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5화
내 말에 옆에 있던 환지광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말이 되는 것 같네만…….]
“설마 천하에 이름 높은 도가의 전설인 중화팔선 중 하나인 대라신선 종리권 님께서 이름을 거꾸로 써서 권리종이라고 가명을 댔다고 할 참입니까? 설마 중화팔선이 그렇게 유치한 위장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
환지광이 부르짖자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눈앞에 있던 권리종이 마치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이죽거렸다.
[그렇다고 하는데 설마 종리권은 아니시겠지.]
“……아니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고…… 흠흠.”
[장과로 어르신도 이 사실을 알려나.]
“으윽.”
권리종은 무척이나 민망해하다가 내가 팔선 장과로를 언급하자 이윽고 버럭 외쳤다.
“그래!! 내가 바로 중화팔선 종리권이니라!!”
퍼엉!!
이윽고 권리종으로 둔갑해 있던 위장술이 풀리고 팔선 종리권의 진짜 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라신선다운 강력한 영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준엄한 신선의 기운이 사방을 가라앉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환지광은 마치 기절할 듯한 표정이 되었다.
“으악…… 진…… 진짜 팔선이…….”
그렇다. 예상했던 대로 눈앞의 권리종은 팔선 종리권!
내가 전생하면서 몇십 번이나 마주쳤던 그 대라신선인 것이다.
종리권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놈! 어떻게 내가 팔선 종리권이란 걸 알아챈 것이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답했다.
[아니…… 이름을 거꾸로 대놓고 모르기를 바라는 게 염치없지 않소?]
“……“
[그리고 인간의 모습에 영기를 감춰뒀지만, 당신이 어느 정도 힘을 갖고 있는 지는 다 느껴졌소. 그 모든 걸 종합해볼 때 팔선 종리권이라고 짐작했소.]
“으음…… 내 힘을 감지할 수 있다 이 말이지? 완벽하게 인간의 형상으로 둔갑했는데 그런 내 힘을 감지할 수 있다고……?”
아마 세쓰 덕에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시치미를 떼고는 말했다.
[그렇소. 근데 나야말로 질문 하나 합시다.]
“뭐냐?”
[중화팔선은 백련교보다 훨씬 위에 있는 천계의 대선이오. 그런 중화팔선이 뭐가 아쉬워서 지금 백련교주 밑에서 사천왕이나 하고 있는 것이오?]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전생을 많이 하면서 자주 봐서 그렇지 사실 중화팔선의 힘은 인간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팔선 최강인 검선 여동빈을 제외하고 다른 칠선의 힘 또한 백련교주를 충분히 죽일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그런 천계의 대라신선 중 한 명이 기껏 백련교주의 부하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내 질문에 종리권은 자신의 뺨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원래는 여동빈이 구천현녀의 명으로 인간을 돕기로 했는데 그가 막중한 임무를 띠고 파견을 나간 터라 임시로 내가 와 있는 것이다!”
[여동빈이?]
“으음…… 어찌 됐든 더 이상은 말할 수가 없다! 너희는 여기서 멈출지어다!”
쩌정!!
다음 순간 팔괘진이 더욱 강렬하게 펼쳐지면서 시공간이 강하게 폐색(廢塞)되는 게 느껴졌다. 그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압박 때문에 환지광은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풀썩
환지광이 혼절하자 종리권은 한 손으로 수인을 맺은 채 말했다.
“지금 낙양성주는 위에서 방해받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너희가 급한 용무가 있다 하더라도 출입시켜줄 수 없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게 하라.”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말할 수 없다.”
[…….]
종리권은 말해주지 않으려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갈사…….’
제갈사는 나보다 훨씬 앞서가서 백련교주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백련교주를 만나기 전에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손쉽게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위험해. 빨리 제갈사와 백련교주를 찾아가서 말려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종리권을 노려보며 말했다.
[종리권, 비키시오. 어차피 내 용건 또한 백련교주를 만나는 것이니 나를 막을 필요 없소.]
“웃기는구나. 네가 비켜달라면 비켜줄 정도로 팔선 종리권이 만만해 보이는가?”
파파팟
종리권은 되레 호승심이 일어났는지 씨익 웃으며 수인을 다시 빠르게 맺었고, 나는 그와 동시에 내가 서 있는 곳의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종리권과 서서히 거리가 멀어지는 걸 느꼈다. 아마도 팔괘진과 다른 상위술수를 동시에 시전 하면서 내가 있는 곳의 시공간을 조작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점차 거리가 멀어지면서 종리권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아라, 기계덩어리야. 네놈이 천선(天仙)의 술수를 파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보거라!]
쿠구구구…….
시공간이 폐색되면서 천지사방이 어두워진다. 팔괘의 힘이 극으로 향하면서 내 오감을 모두 혼란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허공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고,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놀아줄 시간이 없다, 종리권!]
정말로 종리권한테 시간 뺏길 때가 아니다.
동료들끼리 죽고 죽이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드득
나는 아까 이븐 시나에게서 받은 오레이칼코스의 팔에 힘을 주어서 강하게 쥐었다. 얼마나 대단한 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오레이칼코스의 팔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쥔 채로 그대로 모든 힘을 팔에 집중시킨 채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구웅
한순간이지만 세쓰로 빨아들인 거대한 힘의 덩어리가 주먹에 가득 응축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이었을까? 그리고 주먹이 바닥을 타격하는 순간 사방에 가득하던 암흑이 마치 안개가 흩어지듯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쿠과과광
콰과광!!
엄청난 파괴음과 함께 잔해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회랑이 단숨에 거미줄처럼 한꺼번에 깨지면서 거대한 충격파가 장내를 휩쓸었고, 그 충격파에 종리권의 신형이 뒤로 날려가는 게 보였다. 종리권은 날려가면서 크게 당황하는 듯했다.
“아, 아니 설마 이 정도 힘을…….”
슈슉!!
종리권은 벽에 부딪혀서 피떡이 되기 직전 어디론가 순간이동해서 사라진 듯했다. 역시 팔선쯤 되면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충격파만으로 죽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쓰의 마력을 발동시켜 허공에 떠 있던 나는 찰나 동안 뒤편에 있던 환지광을 쳐다보았다.
‘경공으로 버틴 모양이지만 저 녀석은 수준이 너무 낮아. 다음 충돌 때 무조건 죽겠군.’
내가 종리권과 진심으로 싸운다면 환지광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죽게 될 게 뻔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오레이칼코스의 팔을 뻗어서 세쓰의 힘을 가득 끌어모았다.
우웅
‘세쓰란 세피로트의 힘을 끌어오는 내공과 같은 것. 그리고 세피로트의 힘은 3분파로 나뉘니 무한, 승화, 강화…….’
그렇다면 단순히 이 힘을 완력으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 속성에 맞춰서 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세계에 떠올라있는 삼각의 도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건 어쩌면 브라흐마의 트리무르티 같은 걸지도 몰라.’
이것은 종류가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삼재(三才)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동방의 삼재는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것이고 트리무르티와 세피로트의 삼재는 전혀 뜻하는 바가 다르다. 그러나 그 숫자가 삼(三)을 가리키는 것은 틀림없이 세계의 근본적인 원리와 상통해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내 직감을 따르리라고 생각하며 트리무르티를 다룰 때의 요령으로 세피로트의 삼극(三極)에 조심스럽게 정신을 집중해서 접근했다.
츠즈즈
세피로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신에 뻗어 있는 세쓰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한층 강하게 세계수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감각을 느끼자 종종 세피로트를 사역하던 술사들이 말하던 ‘세피로트에 다가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치지직
삼각(三角)이 일부나마 내 뜻대로 길게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세피로트의 힘을 변형시킬 준비가 되었다는 걸 깨닫고는 환지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리를 무한(無限)에 가깝게 하며 환지광의 육체를 강화(强化)시킨다.
슈팟!
내 염원(念願)이 움직임과 동시에 환지광의 몸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보였다. 나는 환지광이 저 멀리 지평선까지 날아가 버렸다는 걸 알아차렸고 성공적으로 그의 몸에 방어막을 덧씌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을 리는 없을 것이다.
[좋아.]
처음으로 제대로 세피로트의 술(術)을 사용한 것이다.
‘소녀가 오제와의 거리를 무한으로 만드는 걸 보고 응용해 보았는데 꽤나 써먹을 만한 활용법이군!’
소녀와 달리 진짜로 거리를 무한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마력의 양에 따라 위력을 높일 수 있으리라. 내가 내심 흡족해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파바밧
갑자기 내 주변에 수많은 부적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시금 순간이동의 술수로 나타난 종리권이 이번에는 자신의 손에 커다란 부채 같은 보패를 들고서는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만만히 볼만한 자가 아니었구나! 어떤 마계(魔界)에서 온 마왕인가?”
[나는 마왕이 아니오.]
“그 강대한 마력을 사역하면서 마왕이 아니라고? 허튼 소리를…….”
종리권이 불호령을 내리듯 부채를 크게 휘둘렀다.
“사악한 존재여, 환란의 시대에 기천의 요괴를 소멸시킨 내 비장의 술법을 받아보라!!”
팔선지술(八仙之術)
원두해영진(元斗解靈陣)!
퍼퍼퍽
[……!!]
다음 순간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길게 늘어난 수백 개의 부적들이 내 몸에 소리소문없이 박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인식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회피도 방어도 할 수가 없었다.
‘신들이 하는 것처럼 시공간을 조작한 것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이건 뭔가 다른 술법이다.
내가 수백 개의 기다란 부적에 관통당한 채 생각에 잠기자 종리권은 수인을 맺은 채 말했다.
“그대를 묶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의 원영(元靈)!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술법을 물려주겠다.”
[원영이라고?]
“이 술은 한 번 발동하면 나조차 멈출 수가 없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으음……!!]
나는 종리권의 말에 이 술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를 관통하고 있는 이 부적들은 부적처럼 생겼을 뿐 종리권의 영혼 그 자체! 그가 천 년 이상의 세월동안 갈고닦은 영력(靈力) 그 자체가 형상화된 것이다.’
술법을 통해서 가공한 게 아닌 순수한 원영이 나를 공격했다는 건 힘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의 해주(解呪)도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또한 원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술방어를 관통하는 사기적인 특성 또한 갖고 있으리라.
대신 이렇게 파괴력이 강한 원천의 술수는 시전자조차 그 흐름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기에, 종리권 또한 이런 강력한 술수는 생사대적을 상대할 때나 쓰는 것이리라. 한번 자신의 손끝을 떠나면 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암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는 건 종리권은 지금 원두해영진을 시전해서 나를 진심으로 죽이려 한다는 뜻인가?
‘과연 만당시대의 혼란을 헤쳐온 팔선…… 평소에는 허술해 보여도 전투에 있어서는 백전노장이 따로 없구나.’
지상의 인간술법사는 꿈도 못 꿀 정도로 강력한 천선의 술수!
이것이 바로 천선중에서도 강력하다고 칭송받는 팔선의 힘이리라.
나는 종리권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만두시오. 난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소.]
내 말에 종리권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뭐라? 마치 나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나는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나는 그저 제갈사와 성주의 싸움을 말리고 싶을 뿐이오. 당신이 내 행보를 가로막는다면 업보를 감수하고서라도 죽일 수밖에!]
어찌 되었든 인간의 편이며 선한 성향을 지닌 팔선을 죽이는 건 내키지 않지만 지금 내 동료들이 더 우선이라면 살생도 피하지 않겠다. 지금 팔선의 사정을 봐주기에는 너무나 위중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 말에서 어느 정도 진심을 느꼈는지 종리권이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그대는 성주와 제갈사가 싸울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는 당신은 확신하지 않는 거요?]
“나는 그저 성주의 처소에 외적의 침입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데 그들이 싸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겠다.”
[비켜주시오. 나는 원래 제갈사와 동행해서 찾아온 몸이오. 사정이 있어서 이 기계 몸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니.]
“……“
그때였다.
“종리권, 뭘 망설이는 것이오?”
낭랑한 외침과 함께 등 뒤에서 거대한 기운이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투확
[윽!!]
나는 내 가슴을 꿰뚫고 있는 새파란 창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뒤편에서 던져진 투창(投槍)이 나를 기습한 것이다. 그리고 뒤편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자가 서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그자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낙양성의 사천왕(四天王)인 이 초무린(肖無燐)이 저놈을 고철로 만들어드리지.”
[…….]
나는 어이가 없어서 뒤를 보며 말했다.
[이런 개 같은…….]
저건 틀림없이 28회차에서 만났던 천계의 투선 초무린!!
설마 뇌신류 초대종사인 팔황뇌신 초무린이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