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7화
구망?
퍼억!!
내가 놈의 이름에 무슨 뜻이 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천지사방에서 수백 개의 시꺼먼 ‘무언가’가 날아와서 회피할 틈도 없이 나를 관통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까 종리권의 공격보다 훨씬 치명적이라는 건 단숨에 나를 관통한 공격이 내 내부에 찌릿한 격통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큭…… 아프다……?! 어떻게?!’
이건 기계의 몸! 애초에 통각 따위는 있을 리가 없는데도 내게 분명히 고통이 느껴졌다.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당황하자 구망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신목(神木)은 네 영혼을 직접 후벼 파서 갉아먹을 것이다. 저항해봤자 더 고통스러울 뿐이니 순순히 포기하도록 하거라!]
신목?
그제서야 나는 나를 거의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구망의 습격이 어떤 모습인지를 인지할 수 있었다. 나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수백 개의 나무줄기였던 것이다. 다만 이 나무줄기 하나하나에는 가공할 힘이 깃들어있어서 종리권의 원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 나무줄기를 타고 흘러오는 것은 바로 신력(神力)!
그 신력이 내 영혼에 직접 침식하면서 고통이란 걸 느끼게 하는 중이었다.
나는 구망의 정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어느 정도 격을 지닌 자인지는 확실히 느껴졌기에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이놈…… 거의 축융만큼 강한 거 같다.’
신력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면 애초에 필멸자로서는 승산이 없는 상대!
이 정도 상대라면 내가 본신의 힘을 갖고 와도 단숨에 없앨 수는 없을 정도다. 하물며 이 고철덩어리 몸으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으리라. 동시에 제갈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깨닫고는 오싹해졌다.
‘이런 놈들이 두 명 더 있고 백련교주와 합공을 한다고……? 안 돼! 절대 못 버텨!’
여기서 내가 그냥 포기해 버리면 제갈사는 무조건 죽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오기와 집념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여기까지 와서 제갈사가 허망하게 살해당하는 건 절대로 참을 수가 없다!
‘못 이기면 못 이기는 대로 어떻게든 해 보는 거다!’
이런 역경에 처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미 대처법 같은 건 대충 감이 잡혔다. 적이 나보다 강한 경우가 부지기수였기에 당장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구망이라고 했냐? 꽤나 격 있는 존재 같은데 제갈사 하나를 상대로 여럿이서 합공하다니 부끄럽지 않냐.]
내 도발에 구망은 잠시 흠칫하더니 말했다.
[우리도 기껏 필멸자를 상대로 합공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악마의 힘은 우리의 예상을 상회했기에 합공을 한 게 잘못되었다 생각지는 않는다!]
[…….]
[그분들의 명을 받고 지상에 왔을 때부터 수치심 따위는 버렸다. 이제 슬슬 죽거라!]
츄와아악
구망이 쐐기를 박듯이 신목의 줄기를 뻗어내서 내 머리를 관통시키려 했다. 나는 그 공격을 보자 마지막 집중력을 다해서 내가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기술을 써 보기로 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와서는 어쩔 수 없다.’
내 몸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오레이칼코스의 팔에 전신의 기운을 집중시키고는 기술을 펼치는 매개체로 삼는다.
이게 실패하면 아마 죽겠지만 그럴 걱정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정도로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데도 이 기술을 실패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훔친다……!!
내 의지와 동시에 내가 자주 펼쳤던 절기(絶技)가 연금술의 팔을 이용해서 펼쳐졌다.
투두둑
쿠르르르…….
다음 순간, 나는 신목의 속박에서 풀려나며 심해로 더 크게 가라앉았다. 내가 속박을 풀어내는 것을 본 구망은 크게 당황한 듯했다.
[어떻게 한 것이지?!]
[…….]
만상지투(萬象之偸)로 신목의 활력(活力)을 훔쳐서 관통속박을 풀었다는 걸 일일이 설명해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설마 했는데 이게 되는구나.’
분명히 이 기계몸에서는 의념도 의념천주도 쓸 수 없는데 어떻게 내가 방금 전에 만상지투를 쓴 거지?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그 의문을 해소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세피로트 - 승화(昇華)!!
번쩍
다음 순간, 나는 세계수의 마력에 휩싸여 그대로 심해를 빠져나와서 원래 내가 도착했었던 백련교주의 정원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것도 됐어!’
세피로트의 3대 영역인 무한, 강화, 승화 중에서 승화를 이용해서 이차원에서 원래 세계로 복귀한 것이다. 승화는 세피로트의 마력을 이용해서 모든 성질과 위치를 뒤바꾸는 변화속성의 능력이었는데 이걸 이용해서 차원을 이동하는 게 가능한듯했다.
츄와악!!
하지만 원래 차원으로 귀환하기가 무섭게 아공간에서 구망의 신목 줄기가 튀어나와서 나를 공격했다.
[으갹.]
나는 재빨리 내 몸을 강화해서 신목을 피해내며 데굴데굴 굴렀다. 구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까 신목의 공격에 강철다리가 다 부서져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제길, 기동력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어떻게 하지? 다리가 없으면 어떻게 움직…… 아!’
그 순간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지금 나는 생명체가 아니잖아?
그럼 굳이 다리가 없어도 일단 날아다니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뜯겨나간 다리 부위에 마력을 집중한 후 세게 분사했다.
[이야압!!]
쿠콰콰
나는 잠시 후 허공으로 떠올라서 한층 손쉽게 신목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를 습격하던 구망은 더 이상 신목의 공격이 안 먹히는 걸 깨달았는지 이차원에서 슥 하고 모습을 드러내더니 찝찝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추한 몰골이로다.]
놈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남들 눈으로 볼 때는 내가 대가리와 몸통, 그리고 오레이칼코스의 팔만 남은 채 사지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마력 분사를 이용해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기괴한 강철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신이 기껏 필멸자를 상대로 결판을 내지 못하는 것보다는 덜 추한 것 같은데.]
[…….]
구망은 불쾌한 기색을 보였지만 흥분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래, 지금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3명은 마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확고한 신의 격을 지닌 존재들!
원래 지상에서는 거의 구경도 할 수 없는 상고시대의 강자들인 것 같았는데 이런 물질계에 기껏 백련교주를 도우려 나온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멀리서 보던 백련교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는 누구지?]
이제야 백련교주와 대화할 여유가 생기는 건가!
백련교주한테 내 정체를 밝히면 더 이상 이런 쓸데없는 싸움은 안 해도 되리라 생각하고 내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나는…….]
그러나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잠시 넋을 놓았다. 방금 전까지 경황이 없어서 살피지 못했는데 눈앞의 광경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뚝. 뚝. 뚝…….
영지주의의 악마로 변이한 자의 수급이 청혈(靑血)을 흘리며 백련교주의 손에 잡혀 있다. 그리고 그 수급은 틀림없는 제갈사의 것이었다.
늦었다.
내가 구망에게 습격당한 그 짧은 시간 동안, 백련교주는 저들과 합공하여 이미 제갈사를 끝장내버린 것이다.
[…… 아, 아아…….]
어, 어째서 이런 일이…….
내 동료들끼리 상잔(相殘)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나 버렸고 나는 그걸 막지 못했단 말인가?!
내가 망연자실해서 멍하니 있자 백련교주는 힐끔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제갈사의 수급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제갈사와 어떤 관계인가? 제갈사에게 그대 같은 부하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
나는 멍하니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 교주…… 왜 제갈사를 죽인 거냐!!]
[그것부터 묻는 것인가.]
[대답해!! 왜 죽였냐고!! 동료잖아!!!]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백련교주는 툭 하고 제갈사의 수급을 땅바닥에 떨궜다. 그러고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 머리를 짓밟아서 터뜨렸다.
푸콱!!
[……!!]
[배교의 교주란 일단 죽이지 않고서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 독고…… 운천!!]
화가 끓어오른다. 아무리 백련교주가 내 전생동료라 하지만 지금 이 행동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구구
내가 분노를 끌어올리자 백련교주는 내 살기를 정면으로 받더니 잠시 의아해했다.
[설마…… 너는……?]
[그래!! 내가 바로…….]
내가 백련교주에게 홧김에 정체를 외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백련교주에게 네 정체를 밝히지 마.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
내 자신의 생각인 줄 알았지만, 심어(心語)로 들려온 그 목소리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멈칫
내가 굳어 버리자 그 목소리가 이어졌다.
‘크큭…… 아주 별난 행동을 해주시는군. 설마 철인의 몸을 빼앗아서 여기까지 따라올 줄이야. 이혼대법을 그 정도 쓸 수 있다면 너도 충분히 배교를 이끌만한 자질이 있다. 아주 잘 와줬어…….’
의문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더 이상 의구심을 품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에는 시간도 여유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지금 내게 심어로 말을 거는 존재만큼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침묵하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백련교주는 일부러 방금 너를 과격한 행동으로 도발한 것이다. 왜냐하면 백련교주가 내 육체를 없애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혼탈겁(轉魂奪劫)의 시전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
‘어떻게든 내 영혼의 소재를 찾아내려고 너를 도발해서 나를 끌어내려 한 것이다. 그래서 빈껍데기에 불과한 시체를 모욕하면서 도발한 것이지.’
그런 거였나?
내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지금 우리의 목표는 이 자리에서 도주하는 것이다.’
가능할까?
저런 괴물딱지들을 상대로 이 고철덩어리 몸으로는 꽤 힘들 거 같은데…….
‘원래라면 무리였겠지. 하지만 네가 아주 좋은 걸 갖고와 준 덕분에 가능할 것 같다.’
설마 이 팔을 말하는 거냐?
‘그래. 설마 했는데 이븐 시나가 환상의 오레이칼코스를 연금하는 데 성공했나 보군. 내가 그 팔 안에 들어갈 수 있게 세쓰로 길을 열어다오. 그러면 내가 조종할 수 있을 테니.’
…….
나는 작전회의를 내면에서 끝마친 후 정면에 있는 백련교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교주…… 다음에 볼 때는 반드시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다음이란 게 있다면 말이다.]
콰과광!!
백련교주는 그대로 엄청난 힘이 담긴 일 장(一掌)을 내게 쏟아부었다. 그 일격은 과거 대웅제국 시대의 백련교주가 지니고 있던 힘과 거의 대등했기에 나는 지난 20여 년간 백련교주가 엄청나게 힘을 키웠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백련교주의 공격이 내 몸에 닿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파앗
나는 갑자기 어딘지 모를 외딴 장소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츠즈즈즈…….
다만 홍사(紅沙)가 흐르는 사막을 보자 이곳이 성(城)의 외곽이라 할 수 있는 험지(險地)라는 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마력을 분사해서 허공에 붕 뜨면서 말했다.
[도망치는 데 성공한 건가.]
그러자 내 내면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어떻게 한 거냐?]
‘세쓰의 힘 자체는 네가 나보다 훨씬 강하지만 다룰 수 있는 세피로트의 위계는 내가 더 높지. 오레이칼코스의 마력 친화성을 이용해서 내가 쓸 수 있는 최대의 귀환주문을 써서 도주한 것이다. 모든 차원간섭을 무시하는 귀환주문을 하루에 딱 한 번 쓸 수 있었거든.’
[…….]
‘흐흐, 네가 내성에 함께 올라오지 못했을 때는 나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해 볼 생각이었는데 설마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그의 흉소(凶笑)를 들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젠장…… 제갈사!! 넌 지금 죽었단 말이야! 지금 웃음이 나와?!]
그랬다.
지금 내 영혼에 들어와서 잠재되어 있는 이 목소리의 주인은 제갈사인 것이다!
제갈사는 끌끌 웃었다.
‘크크…… 방금 싸웠던 그 자들을 상대로 도망친 것만 해도 내 승리다. 백련교주는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내게 보여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패가 남아 있으니까.’
[아니…… 그건 둘째치고…… 대체 언제 전혼탈겁(轉魂奪劫)을 쓴 거야?]
틀림없이 이혼대법 최종비기인 전혼탈겁을 써서 몸을 옮겨갔을 건데 대체 언제 썼던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내가 당황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전혼탈겁도 성취가 있어서 영혼을 바로 옮겨야 하는 게 아니라 유예기간이 있다. 나는 타인에게 감지되지 않는 은령(隱靈) 상태로 대기하다가 원하는 때에 몸을 갈아타면 그만이지. 다만 시간제한은 있어서 꽤 답답했는데 네가 나타난 덕분에 바로 옮겨탄 것이다.]
“…….”
이토록 삶과 죽음이 자유자재라면 제갈사를 죽이는 게 가능은 한 것일까?
백련교주가 그런 도발을 했던 이유가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있다가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 무엇 때문에 백련교주와 싸운 거냐? 그리고 백련교주를 돕던 그 구망인가 하는 놈들 패거리는 또 뭐고?]
‘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때문에 싸웠다.’
[뭐?]
‘나는 너를 끝까지 기다려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백련교주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계를 구원하기를 원하더군. 그리고 그 신적 존재들은 백련교주가 손을 잡은 세력들이다.’
[…….]
‘자, 백웅…… 피차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일단 움직이도록 하지. 너도 그 넝마가 된 몸을 정비해야 하고 나도 새 육체를 찾아봐야 하니까.’
나는 제갈사의 그 말에서 지금 당장은 설명해주기 복잡한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 틀림없이 복잡한 게 얽혀 있으리라. 나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후우, 어디로 가야 하지? 낙양도 개봉도 갈 수 없을 건데…….]
‘당연히 소을성(小乙城)이다.’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이 세계가 심오하게 꼬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천재만재교(千材萬材敎)의 교주인 금천재를 만나라. 지금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건 그놈뿐이다.’
[…….]
어…… 내가 뭔가 잘못 들었나?
‘왜 그러나?’
[그…… 천재만재교라는 게…… 금천재 금만재의 이름을 딴 거냐?]
‘그래. 녀석들은 현재 낙양성주와 쌍벽을 이루는 중원 최대의 세력이다.’
[…….]
소을촌 녀석들이 사이비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