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94화 (1,493/1,615)

전생검신 85권 2화

나는 내 작전이 성공한 것을 깨닫고는 씨익 웃었다.

[어찌 됐든 육체를 얻었군.]

이로써 이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혼대법을 이용해서 영혼과 계약하고 그 대가로 강철의 육신을 얻은 것이다!

제갈사를 따라서 허공에 부유하는 내성에 올라가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이 강철의 육체를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해보았다.

‘경공만 쓸 수 있으면…….’

나는 일단 시험 삼아서 내공을 일으켜 보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내공의 혈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氣)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인간의 육신이 아닌 강철의 기계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인상을 찌푸렸다.

‘끙. 모처럼 육체를 얻었는데 무공을 전혀 못 쓴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술법을 한 번 써볼까?

[모수분신술!]

내 입에서 탁한 기계음과 함께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머리로 손을 갖다댄 내 손이 민망하게 허공을 스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맞다. 기계는 머리카락이 없구나!

‘젠장…… 머리털 말고 몸의 잔털로도 쓸 수 있긴 한데 그런 털조차 없으니…….’

근데 왠지 감촉이 부드러워서 좋았기에 나는 잠시 민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이거 중독되는걸…….

‘손가락 끝의 촉각은 대충 잘 느껴지는……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모수분신술 외에도 다른 술법을 하나하나 시험해보았다. 그러나 역시나 술법도 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점차 오기가 생기는 걸 느끼며 이번에는 신력을 끌어내 보았다.

…….

신력은 더더욱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능력이 거의 봉쇄된 걸 깨닫자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래서는 몸을 얻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무능력한 건 똑같은데!

나는 난감함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무슨 방법이 없지 않을까 해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난관에 처한 적이 하도 많아서 포기하면 그대로 끝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뭐라도 하다 보면 길이 생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나는 핫 하고 내가 잊고 있었던 능력이 또 하나 있다는 걸 알아챘다.

‘…… 그래! 그거……!!’

내 머릿속에 과거 헤르메스의 말이 떠올랐다.

[이혼대법은 내가 지닌 세피로트와 완전히 계통이 달라져 버린 주술이다. 이단아 중의 이단아. 아무리 마법의 신인 나라고 해도 이혼대법을 시몬마구스나 그 제자보다 잘 쓸 순 없어. 하지만 근원적인 원리를 알고 있다면…….]

[이혼대법이든 세피로트든 극에 도달하면 결국 하나의 길이 되는 법.]

[세피로트를 다룰 수 있는 자는 클리포트도 다룰 수 있다. 혼백(魂魄)을 조종하듯 생명의 나무를 이용하여 외우주 너머의 세계까지 파동을 미칠 수가 있지. 적어도 5개 이상의 세피라를 극한으로 터득해야 할 테지만.]

헤르메스가 했던 그 말이 완전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너무 어려운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마법의 신씩이나 되는 존재가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혼대법과 세피로트는 극에 도달하면 하나의 길이 된다고 했어. 그 말은…… 계통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어쨌든 근본은 같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이혼대법만큼은 지금 쓸 수 있는 상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우웅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혼대법을 써서 내 안의 혼백(魂魄)을 감지했다. 그러자 이혼대법의 원리에 따라 혼백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고, 나는 유동(流動)하는 혼백을 서서히 흡인력을 이용해서 더욱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혼백의 파장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 이혼대법의 요결을 펼쳤다.

이혼대법(移魂大法)

회혼(廻魂)!

이계의 과학자 나일라토프의 시체를 일시적으로 되살릴 때 사용했던 사법(邪法)! 본래 이건 타인의 시체를 잠시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법이었으나 이번에 이 회혼결을 쓰는 대상은 타인이 아니었다.

바로 나!

나 자신의 육체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백(魄)을 조종하여 이혼대법의 기운 자체를 내 몸에 덧씌운다! 본디 생자의 육체에 썼다가는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몰라서 이런 술수를 자기자신에게 쓰는 일은 없었지만, 지금은 어쨌든 강철육체이지 않은가?

츠아아아

회혼결이 발동하자 내 몸에 희뿌연 안개 같은 기운이 감싸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바로 백의 작용이 극대화된 것으로, 정확히는 이 강철육체에 씌어 있는 내 혼백이 본격적으로 육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운이 점차 강해져서 몸 전체가 새하얗게 보일 때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치치칭

그 순간 내 몸 전체에 마치 혈관처럼 은빛 거미줄 같은 기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기운이 기(氣)나 술법의 기운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라는 걸 깨달았고 내 생각 이상으로 일이 잘 풀려가는 것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좋아!! 세쓰(Seth)가 반응했다!’

나는 과거 전뇌자가 내게 세피로트를 전수할 때를 떠올렸다.

[세피로트는 크게 3계열로 나뉘어져. 이걸 삼주(三柱) 혹은 샤한 크레테라고 불러. 삼주를 이용해서 분화된 10계열의 세피라를 조종해서 다양한 초능력과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당신의 몸에 떠오른 은빛 거미줄은 바로 그 3계열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시전하기 위한 준비단계인 세쓰(Seth)야.]

[세쓰는 기경혈맥(氣經血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다른 점이 있다면 기는 자연에서 흡수하는 반면 세쓰는 우주 어딘가에 있는 세계수에서 힘을 소환해온다는 거지.]

그랬다. 세쓰라는 것은 ‘세피로트’라고 하는 특이한 무공체계를 익히기 위한 세피로트 전용의 기경팔맥!

그 원리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세피로트가 이혼대법과 근원이 같다는 걸 이용해서 회혼결로 나 자신의 백을 강화시켜서 영혼이 육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감응상태로 들어갔고, 이윽고 내 영혼에 강철육체가 동기화하면서 저절로 기억되어 있던 세쓰(seth)를 불러온 것이다.

쿠구구구!!

이윽고 세쓰를 통해서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힘이 흘러들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힘은 내가 거의 다뤄본 적 없는 것이었고 기껏해야 전뇌자의 도움으로 최종주문 테트라그람마톤을 시전할 때나 잠깐 느꼈던 성질이었다. 하지만 전뇌자가 세쓰를 내 영혼에 빽빽하게 깔아준 덕분에 나는 큰 위화감 없이 세쓰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아.]

쿠콰쾅

나는 한 번 세쓰를 통해 응축되었던 거대한 힘을 포효와 함께 바깥으로 발산했다. 그러자 내가 있던 뒷골목에서 커다란 바람이 몰아쳤고 바깥에서 길을 지나던 행인들이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나는 힘을 한 차례 발산하자 한층 기운이 안정되는 걸 느꼈고 잠시 후 내 정신세계에 삼각형(三各形)의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삼각형이기에 브라흐마에게 전수받은 트리무르티가 떠올랐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트리무르티는 무한으로 펼쳐져 있는 영역을 그저 삼분하였을 뿐이고 중앙에 정점이 있는 구조였고 지금 느껴지는 삼각형은 하나의 각이 하나의 계통을 상징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전뇌자의 설명이 스쳐 지나갔다.

[삼주는 무한(infanat), 승화(sublimatyon), 지배(kontrol)의 3가지야. 술자의 머릿속에 3계의 정신세계를 별도로 만들어서 상단전을 강화시키는 식이지. 세피로트의 마법사는 이 3개를 조화롭게 연마해서 세피라라는 고급단계의 마법을 익혀. 그 10계의 세피라를 통달하면 시몬마구스처럼 하위마신이 될 수 있지.]

그렇군.

이 삼각형은 세피로트의 근간이 되는 삼주(三柱)…… 각각 무한, 승화, 지배를 상징하는 건가.

나는 신기하게도 이제야 세피로트에 제대로 입문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작 다른 힘을 쓸 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필요가 생겨서야 이 능력을 이해하게 되다니 모순 같기도 했다.

‘뭐 어쨌든 세피로트의 능력을 임시로 쓸 수 있게 되었군!!’

나는 강철의 손아귀를 불끈 쥐며 이제 세피로트의 힘을 사용해서 어떻게 허공의 내성까지 갈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음…….]

막막하다. 사실 제갈사도 내 세피로트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제대로 된 주문을 가르쳐주지 못했고 막상 세쓰를 깔아준 전뇌자도 테트라그람마톤 이외의 세피로트 주문은 내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공으로 치자면 막강한 내공은 있되 그 어떠한 무공이나 초식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 테트라그람마톤을 쓸 수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쓰는지도 까먹었다.

어떻게 해야 세피로트의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지? 그냥 세쓰에 모여 있는 힘을 강하게 방출하면 되나?

내가 고민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네놈은 뭐냐!! 어디서 함부로 강한 기운을 내뿜어서 낙양 사람들을 위협하는가!”

치치칭!!

어느새 내 주변에 수많은 살기(殺氣)와 함께 검광(劍光)이 나타나 있었다. 대뜸 나를 원진(圓陣)으로 포위한 스무 명가량의 무사들은 하나같이 검에서 검기를 피워올리고 있었기에 상당한 고수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무림인들과 달리 하나같이 아까 보았던 척마대처럼 단단해 보이는 갑주를 전신에 착용하고 있었다.

나는 갑주를 입은 무사들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군.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오.]

선두에 서 있던 대장무사가 목에 빡 힘을 주며 외쳤다.

“그야 그렇겠지. 넌 사람이 아니라 기계잖나!”

[…….]

어, 할 말이 없네……?

내가 당황해서 입을 다물자 옆에 있던 다른 무사가 그를 보며 약간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 그것은 철인에 대한 차별 발언입니다.”

“맞아요.”

“취소하십쇼. 대재앙 때 사망한 우리 아버지도 철인으로 몸을 이식하셨습니다.”

무사들이 하나둘씩 대장무사를 성토하자 대장무사는 뭔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말했다.

“……그래, 몸이 기계일 뿐인 사람이라고 치자! 철인 차별금지는 무슨…… 제기랄!”

“대장. 차별 발언했다고 인사고과에 보고할 겁니다.”

“아 지랄 마! 지금 그게 중요하냐? 눈앞에 불순한 분자가 있거늘!”

쿠구구!!

이윽고 대장무사는 성큼 앞으로 나오더니 검에 강렬한 빛무리를 맺히게 만들었다. 나는 그 빛무리를 보자 흠칫하고 놀랐다.

[검강(劍罡)!]

검기성강은 검기보다 더욱 드물고 높은 경지였다. 최소한 초절정의 강자가 되어야 검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눈앞의 대장무사는 초절정고수라는 뜻이었다. 놀라운 건 대장무사의 외모가 겨우 삼십 대 정도라서 후기지수의 나이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대장무사는 내가 검강을 알아보자 씩 웃으며 말했다.

“호오, 꼴에 검강을 알아보는구나! 그래, 내가 바로 화산파(華山派)의 최연소 장로이자 최고의 천재! 낙양 치안대주인 청룡검객(靑龍劍客) 환지광(桓枝光)이다!”

[…….]

“거동이 수상한 철인! 당장 무릎을 꿇고 오라를 받아라. 그렇지 않는다면 베겠다.”

어리지만 화산파의 장로란 말인가?

‘구파의 장로씩이나 되는 초절정고수가 겨우 치안대장이라니. 원래 무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군.’

확실히 낙양이 큰 성이라서인지 일개 치안대주의 무공도 높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청룡검객 환지광의 엄포를 듣고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이 미치는 게 있었다.

‘화산파…… 환씨…… 환……?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청룡검객 환지광에게 말을 걸었다.

[환지광. 혹시 당신은 화산파의 태상장로였던 자령검선(紫靈劍仙) 환우정(桓優貞)을 알고 계시오?]

내 질문에 환지광은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지었다.

“후후!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그래, 그분께서 바로 나의 조부시다!!”

[……!!]

“어려서부터 조부 밑에서 착실하게 검술을 연마하여 화산파의 고수가 된 나를 상대할 자신이 없다면 당장 항복하도록.”

아, 역시…… 이놈, 내가 아는 놈 손자였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화산파 태상장로가 소을촌장한테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소! 손자인 당신이 알런지 모르겠지만.]

틀림없다.

내가 이번 생 초반에 패줬던 화산파 태상장로!!

이놈은 그 새끼 손자야!

“어억. 그, 그 일을 어떻게…….”

청룡검객 환지광은 내 말을 듣는 순간 눈을 부릅뜨면서 당황했다. 그리고 환지광 주변에 있던 다른 검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환지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겁도 없는 놈! 감히 우리 환씨 가문을 능멸하고도 살아남을 것 같으냐. 죽어라!”

쐐애액!!

환지광의 검강이 엄청난 속도로 매화검법을 머금고 쇄도해 왔다. 나는 원래라면 의념의 영역에서 그 공격을 감지하고 받아쳤을 테지만, 지금은 의념이 작동하지 않아서 그저 물리적으로 엄청나게 빠른 그 속도를 체감해야만 했다.

‘무공이 없는 상태에서 접하면 이런 느낌이군.’

뎅겅!!

환지광의 검강이 순식간에 내 오른팔을 잘랐다. 하지만 아무런 고통도 없었기에 내가 잘려나간 오른팔을 쳐다보자, 환지광이 말했다.

“무례한 대가로 팔 하나를 베었지만, 어차피 네놈은 기계니까 아프지 않을 테지. 전신이 동강 나기 싫다면 당장 무릎을 꿇어라.”

[흠…… 방금 그게 제일 빠른 공격이오?]

“뭐?”

환지광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나는 바닥에 떨어진 기계팔을 주우면서 히죽 웃었다.

[나랑 내기 하나 하겠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로 빠른 쾌검으로 공격해 보시오. 나는 당신의 쾌검을 공수입백인으로 잡아내겠소.]

“……!!”

[내가 공수입백인에 성공하면 나를 완전히 놔 주고, 환지광 당신은 내 팔을 자른 걸 무릎 꿇고 사과하시오.]

웅성웅성…….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상황이 전혀 뜻밖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거동이 수상한 철인을 붙잡는 일일 뿐이었는데, 뜻밖에 무림의 일처럼 환지광이 지니고 있는 검객으로서의 자존심을 자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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