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85화 (1,484/1,615)

전생검신 84권 13화

두두두두두!!

마치 대군(大軍)이 휩쓸어 오는 듯 사방에서 수많은 외계인 투사들이 살기를 빛내며 달려온다. 나는 그 기세에 잠시 예전의 일을 회상했다.

‘처음 전쟁에 참여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던가.’

그때는 전쟁 속에서 나 자신이 휩쓸려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거대한 숫자의 폭력이란 건 일개인의 무술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수많은 경험이 쌓인 지금은 저 수많은 숫자를 보고도 그다지 공포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쉽게 갈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수준 좀 볼까.”

타닷

나는 전방으로 빠르게 쇄도하면서 가볍게 검에 검강지기(劍罡之氣)를 실어서 사출했다. 그러자 새파란 빛을 머금은 검강이 순식간에 백여 장을 훨씬 넘는 길이로 투사되었고, 나는 그 빛의 검처럼 변한 검강을 소리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휘두르며 검강에 환결(幻決)을 머금었다.

뇌신류(雷神流)

뇌룡신검(雷龍神劍)

신환영어뢰(迅環泳御雷)

피피피핑!!

그 순간 기다란 원통 같던 검강의 기운이 가늘게 쪼개어지더니 수십 가닥의 채찍처럼 변했고 그 채찍은 기존의 범위보다 몇 배는 넓어져서 전방으로 튕겨 나갔다. 내 일 초가 펼쳐지는 동안 나는 수백 장 전방에 있던 투사 수천 명의 안구 움직임을 빠르게 관찰했는데 순간 실망하고 말았다.

‘쯧…… 내 검뢰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채는 놈이 하나도 없군?’

나는 알 수 있다.

저 미세한 안구의 움직임이나 근육의 움직임, 그리고 의념(意念)만으로도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에 보일 듯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육체와 다른 외계인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무술을 사용한다면 자기 의념의 흐름만큼은 속일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볼 때 내 전방에 있는 놈들은 죄다 수준 이하였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의념을 실어서 신환영어뢰의 변화와 위력을 최대한 죽였다. 너무 하수들이었기에 도리어 죽이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퍼퍼퍼퍽!!

다음 순간 마치 채찍의 구름이 퍼져나오는 듯한 흉맹한 변화와 함께 검뢰(劍雷) 수백 가닥이 전방을 휩쓸었고 수천 마리의 외계인들이 단숨에 팔다리를 잃고 나뒹굴었다.

[끄아아악!]

[아악!!]

후두두둑

나는 놈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엄살 피기는!”

죽인 놈은 하나도 없다. 전부 팔다리만 절단내 줬을 뿐!

이 전투에 계속 참여할지 말지는 이제 본인이 택해야 하리라.

‘단순히 뇌룡신검의 절초에 극환(極幻)의 변화를 섞은 것뿐인데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온다면 제대로 초식을 쓸 경우 몇 배나 되는 위력이 나오겠군.’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때 어느새 사방에서 날아들던 포위망이 더욱 좁혀졌고 나머지 삼면(三面)에서 달려드는 외계인들이 이십여 장 이내로 들어와 있었다. 십만 마리나 되어서인지 이만큼 포위망이 좁혀지자 나와 이환웅의 모습은 마치 시꺼먼 개미 떼에 둘러싸인 것처럼 느껴졌다.

퓨슝

나를 향해 날아오는 제일 첫 번째 공격은 외계인의 입에서 웬 화살같은 걸 토해내어서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내게 쏘아낸 것이었다. 나는 화살의 형태가 절골(節骨)인 것을 보자마자 그게 사실 화살이 아니라 외계인의 척추 같은 것이라는 걸 빠르게 알아차렸고 생체무기를 쓰는 놈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흠. 외우주에서 싸울 때도 이런 놈 봤던 거 같은데…….’

나는 기시감을 느끼면서 아마도 이 척추화살을 정면으로 쳐내거나 부수면 또 다른 암수(暗手)가 펼쳐지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험상 이런 요사한 수를 쓰는 놈들은 이중삼중으로 덫을 놓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놈들은 보통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하지만 - 그건 비슷한 수준일 때의 이야기.

수준이 천양지차로 난다면 굳이 이런 요사한 수를 머리 쓰면서 상대할 필요가 없다.

용린신공(龍鱗神功)

오층천(五層天)

고탑신장(高塔神掌)

쿠콰콰콰!!

[끼에엑.]

빠르게 일 장을 뿌리며 의념으로 적의 공격을 튕겨낸다고 생각하니 장력이 저절로 회전하는 반탄력을 실어서 거대한 장막처럼 변했고, 이내 척추화살과 함께 그 외계인이 있던 근처의 모든 적을 한 번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단숨에 수백 마리가 공중으로 날아가자 나는 씩 웃었다.

“야율봉의 무공도 꽤 쓸만하군.”

역근세수경의 공간에서 마주쳤던 북원무제(北元武帝) 야율봉(耶律鳳)! 한때 몽골제국 최강의 고수였던 그자가 남긴 수기 속에는 용린신공이라고 하는 그의 독문절학(獨門絶學)이 있었으며 그 용린신공을 후세에 남겨달라는 부탁을 듣고 머릿속에 암기했었다.

그리고 암기했던 용린신공을 독학 수련기간 동안에 틈틈이 연마하여 총 십이층천(十二層天)으로 되어있는 용린신공 중에서 오층천까지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용린신공을 오층천까지 쓸 수 있다면 고탑신장이라고 하는, 용린신공의 근본이자 필살기이기도 한 절기(絶技)를 쓸 수 있게 된다.

본디 무공을 덤으로 익히는 건 내 재능으로 불가능했지만 내 무예수준 자체가 높은 경지에 올라있었기에 용린신공 내에서 높은 무학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부분을 이미 알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용린신공의 고탑신장에는 자신에게 밀려드는 적을 튕겨내는 척력(斥力)의 묘리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다. 나는 간만에 재밌겠다고 생각하며 내 주변에 빠르게 고탑신장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받아봐라!”

퉁퉁퉁퉁!

한 차례 빛의 장인(掌印)이 허공에 맺힌 후 수백 개의 신장(神掌)이 급격히 거대화되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고탑신장의 장력이 단숨에 수십 장 이상 커지면서 날아오던 외계인들을 집어삼켰고 이윽고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퍼퍼펑

[끄아아악.]

[우에엑.]

삽시간에 내게 덤벼들던 외계인들 무리가 동시에 허공을 날아다니는 현상! 그것도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공중에 떠있는 모습은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굴공천축검에 비하면 뒤지는 무공이다. 인척력(引斥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굴공검과 천축검의 합일에 비하면, 이 고탑신장은 단순히 밀어내는 힘이 강할 뿐 그 힘을 효율적으로 쓰지는 못하는구나.’

하수들을 상대로 할 때는 고탑신장이 더 강할 수도 있겠지만 고수의 대결에서는 굴공천축검이 훨씬 유리한 게 분명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고탑신장이 약한 무공은 아니고 무림의 절세무공 중 하나인 건 분명했지만 격의 차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하위호환임에도 불구하고 고탑신장과 굴공천축검은 유사성이 많이 느껴졌다. 나는 수련하던 당시에는 못 느끼던 이 기묘함을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이 미치는 게 있었다.

‘…… 설마…….’

야율봉의 수기에 적혀 있던 구절이 생각난 것이다.

[그러나 대칸의 명으로 무림을 정복하려 할 때 나를 막아서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원원자 장삼봉이었다. 나는 장삼봉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내 무림세력을 모두 해체하고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장삼봉은 실로 내가 넘지 못할 벽이었고, 역사상 다시 없을 무공의 천재였다. 설마 그가 그 젊은 나이에 절대지경에 오를 줄은…….]

[나는 절치부심하여 계속 무공을 갈고닦아 20년 만에 마침내 그와 같이 절대지경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장삼봉에게 다시 도전했으나, 장삼봉은 더 강해져 있어서 20년 전보다 더 심각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는 이미 하늘 위의 존재였으며 투선(鬪仙)이라는 초월자가 되기로 예정된 듯했다. 아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장삼봉을 너무나 이기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제 수명대로라면 장삼봉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귀에는 소림사에 절대지경을 초월할 수 있는 역사상 최강의 신공이 있다는 소문이 들렸고, 나는 소림사에 몰래 잠입하여 역근세수경의 원본을 훔쳐내었다.]

굴공천축검의 원리를 창시한 장삼봉 진인과 북원무제 야율봉은 동시대의 인물이자 호적수!

그러나 북원무제 야율봉은 장삼봉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은퇴할 수밖에 없었고 장삼봉을 너무나 이기고 싶었던 까닭에 소림사의 역근세수경을 훔치기까지 했었다. 나는 그 사실에서 한 가지를 유추할 수가 있었다.

‘설마…… 장삼봉 진인은 야율봉의 고탑신장과 맞서 싸우다가 굴공천축검을 창안한 게 아닐까?’

적의 무공에 깃들어있는 장점을 흡수해서 척력뿐만 아니라 인력까지 지니고 있는 완벽한 무공을 고안해냈고 그게 바로 굴공검과 천축검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오싹!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장삼봉 진인의 재능에 전율하고 말았다. 분명히 적으로 만나서 싸웠을 자의 무공에서 장점만 따로 흡수하는 것도 모자라서 개선까지 해서 새로운 절세무공을 만들었다는 게 아닌가! 나는 이런 곳에서 역대급 재능의 편린을 느낄 줄은 몰랐기에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내가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이환웅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앗!! 잠깐만!! 이건 너무 빡세다고!!”

카가가강!!

콰칭!

[크오오!!]

근처를 보니 이환웅은 자기 주변에 달려드는 수십 명의 외계인 투사를 상대로 은하구절편을 써서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이환웅은 진심으로 당황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나하나의 살초를 열심히 막고 있었으며 여유가 거의 없어 보였다.

‘흠. 그럴 만하군.’

이환웅 주변에 들러붙은 건 최소한 검기(劍氣) 이상을 쓸 수 있는 상급 투사들! 제대로 기와 무술을 쓸 줄 아는 놈들이 신체능력이 5배나 증폭되어서는 이환웅이 1초를 쓸 때 단체로 수십 초를 퍼부으니 제대로 감당하기가 힘드리라. 원래부터 인간족보다 몇 배는 강인한 외계인들이었으니 도리어 아직까지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는 이환웅을 보면서 이죽거렸다.

“벌써 죽는소리하면 어떡해? 아직 반에 반도 해치우지 못했는데.”

“이런 젠장!! 하나하나는 별거 아닌데 신체능력이 너무 높아서 힘들다고!”

“십이율주였다면 고작 그런 놈들 때문에 앓는 소리 하진 않았을 거다. 수련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버텨 봐.”

“염병!!”

콰광!!

나는 폭음이 터져 나오며 이환웅의 은하구절편에서 맹렬한 강기가 터지는 걸 보자 씩 웃었다.

‘이제야 엄살을 그만두는 건가.’

딱 봐도 이환웅은 충분히 여력이 있는데 십만 마리를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을 아끼려고 일부러 수세로 전환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안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심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환웅처럼 생각하는 건 이치에는 맞지만 수련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돼.’

수련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진원지기의 밑바닥까지 끌어내면서 생사의 백척간두에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

수련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퍼부어야 성장할 수 있다!

어설프게 힘을 아껴두며 전략적으로 싸우는 건 이기기위한 방법론으로서는 옳을지 몰라도 아직까지 ‘위’를 바라보아야 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방법이다. 생사의 간극을 넘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경험치와 실력이란 게 있으며, 아직까지 이환웅은 그 생사의 경계를 넘은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도 가보실까!”

나는 이환웅에게 주어진 적들은 건들지 않기로 생각하며 계속해서 몰려드는 적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뇌령인(雷靈印)!

콰과과광

[끼에엑!!]

단숨에 섬도 날려 버리는 뇌령인을 쓰자 이번에도 한 번에 수천 마리 이상이 날아갔다.

“음!”

나는 하늘로 날아가는 외계인을 주의깊게 살폈다. 저게 죽었나 안 죽었나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뇌령인의 효과에 감전만 당했을 뿐 직접적인 외상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좋아!’

안 죽이는데 성공했어!

역시 뇌령인도 의념으로 위력을 제어하면 물리적인 타격력을 거의 없앨 수가 있구나!

내가 뇌령인에서 살기를 최대한 죽이고 위력도 안 죽일 정도로 제어를 하니 내공소모가 극심했지만 나는 이번 싸움에서 마음먹은 게 있었다.

‘12만 6천명, 전부 불살(不殺)으로 간다!!’

그냥 양민을 학살하는 것만으로는 내게 남는 게 없다.

절대로 직접 적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살 제약 정도는 붙여야 내게도 수련이 되리라.

콰과광!! 콰광!!

그렇게 뇌령인을 다섯 번 정도 연발하자 개미떼처럼 몰려들던 적들도 잠시 주춤하게 되었고 반경 삼십여 장이 휑하게 비는 듯했다. 너무 한꺼번에 다 쓸려가니 이제야 수준차이를 조금 깨달은 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심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야…… 일부러 안 죽이려고 하니까 내공소모가 장난 아니네…….’

겨우 몇 발 밖에 안쐈는데 벌써 내공이 반토막 났단 말인가?

나는 생각보다 불살의 제약이 크다고 생각했다. 죽일 수 있는 걸 일부러 안 죽인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내가 내공의 소모를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모두 비켜라!!]

거대한 노호성과 함께 약 십여 명의 외계인 투사들이 내 앞으로 나왔다. 나는 그 투사들의 몸에 흐르는 진기(眞氣)의 흐름을 보고는 생각했다.

‘꽤 하는 놈들이군.’

이환웅에게 달라붙은 놈들보다 몇 배는 강하다. 단순히 기가 강한 것뿐만이 아니라 전신에 흐르는 의념의 흐름이 잘 통제되어 있고 기복이 적은 걸로 봐서, 상당히 연마가 잘 되어 있는 무인(武人)들이었다. 나는 이놈들의 수준이 초절정 고수급이라 생각하며 힐끔 쳐다보았고, 그 외계인 투사들 중에서 새 같은 머리를 한 강철완갑의 마인(魔人)이 앞으로 성큼 나오며 말했다.

[나는 투사 랭킹 7위인 가르엔싱! 그대의 고절한 무예에 찬사를 표한다.]

“…….”

[우리 10명은 현 데미우르고스 레덴 투사랭킹의 최상위에 있는 자들! 단독으로는 그대의 실력을 감당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한 번에 공격함을 양해하라.]

고오오

나는 나를 둘러싼 십여 명이 하나같이 정제된 의념의 살기를 뿜어내는 걸 보고는 생각했다.

‘즉 랭킹 3위부터 13위까지 전부 달려든다 그 소리군?’

1위는 패왕 아지다하카이고 2위는 그런 아지다하카에게 덤벼들어서 패배한지 하루도 되지 않았으므로 부상 때문에 못나오리라. 그렇다면 사실상 나를 둘러싼 이 십여 명이 데미우르고스 레덴의 최상위 랭커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 히죽 웃었다.

“합공도 좋고말고. 그런데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100초 양보해 주마. 그동안 스치기라도 하면 너희가 이긴걸로 하자.”

[……!!]

내 말을 들은 데미우르고스 레덴의 최고수 십여 명은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깔보지 마라!!]

슈웅

다음 순간 바로 등 뒤까지 도끼의 날이 날아들었다. 그 칼날에는 강렬한 강기가 맺혀 있었고 지금까지 봤던 어리숙한 놈들과 달리 제대로 자신의 의념을 단련해서 위력을 높인 공격이었다. 이 정도면 중원에서도 웬만한 문파의 장문인급보다 훨씬 강했기에 이 투기장에서 최상위급이라는 걸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되지.

삼보절기(三步絶技)

천(天)과 지(地)의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제약해도 좋다. 이 두 번의 호흡은 그저 포석일 뿐, 마지막 인(人)의 움직임은 확실하게 적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사전에 피해내는 것이다. 내가 삼보절기를 펼치자 도끼는 허무하게 허공을 스쳤고 강기의 범위조차도 나를 전혀 스치지 못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듯 십여 명은 동시에 달려들어서 엄청난 기세로 나를 난도질하려고 했다.

슈슈슝

키리링

꽈앙

‘쇠사슬, 원반형의 암기, 대검, 비파, 음파공격, 그리고 뭔지 모를 생체무기, 철완(鐵腕)…….’

순식간에 수천 개의 궤적이 허공에 생겨났고 반경 일 장도 되지 않는 좁은 범위에서 내 몸을 찢어발기려고 했다. 본디 콩알 한쪽이라도 그 궤적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나는 철저하게 삼보절기에 내 모든 의념을 모은 채 잡념을 없애고 의념의 흐름에만 집중했다.

머릿속에 아수라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기(氣)는 적연부동(寂然不動)하나 정중동(靜中動). 무림에서는 유명한 격언이지.]

[그럼 어째서 멈춰있는데도 움직인다고 하겠나? 기 그 자체의 성질을 잘 살펴보는 게 좋다.]

나는 이미 그 가르침의 의미를 진소청을 가르치며 깨달은 바가 있었다.

‘기(氣)가 객관화되어 의념과 동조하는 것.’

진소청은 그 원리를 이해하여 란나찰을 무의식에 동조시켜 효율적으로 가속시킬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광도 이 원리를 깨달은 덕에 삼재(三才)를 겹쳐서 구궁파천뢰 뇌혼을 몇 배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수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는 이 천재들의 발전을 곁에서 보아왔고, 수백 년의 수련이 지나서야 그들이 말했던 기본원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삼점(三點)을 찍는 게 힘들지 의념을 불어넣는 건 힘들지 않소.]

이광이 했던 말 대로다.

삼재의 근원이 순환이며, 순환의 근본이 원(圓).

삼재의 원 안에 나 자신을 두기만 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공격도 삼점을 동시에 끊을 수가 없으니, 하나나 두 개의 점이 끊길 때 하나의 점을 이용해 또 다른 원이 형성되는 흐름만 유지하기만 하면 - 그 자체가 절대적인 회피를 이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리란 바로 삼보절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파앗

나는 눈을 감은 채 정적의 공간에서 말없이 모든 궤적을 천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피하는 게 아니야…….’

피한다는 건 상대가 나의 삼재에 들어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행위. 그러나 실제로 회피란 적의 모든 의념을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삼재에 발을 밟는 것은 허용하되, 그 순간 나 자신의 법칙에 상대를 가두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삼보절기가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적의 공격을 회피하려 의심하지 않고 적의 의념을 ‘밀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요령이 되는 것이다.

두웅…….

나는 마치 어두운 공간에서 나 홀로 천천히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수한 궤적이 빽빽하게 날아드는데도 그 궤적들은 나를 전혀 위협할 수가 없었다.

모든 공격을 다 이해해서 피한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적의 위력을 인정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삼재에 가둬서 그 위력을 죽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삼재. 세상의 삼라만상을 이해하는 첫 걸음인 천지인(天地人)이 의념으로 발휘될 수 있는 기반이었다.

스아아앗

아주 느릿하게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나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몰아지경으로 춤을 췄다. 그리고 내 내면에 있던 구궁파천뢰와 삼보절기가 이어지듯이 동기화(同期化)되었고 나는 삼재의 흐름에 따라 호흡도 완전히 맞추게 되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쳐낸다.

어찌 보면 정반합(正反合)이라 할 수 있는 그 단조로운 흐름만 반복되었지만 그럴수록 적의 공격이 몇천 회든 몇만 회든 상관없어졌다. 왜냐하면 그 하나하나가 내 흐름에 들어와서 삼재의 점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거였나?

그때의 진소청이 보고 있었던 풍경은 이런 걸까?

나는 어느새 승패조차 잊고 이 흐름에만 전력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나의 진짜 수련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파파파팟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어느 새 적들의 공격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고, 어느 순간 뚝 끊기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

내가 서서히 눈을 떴을 때 내 주변에는 열 명의 최상위 투사들이 동시에 꿇어앉아 있었다.

내가 맨 앞에 있던 가르엔싱을 보자, 그는 철갑을 두른 양 팔을 바닥에 꾹 누르며 내게 말했다.

[우리의 힘은 5배로 증폭되었으며, 그대의 힘은 초주박으로 인해 1할 미만으로 내려갔음에도…… 눈을 감고 설마 우리의 모든 공격을 피해낼 수 있을 줄은 몰랐소.]

“…….”

[무인으로서 이에 패배를 승복하지 않을 수는 없소……!!]

가르엔싱의 목소리에는 비통함이 스며들어있었지만 동시에 경외감 또한 함께 들어가 있었다. 고수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공격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이해했고 그래서 더 빨리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가르엔싱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수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나는 집중상태에서 서서히 현실로 되돌아오며 말없이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열 명의 투사들은 죽음을 받아들인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뇌령인(雷靈印)

콰과광!!

[크아아아악.]

내 일격과 함께 랭커들 뒤편에서 단숨에 습격해오려던 외계인 무리들이 허공으로 훨훨 날아갔다.

[아니.]

랭커들이 놀라서 뒤를 보자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졌으면 더 이상 얼쩡거리지 말고 나가. 안 죽이는 것도 힘들거든.”

[…… 알았소.]

파앗

랭커들이 패배를 인정하고 필드에서 나가자 다시금 단체 개싸움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나는 방금 전에 펼쳤던 방어술의 기분 좋은 여운에 취해 있고 싶었지만 이내 전후좌우 사방을 가득 메우는 개떼들이 마구 몰려들자 여운이 깨지는 걸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흠. 한 번 고급진 깨달음을 얻으니까 이런 하수들과 놀아주는 게 너무 귀찮군…… 어차피 불살의 제약을 걸어봤자 학살밖에 안 되는데 좀 덜 귀찮은 방법은 없을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 있던 흑웅을 쳐다보았고, 흑웅은 마치 내 마음을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모수분신술을 써보시는 건 어떻소?]

“모수분신을? 그래봤자 그놈들이 얻은 경험치가 내게 오지는 않는데…….”

[이 자리를 쓸어 버리는 데는 가장 쉬운 방법이오. 그리고 불살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으로 싸운다면 또 하나 괜찮은 방법이 있소.]

“뭔데?”

나는 이윽고 흑웅의 말을 듣자 감탄했다.

“생각도 못 했던 거군. 근데 될까?”

[어차피 요점을 완전히 이해 못해도 주인의 분신이니까 기본은 해낼 것이오.]

“뭐 좋아. 나쁘지 않으니까 어디 해 볼까.”

뿌드득

후욱!

나는 단숨에 내 머리카락을 뜯어서 뽑고는 모수분신술을 시전했다.

퍼퍼펑

그러자 내 분신들이 100여 명이 소환되었고 나는 소환된 모수분신들에게 명령했다.

“자, 주목!!”

“또 뭔데?”

“지금부터 너희가 할 일은…….”

이어진 내 명령에 분신들이 인상을 우그러뜨렸다.

“에라이 씨발.”

“파해법만 들었지 너도 제대로 잘 모르는걸 우리한테 시키냐?”

“얼굴은 갈아치웠어도 개 같은 심성은 갈아치우지 못했구나.”

“소똥아! 이게 맞냐!”

분신들이 욕지거리를 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외쳤다.

“꼬우면 니네가 본체하던가!! 일단 방위만이라도 잡아봐라.”

“니미럴!!”

분신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이내 빠르게 내 주변으로 튀어나가서 방위와 함께 자세를 잡았다. 내 기억속에서 분명히 신승 명호대사에게서 전수받았던 이 진법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서 기초적인 운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방위는 다 맞군.’

내가 흡족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 때 자기한테 붙어 있던 외계인들을 얼추 다 쓰러뜨린 이환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분신들의 진법을 보고는 말했다.

“……설마 그거…….”

“알고 있냐?”

“…….”

이환웅은 황당해했다.

“백팔나한진?”

“정답!”

콰과과광!!

[끼에엑!]

[끄악!]

잠시 후 백팔나한진의 방위가 형성되었고 내 분신 백여 명은 백팔나한진의 방위에 버티고 서서 몰려오는 적들을 하나하나 격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나는 더 이상 손발을 쓸 필요 없이 편하게 서 있기만 하면 되었기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환웅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떻게 백팔나한진을 알고 있지?”

“그러는 너는 이게 백팔나한진이라는 걸 어떻게 아는데?”

“그야 천부문에도 소림사의 모든 비전무공이 전수되었으니까…… 아니, 그것보다 분신술을 이용해서 백팔나한진을 펼치다니 이건 무슨.”

당황하는 이환웅에게 나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명호 대사가 가르쳐준 걸 이제야 써먹는 것뿐이야.”

칠요의 시련 당시에 신승 명호대사는 미래를 대비해서 내게 금강대정신공의 구결은 물론이고 소림사의 강력한 무공절기의 명단을 모두 알려주었고 뿐만 아니라 백팔나한진의 파해법과 전개법까지 다 알려줬던 것이다. 내가 아는 백팔나한진은 무척 기본적인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진법의 기본만 안다면 방위진을 형성하는 건 어려울 게 없었고, 무엇보다도 내 분신들인 만큼 하나하나가 강했기에 그 이상의 묘용은 필요가 없었다.

“흐음, 그렇군.”

“그렇군이 아니지…… 너도 나가서 천 마리 쓰러뜨리고 와!”

투웅!

“커억!”

내가 격공장으로 이환웅을 밀어내자 이환웅은 저항도 못 하고 밀려 나가서 전장에 떨어져 버렸다. 나는 손을 툭툭 털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안 싸우려고 잔꾀를.”

나는 느긋하게 모든 전투가 끝나는 걸 기다리기로 했다. 원래는 하나하나 다 주먹으로 쓰러뜨리면서 몸을 풀려고 했는데 방금 전에 삼재의 깨달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더 이상 하수들과 다투면서 깨달음을 망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약 반 시진이 지나자 마지막 외계인이 쓰러져 기절했다.

쿠웅

“허억…… 허억…….”

모수분신술을 해제하자 장내에 남은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이환웅 뿐이었다. 피투성이라고 해도 자신의 피는 없었고 죄다 상대의 피를 뒤집어쓴 거지만 이환웅은 체력이 다 소모되어서 파김치가 된 듯했다. 나는 이환웅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밑바닥까지 체력을 다 써본 소감은 어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군.”

“그래도 무공에 조금 실마리는 잡힌 것 같지 않냐.”

“그럴지도.”

이환웅은 한숨을 쉬었다. 직접 표현은 안 해도 역시 이환웅에게 나름대로 소득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녀석도 잘 가르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절대지경에 오르게 될까.’

그리고 이환웅이 쓰는 천의무봉 또한 십이율주의 천의무봉과 같은 것인가?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환웅을 성장시키는 건 필수적이었다.

잘만 하면 천의무봉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경기장에 커다란 환호성이 들려왔다.

[데미우르고스 레덴 사상 최초로 3대 도전을 동시에 성공한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패왕 도전권을 쟁취한 랭킹 2위 백웅 선수에게 모두 환호를!!]

와아아아

나는 그 함성을 들으며 생각했다.

‘뭐, 당연한 거지…….’

이 정도로 압도적인 무공을 보여준다면 내가 패왕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다는 건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나는 이환웅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

“빠르게 패왕과의 대결을 하고 싶군. 그 전에 오늘은 가서 쉬어볼까.”

“그래야겠…….”

풀썩

이환웅은 순간 기력이 다해서 기절했다. 나는 설마 기절할 줄은 몰랐기에 놀라서 그를 내려다보았는데 흑웅이 말했다.

[이환웅의 무공으로 도중에 당해낼 수 없는 국면이 종종 있었소. 그는 그때마다 메피스토의 연산력을 끌어내서 임시로 천의무봉을 썼는데 그럴 때마다 기력이 크게 소모되었던 것이오.]

“그래도 천 마리 이상은 쓰러뜨린 걸 보니까 대단하군.”

[그의 주 관심사가 무공이 아닐 뿐 그 또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무공의 천재인 건 확실하오.]

“…….”

나는 묘한 눈으로 이환웅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이 정말로 커서 십이율주가 된다는 게 묘한 현실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호랑이 새끼는 커서 호랑이가 되는 법이지.’

지금도 이환웅에게서는 범접하기 힘든 천재적인 직감과 두뇌, 재능이 가득 느껴지는데 만일 이런 놈이 수천 년이나 칼을 갈게 된다면 십이율주 같은 인간이 된다는 소리가 된다. 나는 그동안 내가 십이율주에게 유독 애먹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이환웅을 목갑 안에 집어넣으며 흑웅에게 말했다.

“그럼 숙소로 돌아가자고.”

[아니오.]

“어?”

흑웅은 뜻밖에도 내 제안을 거절하며 팔짱을 꼈다.

[주인. 마음에 걸리는 게 있소. 나와 함께 가 주셨으면 하오.]

“……? 중요한 거냐?”

[중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하지만 꺼림칙하오.]

“흐음. 좋아.”

[고맙소, 주인.]

파앗

나는 흑웅이 열어준 차원문을 따라서 들어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공간에 도착했는데 습기가 가득 찬 수정석이 가득한 고대의 큰 동굴으로 보였다.

“이 동굴은 뭐지?”

뭔가 이곳은 심상치 않다.

[주인. 이 레무리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척 흉험한 기운을 느꼈소. 그리고 주인이 싸우는 동안 집중해서 그 기운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오.]

“아…… 그랬었지.”

그러고 보니 흑웅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동굴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아직 흉험한 기운이라는 건 안 느껴지는데? 그리고 여기가 레무리아가 맞긴 한 거냐?”

레무리아는 외계의 이질적인 문명이 섞인 최첨단 마도공학의 거대도시라는 느낌이었다. 그런 레무리아와는 달리 이 수정동굴은 원시적이고 때 묻지 않은 음습한 어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내 질문에 흑웅은 공중에 떠서 서서히 앞으로 전진하며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이 레무리아의 위치는 주인이 살던 명나라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천축 인근이오. 물론 지금은 대륙의 위치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정확히는 천축의 근해(近海)에 걸쳐져 있는 지대라고 할 수 있소.]

“호오, 거기인가.”

[그런데 그건 표면적인 위치이고, 내가 신력을 써서 진짜 위치를 살펴보니 그 좌표는 태평양의 한가운데에 가까웠소. 아마 일반적인 물리력으로 탐사할 때는 천축 인근의 천축해에서 레무리아를 볼 수 있지만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허가받은 자만이 레무리아의 진짜 위치인 태평양 한가운데로 들어올 수 있는 거요.]

“흐음!”

그러니까 천축해 근처에서 보통 인간들이 레무리아를 관찰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위치에 존재하지 않기에 절대로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들어올 수 없다는 건가!

나는 흑웅의 말을 얼추 이해하고는 질문했다.

“그러니까 레무리아는 태평양에 있다. 그 소리군. 근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야?”

[…… 우리가 있는 이 수정동굴은 바로 그 레무리아의 진짜 위치에서 바로 아래이지만, 지저 20리보다 훨씬 더 밑에 있는 장소요. 사실상 지표면이라기 보다는 지구의 맨틀에 가깝지.]

“음!! 그렇게나 깊은 곳이냐?”

나는 흑웅의 말에 약간 놀랐다.

맨틀!

그것은 사마령 교수에게 들은 지식으로써 지구의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지구는 아주 얇은 지표면이 주변을 뒤덮고 있으며, 그 밑에는 시뻘건 용암이 지나가는 맨틀이라는 층(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맨틀이 지표면 가까이에 지날수록 강한 기(氣)가 응축되었으며 그런 장소를 용맥(龍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흑웅의 말이 이어졌다.

[이 수정동굴은 레무리아 대륙의 지하부와 차원문으로 연결된 장소요. 그것도 이중삼중으로 보안이 걸려서 함부로 접근 못 하게 되어있었는데 무척 수상했기에 이곳에 와보고자 했소. 이곳은 아마 레무리아 1세가 숨기고자 하는 치부(恥部)일 수도 있소.]

“수상하긴 수상한데 그래서 흉험한 기운이란 게 어딨는 거야? 왜 나는 못 느낀 거지?”

[주인보다 내가 신체(神體)를 높게 보유하고 있으며 민감한 편이니 당연하오. 무척 미세한 기운이었으니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주인은 못 느꼈을 것이오.]

“…….”

[하지만…… 감각을 집중해 보시오…… 이곳에 직접 와 보니 뭔가 느껴지지 않소?]

“음…….”

나는 그 말에 눈을 감고 신력을 감지해 보았다.

…….

두근!

그 순간, 나는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한 쌍의 눈빛을 느꼈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한 저릿함을 느끼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집중에서 깼다.

“……!!”

이, 이건?!

[느껴졌소?]

“뭐, 뭐냐…….”

[심상치 않소. 그 실체는 명확지 않으나 이런 걸 가만히 두고 보면 주인의 앞길에 위험요소가 될 것이오.]

“…….”

흑웅의 말이 맞다.

방금 전 느꼈던 그 순간의 느낌은 엄청나게 강력한 [힘] 그 자체!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와 전율 그 사이였는데 단순히 힘 하나만으로 내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건 여기에 있는 ‘무언가’가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젠장, 레무리아 1세가 보호해달라고 했던 게 뭔가 이유가 있었던 건가?”

나는 왠지 여기를 계속 파고들면 심상치 않을 정도로 위험하고 흉맹한 일을 맞닥뜨리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 직감은 동시에 그게 꼭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며 단지 큰 위험을 동반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가자.”

이 수정동굴의 정체를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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