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17화
섬김받는 자?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싶어서 눈을 껌벅거렸다. 제갈사는 여전히 히죽 웃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너는 지금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볼 수도 인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내가 보는 네 외모는 복희의 외모가 아니며 원래의 추악한 외모이지만 방금 봤듯이 누구도 그걸 볼 수 없어.”
“……“
“또한 너는 지금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너에게 피해를 입힐 수가 없다. 그 말은 지금 네 상태가 고차원적인 초월체나 다름없다는 거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너는 알고 있나?”
순간 나는 제갈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빠르게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단서를 주는데 못 알아들으면 이상한 것이다.
“……신(神).”
“그래, 신이다. 너는 섬김받는 자이며 신 그 자체로서 이 자리에 있는 거다.”
“그게 말이 돼? 무슨 신이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이냐.”
내가 항변하듯이 제갈사의 말을 반박했지만 제갈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그래서 너는 인과율(因果律)이 필요하다.”
“뭐?”
“지금껏 숱한 신을 보아왔잖나? 그 신들은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 그 힘을 이 세상에 투사시켜 마음대로 휘두르기는 힘들었지.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인과율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갈사의 눈이 약간 날카로워졌다.
“이 세상에서 현재 너의 유일한 신도(信徒)는 나 혼자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접촉하는 순간, 너의 신체(神體)는 그대로 그걸 공양으로 받아들여서 내 마력을 흡수하여 네가 상체를 움직일 수 있는 인과율을 만들어 낸 거지.”
“……!!”
츠츠츠츠!!
순간 제갈사의 모습이 잠깐동안 일렁이더니 무언가 악마(惡魔)를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깜박였을 때는 제갈사가 원래대로 되돌아와 있었다.
“다만 내게도 사정이 있어서 마력이 이 수준으로 떨어져 있으면 곤란해. 그래서 방금 전 임시방편으로 마력을 회복했다.”
나는 제갈사의 ‘사정’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머리를 계속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명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왔을 텐데 어째서 본체가 오지 않고 이런 이상한 몸뚱이로 온 거냐? 게다가 원래는 인과율 같은 거 신경 안 쓰고도 신력을 쓸 수 있었는데 왜 지금은 인과율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거지?”
“……“
“제길……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아.”
내가 괴로운 한숨을 토해내자 제갈사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도 지금은 추측밖에 할 수 없다. 사실 네가 신으로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것도 내 가설일 뿐 확실치 않지. 다만, 지금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내가 뭘 해야 하는데?”
“이 세계에 있을 명경(冥鏡)을 찾는 거다.”
“……“
“단순한 이치지. 네가 왔던 길을 통해서 되돌아갈 수 있는지 탐색해보는 게 우선이니까.”
제갈사의 말은 무척 합리적이었다. 나는 제갈사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명경이 있을 명계(冥界)에 가야겠군.”
“갈 때 가더라도 지금 몸 상태로는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크크.”
“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제갈사의 마력을 흡수해서 간신히 상체는 움직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갈사는 그런 나를 보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네 몸을 회복시키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니까.”
“그래? 고맙…….”
나는 그런 제갈사의 말에 별 생각 없이 고마워했지만, 순간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기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서, 설마 내게 인신공양을 할 셈이냐!”
제갈사는 별 표정의 변화도 없이 순순히 내 말을 인정했다.
“그래. 그럴 생각이다만?”
나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내가 사악한 인신공양을 받아서는 다른 [옛 지배자]들과 다를 게 뭐냐고!”
“흐음, 그래도 30회차 전생자랍시고 꽤나 눈치가 생기긴 했군? 구렁이 담 넘듯 넘기려 했는데…….”
아쉬운 듯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이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직접적인 인신공양이 제일 간편하고 효율이 높은 방법이지만 정 안 된다면 다른 방법도 있긴 하지. 예를 들어서 네가 자주 하던 것처럼 보물이나 보패를 찾아내어서 네게 공양하는 방법이 있다.”
“……그래, 그거 좋군!! 뭐든지 간에 생명을 살상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아.”
“하지만 그 전에.”
제갈사는 순간 서늘한 눈빛을 하며 말했다.
“나하고 약속 하나는 해줘야겠다.”
나는 그 눈빛이 지금까지의 다소 장난스러운 기색과는 많이 달라 보였기에 움찔했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제갈사의 진심과 진심이 아닌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구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제갈사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어떤 약속인데?”
“별거 아니다. 이 세계에 체류하는 동안 이혼대법(移魂大法)을 극성(極成)으로 터득하는 거지.”
“……“
그게 별거 아니라고?
나는 멍하니 제갈사를 쳐다보다가 당혹해했다.
“나는 이혼대법을 대성하긴 했지만, 극성까지는 아직 멀었다 생각하는데…….”
“뭐 그렇겠지. 사실 극성은 매우 뛰어난 재능이 필요한 경지니까 네가 수백 년을 더 수련해도 본디 힘들 것이다.”
“으음.”
제갈사의 말은 언뜻 기분 나쁘게 들렸으나 이혼대법을 지난 수십 년간 계속 연마하고 써 왔던 나로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대성과 극성의 차이!
대성이란 십성(十成)을 의미했고 극성이란 십이성(十二成)을 의미했는데 단 2성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보통 웬만한 문파에서는 대성의 경지에만 올라도 충분히 달인이며 그 문파를 대표하는 간판으로 인정해주었으니, 의외로 세간에서는 그다지 대성과 극성의 차이를 구분 안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혼대법은 다르다. 고작 2성의 차이로 보였으나 그 2성 사이에는 이혼대법의 온갖 강력한 응용기와 특수한 기술들을 시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걸려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내가 복잡한 표정을 짓자 제갈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전 생에 바로 내게 이혼대법을 전수받은 너도 알고 있겠지? 이혼대법 대성의 경지는 혼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준에서 그치지만, 극성의 경지는…….”
나는 제갈사에게 이혼대법을 전수받던 과거의 경험을 살려 대꾸했다.
“혼백의 한계(限界)를 없앤다.”
“그래. 잘 이해하고 있군.”
“……제갈사, 갑자기 내게 이혼대법의 극성을 요구하는 이유가 뭐냐? 그게 이 상황에 중요한 일인가?”
“……“
제갈사는 물끄러미 날 바라보다가 말했다.
“백웅. 넌 사실 이혼대법의 대성을 넘어 극성에 손이 닿아 있다.”
“어?”
“네가 과거에 신의 혼을 인위적으로 그릇에 담았던 일이라던가, 온갖 상황에서 응용하는 감각을 보면 사실 의식하지 못할 뿐 극성의 경지에 가까워져 있지. 다만 그걸 의식해서 쓰거나 남에게 가르치지 못하기에 너를 극성의 고수라고 인정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으음.”
“그런데도 네게 굳이 진정한 이혼대법 극성의 경지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처억
제갈사가 나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전혼탈겁(轉魂奪劫)을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전혼탈겁!
나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이 굳고 말았다.
‘이혼대법 극성을 이룬 자의 증거!’
죽고 나서도 미리 이혼대법을 펼쳐 둔 육체로 영혼을 즉시 옮길 수 있는 궁극의 기술이 아닌가!
이혼대법에는 본디 한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시전자가 급작스러운 기습을 당해서 죽거나 혹은 술수를 펼칠 틈도 없이 당해 버리면 이혼대법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경우 생각하지 않는 약점이었지만 적들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뼈아프게 다가오는 단점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지능력을 가볍게 뛰어넘은 가공할 속도와 힘, 술수 같은 건 세상에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혼탈겁만큼은 그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상대가 설령 뇌신지혼을 써서 순식간에 이혼대법 시전자를 끝장낸다 하더라도 그 사실과 상관없이 전혼탈겁을 쓰면 다른 육체로 옮겨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고 나서도 쓸 수 있는 기가 막힌 특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상 최강의 생존술이자 사술(邪術)으로서 완성되는 경지, 바로 그것이 전혼탈겁!
나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제갈사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전혼탈겁을 왜 써야 하는데? 물론 쓰면 좋기야 하지만 나는 이미 전륜성왕의 권능을 가져서 죽음을 초월한 거나 다름없지 않냐.”
그러자 제갈사는 끌끌 웃는 듯했다.
“흐흐. 네 녀석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군.”
“뭐?”
“네가 전륜성왕에게 절연(絶緣)에 대해서 배우려 할 때 [죽음]의 기준 그 자체를 화두로 제시받은 적이 있다고 했지 않았냐?”
“그랬었지.”
내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자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내 생각이 맞다면 전혼탈겁을 이용하면 절연의 일격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넌 전혼탈겁을 익혀야만 해.”
“뭐, 뭐라고!! 정말이냐?!”
내가 깜짝 놀라서 반문하자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그래. 삿갓무사라는 놈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로서도 구명절초(求命絶招)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돼? 인과 그 자체를 절연해 버리는 원리라면 아무리 궁극의 경지인 전혼탈겁이라도…….”
“그러니까 되는 거지. 너는 전륜성왕의 설명을 잘못 들은 것 같군.”
“엉?”
제갈사는 쓱 하고 손가락을 내밀어 허공에서 위에서 아래를 긋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놈이 절연을 써서 이렇게 [원인]과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를 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여기서 인과를 끊는다 하면 어떤 [원인]과 [결과]를 끊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인과율을 끊겠지.”
“그래. 생(生)의 인과율을 끊으면 모든 생명체는 저절로 죽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치더라도 맹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 번에 하나의 인과율밖에 끊을 수가 없으리라는 거지.”
“……?”
제갈사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전혼탈겁은 [죽음]의 기준 그 자체를 농락하는 최고의 사법. 놈이 삶의 인과율을 끊는다 하더라도 [이 육체]에서의 삶을 끊는 것일 테니 네가 전혼탈겁을 써서 다른 육체로 혼을 옮기는 인과율까지 같이 벨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죽음과는 다른 별개의 인과율인 데다가 전혼탈겁은 애초에 그 죽음을 전제로 하는 술수이기 때문이다.”
“아앗……!!”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자마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그의 말이 이해가 간 것이다.
제갈사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단언할 수 있다. 아직 그 삿갓무사의 검술경지로는 전혼탈겁조차 막을 수는 없을 거다. 단숨에 여러 개의 인과율을 베는 게 가능하다면 29번째 생에서 세계수에서 벌어진 제곡과의 싸움에서도 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군!!”
“단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 그래서 너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전혼탈겁의 경지에 도달해야 이득을 볼 수 있는 거다. 내 말 이해했겠지?”
“그래. 잘 이해했다. 그러면 전혼탈겁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질문에 제갈사는 의외로 말을 피하는 듯 말을 흐렸다.
“흠, 그건 일단 앞으로의 과제로 해 두고…… 우선은 일단 밖으로 나가자.”
“밖으로?”
“여기는 내 비밀연구동이다. 세상과는 까마득하게 단절되어 있지. 하지만 앞으로 네가 활동하려면 이런 곳에 박혀 있으면 좋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달칵하고 웬 조그마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내게 가져와서 건네었다.
“자, 몸은 움직여야 하니까 이걸 받아라.”
제갈사가 내민 것은 커다란 수정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수정덩어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력을 느낄 수 있었고 이윽고 그 정체를 알아내고는 말했다.
“……수정석비 조각이군.”
“그래.”
제갈사가 긍정하자 나는 떨떠름한 눈으로 수정석비 조각을 쳐다보았다.
“이건 말이 안 돼. 수정석비 조각은 팔부신중 놈들이 6등분해서 각자 자기 몸에 이식했고 그놈들은 지금 다 외우주로 가버려서 이 세상에는 남아 있을 리가 없어.”
“참 생각이 단순하군. 그만큼 모험을 해 놓고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니…….”
“뭐?”
“수정석비라는 건 연금술과 마법의 신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가 만든 연금술의 유물. 즉 연금술으로 만든 것이다. 연금술으로 만든 거라면 다시 연금술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
“……설마.”
“바로 그 설마다.”
제갈사는 킬킬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와 생 제르맹이 힘을 합쳐서 새로운 수정석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쏠쏠하게 잘 이용하고 있지.”
“……!!”
“동서방 최고의 술수대가들이 힘을 합쳤는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새, 새로운 수정석비를 만들었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갈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20여 년간 많은 일이 있었지. 그걸 한 번에 다 얘기해주긴 힘드니 우선은 이 마력덩어리나 다름없는 수정석비를 먹고 몸이나 움직여라. 이러는 시간 자체가 낭비니까.”
“아, 알았다.”
나는 제갈사의 말에 수정석비 조각을 받아들고 손에 쥐었다. 그러자 잠시 후 수정석비에 깃들어있던 방대한 양의 마력이 내 몸이 흡수되는 게 느껴졌고, 나는 이윽고 몸에 감각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좀 더 살아 있다는 게 느껴져…….’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까? 정확히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극심하게 몽롱한 상태가 다소 가시고 조금이지만 잠에서 깬 각성효과 같은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하체까지 움직여서 침상에서 내려올 수가 있었다.
“끄으응…….”
나는 한 번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이제 좀 살 것 같군.”
그런 나를 보던 제갈사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크크, 내 절반의 마력에다가 수정석비의 마력까지 먹어야 간신히 자리에서 일으킬 수 있을 정도라니…… 너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신격(神格)에 도달했던 것이냐? 현 지상에 출현해 있는 웬만한 신적 존재라도 그 정도 먹으면 큰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할법한데…….”
“음, 잘 모르겠어…… 그래도 탁록의 시대에서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크게 안 꿀리고 다녔으니까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었지.”
“내가 볼 때는 제법 정도가 아니다. 네 진짜 힘을 되찾는다면 아마 이 세계에서는…….”
뭔가 말하려던 제갈사는 이윽고 히죽 웃더니 말했다.
“……뭐, 지금부터가 중요한 거겠지. 그럼 따라와라.”
덜컹……!!
이윽고 나는 제갈사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초기형태가 아닌 최소한 20세기 수준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말했다.
“과학도 많이 발전했나 보군.”
“네 기억을 이어받은 내가 열심히 문명을 발전시켰는데 당연한 게 아니겠나? 다만 네가 생각하는 대웅제국 시대의 과학과는 꽤 많이 다를 거다.”
“응? 왜?”
“나가보면 안다.”
위잉…….
덜컹!
이윽고 수십 층이나 되는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그리고 철문이 천천히 열렸는데, 나는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는 당혹스러워했다.
“……어?”
치이이익 -
치이익!!
수백 개나 되는 거대한 철관(鐵管)이 마치 생명체의 혈관처럼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철관의 끝에서 요란스럽게 증기(蒸氣)가 소리를 내뿜고 있었으며,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요란스럽게 강철의 수송차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허공에는 어지러이 철도(鐵道) 같은 게 세워져 있었으며 신비한 소리와 함께 붉은 보석이 박힌 수송차가 그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잘 보니 여기저기에 인영(人影)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자 움찔했다.
‘기계……?!’
인간이 아니라 기계다. 두골에서부터 손과 발이 모조리 기계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들 또한 가슴팍에 새빨간 보석이 박혀서 빛을 내는 게 보고 있었다. 보석으로 움직이는 기계인간들은 열심히 움직이며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위에서 내려다보자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는데 거의 지평선 근처까지 도시의 윤곽이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아 굉장히 넓은 곳이었다. 이 정도면 성(城)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내가 당황해서 이 거대한 증기의 도시를 쳐다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모, 모르겠는데…… 또 어딘가 고대 옛 지배자의 유적을 발굴한 거냐?”
“크크, 전혀 아닌데? 너도 아는 곳이다.”
“……“
“여긴 말이다…….”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예전에는 하남성(河南城) 개봉(開封)이라고 불리던 곳이지. 노예시장이 열리던 그 도시를 내가 개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