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5권 4화
[…….]
내가 침묵하자 이븐 시나가 씩 웃었다.
“뭐 좋네. 생 제르맹의 친구라면 틀림없이 재밌는 놈일 테니 내 특별히 인심 쓰지.”
[인심을 쓰다니 무슨 소리요?]
“이 강철 팔을 그대로 붙이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 하지만 이 흔해 빠진 양산형 안드로이드의 팔이라 해봤자 그 강도든 성능이든 형편없지. 그래서야 불편하지 않겠나?”
[……?]
“따라와 보게. 흐흐흐.”
나는 이븐 시나를 따라 공방 안쪽으로 갔다. 그리고 커다란 철로(鐵爐)가 놓여 있는 위쪽 접시 같은 곳에 웬 기계로 된 사지(四枝)가 한쪽씩 있는 게 보였다. 팔 두 개, 다리 두 개씩 총 4개가 있었다.
이븐 시나는 그중에서 팔을 한 짝 집어 들더니 말했다.
“원래 팔 대신에 이걸 붙여주겠네.”
은은한 백금빛이 감도는 기계 팔!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나는 의심을 늦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건 또 뭐요? 수상한 장치가 달려 있진 않겠지?]
이븐 시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흐하하. 아니라곤 못 하겠는데.”
[뭣이.]
내가 놀라자 이븐 시나가 말했다.
“놀라지 말게. 이건…… 바로 오레이칼코스로 제작된 기계 팔일세!!”
[……?!]
오, 오레이칼코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말했다.
[오레이칼코스……?! 고대 아틀란티스 대륙의 제왕을 녹여서 쇳물로 만들어서 기계 팔로 만들었단 것이오?!]
“……?”
[어찌 그렇게 잔인한 짓을…… 괜히 오스만의 궁정마도사가 아니었군.]
내가 잔인함에 혀를 내두르자 이븐 시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 뭔 소리 하는 건가? 오레이칼코스라고 하면 당연히 절대금속 오리칼쿰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거잖나.”
[오리칼쿰?]
“이거이거…… 초고대 유물학 지식은 있으면서 오리칼쿰의 전설을 모르다니 대체 뭐 하는 자인가. 재밌긴 하지만.”
이븐 시나는 끌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건 바로 절대금속. 연금술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금속일세. 금보다 유연하지만,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고 자가수복 성질도 있으며 사람이 먹으면 장로불사(長老不死)하게 되며 미량의 금속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마력을 저장할 수 있지. 이론상 이것보다 더 뛰어난 금속은 존재할 수 없어.”
[……!!]
“손가락만큼의 양이라 할지라도 황금 일천 덩이보다 더욱 비싼 가치가 있지. 그런 걸로 통째로 팔을 만들었다 이 말일세.”
그, 그런 게 있었다고?!
나는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그런 걸 나한테 공짜로 준다고? 믿을 수가 없는데.]
“흐흐. 내가 볼 때는 마핵이 박살 났는데도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니는 자네부터가 신비스럽거든. 그런 신비한 존재가 오레이칼코스의 팔을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네.”
[…….]
“내 감이지만 지금 그 몸은 자네의 진짜 능력을 거의 끌어내지 못하고 있어. 그렇지 않은가? 딱 봐도 현 낙양성주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자 같은데 고작 치안대장 따위한테 한 팔을 잘렸다는 건 이상하거든.”
나는 비교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븐 시나의 통찰력에 내심 놀랐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낙양성주에 버금간다는 건 어떻게 눈치챘소?]
“그야 자네 몸에서 끓어오르는 그 영기(靈氣)만 봐도 알 수 있지. 수천 년 묵은 대마도사에게서도 자네만큼의 강력한 영력은 본 적이 없네. 심지어 기계의 몸에서 그만한 영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건 실제 힘이 더 강력하다는 뜻이지.”
[…….]
역시 이 자 또한 기인이다.
세쓰를 이용해서 세피로트의 힘, 세계수의 마력을 끌어오고 있는 걸 눈치채다니!
“단언할 수 있네. 자네가 이 오레이칼코스의 팔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이 대륙에서 성주 외에는 자네를 상대할 자가 없을지도 몰라.”
[흐음…… 그런가.]
“크크, 놀라지도 않는군. 역시 자넨 원래부터 강력한 자였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야…… 근데 역시 이런 걸 공짜로 받기엔 양심에 찔리는군. 내가 뭔가 당신에게 대가를 치르는 게 좋을 것 같소.]
나는 꽤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날로 먹는 걸 좋아하는 나라지만, 이 팔의 가치가 국가 1개의 가치보다 훨씬 비싸다는 건 대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숱하게 인과율의 법칙을 겪어왔기에 이런 걸 함부로 날로 먹으면 나중에 재앙이 올 확률이 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만한 물건이라면 나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자 이븐 시나가 씩 웃었다.
“정 그렇다면 한 번 서방으로 가서 아나톨리아의 사왕(死王)을 쓰러뜨려 줄 수 있겠나? 자네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사왕? 그건 또 뭐요.]
“죽음을 거부하고 일어난 [옛 지배자]의 권속이자 마왕일세. 무척 강력한 존재라서 여태껏 아무도 이기지 못했네. 부담스럽다면 거부해도…….”
또 성가신 일이 하나 추가된 건가?
어차피 마왕은 다 죽여야 했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대꾸했다.
[알았소. 시간 나면 가서 없애주도록 하지.]
“…….”
그러자 이븐 시나가 멍하니 있다가 파안대소했다.
“크하하! 동네 마실 나가는 건가? 마왕조차도 눈에 차지 않을 정도란 건가? 재미있어.”
[아무튼 좋소. 빨리 팔이나 붙여 주시오.]
“그러지.”
우우우웅
치지지직
잠시 후 이븐 시나가 여러 가지 강철로 된 기구를 이용해서 내게 오레이칼코스의 팔을 용접했다. 단단하게 팔을 붙인 후 잘 움직이는지를 시험해 본 이븐 시나는 만족스러워했다.
“자네는 내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일세. 이번 기회에 팔다리 다 오레이칼코스를 붙여보는 게 어떤가?”
[됐소. 나한테는 이거 하나만으로 충분할 것 같군.]
“흐음, 그래? 그럼 잘 가게.”
[그럼…….]
나는 발을 돌려 나오려다가 문득 멈칫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과거에 노예시장을 해방했을 때 오스만 제국에서 온 여자애가 나한테 뭔가 부탁했었는데…….’
예니체리의 대장을 쓰러뜨려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 의뢰를 받고도 미처 수행하지 못하고 이세계로 가버렸기에 이제야 생각난 게 조금 어이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했다.
[이븐 시나. 혹시 아나톨리아에서 왔다는…… 그…… 황실직속 마도연구가인 히야스민이라는 아이를 아시오?]
그러자 이븐 시나가 깜짝 놀랐다.
“히야스민을 아는가?”
[일전에 그 아이한테 부탁을 들었는데 아나톨리아에 있는 타락한 예니체리의 대장을 죽여달라는 의뢰였소. 내가 워낙 오래전 일이라서 까먹고 있었는데 아나톨리아라는 얘기를 들으니 지금 생각이 났구려.]
“허허…… 그런가…….”
이븐 시나는 잠시 눈을 감고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히야스민은 내 손제자(孫弟子)일세. 재능이 아주 뛰어난 아이였고 지금은 오스만 제국을 이끄는 대신(大臣)이 되었네.”
[그랬군.]
“그리고 그 일은…… 자네 대신에 동방에서 온 영웅이 예니체리의 대장을 쓰러뜨렸다고 알고 있네. 그자의 이름은 진소청이라 들었네.”
[……!!]
진소청!!
그가 오스만 제국으로 가서 사악한 존재를 척결했단 말인가?
‘진소청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뜻밖의 소식을 듣자 나는 반가움과 동시에 진소청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사실 제갈사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백련교주 외의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상념에 잠기자 이븐 시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 추측이지만 자네는 이총이 아니지 않은가?”
[무슨 말이오?]
“아마도 자네는…… 이 동방에서 소을성주라고 불리는 존재가 아닐까 싶군. 이름이 백웅이라던가.”
[…….]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표정이군. 간단하네. 히야스민이 내 손제자이기에 내게도 그 일화를 얘기했었기 때문일세. 그리고 히야스민이 그 의뢰를 했던 존재라 한다면 소을성주 백웅 뿐이지.”
나는 딱히 속일 생각은 없었기에 선선히 대답했다.
[맞소. 내가 백웅이오.]
“왜 이총이라는 이름을 써서 내성에 들어왔는가?”
[큰 이유는 없소. 저 바깥에 있는 환지광이란 놈이 내가 백웅이라고 하니 믿지를 않더군.]
“크크, 그럴 만하지. 아무튼 대영웅을 만나 봬서 반갑네.”
이븐 시나는 낄낄 웃더니 말했다.
“심심하면 찾아오게. 자네라면 언제든 나머지 팔다리를 공짜로 줄 수 있으니.”
[됐소. 나는 언젠가 진짜 육체로 귀환할 테니까.]
“기다리지.”
나는 이븐 시나의 공방에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지광은 내 새로운 팔을 보자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저 성질 더러운 늙은이한테 선물을 받다니 대단하시군요.”
[환지광. 너는 주제 파악을 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응?!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그냥 그렇다고.]
나는 약간 한심한 눈으로 환지광을 쳐다보았다. 이븐 시나는 내 전생동료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걸출한 인물이었고 사실 환지광 따위는 이븐 시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근처에 있는데도 진가를 파악하지 못하고 하찮은 무공으로 나대는 환지광이 한심스럽게 보인 것이다.
나는 환지광에게 말했다.
[이만하면 볼 일은 다 끝난 것 같군. 성주에게 데려다 줘.]
“아, 알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나는 환지광을 따라 걸어가며 생각했다.
드디어 간만에 백련교주를 보게 된다……!!
‘제갈사의 분위기가 이상했는데…… 걱정이군.’
제발 별일 없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일의 경우 어떻게든 내가 그들을 말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참 동안 환지광을 따라서 걸어서 체감상 십여 리 이상의 거리를 이동했을 때였다. 꼬불꼬불한 나선의 회랑을 따라서 걸어 올라가고 있던 환지광이 곤혹스러워했다.
“뭐지? 원래 이 정도 걸으면 성주님의 방에 도착했는데…….”
[왜 그러는가?]
“뭔가 이상합니다. 같은 곳을 반복해서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나는 환지광의 말에 주변의 지형을 잠시동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큰일 났군.]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나는 이 진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팔괘진(八卦陣)이다.]
전생하면서 몇 번이나 보아왔던 그 전설의 진법이 지금 이 내성의 회랑에 펼쳐져서 우리를 결계 안에 가둔 것이다.
팔괘진이라는 내 말에 환지광이 깜짝 놀랐다.
“팔괘진?! 원래 그런 건 여기에 없었습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원래부터 있었는데 네가 지나갈 때만 발동 안 했을지도 모르지.]
“음……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진법을 파해하는 법을 알고 있나?]
내 질문에 환지광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기초는 압니다. 하지만 기문진법이란 어설프게 해제하려고 달려들면 더 위험한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방법은 2가지다. 완벽한 해제방법을 숙지하여 정해진 방위를 잘 따라간 끝에 탈출하는 것, 그리고 힘으로 부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힘으로 부수는 게 정답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뭔가 마음에 걸려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째서 하필 나와 환지광이 진입하자마자 없던 진법이 발동한 것일까? 그리고 잠시 후 그 이유를 알아채고는 말했다.
[누군가가 지근거리에서 진법을 조종하고 있다. 정해진 후행(後行)의 진법이 아닌 술행(術行)의 진법으로 우리를 막아선 것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예전 내 동료들이 말해주기를 진법이란 미리 준비해서 펼치는 것과 술법으로써 펼치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원래 설치되어 있던 진법에 걸린 게 아니라 누군가가 펼친 술법에 걸렸다는 것이다.]
“아……! 그 말은…… “
[적은 강력한 술법사란 뜻이지.]
“오오!!”
환지광이 크게 감탄한 듯했다. 나는 그 반응을 보자 약간 어깨가 으쓱했다.
‘음, 기분 좋군!’
동료들이 나한테 뭔가 유식하게 설명해주고 나서 느꼈던 기분이 이런 것인가!
매우 드물게 느낄 수 있는 기분에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우리가 여기를 빠져나가려면…….]
내가 뭔가 더 이야기하려고 운을 띄우려 하는 그때였다.
“아주 재미있군.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이지?”
[…….]
파앗
눈앞에는 오색연기와 함께 도복(道服)을 입은 삼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이 나타나 있었다. 그 도복은 구파의 것이 아니었고 정통 술사의 것이었기에 딱 봐도 술법사였다. 난데없이 출현한 청년을 본 환지광은 자신의 검을 뽑아 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나는 낙양성 치안대장 환지광이다! 출입허가가 나 있거늘 네놈이 누구인데 우리에게 진법의 술수를 걸어서 통행을 막는단 말이냐.”
환지광의 호통에 도복의 청년은 자신이 들고 있던 기다란 죽장(竹杖)으로 바닥을 두어 번 통통 치더니 대꾸했다.
“나는 성주 직속의 사천왕(四天王)인 권리종(權離鍾)이다. 성주는 지금 중대한 볼일을 보고 있으니 너희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느니라!”
그러자 환지광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사, 사천왕!! 성주 밑에서 암약한다는…… 호법사자에 버금간다는 그 사천왕이 바로 당신이란 말이오?”
환지광의 반문에 권리종은 약간 으스대는 듯한 느낌으로 말했다.
“바~로 그렇다!”
“으윽.”
“그건 그렇고 거기 철인(鐵人).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서 내 팔괘진을 빠져나가겠다는 거지?”
나를 쳐다보는 호기심 어린 권리종의 시선에 나는 물끄러미 그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설마 그게 궁금해서 일부러 본체를 우리 앞에 드러내신 것이오?]
“그렇네. 팔괘진이란 걸 단숨에 알아보는 안목이나 네가 두르고 있는 그 힘이 뭔가 범상치 않아서 말이야…….”
[…….]
“너는 누구냐? 낙양을 시시때때로 정찰하며 수상한 자가 있는지 살피던 중이었지만 너처럼 기이한 존재가 있다고는 들은 적도 없었다.”
권리종의 말에 나는 가볍게 대꾸했다.
[일단…… 팔괘진을 빠져나가는 건 쉽소. 힘으로 부수면 그만이오.]
“하아……? 크하하하하! 말을 참 쉽게 하는구나.”
내 대답에 권리종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자신의 눈가에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네가 기이한 존재인 건 알겠다만 네 눈앞에 있는 이 권리종이 얼마나 대단한 술사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내가 직접 펼친 팔괘진은 석년의 제갈무후가 와도 해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알고말고. 당신처럼 대단한 존재가 어딨겠소.]
“음?”
이어진 내 말에 권리종은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중화팔선(中華八仙) 종리권(鍾離權).이런 데서 뭐 하고 계신 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