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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95화 (1,494/1,615)

전생검신 85권 3화

그러자 환지광이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전신에서 내공을 끌어올렸고, 그의 검강이 한층 강하게 불타올랐다.

“좋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환지광이 성큼 앞으로 발을 내디디자 옆에 있던 다른 치안대원들이 기겁해서 말렸다.

“대, 대주! 그만두십시오.”

“딱 봐도 약해 보이는 철인인데 이런 식으로 죽이는 건 정파의 도리에 어긋납니다.”

“안 그래도 성주가 우리 치안대를 안 좋게 보는데…….”

“빌어먹을, 비켜!! 이런 도발을 넘기는 게 어찌 무인이라 할 수 있겠나!!”

환지광은 사자후를 터뜨리며 내 앞으로 왔고, 이윽고 발검자세를 취했다. 그는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공수입백인? 웃기지 마라. 넌 백 조각나서 죽을 거다!”

[시끄럽고 빨리 들어오시오.]

“오냐. 죽어라!”

피잉!

화산파의 매화검법 중에서도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쾌검결인 일매락(一梅落)의 절초가 펼쳐졌다.

‘이거 쓸 줄 알았다.’

내가 단숨에 그 절초가 일매락이라고 알아본 것은 그동안 전생하면서 화산파의 무공에 대해서도 알만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산파 칼쟁이들은 상대를 쾌검으로 압도하고 싶으면 다른 화산파의 환변검과 달리 정직하게 일직선의 최단을 추구하는 이 일매락을 쓰는 게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빠르긴 빠르다. 원래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인간을 초월한 반응속도로 상대의 공격을 감지할 때와 비하면 순수한 날것의 속도를 대하고 있기에 꽤나 버거운 생각이 들었다. 무공을 못 쓴다는 건 이렇게나 불편하다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 세쓰라는 힘이 어떤 느낌인지는 파악이 끝난 상태. 근본적인 힘만 끌어낼 수 있다면 굳이 의념천주에 의지하지 않아도 무공의 근본원리만 알고 있다면 충분히 상대의 공격에는 대응하고도 남는다.

‘원래는 화경으로 대처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힘의 잠재력으로 때우자.’

느껴진다. 지금 내 손에 맺혀 있는 세쓰의 힘은 말 그대로 원초적인 힘의 덩어리!

원래라면 이 힘을 마법적으로 가공해서 강력한 대주문으로 펼치겠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이 순수한 힘 그 자체만 응축해서 몸에 두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츠즈즈

미리 손에 끌어올리고 있던 세피로트의 막강한 힘이 응축되자, 자연스럽게 수도(手刀)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나는 그 수도를 이용해서 상대의 공격에 맞춰서 그대로 명치를 찔러 버릴 수 있음을 깨달았지만, 이내 내가 공언했던 게 싸워 이기는 게 아니라 공수입백인임을 상기했다. 그러고는 수도를 풀고는 자연스럽게 상대의 검의 궤적에 내 손을 갖다 대었다.

파앗!

“……?!”

내가 자연스럽게 무토도리를 써서 환지광의 검을 공수입백인으로 잡아채자 환지광은 경악으로 가득 물든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황해서 급히 자신의 칼을 내 손에서 빼내려고 칼날을 뒤틀었지만, 나는 그 흐름마저도 선으로 읽어내어서 칼날이 내 손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휙! 휙! 휙!

“이익.”

[안 되지.]

마치 칼이 내 손에 접착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자 환지광은 전신을 후들후들 떨었다.

“어…… 어어…….”

안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식은땀이 흐르고 있으리라.

수준차가 얼마나 심한지 절감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무척 쉽군. 기껏해야 검강지기를 갓 다루기 시작한 놈이라서…….’

아무리 체감속도가 빠르다 해도 나는 이미 상대의 공격이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시작 부분만 보고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마치 총을 쏘더라도 탄도를 예상하고 피할 수 있듯이 검강 또한 마찬가지 원리로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의념을 가득 실어서 궤도를 맘대로 조작하는 공격이면 다소 까다롭겠지만 눈앞의 환지광 정도의 무예 경지로 펼치는 검강이라면 궤적을 읽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나는 기계의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

[검(劍)에 기(氣)는 실려 있어도 심(心)과 의(意)가 없으니 이쪽도 의념을 쓰지 않아도 손쉽게 막을 수 있구려. 그동안 제대로 된 고수를 만나본 적이 없나 보지?]

“…….”

[그럼 내 팔을 자른 무례를 일단 이 칼로 받아볼까.]

투캉!!

잠시 후 환지광의 칼이 반쪽 나서 부러졌다. 내가 가볍게 칼날을 옆으로 뜯었을 뿐인데 환지광의 모든 내공이 실려 있는 칼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꽤나 명검으로 보였는데 뚝 부러지자 환지광의 정신적 충격은 무척 커 보였다.

황망한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던 환지광은 이윽고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고…… 고인을 뵙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대, 대주!!”

“이게 무슨…….”

치안대원들이 당황했다. 아마 환지광의 무공으로 일개 철인에게 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해서이리라. 나는 잘린 팔을 내게 붙이는 듯한 동작을 하며 말했다.

[용서해줄 수 있소. 내 팔 다시 붙여주고 저 하늘 위의 성으로 들어가게 해 준다면.]

“…….”

환지광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그 팔을 다시 붙이기 위해서는 내성으로 가야 하니 안내해 드리지요.”

저벅저벅

큰길을 앞서 걸어가면서 환지광은 조심스레 말했다.

“고인께 무례를 범한 건 죄송한데…… 정말 성명 별호가 어찌 되시는지…….”

[무례하구려. 이렇게 얌전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참아주고 있는데.]

“으윽. 그래도…….”

흠…… 하긴 다른 치안대원들 눈치도 보이니까 말해줄까?

[내 이름은 백웅이오.]

웅성……!!

내 이름을 들은 자들의 반응이 크게 나뉘었다. 당황하는 자와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자들이 대다수였고 믿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환지광도 약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말했다.

“말해주기 싫으시다면 농은 관둬주십시오.”

[왜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전설의 영웅이신 소을성주(小乙城主)께서는 천신(天神)의 경지에 이르셔서 천계의 신들과 함께 이 세상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런 철 쪼가리…… 흠흠, 기계의 몸에 머물러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 낙양성에 아무도 없습니다.”

[…….]

뭐야, 나에 대해서 그렇게 알려져 있는 건가? 천계에서 천선들과 함께 사태를 해결하는 중이라고?

‘하긴, 백련교주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최선일지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 진짜 이름을 숨기고 굳이 가명을 대는 것도 왠지 짜증 났다. 그래서 나는 홧김에 내 사정을 이야기해 버릴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이런 녀석들한테 화내봤자 달라지는 게 없어. 그냥 제갈사와 합류하기 전까지는 가명을 쓰자.’

나는 이윽고 씩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내 장난이 심했군. 나는 이총 이라고 하는 사람이오.]

마침 이 기계 몸의 원래 주인의 이름을 내가 갖고 있었으니 나는 망설임 없이 이총의 이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총? 별호는 어찌 되시는지…….”

[강호에 나간 적이 없어서 별호같은 건 없소.]

“그러시군요. 하긴 요즘 시대에는 그런 은거기인들이 많습니다.”

환지광은 손쉽게 납득 하는 듯했다. 그 반응으로 봐서 세상에 종종 무림에 숨어 있던 고수가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이 대홍수 때문에 반쯤 망하면서 성이 아닌 외지에서 인간이 생존하는 게 힘들어졌으니 전설의 고수라 해도 어쩔 수 없이 성안으로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리라.

환지광이 내성의 바로 아래쪽에 있는 큰 건물에 와서 말했다.

“이총 님. 전이진(轉移陣)을 곧 발동할 테니 이리 와 주십시오.”

전이진?

잘 보니 건물 안에는 커다란 마석(魔石)이 박혀 있는 커다란 원형의 의식장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이런 걸 마법의식 같은 데서 종종 보아왔기에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여기에 새겨져 있는 글자가 룬어나 고대어가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는 생각했다.

‘이건 별개의 주술언어인가. 아마도 생 제르맹이나 제갈사가 만들어낸 별개의 술법이겠지…….’

아까 제갈사를 감싸던 그 광선이 생각난 나는 환지광에게 말했다.

[내성에서 직접 광선을 쏴서 밑에 있는 자들을 내성으로 소환하는 것 같던데 그건 이 전이진과 뭐가 다른 거요?]

“그건 성주(城主)만이 발동하실 수 있는 무제한 소환권입니다. 저희 같은 일반 순찰대는 전이진을 이용해서 하루에 정해진 횟수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호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위이이잉…….

파앗!!

잠시 후 나는 치안대들과 함께 신비스러운 공간에 와 있었다. 신비스럽다고 표현한 까닭은 커다란 광장 같은 공간에 오색 빛을 내는 보석들이 부유하고 있었고 그 보석들이 영롱한 빛을 내뿜으면서 천천히 어딘가를 공전(共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걸 중심으로 도는 건가?’

수백 개나 되는 오색 빛의 보석들은 바닥에 있는 커다란 돌덩어리를 중심으로 천천히 도는 것 같았다. 내가 힐끔 돌덩어리를 쳐다보자 환지광이 말했다.

“따라와 주십시오.”

[어디로 가는 거지?]

“우선은 말씀드린 대로 팔을 다시 붙일 수 있는 곳으로…… 그 후엔 성주께 보고를 드려야 하는데 같이 좀 와 주십시오.”

[좋소.]

어차피 나도 백련교주를 만나려던 참이었고 백련교주가 있는 곳에는 아마도 제갈사 또한 있으리라. 제갈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쯤이면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환지광을 따라서 내성을 걸어갔다.

약 삼 리 정도를 걸었을까? 환지광은 어떤 커다란 내실에 들어가며 말했다.

“노사(老師)! 나 치안대장 청룡검객 환지광이오. 철인을 수리해 주셔야겠소.”

치-익

치-익!!

그 커다란 내실에는 온통 기계가 가득했고 증기관이 바닥까지 잔뜩 뻗어서 증기를 흘리고 있었다. 동시에 약간 서늘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 냉각장치 같은 게 바닥과 천장에 달려서 열기를 식히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흠, 여긴 공방인가?’

그리고 노사라고 불린 늙은이가 안쪽에서 걸어 나오며 대꾸했다.

“네놈의 직책과 명호 따위는 안 궁금하다니까 매번 올 때마다 밝히는구나. 그토록 자부심이 강한 것이냐?”

“……윽, 딱히 상관없잖소.”

“이놈아. 네 할애비 따위는 단숨에 멱을 따 버릴 수 있는 고수가 지금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 하찮은 화산파의 자부심을 언제까지 세울 셈이냐? 너는 그러다가 진정한 고수를 만나면 호되게 당할 것이다.”

“…….”

“……음? 설마…….”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환지광을 본 노사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당신이 이 애송이를 교육해 준 모양이로군.”

[그렇소.]

“내가 고쳐야 할 건 당신의 팔인가?”

나는 갖고 있던 내 강철 팔을 노사에게 내밀며 말했다.

[고쳐줄 수 있나? 없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노사는 힐끔 팔과 내 절단면을 번갈아 보더니 단숨에 말했다.

“딱 보니 검강으로 깔끔하게 잘린 거라서 이깟 접합은 반 각도 걸리지 않네.”

[잘 됐군.]

“……헌데, 정말 이상하군.”

노사는 나를 불신 어린 기색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안드로이드가 마핵(魔核)이 부서지고도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거지? 동력원이 사라졌는데 대체 무슨 수로……?”

노사의 시선은 내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가슴에 있던 양산형 현자의 돌이 깨졌는데도 안드로이드가 움직이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안드로이드라는 용어를 쓰다니 당신도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군. 게다가 그 푸른 눈동자…… 서역에서 온 자요?]

아닌 게 아니라 노사라는 노인은 푸른 눈동자에 갈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 전형적인 중동지역 사람들의 특징이었고 나는 이런 인종을 자주 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내 말에 노사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역시 범상한 자가 아니군. 그대의 이름은?”

[이총이라고 하오.]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야 세상에 나온 적이 없으니까…… 내 이름을 밝혔으니 당신 이름도 밝히시오.]

“흐흐. 동방에서는 내 이름을 알지 못하던데…… 뭐 밝히라니까 말해주지.”

노사가 약간의 자부심을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옛 오스만 제국의 궁정마도사이자 최고의 과학자였다. 내 친구들은 나를 이븐 시나라고 부르지.”

[음…… 이븐 시나…… 어디서 들어봤는데.]

나는 정말 어디서 들어본 느낌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설핏 떠올리며 말했다.

[아 맞다. 생 제르맹이 자신에 버금갈 정도지만 자기보다는 못한 서방의 학자라고 말했던 것 같소.]

“…….”

진짜 지나가듯이 말했던 거였는데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내 기억력이 과하게 좋기 때문이리라. 내 말을 들은 이븐 시나는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투덜거렸다.

“미친 늙은이.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군.”

[아,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오.]

“됐네. 어차피 그놈이 현자의 돌과 호문클루스에 성공한 이상 마도공학에서 나보다 앞선 건 사실이니까. 제기랄…… 하지만 불로불사의 술수는 내가 먼저 성공했단 말이지. 엥이, 조금 잘 나간다고 콧대가 아주…….”

뭔가 불만스러운 듯 계속 투덜거리던 이븐 시나가 말을 이었다.

“이총. 당신은 생 제르맹과 어떤 관계지?”

[오랜 친구요. 사실 지금 상태는 그가 새로운 실험을 하는데 협조했다가 일어난 일이지.]

나는 대충 거짓말로 둘러대기로 했다. 왠지 이런 변명이 잘 먹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븐 시나는 그다지 의심하지 않고 납득하는 듯했다.

“그랬군. 그럴만하지. 연금술에 미쳐 있는 그놈이라면…….”

[당신이 서방의 저명한 학자이자 마도사라면 왜 이 머나먼 낙양까지 와 있는 것이오?]

“그야 대재앙이 벌어졌을 때 동방에서 서방에 큰 도움을 줬기 때문이지. 나는 그 빚을 갚기 위해 파견되어 이 낙양성의 유지 발전을 돕고 있네. 수호자님의 부탁도 있었고.”

[흠.]

그런가.

이븐 시나 또한 생 제르맹이나 롤랑처럼 서방에서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투사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정말 자네는 어디 있다 왔는지 궁금하군. 마치 세상에서 뚝 떨어져서 수십 년간 사라졌던 사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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