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20화
“낙양성주께서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모든 척마대가 출전하여 개봉까지 전진하여 마물들을 최대한 청소하라는 지시를 내리셔서 행하고 있었습니다.”
“……백련교주가 신경을 많이 써 주는군, 크큭.”
“성주님을 조우할 경우 호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만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그 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내 옆에 있는 못생긴 인간이 보이나?”
“……?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우설초 또한 나를 전혀 보지 못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나는 그 반응을 보자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 나는 이 세상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군.’
정말 제갈사 말대로 나를 인식할 수 있는 건 제갈사 뿐이란 말인가?
무슨 이런 상황이 다 있지?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제갈사는 힐끔 갑주를 입은 척마대를 보며 말했다.
“모두 후열 차량에 타라. 그 정도 넓이는 되니까.”
“은혜에 감읍드립니다!”
철컹
척마대들이 피로 물든 무기를 납검(納劍)하고 움직이자 제갈사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상어인간들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내뻗었다.
“아쉬운 대로 이놈들이라도.”
쿠드득…… 쿠드득…….
제갈사의 강력한 염력 때문에 이미 고깃덩어리가 되어 있던 시체들이 흉칙한 소리를 내며 다진 고기처럼 뭉치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보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갈사. 뭐 하는 거냐? 어째서 시체를…….”
“네게 공양을 하고 싶지만 네 철학대로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라도 이놈들을 잡아먹을까 싶다.”
“뭐?”
“마력 덩어리를 놓칠 순 없지.”
푸콰악!!
잠시 후 시체들이 완전히 형태를 잃어버리고 둥근 고깃덩어리의 구(球)가 되어 버리자 제갈사는 알 수 없는 음험한 고대의 주문을 외웠고, 그 주문이 외워지는 동안 고깃덩어리 구체에서는 시꺼먼 마력이 흘러나와서 제갈사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력을 흡수하는 게 끝난 제갈사는 염동력을 풀었고, 고깃덩어리는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다.
마력을 먹어치운 제갈사가 홱 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제 가자.”
“…….”
“왜 그러지, 백웅?”
나는 고깃덩어리를 말없이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저 상어인간들은…… 원래 인간이었던 거냐?”
아무리 봐도 인간의 무기술과 보법을 쓸 수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요괴 따위와는 달랐다. 게다가 정돈된 단체행동, 그리고 감정의 파동 같은 게 느껴졌기에 나는 저자들이 원래 인간이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크큭.”
내 추측에 제갈사는 히죽 웃더니 말했다.
“눈치가 꽤 생겼군.”
“……!!”
“그래, 마력으로 물든 대지에서 미처 성으로 대피하지 못한 인간들은 장시간 마력에 노출되어서 몸이 변이해 버렸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요괴화되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저자들 모두가 원래는 인간이었다.”
“제, 제기랄!!”
예상은 했지만 이런 참혹한 지옥도라니!
그 말대로라면 하루아침에 마물이 되어 버린 인간들이 이 중원대륙에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말 아닌가?!
내가 눈을 질끈 감자 제갈사가 여유작작하게 말했다.
“세상이 멸망의 위기를 앞둔 상황에 이 정도 참극은 얘깃거리도 못 되지. 잘 따지고 보면 요괴를 토벌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하지만 그래도……!!”
“백웅. 잘 들어라.”
제갈사는 슥 하고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하늘에 츠쿠요미의 [밤]이 떠 있는 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뭐라고?”
“마력으로 인간이 변이하는 현상 또한 츠쿠요미의 [밤]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라는 소리다.”
나는 이윽고 제갈사의 말을 이해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츠쿠요미를 쓰러뜨릴 수밖에 없겠군.”
“그런 거다.”
“나한테 맡겨. 어떻게든 이 세계로 귀환해서 그놈을 잡아주지.”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제갈사는 클클 웃더니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했다.
“아마도 너 외에는 찾을 수 없는 존재일 테니까…….”
덜컹! 덜컹!
이윽고 다시 철도를 따라 증기차량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척마대는 제갈사가 타고 있는 차량 뒤쪽의 다른 칸에 몸을 실었고 오직 12 척마대주 우설초만이 제갈사와 같은 차량에 동승했다. 제갈사는 우설초를 마주 본 채 말했다.
“우설초. 처음 듣는 이름인데 네 녀석은 어느 문파 출신이지?”
우설초는 제갈사가 내어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청성파(靑城派)입니다.”
“그렇군. 구파 출신인가? 자랑스럽겠어.”
제갈사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하자 우설초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세상에서 구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크크크.”
“또한 세상이 한번 망하면서 세상 곳곳에서 은거기인들이 출현하였지요. 그들 중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위명을 뛰어넘는 자들도 많았으니 요즘 세상에서 과거의 성세를 내세우기는 힘듭니다. 특히 성주님 같은 분 앞에서는…….”
제갈사는 듣는 둥 마는 둥 한 반응을 보이다가 말했다.
“낙양에 지금 진소청이 귀환했나?”
움찔!
제갈사의 말에 우설초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투신(鬪神)께서는 먼 곳으로 원정을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따위가 그분을 가까이서 뵌 적은 없습니다…….”
뭐? 투신?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제갈사는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듯 히죽거리며 말했다.
“크크크. 이십 년 동안 세상 참 많이 변했어. 동네무관 사범이었던 진소청이 투신이라는 별명까지 다 생기고.”
“투신을 그렇게 함부로 부르실 수 있는 건 몇 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의 절대고수이자 중원제일인(中原第一人)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는군…… 크크크큭.”
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놀랐지만 동시에 그럴만하다 생각했다.
‘진소청은 이미 내가 각고의 노력을 들여서 성장시킨 상태였다.’
그가 벽을 뚫을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십만 번 수련도 시킨 데다가 온갖 무술의 고수들을 소을촌에 초빙하면서 자극받게 했었다. 그런 진소청이 이십 년 동안 성장했다면 작금의 무림에서는 투신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제갈사는 여전히 나 들으라는 듯 말했다.
“백련교주와 진소청이 과거에 자웅을 겨룬 적이 있었지. 그때 그 둘은 동수였는데 과연 다시 싸우면 누가 이길까?”
“으음…… 저따위는 짐작키 힘듭니다. 그분들은 진정한 초인이니.”
“흐음, 네가 너무 하찮은 놈이라 대화하는 재미가 없군.”
“…….”
우설초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제갈사에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어서 참고 있는 듯했다. 제갈사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을 대홍수에서 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동방만 구하면 서방에서 더욱 큰 마(魔)가 창궐하여 결국 여기도 피해를 입을 게 뻔했기에 서방으로 원정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지. 그때 망량을 위시하여 능력 있는 동료들이 다수 서쪽으로 향했는데 진소청은 후발대로 서쪽으로 향했다.”
“음…… 그랬었군요.”
“서방에서도 대홍수의 피해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일대에서 강력한 [옛 지배자]들이 차츰 사교(邪敎)의 공양의식 때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마가 창궐하는 대륙이었는데 당연한 일이었지. 그래서 사교들이 발흥하기 전에 제압하기 위하여 진소청이 나선 것이다.”
“…….”
“진소청이 열심히 서방의 마왕과 사도들을 때려잡아 준 덕에 수많은 인간들이 목숨을 구했다.”
우설초는 약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 성주님. 그런 극비정보를 저 따위에게 말해주시는 이유가…….”
“걱정말아라. 살인멸구하려고 말해주는 건 아니니까.”
“…….”
“하여튼, 그래서 초기 동료 중 상당수가 동방이 아닌 서방에 있는 상태다. 사실 동방은 꽤 안정된 상태고 주된 전선(戰線)은 지금 서방이라고 할 수 있지. 이해가 되었나?”
“네, 네엣!!”
우설초가 크게 외치며 고개를 수그렸지만 나는 제갈사의 설명이 우설초를 위한 게 아니라 내게 해주는 설명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자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 그럼 미호나 서문혜도 서방에 가 있다는 소리냐?”
“……크크. 귀찮은 놈. 여전히 찌질하구나.”
뭐라?!
당연히 나한테 하는 제갈사의 말을 오해한 우설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히익! 성주님, 살려주십시오…….”
제갈사는 손을 휘휘 젓다가 내 말에 대꾸했다.
“구미호는 천계에서 수련 중이고 서문혜는 검마와 함께 요동성을 맡고 있다.”
“…….”
“지금 소을촌 동료 중에서 딱히 크게 불행해지거나 죽은 놈은 없어. 그만큼 초반 난이도 조절을 잘했기에 세계적인 대란이 벌어지기 전에 충분히 대비를 했다는 뜻이다.”
“그랬군.”
우설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눈치를 보는 표정이자 제갈사가 싸늘한 눈으로 우설초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찌질하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거다. 도와주는 척 훔쳐보기를 하다니.”
스윽
제갈사의 손이 갑자기 우설초 쪽으로 향했다. 우설초는 영문을 몰라서 눈을 끔벅거렸는데, 이윽고 그는 전신을 덜덜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아악!!”
투두둑
갑자기 우설초의 몸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꽉 붙잡힌 듯한 모습이 되었고, 그의 눈두덩 근처로 안구가 크게 부풀어 오르듯 삐져나왔다. 제갈사는 잠시 후 손가락을 안쪽으로 향하는 손짓을 했고, 그 손짓과 함께 우설초의 두 눈알이 튀어나왔다.
퓨뷱
“……!!”
우설초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두 눈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하자, 제갈사는 우설초의 눈알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리고는 말했다.
“백련교주. 척마대의 모든 시야를 술법으로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내 앞에서 시야공유의 사법(邪法)을 쓰고 있다니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우우웅
그러자 잠시 후 백련교주의 환영 같은 게 제갈사의 눈앞에 출현했다. 흐릿해 보이는 그 환영으로 모습을 드러낸 백련교주가 웅웅 울리는 소리로 말했다.
[오해하지 마라. 그저 네가 안전하게 오는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다.]
“크크크! 내가 고작 척마대 따위에게 호위받아야 할 정도로 약하다고?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네가 승격 중이란 걸 모를 것 같았나? 영지주의의 악마여.]
“…….”
[그저 만사가 불여튼튼이기에 조심했을 뿐이다.]
제갈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치지. 어차피 평생 네놈과 나는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사이니까.”
[…… 딴 데로 새지 말고 바로 찾아와라. 상황은 촌각을 다투고 있다.]
“정말로 해답을 찾은 건가?”
[너와 내가 일대일로 독대한 자리에서만 말할 수 있으리라.]
파앗!
백련교주의 환영이 사라졌다. 제갈사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고, 나는 질린 표정으로 제갈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갈사. 사람 눈알을 빼면 어떡하냐. 다시 넣어주자.”
“다시 눈알을 넣어주면 백련교주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도 말이냐?”
“음…….”
“걱정 마라. 나중에 더 좋은 눈알을 마도공학으로 만들어서 넣어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푸쉬익!
그러자 제갈사 근처에서 사법의 회색 안개가 한 차례 감돌았고, 그 안개에 닿은 우설초의 몸이 급격히 석화(石化)되었다. 눈알까지 단단하게 석화시킨 제갈사는 눈알을 자기 품 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놈은 운 좋은 줄 알아야겠군. 네가 아니었다면 그냥 어디 버렸을 텐데.”
“석화는 왜 시킨 거야?”
“출혈을 막고 시간을 정지시켜야 하니까.”
“아…….”
“마저 정리한다.”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문을 열고 뒷 차량으로 갔다.
“성주님?”
“무슨 일로.”
후왁
척마대원들이 제갈사를 바라보자 제갈사는 또다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석화저주를 걸었고, 척마대원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석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는 열 명이나 되는 절정고수들이 순식간에 제갈사의 사법에 당해 버리는 모습을 보자 약간의 전율을 느꼈다. 제갈사의 석화저주라면 대요괴라고 해도 한방에 끝장낼 수 있을 듯했다.
‘제갈사. 정말 이십 년 동안 많이 강해졌구나.’
내가 알고 있는 장령곡 제갈사의 초기수준은 절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제갈사는 어쩌면 지금 내 상상 이상으로 강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제갈사는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곧 차원통로를 통과하면 일각 이내에 낙양에 도착할 거다. 백련교주와 곧 마주치겠지.”
“차원통로?”
“대지에 마력이 넘친다고 꼭 나쁜 건 아니야. 시공간을 쉽게 왜곡시켜서 마법을 쓰기도 쉬워졌거든.”
쿠구구구!!
잠시 후 차량의 철도가 시꺼먼 구멍으로 이어졌고 차량 전체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멍에서 나오자 나는 전방에 거대하고 웅장한 성채(城埰)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그 성채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고, 공중에 떠 있어?!”
그랬다. 낙양은 원래보다 훨씬 거대한 성채의 모습을 하고 있음은 물론, 과거와 달리 내성(內城)이 통째로 허공에 부유(浮遊)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공중도시의 모습을 보자 신대에 존재하던 천축의 칼파 문명이 생각났는데 그 신조문명과도 꽤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낙양에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 해두마.”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앞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나는 백련교주를 죽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