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18화
하, 하남성 개봉?! 노예경매가 열리던 거기?!
나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히 그 도시에서 과거 노예경매가 일어나는 걸 목격했었고 배후에 있는 풍신류를 때려잡으려고 백련교주가 수신류 고수들을 보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주 예전의 일이라 기억이 희미한 줄 알았지만 비교적 인상에 남는 사건이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갈사는 키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육체를 잃고 네게 이혼대법으로 기생해 있던 전생의 일이라 기억은 못 하지만 말이다.”
“다, 당연히 기억은 하고 있는데…… 아니…… 여긴…….”
나는 말을 더듬거리며 다시 한번 이 기묘한 증기의 도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인간 따위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다시 한번 인식하며 외쳤다.
“이게 무슨 개봉이야!! 건물이고 뭐고 비슷한 게 단 하나도 없잖아!! 인간도 없고!!”
하남성 개봉은 고풍스러운 궁궐은 물론이고 잘 만들어진 대로(大路), 그리고 딱 명나라 시대의 도시다운 수많은 특징을 지닌 장소였다. 그 풍광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장소를 개봉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제갈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가 사라진 후 대홍수(大洪水)가 한 차례 세상을 뒤덮으면서 대단히 큰 혼란이 있었지. 인류는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고 기존의 문명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와 생 제르맹이 협력해서 중원의 거대도시들을 마도공학(魔道工學)을 이용해 개조했지.”
“……뭐? 대홍수?”
나는 당황해서 반문했다.
“결국 대홍수가 왔단 말이냐?”
“그래.”
“…….”
대홍수!
그것은 바로 이번 30번째 삶에서 꾸준히 위협으로 제기되었던 재앙이었다. 동영의 대신(大神) 스사노오가 경고했으며 고대에도 몇 번 세상을 휩쓸었던 그 재앙을 막는 방법을 찾기도 했었던 것이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음…… 그때 분명 대홍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3가지 있다고 망량이 말했었는데…….”
“까먹었나 보군. 첫 번째는 천계에 봉선의식을 하여 삼황오제에게 부탁하여 대홍수를 멈추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천계를 접수하여 복희를 부활시키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츠쿠요미가 있는 [꿈]으로 찾아가서 직접 죽이는 것이었다.”
“아, 맞다!! 그 방법을 안 쓴 거냐?”
“……후우, 당연히 썼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네가 없으면 시도할 수 없는 것이라 당연히 봉선의식을 시도했지. 하지만…….”
제갈사는 쓴웃음을 짓는 듯했다.
“삼황오제는 봉선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홍수를 막는 청원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어.”
“……?!”
뭐, 뭐라고!?
“설마 의식에 공양할 제물을 잘못 바쳤다거나 의식절차 같은 걸 잘못한 건…….”
제갈사가 나를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멍청아. 봉선의식으로 대홍수를 막는 작업은 워낙 위중했기에 나 또한 바로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어서 참여했다. 게다가 너보다 머리 좋은 놈이 네 기억을 흑요석으로 전해 받은 채 한가득 있었거늘 그런 멍청한 실수를 했을 것 같냐?”
“…….”
하긴 그렇다. 망량은 물론이고 백련교주에다가 제갈사까지 힘을 합쳤을 텐데 그런 실수를 했을 리는 없다. 게다가 제갈사나 백련교주의 역량이라면 봉선의식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 사실을 떠올린 나는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대체…… 여태껏 내가 전생하면서 봉선의식을 무시한 경우는 없지 않냐?”
“그래. 없었지. 그러나 무시당했다. 그게 더욱 무서운 일이었지…….”
“무섭다니……?”
“……삼황오제는 봉선의식으로 우리가 무엇을 주청할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되자 답이 없었다. 백웅 네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구천현녀가 자신의 힘을 소모하여 벌어준 몇 년의 시간 동안에 최대한 대홍수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현자의 돌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현자의 돌을……?”
“너도 알다시피 그 당시 대명제국의 문명 수준으로는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대웅제국 시절이라 해도 막기 힘든 재앙일 텐데 당연했지. 그래서 현자의 돌과 수정석비를 이용하여 마도공학을 발전시켰고 모든 중원의 대도시를 이렇게 요새화시킨 것이다.”
“……!!”
“지금 중원대륙의 생존자 대부분은 요새가 된 성(城)에 틀어박혀서 살고 있다. 그리고 성주(城主)가 그들을 통솔하고 있지. 개봉성은 지금 내가 맡고 있다.”
나는 제갈사의 설명에 머리를 굴리면서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해를 하려고 하다가 힐끔 저만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기계인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인간은 어딨는 거냐? 저건 딱 봐도 인간은 아니고 마도공학으로 만들어낸 일꾼 같은데.”
“무슨 소리냐? 저거 인간 맞는데.”
“어?”
제갈사는 기계인간 쪽을 보더니 히죽 웃었다.
“대홍수 때 죽은 놈들의 영혼을 양산형 현자의 돌을 이용해서 기계 몸에 이식시킨 거다. 평소 네가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지론에 의거하면 저것도 인간은 인간이지.”
“…….”
저게…… 인간이라고?!
아무리 봐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외모가 아니었다. 그저 가슴에 붉은 돌이 박힌 기계일 뿐이었는데 저걸 인간이라고 하는 제갈사의 말이 바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저것도 인간이 맞다.’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전부 저런 건 아니겠지?”
“철인이 더 많긴 하지만 순수인간도 다수 생존해 있다. 여기가 내 비밀연구동 근처라서 근처에 보통 인간을 접근시키지 않은 것뿐.”
“휴…….”
그나마 다행이군.
나는 잠시 후 상황을 납득하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골치 아픈 상황이군. 그만큼 대홍수 때 죽은 사람이 많다는 거냐?”
“그래. 아마 지구상 전 인류의 4할 정도는 죽었을 거다.”
“…….”
“괜히 죄책감 느끼는 척하지 마라. 네가 막는 척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9할 9푼이 죽었을 테니 인류가 명맥이라도 유지한 건 네 공이다.”
“막는 척이라니…….”
“어찌 됐든 네가 소을촌을 성장시키고 수많은 인재를 모은 덕에 성을 개조하는 계획을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간결하게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그 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단숨에 다 이야기하기엔 좀 복잡하니 일단…….”
후웅!!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허공에 거대한 기파(氣波)가 터져 나왔고 지상에 큰 압력이 덮쳐왔다. 압력이 꽤 강한지 도시 전체에 가득 흐르던 증기가 일순간 밑으로 눌려서 희뿌연 안개처럼 변할 정도였다. 그 대기의 압력을 느낀 제갈사는 힐끔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건가? 저 녀석이 올 줄이야.”
후웅…… 후웅……!!
위압적인 기파가 두세 번 더 몰아쳤다. 그리고 그 기파가 허공의 구름을 풀어헤치고 구름 위쪽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잠시 후 제갈사 근처의 상공에 무려 크기가 십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존재가 날개를 퍼덕이며 출현했고 나는 그 존재를 보자 흠칫했다.
‘…… 용(龍)!! 그런데…….’
생긴 것만 보면 영락없는 용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모습을 보자 놀란 까닭은 따로 있었다.
‘기…… 기계?’
그나마 생명체의 모습을 하고 있던 다른 용들과 달리 지금 출현한 용은 대놓고 전신이 강인한 철 덩어리로 이루어진 듯한 기계의 용이었다. 다만 오밀조밀 조형이 되어 있어서 기계 특유의 날카롭고 각진 느낌이 거의 없었으며 각 부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엄청난 기술력이 새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용처럼 자연스럽게 허공에 체류해 있던 기계용은 잠시 후 땅에 내려앉았고, 그 기계용의 눈에서 번쩍하고 섬광이 흘렀다.
[백련교주가 부른다, 제갈사.]
“…….”
상대가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전음 같은 걸 보내왔다. 마치 사자후처럼 웅웅 울렸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전음이라기 보다는 음파에 가까웠고 그래서인지 근처에 있던 기계인간들이 놀라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제갈사는 기계용의 말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곤(鯀). 너는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사내가 보이는가?”
곤?!
눈앞에 있는 저 기계용이 옛 삼황오제 시대에 인간의 왕이었던 곤 임금이란 말인가?!
[……?]
곤이라고 불린 기계용은 잠시 의아한 듯 자신의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헛소리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희롱하느냐, 배교의 교주여.]
“정말로 그대의 명예를 걸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느껴지나?”
[그렇다.]
“흐음…… 아무래도 마왕급에서도 너를 감지할 수 없는 것 같군. 기억해둬라.”
대놓고 나한테 설명하듯이 말을 한 제갈사는 잠시 후 기계용 곤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을 텐데. 누가 부르든 간에 용건 없이 부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백련교주는 이번에야말로 네가 요구한 ‘해답’을 찾은 모양이다. 내게도 그렇게 전하라고 하였다.]
“호오. 그 해답을 찾았다고?”
[어찌하겠는가? 백련교주는 그대가 사흘 내로 낙양에 오기를 원한다.]
“…….”
제갈사는 잠시 후 훗 하고 웃었다.
“좋아. 찾아가겠다고 전해라.”
[네 말을 믿겠다…….]
후웅!
잠시 후 기계용 곤은 날개를 크게 홰치더니 다시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그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제갈사에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백련교주가 너를 왜 부르는데?”
“별거 아냐. 금성에 있던 악신, 코토아마츠카미들이 1년 후에 지구에 강림할 텐데 해결할 방법을 다 같이 찾던 중이었거든.”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자 당황해서 말했다.
“그, 그놈들은 봉인되어 있을 텐데 왜 강림하는 거냐고.”
“나도 모르지? 하지만 구천현녀가 예지한 거라서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야 하던 중이었는데 백련교주가 그 방법을 찾아냈다고 날 부른 것 같군.”
“…….”
대체 지금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나는 당혹스러울 뿐이었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여긴…… 내가 없으면 수습이 안 돼!!’
내가 빨리 현실로 귀환하지 않으면 동료들끼리 세상을 지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 사실을 직감한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제갈사. 혹시 내가 다시 이 세상으로 되돌아올 방법 같은 거 짐작 가는 게 없냐?”
“흐음.”
나는 한층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현실로 되돌아와야 뭔가 해결될 거 같아!”
“현실…… 현실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그거 알고 있나? 저 곤이라는 녀석은 비교적 근래에 이 세상으로 귀환했다는 사실을.”
“……?”
“곤은 원래 네가 오도(吳刀)를 이용해서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곤은 네가 외우주로 간 이후부터 너와 대동했던 모양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전혀 없던 모양이더군.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약 십여 년 전에 이 세상에 혼(魂)이 되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곤 정도 되는 신적 존재의 혼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써 방금 전의 기계용을 제작한 것이고.”
“…….”
“곤은 기계용의 몸을 이용해서 이 위험한 세상에서 전령 노릇을 해주고 있다. 성과 성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료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된 거였군.
상황을 파악한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아까 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짐작 가는 게 생겼다.”
“그게 뭔데?”
“네 말에 따르면 곤은 원래 네 보물로써 오도의 형태로 목갑 안에 존재하다가, 마법의 신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의 극악한 마력에 의해 한 번 석화되었던 거다. 그리고 그 석화에서 풀려나면서 네가 또다시 행했던 일이 있지 않느냐?”
“아!”
내 얼굴이 굳어지자 제갈사가 말했다.
“네가 상업의 권능을 이용해서 목갑 내의 모든 물건을 허공록에게 팔아치웠었지. 안 그래? 그 대가로 너는 상업의 권능을 한 단계 진화시킬 수 있었고.”
“그, 그랬지.”
“그러면 얘기는 간단한 거다. 허공록에게 오도가 바쳐진 그 순간, 보물 오도가 허공록에 귀속되었는데 오도에 깃들어있던 임금 곤의 혼(魂)은 소멸되지 않고 원래 세계로 되돌아오게 된 거지. 허공록이 어째서 오도와 혼을 따로 분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곤의 영혼이 현세로 귀환했던 건 그런 이유라고 생각된다.”
“…….”
내가 상업의 권능을 진화시키기 위해 허공록에게 모든 보물들을 마두화 시켜서 팔았던 게 그런 효과를 보였었단 말인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내가 눈을 끔벅거리자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이게 의미하는 건 단 하나야…….”
제갈사의 눈이 잠시 동안 빛났다.
“네가 있던 고대 탁록의 세상과 이 세상은 사실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허공록만이 그 인과를 이을 수 있긴 하지만 너는 분명히 모든 힘을 지니고 이 세계로 귀환할 수 있다는 거라고. 왜냐하면 혼(魂)을 회귀시킬 수가 있으니까.”
“……!!”
“하지만 아직 의문점은 남아 있지. 너는 어째서 나를 제외한 그 어떤 존재에게도 인식되지 않는 건지…… 그것만큼은 확실치 않아.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거냐?”
“우선은 힘을 회복하는 거다. 지금 너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상태인데 최소한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힘을 얻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보물을 너에게 공양해야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기물과 보패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나는 제갈사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제갈사는 천재다…….’
내게 그렇게 자세하게 예전 일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것만으로도 상황을 이렇게까지 유추해낼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