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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00화 (1,499/1,615)

전생검신 85권 8화

나는 제갈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갈사는 내 영혼의 심처에 달라붙은 듯한 목소리로 내 뇌리에 속삭였다.

‘천재만재교의 총본산은 남경(南京)이니 거기로 가자.’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남경? 거기는 어디냐?]

‘하긴 천재만재교가 흥한 후에야 남쪽의 수도라는 뜻으로 남경으로 바꿨으니 너는 잘 모를수도 있겠군. 응천부(應天府)를 말하는 거다.’

[아, 응천부!]

나는 제갈사의 말에 그제야 어디인지 감이 잡혔다.

응천부!

그곳은 수도인 낙양에서 남동쪽으로 한참을 가야 있는 도시였다. 과거에는 금릉(金陵)이라고도 불렸던 육조시대의 전통적인 수도였으며 나 또한 대륙을 횡단하면서 크고 번화한 응천부에 종종 들렀던 기억이 났다. 나는 신기해서 말했다.

[응천부가 큰 도시였긴 하지만 남쪽의 수도라는 뜻으로 남경이라는 칭호까지 쓸 정도가 된단 말이냐?]

‘지금의 남경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규모만으로는 네가 보았던 낙양의 5배에 이르는 영토라고 할 수 있다.’

[……?! 뭐? 그렇게 커?]

나는 제갈사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낙양의 5배라니!!

시골에서 막 올라왔을 때 낙양의 어마어마한 화려함과 넓이에 압도되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라면 웬만한 성(城)을 20개 합친 거나 진배없으리라.

말 그대로 성의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며칠 내내 여행을 해야 할 판인데, 세상에 그렇게 넓은 성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깜짝 놀라자 제갈사가 말했다.

‘낙양의 영역은 태생적으로 대결계의 범위를 넘을 수가 없어. 하지만 응천부를 개조할 때는 그곳에 모든 전생동료들과 중원의 천재들이 모여서 3년에 걸쳐 개축(改築)했다. 그렇기에 현 남경이야말로 중원 최대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흐음……!! 그거 대단한걸. 그런데 도시 밖에는 괴물들이 많다면서 왜 그렇게 넓게 만든 거야?]

‘바보야. 그러니까 넓게 만든거다. 당시 남경은 대홍수가 밀려오는 최전선이라서 그곳에서 대홍수를 최대한 막아야 나머지 대륙의 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에 거대한 장벽을 쳐서 물길의 힘을 줄인 거였다.’

[음…….]

‘아무튼…… 장강 이남에 있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대개 남경 내부로 들어가서 살고 있다. 그런 탓에 그 넓은 범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인구밀도는 무척 좁아터졌지.’

[그런 거군.]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 제갈사. 그러고 보니 소을성(小乙城)도 증축을 하고 있지 않았냐? 소을촌이 있던 소을성은 지금 어떻게 된 거지?]

‘남경에 가보면 안다. 소을성도 거기에 있다.’

[어? 무슨…….]

정말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말에 내가 어리둥절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쓸 때는 아니다. 언제까지 두 다리 대신에 마력을 분사하여 이동할 셈이냐?’

[음!]

‘네게 있는 세쓰가 굉장히 방대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면 위험하다.’

제갈사의 말대로였다. 나는 이 기계몸통에서 한쪽다리와 두 다리가 모조리 떨어진 채, 머리와 몸통 팔 한쪽에만 의지한 채 마력을 뿜어내며 날아가고 있었다. 무척 기괴한 모습이었고 만일에 세쓰로 불러오는 세계수의 마력이 고갈될 경우 나는 언제 바닥을 기게 될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버틸 만 했기에 제갈사에게 말했다.

[마력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소모되는 속도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라.]

‘지금은 그렇겠지. 하지만 만일에 전투를 하게 된다면 그 마력은 더 빨리 소모될 것이다.’

[아.]

‘어떤 적을 만날지 모르니 마력은 효율적으로 아껴야 해. 어떻게든 다리부터 찾아라.’

[다리라…….]

나는 곤란함을 느꼈다. 다리라고 해도 지금 있는 곳은 인적 하나 없는 어두운 사막 위인데 대체 이런 곳에서 강철 다리를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찾는다 해도 어떻게 해야 붙일 수가 있는가? 여러 모로 곤란했기에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혹시 근처의 마을에 가면 다리를 구할 수 있을까?]

‘연금공학자가 있다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 그런 자는 전부 낙양에 입성해서 귀한 인재로 대접받고 있으므로 이런 한지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신력을 쓸 수도 없으니까 다리를 창조할 수도 없고.]

내가 툴툴거리자 제갈사가 말했다.

‘나한테 잠깐 몸을 맡겨라.’

[너한테?]

‘내가 직접 마력을 다룰 수 있다면 손쉽게 다리를 만들 방법이 있다.’

[으음…… 알았어.]

츠즈즈즈

잠시 후 제갈사와 나는 몸의 소유권을 교환했다. 제갈사는 강철 몸을 얻게 되자마자 땅으로 손을 뻗더니 주문을 외웠다.

[오레이칼코스의 마력이여…… 나 제갈사가 염원하노니 이 사막에 존재하는 철분을 모아오너라!]

쿠구구구!!

잠시 후, 일 장 정도 떨어진 사막 위에는 거대한 강철의 바윗덩어리 같은 게 출현해 있었다. 그 강철 덩어리에 접근한 제갈사는 이번에는 마력과는 다른 기묘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스멀거리며 제갈사의 전신에서 새어 나오는 흉측하고 강렬한 힘! 나는 그 힘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다음 순간 강철덩어리가 제갈사의 눈빛 한 번에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움푹 들어가는 걸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염동력!!’

몸의 주체가 제갈사로 바뀐 덕에 제갈사는 통짜로 된 강철을 마치 두부처럼 으스러뜨릴 수 있는 염동력을 쓸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한참 동안 염동력을 이용해서 거대한 강철을 자기 뜻대로 연마하던 제갈사는 충분히 작아졌다 싶자 그 강철을 다리 모양으로 만들며 본체에 갖다 붙였다.

투웅

[세피로트의 권능으로 물리의 공정을 무시하노라.]

그리고 제갈사가 한두마디 주문을 외우자 정밀기계라기에는 무척 조잡했던 강철덩어리가 순식간에 기계의 다리로 바뀌면서 조금의 흔적도 없이 딱 달라붙은 걸 알 수 있었다. 손쉽게 다리를 만들어낸 제갈사가 큭큭 웃었다.

[크크크…… 어떠냐, 간단하지?]

‘음, 다리가 있으니 좋군…… 그나저나 응천부, 아니 남경까지는 최소한 수천 리인데 뛰어가야 할까?’

[아니. 그럴 필요가 없기에 내가 잠시 몸을 빌린 것도 있다.]

쐐액

제갈사는 붕 하고 몸을 띄우며 빠르게 전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제갈사는 하늘을 날면서 말했다.

[유사시에 내가 쓰려고 만들어놓은 전이용 마법진이 있다. 그곳으로 가면 빠르게 남경까지 갈 수 있다만…….]

나는 말꼬리를 흐리는 제갈사에게서 불안함을 느끼고는 말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냐?’

[보다시피 지금 이 세상은 성 바깥의 외부세계까지 관리감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과거에 설치한 마법진이 멀쩡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 ‘

[운이 좋기만을 바라자.]

그렇게 약 한 식경 정도를 날듯이 뛰어왔을 때였다. 제갈사는 어느덧 흉칙한 어둠의 구멍이 마치 무저갱처럼 벌어져 있는 지하갱도로 들어와 있었고 그 지하갱도에는 도저히 자연적이라고 볼 수 없는 외계의 촉수나 마물 같은 게 여기저기에 보였다. 딱 봐도 이계의 존재들이었기에 나는 질려서 말했다.

‘여기 위험해 보이는데…… 세상은 정말 망한 것 같구나.’

[크크. 신이 작정하고 재앙을 내렸는데도 이 정도면 양호한 거지. 너만 되돌아오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저벅 저벅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제갈사는 마법진이 설치되어있는 거대한 공동을 발견했고, 이윽고 짜증을 냈다.

[꽤 운이 나쁘군.]

두둥

마법진의 바로 위에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몸 크기가 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마물이 존재했다. 그 마물은 용의 머리와 호랑이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몸뚱이에는 세 쌍의 날개와 호랑이와 같은 네 발을 갖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마물이었는데 더 골치 아픈 점은 따로 있었다. 나는 그 마물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을 느끼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제갈사…… 저거…… 보통 마물이 아니다.’

대요괴 수준에서는 도저히 논할 수 없는 엄청난 힘!

강자를 숱하게 만나본 나였기에 알고 있었다. 저 존재는 탁록시대에 데려다 놔도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내가 단숨에 그 힘을 감지하고 제갈사에게 말을 걸자 제갈사가 잠시 침묵하다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위대한 자여. 어디서 오셨나이까?]

쿠구구구

제갈사의 말을 들은 그 용호의 마물은 잠시 오만한 눈빛으로 제갈사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류그나트 성운(星雲)의 너머에서 검은 달의 부름을 받고 소환되었다. 네가 이 마법진을 만든 존재인가?]

제갈사는 잠시 침음성을 흘린 후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제 마법진이 근처에 있어서 여기에 소환되신 거군요.]

[그러하다.]

용호의 마물은 시퍼런 안광을 흘리며 말했다.

[나, [혈성(血星)을 뒤쫓는 자] 라운캉을 섬기러 찾아온 것이냐? 그러하다면 축복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다면 여기서 네 운명의 끝을 맞이하리라!]

[…….]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자 속으로 아찔해졌다.

‘진짜…… 운이 더럽게 없구나!’

제갈사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각 주요 도시로 순간이동하려고 만들어둔 전이마법진.

그 마법진에 [검은 달] 츠쿠요미가 소환술을 쓴 탓에 이계의 강대한 존재가 이곳에 소환된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별호를 밝히는 저 오만한 모습을 본다면 저자의 정체는 보나마나 하나밖에 없었다.

[옛 지배자]!!

백련교주를 피해서 도망쳤다가 이계의 마신(魔神)을 만나다니 이만큼 운이 없기도 힘든 일이었다. 제갈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혈성을 뒤쫓는 자, 라운캉이시여. 저는 귀하를 섬기고 싶으나 이미 섬기고 있는 신이 있기에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무엇이느냐?]

제갈사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기존에 모시던 신을 배신하고 귀하의 수족으로 들어간다면 더 큰 축복을 주실 수 있사옵니까? 그래 주신다면 견마지로를 다 바치도록 하지요.]

크르르륵…….

라운캉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는 기묘한 소리를 흘리다가 말했다.

[재미있군. 내가 이 자리에서 발톱을 한 번만 휘둘러도 죽어 버릴 필멸자 따위가 감히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냐?]

[제가 모시던 신 또한 무서운 분이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지요.]

[호오. 네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 얼마나 대단한 놈이길래 그러는 거지?]

[백웅이라고 합니다.]

[…….]

라운캉은 뜻밖에 내 이름이 나오자 잠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어째서지……? 그 이름…… 예전에 들어본 것 같은데…… 낯이 익은데 어찌 내가 모르는 것인가. 내가 알 정도면 무명의 신은 아닐지언대.]

그렇게 고민하던 라운캉이 잠시 후 말했다.

[좋다. 네 신의 위격을 인정하여 그자를 버리고 내 권속으로 들어온다면 특별히 은혜를 베풀도록 하마. 어떤가?]

[감사하옵니다. 저는 앞으로 라운캉을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후왓!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제갈사의 기계몸뚱이에 갑자기 이계의 문양이 새겨졌다. 그 문양은 은은한 혈광을 내뿜고 있었다.

문양을 수여한 라운캉이 말했다.

[축복을 내렸으니 이제 너희의 소망을 말하라.]

그 말에 제갈사는 의외인 듯 말했다.

[축복에다가 소망까지 들어주시는지?]

[그 백웅이라는 이름이 왠지 마음에 걸리는군. 너를 후하게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남경까지 순간이동 시켜주십시오.]

[그 정도쯤이야…… 대신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라운캉의 눈에 잠시 탐욕이 감돌았다.

[간만에 인간이 먹고 싶군. 남경에 간 후 신선한 인간을 100명 바치도록 하거라.]

……!!

인신공양을 요구한다구?!

나는 깜짝 놀라서 제갈사에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제갈사, 안 돼!! 이런 제안은 거절…….’

하지만 내 바램과는 달리 제갈사는 흔쾌히 라운캉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입니다. 100명 갖고 되겠습니까?]

[으흠?]

[1000명 치 제물을 바쳐 제 충성을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호오…… 마음에 드는 자세다. 그럼 가거라!]

번쩍!

다음 순간, 나와 제갈사는 거대한 성문이 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제갈사는 그 성문을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제대로 왔군. 여기가 바로 남경이다.]

‘……!!’

마치 대지 전체를 감싸는 듯, 지평선 저 끝까지 퍼져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장벽! 나는 낙양에서도 이런 장벽을 보지 못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갈사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경을 보고 놀란 것도 잠시, 나는 제갈사에게 따질 수밖에 없었다.

‘제갈사! 나를 배신하겠다고? 게다가 1000명을 악신에게 인신공양 하겠다니 무슨 소리냐고!!’

그러자 제갈사는 히죽 웃는 듯했다.

[라운캉은 배신을 하기 위해 직접 네게 해꼬지를 하라 명령하지 않았다. 즉 너만 나의 배신을 ‘용서’ 해주기만 하면 끝나는 문제지.]

‘어?’

[용서해주지 않겠나? 크큭.]

‘…… ‘

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와 제갈사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냥 입으로 배신한다고 해 버리면 딱히 더 이상 손댈 게 없는 것이다. 그저 제갈사가 일방적으로 내게 공양을 바치고 있었을 뿐이고 제대로 제갈사가 나를 신앙하는 것도 아니었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1000명은 따로 생각이 있다. 저 신의 성향을 볼 때 높은 가치의 제물을 바치면 바칠수록 큰 대가를 주는 호방한 놈이니 많이 바치는 게 나아.]

‘그러니까 1000명을 바치는 악행이잖아!! 그 많은 인간을 인신공양해서 어쩌자고.’

[흐흐…… 1000명이 아니라 1000명 치만 만족하면 되잖나? 아무튼 오랫동안 몸을 조종하니 혼력이 소모되는 것 같군. 우선 네가 다시 받아라.]

덜컥!

잠시 후 제갈사가 내게 몸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제갈사는 의식의 깊은 곳으로 잠들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신에게 바치기에 딱 좋은 제물이…… 바로 이 남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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