오. “
“미안하다 하면 다 되는가? 내 분명 중대한 수련의식 중이라 아무도 방문하지 말라고 모든 자들에게 일러두었거늘!”
그 자는 약간 분노한 듯했다. 그러자 황허는 서둘러 말했다.
“허나 대룡관주(大龍館主)께 필히 보여줘야 할 수상한 인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소.”
“수상한 인물이라면 그대 옆의 철인을 말하는 건가?”
“그렇소. 이자는 스스로 이총이라 하는데, 소을촌 출신의 고수라 하오. 비밀임무를 띠고 파견됐다가 이제야 돌아왔다는데…… 나로서는 판단할 방법이 없어 관주께 보여드리러 왔소. 심지어 망량과 모산파의 일까지 알고 있었기에.”
“…….”
“관주야말로 소을촌 출신의 최고 고수중 하나이니 말이오.”
대룡관주는 슬며시 나를 훑어보는 듯했다. 나는 그 시선에 어마어마한 투기가 맺혀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이 정도면 절대지경 중에서도 높은 경지라는 걸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대룡관주는 한참을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총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고 내가 모르는 소을촌의 비밀요원이 있다는 것도 듣지 못했다. 네놈은 뭐 하는 놈이냐?”
[…….]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 사악한 존재인 것 같은데, 대답을 잘 하지 않는다면 바로 베겠다.”
쿠구구…….
나는 대룡관주의 말이 허언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가공할 절대지경의 의념천주가 사방을 뒤덮으며 단숨에 의념살(意念殺)의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리면 그의 장검이 나를 수백만 조각으로 베어 버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살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그리워져서 중얼거렸다.
[당신은 백련교주의 편에 서지 않았구려. 그렇다면 서문혜도 이 성에 있는 거요?]
흠칫
내 말에 대룡관주의 의념이 잠시 촛불처럼 흔들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룡관주는 한층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넌 누구냐? 혜아를 아는가?”
[물론이오. 나는 당신이 해줬던 말대로 이번 회차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불철주야 최선을 다했소만…… 어쩌다 보니 일이 꼬여서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되었구려.]
“…….”
대룡관주의 살기가 갑자기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조금 벌리며 놀라는 듯했다.
“서…… 설마 너는…….”
[늦게 와서 미안하오. 그나마 흑요석을 당신에게 주었기에 그동안 버텨내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고 있었소.]
“……!!”
그는 너무 놀란 듯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미…… 믿을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나는 아직 본체를 이 세상으로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오. 계약으로 이 이총이라는 자의 몸을 잠시 있을 뿐.]
“…….”
[설마 아오키가하라 수해에서 외우주로 가버리게 될줄은 몰랐소. 미안하오.]
내 말에 대룡관주의 살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는 잠시 후 약간은 우는 듯, 벅찬 목소리로 외쳤다.
“백웅…… 정말 자네란 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검마.]
눈앞의 대룡관주는 바로 검마 서문대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