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6화
천계의 투선이 된 저놈이 설마 지상에 강림해서 낙양에서 사천왕을 하고 있다니!
‘하긴 팔선 종리권도 사천왕 하는 마당에 저놈이라고 못 할 것도 없나……?’
세상에 천선급 두 명에게 합공을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것도 동료인 백련교주 만나러 오는 길에!
치지직!!
초무린은 훗 하고 웃으며 자신의 채찍을 꺼내 들었다. 그 채찍에 강대한 뇌령지기가 맺히는 게 보였고 그는 진심 어린 살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내 투창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괴물 같은 놈이군. 하지만 사지를 찢어발기면 어쩔 수 없겠지.”
나는 초무린의 살인예고를 듣고도 놀랍지 않았다. 원래 저런 놈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뭘 써서 날 찢어발길 셈이냐? 팔황경천신공(八荒驚天神功)? 무환천랑백팔식(霧換天朗百八式)?]
“……!!”
초무린은 막 출수하려다 말고 경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원영에 묶여서 옴싹달싹 못 하는 상태에서도 여유롭게 말했다.
[아, 어차피 네가 쓸 기술이 뭔지는 알고 있다. 팔황천마(八荒天魔)라도 쓰면 이깟 고철덩어리 몸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나?]
뇌신류 무공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한 종리권은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서 멀뚱히 보고만 있었지만, 뒤편에 있던 초무린의 표정은 납빛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전에 없이 찝찝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글쎄. 네가 익힌 그 무공은 나도 익히고 있다고만 말해두지.]
“웃기지 마라. 네가 어찌 뇌신류의, 나의 독문 무공을 알고 있단 말이냐!!”
초무린이 격렬하게 외치자 나는 유들거리며 말했다.
[못 믿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한 번 무공을 출수하면 네놈의 팔황천마 따위는 가볍게 파해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뭐라고?”
[아쉽게도 나는 종리권의 술수에 묶여서 옴짝달싹할 수 없군. 네가 대결을 피하고 뒤에서 습격해도 죽을 수밖에 없겠어.]
“……“
나는 쐐기를 박듯이 초무린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랑진군한테도 깨지고 여동빈에게도 깨진 패배자가 할 수 있는 건 저항불가능 한 상대를 기습하는 것 외에는 없잖은가?]
“……!!”
으드득!!
초무린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무린은 다음 순간 안광을 크게 빛내며 독문절학을 펼쳤다.
절대지경(絶對之境)
팔황천마(八荒天魔)!!
쿠콰콰쾅!!
수십만 개의 편영(鞭影)이 허공을 수놓으며 거대한 회랑이 다시 한차례 크게 부서졌다. 방위를 상관치 않고 모든 것을 부수는 듯한 그 어마어마한 광역공격에 마치 내궁 전체가 무너질 것만 같았고, 하나하나가 섬찟할 정도의 강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팔황천마는 종리권 또한 노리고 있었기에 종리권은 어쩔 수 없이 술법의 전개를 풀고 순간이동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삽시간에 원두해영진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된 종리권은 기가 막힌 지 초무린에게 외쳤다.
“이봐!! 이게 무슨 짓이냐!”
“종리 선배는 끼어들지 마시오!!”
초무린은 눈이 벌겋게 살기로 달아오른 채 내게 채찍을 겨누었다.
“이놈, 그렇게까지 자신 있다면 한판 붙자!! 네놈이 얼마나 고수길래 감히……!!”
초무린 덕에 원두해영진의 속박에서 풀려난 나는 초무린의 말에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흐음…… 내가 얼마나 고수인지 궁금한가 보군.]
“네놈의 말이 거짓부렁이라면 네놈의 영혼을 빼가서 천계에서 가장 깊은 감옥에 가두고 말 것이다. 생사결을 준비해라!!”
초무린이 호통을 내질렀다. 완연한 임전태세를 취하고 있던 초무린을 보고 있던 나는 이윽고 말했다.
[싫은데.]
“뭐?”
[내가 언제 싸워준다고 말이나 했나?]
나는 다음 순간 세쓰의 마력을 가득 끌어올리며 오레이칼코스의 팔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세피로트의 술식이 오레이칼코스의 힘을 빌려서 전개되는 게 느껴졌다.
세피로트의 이름으로 명한다.
초무린과의 거리를 무한으로 벌리며 위쪽으로 승화한다!
파앗……!!
엄청난 속도로 초무린과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며 두 천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세피로트의 술법이 제대로 발동한 것이다.
“이 개 같은 놈!!”
번쩍
마지막 단말마와 같은 외침과 함께 번갯불 한 조각이 날아들어서 내 허리와 어깨를 한 번씩 스쳤다. 빛의 원통처럼 날아온 번갯불이 스친 곳은 그대로 관통당해서 철이 그대로 녹아 버렸기에 엄청난 위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공간을 이동하면서 큭 웃었다.
‘그래도 팔황천마의 위력은 꽤 대단하군. 설마 그 찰나에 날 공격하다니.’
싸워서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지금 싸우는 건 하책이다.
천선 둘을 상대하며 힘을 얼마나 소모할지도 모르고 한시바삐 제갈사와 백련교주를 만나야 하는 상황!
초무린을 도발해서 빈틈을 타서 포위를 돌파하는 게 최선책이었다.
슈파앗
세피로트의 술법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벌린 게 아닌지, 나는 잠시 후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 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우우…….
새하얀 백련(白蓮)이 가득 피어 있는 신령스러운 분위기의 신전.
내가 도착한 낙양 내성 상층의 인상은 바로 그것이었다. 마차 너덧 대가 지나다녀도 넉넉할 것 같은 거대한 통로가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었고 양옆에는 백련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나는 동시에 모든 영력이 안정적으로 가라앉아 있어서 몹시 마음이 편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딱 백련교주 취향이군.’
나는 이 백련에 뭔가 주술적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하나하나 분석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사천왕들이 쫓아오기 전에 빠르게 통로의 앞으로 달려서 내전으로 향했다.
타다닷
약 일 리 정도의 거리를 달렸을 때 통로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광대한 영역의 광장이 탁 트인 채 펼쳐져 있었고, 지금까지보다 더한 백련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사방천지가 백련이나 다름없는 이 공간은 예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본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
이미 한탕 거대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어지럽혀진 백련의 광장.
그 위에는 피투성이가 된 제갈사가 서 있었으며, 그 앞에는 백련교주가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사뭇 달랐다.
‘제갈사의 저 모습은…… 중마(衆魔)!’
영지주의의 악마이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인(魔人)의 모습!
극한으로 발달한 염마술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최강급 개체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는 제갈사였다. 인간의 형태와는 크게 달랐지만 나는 예전에 제갈사가 중마로 변신한 걸 본 적이 있었기에 저게 제갈사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제갈사를 피투성이로 만든 듯한 백련교주의 모습 또한 사뭇 인상적이었다.
원영신의 혼돈화!
몇 번이고 전생에서 보아왔던 그 형태는 백련교주가 취할 수 있는 최강의 모습이었다. 강대한 염마로 변신한 제갈사와 마찬가지로 백련교주 또한 인외(人外)로 변하여 마왕에 못지않은 힘을 사역할 수 있는 것이다. 저 모습이 된 백련교주는 사실상 신을 제외하고는 지상최강의 존재라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방금 전까지 어떤 규모의 전투가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제갈사가 강해도 저 모습이 된 백련교주를 상대로는 역부족이다……!!’
무의 극한에 이른 진소청 정도가 아니면 백련교주를 당해낼 존재는 사실상 내 동료 중에 없다고 할 수 있으리라.
설마 제갈사를 죽인 건 아니겠지?
내가 당황해서 멈춰있을 때였다.
백련교주가 천천히 말했다.
[훌륭하다…… 제갈사…….]
[…….]
[설마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그것이 전생자의 지식을 공유하는 자의 특권인 것인가?]
백련교주의 말에도 제갈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기식이 엄엄해서 대답할 힘조차 남지 않은 듯했다. 이미 그는 산송장에 가까웠다.
아마도 방금 전에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이리라.
[일대일로 싸웠다면 내가 졌겠지…….]
파앗
다음 순간 백련교주의 근처에 또 다른 세 명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적 존재로군!’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데다가 빛무리가 그들을 휘감고 있어서 제대로 된 형상을 볼 수가 없었다. 아마 보통 인간들은 저 존재들을 보는 순간 미쳐 버릴 게 분명했다.
나는 그 존재들을 보는 순간 세쓰를 통해 그 힘을 감지했고, 동시에 경악하고 말았다.
[……!!]
내, 내가 방금 뭔가 잘못 느낀 걸까?
이런 게 가능한 건가?
‘말도 안 돼!’
백련교주의 근처에 나타난 빛무리를 휘감은 저 세 명의 신적 존재의 힘은 - 마왕을 초월(超越)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비교는 의미가 없으리라.
틀림없다.
정체를 모르는 저 셋은 모두 [옛 지배자]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팔부신중을 자주 마주쳐보았기에 마왕의 수준이 보통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창힐이 소멸된 상태에서도 그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들이었고 지상의 일반적인 생명체들은 거의 항거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이 현세에서 팔부신중을 넘어서는 존재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저 백련교주를 둘러싸고 출현한 세 명의 존재들은 하나같이 팔부신중의 마력(魔力)을 가볍게 초월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새벽의 명성]을 흡수해서 십이율주의 본거지마저 힘으로 뚫고 들어왔던 마왕 아수라의 강화판쯤 되어야 비교가 가능할 정도였다.
만일 신력이 없는 상태에서 마주친다면 단 하나라고 할지라도 나와 내 전생동료들을 전멸시킬지도 모르는 자들이 셋씩이나 있다니!
‘저 셋이라면 팔부신중이 다 모여 있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 도대체 저만한 자들이 어디서…….’
경과는 모르겠지만 제갈사의 패배도 납득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혼돈화를 한 백련교주와 더불어 세 명의 상위존재가 한꺼번에 덤볐다면 설령 [옛 지배자]라 하더라도 멀쩡할 수 없으리라.
아니 그것보다 저놈들의 정체가 뭐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디서 온 뭐 하는 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갑자기 세 명의 존재 중 하나가 나를 발견하더니 슥 하고 시선을 향했다.
틀림없는 살기……!!
그 농밀한 살기를 인지한 순간, 나는 내 전신이 통째로 이공간(異空間)에 빨려 들어감을 알 수 있었다.
슈슉!
[……!!]
마력을 뿜어봐도 저항할 수 없다.
‘이거…… 잘못 걸린 건가…….’
아무리 강한 존재라지만 그저 시선만으로 타 존재를 이차원에 보낼 수 있을 정도란 말인가?
나는 그동안의 경험에서 지금 내게 살기를 보낸 자가 결코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쿠르륵!!
‘이건…… 물?!’
나는 단숨에 바다의 심해(深海)로 빨려 들어온 듯했다. 기계의 몸이라 호흡곤란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전신에 강대한 압력이 가해지는 걸 알 수 있었고, 이 압력은 보통 생명체라면 단숨에 몸이 찌그러질 정도였다. 심지어 이 기계몸조차도 단숨에 뒤틀리려 하고 있었기에 나는 위기감을 느끼고는 재빨리 세쓰를 이용해서 염원을 발현했다.
세피로트의 힘으로 이 기계몸을 [강화]한다!!
끼기긱
다행히도 내 염원이 먹혀서 잠시 후 기계몸의 손상이 멈추는 게 느껴졌다. 밖에서 가해지는 압력보다 더 강한 보호막이 내 몸에 덧씌워져서 압력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숨 돌리자 정체 모를 영언(靈言)이 들려왔다.
[저 제갈사와 비슷하지만 다른 힘을 쓰는 자인가. 아마 동료겠지.]
부그르르르
내 맞은편의 심해에 출현한 듯한 그 존재는 팔짱을 낀 채 약간의 거품을 내었다. 그자는 눈에 상당한 살기를 품은 채 나를 노려보았다.
[이제 와서 그분들의 계획에 더 이상의 변수를 만들 수는 없다. 여기서 죽어라.]
[뭐라고.]
[살(殺)!]
다음 순간 그 존재의 외침과 함께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투웅!!
퍼엉
나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압력에 튕겨지듯이 뒤로 날아갔다. 방금 전까지 내 몸에 가해지던 심해의 압력 따위는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강대한 힘이었고 세쓰로 만들어낸 방어막조차도 일시적으로 깨진 듯했다. 동시에 빙글빙글 돌면서 내 한쪽 기계팔이 압력에 뜯겨져서 심해 저편으로 떨어져 나갔다.
[우욱.]
뭐야 방금 그 충격은?!
다행히도 오레이칼코스의 팔은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고 멀쩡했지만, 몸의 다른 부위는 다 엉망이 되어 버린 듯했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대자 다시금 빛무리와 함께 내 앞에 출현한 존재가 놀란 듯 말했다.
[방금 전은 진심으로 공격했는데 그런 내 권능에도 버틴다고? 정말 보통 놈이 아니구나!]
[제기랄. 네놈은 대체 누구냐? 다짜고짜 공격해오다니 이런 빌어먹을!!]
[…….]
내가 욕지기를 내뱉자 그 존재는 잠시 침묵하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기계의 몸을 가진 자여. 내 일격을 받아냈다면 내 이름을 들을 자격이 있으리라.]
츠즈즈즈
그 존재의 양손에서 시퍼런 청광(靑光)과 짙푸른 녹광(錄光)이 감도는 게 보였다. 잠시 후 그자가 출수(出手)하는 게 보였다.
[나는 구망(句芒)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