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19화
나 혼자였다면 무슨 상황인지 감도 안 잡혔을 텐데 여기까지 이끌어주는 제갈사의 두뇌는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뭔가 제갈사의 말에 이상함을 느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제갈사 너 정도라면 틀림없이 보패 같은 걸 몇 개 정도는 갖고 있을 줄…….”
이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제갈사가 그동안 내 기억을 자동으로 얻어서 힘을 키웠다면 틀림없이 대라신선을 뛰어넘는 강대한 존재가 되었으리라. 게다가 힘을 얻기 위해서 딱히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 제갈사의 특성상 강력한 술법이나 마법의 기물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게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제갈사는 평상시부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비장의 한 수를 감춰두는 성격이라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데도 제갈사가 보물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니 의아한 일이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아까 말했지? 개인적 사정이 있다고…… 지금 나는 승격(昇格) 중이라서 내가 가진 모든 소지품을 강화의식에 쏟아부었다. 하필 이런 시기라서 가진 게 없어.”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인간들을 인신공양해서라도 네게 힘을 주고 싶긴 하다만 네가 절대로 반대할 게 뻔하니.”
“승격?”
“원래 나는 직접 싸우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점점 힘이 필요하게 되어서.”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힐끔 창공 너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우선 나와 함께 백련교주를 찾아가도록 하지. 백련교주가 지배하고 있는 낙양이라면 충분히 널 회복시킬만한 기물(奇物)이 있을 거다.”
제갈사의 제안은 단순하면서 알아먹기 쉬웠기 때문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언제 출발하지?”
“지금.”
취익 - 치익 -
잠시 후 요란하게 증기를 내뿜으며 거대한 강철로 이루어진 차량 같은 게 철도를 따라 우리가 있던 근처로 왔다. 그 커다란 차량의 전면에는 앞서 보았던 붉은 보석을 지닌 강철인간들이 몇 명이나 타고 있었고 제갈사는 태연자약하게 그 차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안으로 따라 들어가자 제갈사가 냉엄하게 말했다.
“낙양으로 출발해라.”
[존명.]
취익 -
위잉 - !!
기계음으로 된 대답과 함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철의 차량이 철도를 따라 증기를 뿜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갈사는 혼자서 차량의 대부분을 쓰는 듯 넓은 공간에 편하게 누워서 창문 밖을 쳐다보았고 나는 제갈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너도 알다시피 개봉에서 낙양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기껏해야 오백 리 정도니까 오래지 않아 도착할 거다.”
오백 리는 평범한 인간의 기준에서는 먼 거리였지만 제갈사든 나든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아서 꿍얼거렸다.
“흠. 편하긴 하다만…… 꼭 이런 외물에 의지해야 하는 건가? 제갈사 네 술수라면 축지법 같은 걸 써서라도 순식간에 낙양에 도착할 수 있을 건데.”
내 말에 제갈사는 끌끌거리며 웃었다.
“크크큭, 대홍수가 범람하기 전의 세상이었다면 말이지.”
“……?”
“개봉을 나왔으니 마침 딱 잘 됐군. 바깥을 봐라.”
덜컹덜컹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차량 밖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후 눈을 크게 부릅떴다.
“저…… 저건 뭐냐?!”
솨아아악…….
마치 시뻘건 핏빛과 같은 유사(流沙)! 그 핏빛의 모래가 철도 바깥쪽의 대지에 가득 펼쳐져 있어서 마치 사막처럼 느껴졌다. 거기에다가 하늘은 순식간에 시꺼먼 암천(暗天)으로 변해 있어서 흑적(黑赤)의 대비가 끔찍한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유사 여기저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촉수처럼 생긴 나무줄기가 기괴한 형상으로 자라고 있었으며 곳곳에 기괴한 비석이 박혀 있었다.
도저히 내가 알고 있는 그 중원의 산천(山川)이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내가 당황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어때? 지금 평범한 인간은 성 바깥으로 나가면 한 시진도 생존하지 못한다. 최소한 일류고수는 되어야 간신히 목숨줄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지.”
“이, 이게 무슨…….”
“심지어 마력의 농도가 너무 강해서 대부분의 술수를 정상적으로 발현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나조차도 성 바깥을 탐색할 때는 꽤 귀찮아질 정도이기 때문에 일부러 철도를 이용해서 낙양으로 가는 거다. 이건 특수제작된 거라서 모든 마(魔)를 쫓아내는 능력이 있거든.”
“제갈사. 왜 이렇게 된 거냐?”
제갈사는 창문을 통해 하늘의 어둠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대홍수 때 츠쿠요미의 [밤]이 펼쳐진 결과다. 전 세계가 마력을 머금은 홍수 때문에 대지가 마(魔)에 오염되어 버렸지.”
나는 제갈사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느꼈다.
‘세상이 마경(魔景)으로 변해 버렸다니.’
물론 내가 느끼기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의 마력이 암천향이나 아오키가하라 수해 정도는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런 장소보다는 두세 단계 아랫줄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장소들은 인세에서 동떨어져 있는 특수한 장소였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런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져 있다면 상황이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는 상념을 접으며 제갈사에게 말했다.
“츠쿠요미의 [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삐익 -
덜컹! 덜컹!!
증기가 내뿜어지는 소리와 철로를 달리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제갈사는 바깥 풍경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밤]과 대홍수는 동시에 닥쳐왔다. 정확히는 월신 츠쿠요미가 먼저 [밤]을 만들어내어 전세계를 어둡게 만들고 난 후 대홍수가 범람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밤]의 마력이 대홍수에 섞이면서 홍수에 침수당한 모든 것들이 마력에 오염된 것이다.”
“……!!”
“만악의 근원인 츠쿠요미를 죽이려고 천계와 협력해서 갖은 수를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째서? 츠쿠요미가 그렇게 강했단 말이냐.”
“아니. 애초에 어딨는지를 알 수 없었거든. 그래서야 아무리 천계의 신들이 도와줘도 소용이 없지…….”
“…….”
뭐라고?
내가 어안이 벙벙해 하자 제갈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늘을 다시 봐라. 뭔가 이상하지 않으냐?”
“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달이 없지?”
“아.”
그러고 보니 저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단 한 줌의 빛도 없었다. 달이 안 떠 있길래 그냥 달이 안 뜨는 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 표정이 굳어지자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저건 평범한 밤이 아니라 츠쿠요미의 [밤]이 전개된 상태인 거다. 모든 세상은 낮이 존재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밤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달조차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 아까 네가 개봉성 안에 있었을 때 푸른 하늘이 보였던 이유는 마력의 간섭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
“또한 이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존재도 츠쿠요미라는 실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옛 지배자]의 도움까지 빌려봤는데 그들도 불가능했지. 아마 스사노오의 말대로 츠쿠요미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맞는듯했다.”
“그럴 수가……!!”
“게다가 찾아낸다 해도 그때부터가 문제지. 스사노오 말대로라면 [밤]이 전개된 상태에서 츠쿠요미는 무적이라는데 그런 상대를 쓰러뜨릴 방법 자체가 없어. 최소한 인간이나 신선들 수준에서는 말이야.”
“음…….”
생각보다 더욱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가 침음성을 흘리자 제갈사가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이대로 두면 세상이 망할 텐데.”
“그렇겠지.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되돌아왔잖나?”
제갈사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은 멸망해도 좋아. 그 상황에서 네가 큰 성과만 얻어갈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졸리고 움직이기 힘든가?”
제갈사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그러고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도 현실감이 없고 계속 졸리다…….”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있긴 하지만 아까부터 졸려서 죽을 지경이었다. 엄청난 내공을 얻은 이래 이렇게까지 졸린 적이 망량선사 앞에 있을 때 이외에는 없었기에 이상했다. 마치 수마(垂魔)가 내 뇌를 꽉 붙잡고 있는 듯한 짜증 나는 기분이었다.
제갈사는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줄 꽉 붙잡아라. 내 생각대로라면 네가 잠드는 순간 끝장이니까.”
“아, 알았어.”
그때였다.
끼이이익 - !!
갑자기 철도를 빠르게 가던 강철의 증기차량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급격히 멈춰 서기 시작했다. 제갈사는 급격한 관성에도 불구하고 한 줌의 미동조차 없는 모습이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관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저 발이 바닥에 딱 붙은 듯한 기묘한 기분에 내가 신기해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무슨 일이냐?”
[제갈사 성주님. 앞쪽에서 척마대(斥魔隊)가 마물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흠, 그렇군. 순찰 강화기간이니.”
제갈사는 뭔지 알겠다는 듯 말을 했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척마대?”
“크크, 마침 잘 됐군. 한 번 구경이나 나가보자.”
“……?”
“따라와라.”
제갈사는 차량에서 내려서 철도 바깥으로 향했다. 내가 그의 뒤를 따라가자 붉은 유사가 넘실거리는 사막 위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나는 발을 디디면서 발끝으로 전해져오는 선명한 마력 때문에 놀랐다.
‘마력농도가 상당하군. 보통 사람은 자칫했다가는 미치겠어.’
제갈사의 뒤를 따라 약 오십여 장을 앞으로 나아가자, 그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카강!! 캉!!
요란하게 냉병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선명한 검기(劍氣)와 도기(刀氣)가 난무하고 있었다. 나는 열 명 정도 되는 인간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적을 공격하는 광경을 보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림고수. 그것도 절정고수 이상!’
검기를 저만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 정도면 무림에서도 꽤나 고수 취급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최소한 대문파의 일대제자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그들의 모습이 이질적이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무림고수의 모습이 왜 저래?’
하나같이 얼굴의 반을 가리는 기묘한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몸에는 마치 군부의 장군처럼 단단한 갑주를 챙겨입고 있었다. 그 갑주는 흑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는데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건 꽤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무림의 절정고수들은 기를 이용한 공격력이 워낙 강하기에 웬만해서는 갑옷이 큰 의미가 없어서 일부러 몸을 가볍게 하려고 갑주를 장비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물론 군부의 고수들은 갑옷을 충실히 챙겨입었지만 그건 고수와의 대결을 상정했다기보다는 전쟁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를 염두에 둔 것뿐이었다.
고수가 저만큼 무거워 보이는 중갑주를 완착하고 나오는 경우는 무척 희귀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면의 고수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물(魔物)이었다.
꾸오오오!!
기묘한 기성을 외치며 상어와 인간이 합쳐진 듯한 모습의 삼 장 크기 마물이 커다란 낫을 마구 휘두르며 인간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 상어인간 괴물이 무려 다섯 마리나 있었는데, 수적으로는 인간 측에 2배 많으나 덩치 차이가 워낙 커서 인간들이 그리 쉽게 상대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나는 인간들과 마물의 싸움을 보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저 마물…… 왜 무공을 쓰는 거냐?”
인간들의 정련된 고급 무공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며 기껏해야 이삼류의 수준이지만 상어인간 마물은 틀림없이 무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보법 또한 같이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지만 2배나 많은 절정고수들과 전투가 성립하는 건 그런 이유로 보였다.
이런 일은 여태 없었다. 아오키가하라 수해든 암천향이든 모든 마물들은 타고난 특수능력과 육체로 싸울 뿐 무공 같은 건 따로 쓰지 않았던 것이다. 마물뿐만 아니라 요괴들도 어지간해서는 마찬가지였다.
“크크크크!! 눈치챘군.”
제갈사는 흉소를 흘리더니 말했다.
“저놈들은 단순한 마물이 아니다. 신 종족이라고 할 수 있지.”
“신 종족?”
“자세한 설명은 좀 있다 해주마. 일단은 갈 길이 바쁘니 상황을 정리해야겠군.”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앞으로 손을 내뻗더니 움켜잡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우드드득!!
[크아아악!]
[끼아악!!]
그러자 상어인간들은 순식간에 몸이 마치 종잇조각처럼 구겨지며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삼 장에 이르는 덩치가 순식간에 죽어 버리는 그 광경은 충격적이었고, 갑주를 입은 고수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나는 놀라서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제갈사. 그 힘은?”
“뭘 놀라는 척하냐? 당연히 염동력(念動力)이지.”
“하, 하지만 염동력이 이렇게 강하다니…….”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갈사와 상어인간들의 거리는 최소 삼십 장이 넘었는데 제갈사는 손짓 한 번으로 몸 크기가 삼 장에 이르는 덩치들을 짜부라뜨린 것이다. 이 정도의 염동능력자를 본 일은 거의 없었고 대웅제국 때 만났던 주현성쯤 되어야 제갈사의 수준을 비교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제갈사는 원래 사법 전문이라서 염동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강해지다니?
지금 제갈사의 염동력이라면 웬만한 초절정고수라 해도 원거리에서 단숨에 허리를 반으로 접어서 죽일 수 있으리라. 내가 놀라자 제갈사는 큭 하고 웃었다.
“원래 영지주의 마법은 사이킥을 같이 발전시킨다. 네 녀석이 너무 순식간에 단계를 뛰어넘었을 뿐 원래는 초능력을 같이 깨닫는 법이지. 난 그동안 꽤나 수련을 했거든.”
“아…….”
“이것도 승격 중이라 힘을 많이 못 쓰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다가오던 갑주의 고수들에게 말했다.
“내가 괜히 끼어들었나, 척마대?”
철컹!!
선두에서 걸어오던 검은 갑옷의 고수가 자신의 장검을 허리춤에 집어넣으며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중원인의 외모가 드러났고 약 사십대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제갈사에게 포권을 했다.
“제 12 척마대주 우설초(憂薛椒)가 개봉성주 제갈사 님을 뵙니다. 깊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12 척마대면 낙양 소속이군. 개봉 근처까지 온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