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11화
내 말에 투기장의 패왕, 청면의 무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어찌 되었든 내게 도전한다는 건가?]
“신역(神域)에 대해 모른다고?”
[입이 가볍군.]
스스스
그는 자신의 다섯 자루 대검 중에서 한 자루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잘 보니 그의 여섯 개나 되는 팔 중에서 하나가 망토 사이에서 뻗어 나와 있었고, 그 팔에는 주름과 혈관이 가득 잡혀 있으면서도 알찬 근육이 낭비 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건 인사 대신이다.]
퓨웅!
그 순간 그의 대검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공간(空間)째로 의념으로 베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인식하기도 전에 그의 검격이 가슴팍 근처까지 다가와 있는 걸 느끼고는 약간의 전율을 느꼈다.
‘무쌍참같군!’
타탕!!
나는 거의 동시에 상대의 일격을 의념으로 받아치는 데 성공했다. 본디 인간의 반응속도를 한참 넘어선 공격이었으며 총알보다 수십 배는 빠른 공격이었지만 의념을 다루는 고수들 사이에서 이 정도는 기본인 것이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검파(劍波)가 물결쳤고 그 흐름 속에서 상대가 또 다른 검을 손에 드는 게 보였다.
이검(二劍)인가?
상대의 눈이 흐릿하게 빛나는 게 느껴지면서 광세절기가 펼쳐졌다.
아르겔도 검제(劍帝) 불멸외천기(不滅外千機)
제일백구십일식(第一百九十一式)
나파라절(羅把羅切)
상대의 두 개의 팔에 두 개의 검이 들려서 순식간에 종횡하듯이 내 상단을 쓸어왔고 나는 그 검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변환검결이다!!’
특히 환(幻)의 기운이 강했기에 조금만 잘못 대응해도 저 검결의 허초에 휘말려서 내 심장과 늑골을 한 번에 관통당할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이런 검술은 내가 인세에서 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생소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대응 못 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빠르게 위험한 범위에서 몸을 피하면서 뇌신류의 만승검결으로 대응했다. 공수의 안정감이 가장 좋은 만승검결을 시전하자 저 기오막측한 검결에서 손쉽게 몸을 지킬 수가 있었다.
카가강
그리고 그 충돌과 동시에 나는 섬찟한 직감과 함께 저 먼 곳에서 이기어검이 날아드는 걸 알 수 있었다. 방금 전에 외눈 거인을 쓰러뜨린 한 수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이 정도는 보지 않고도 막을 수 있다.
‘여긴가.’
파앗!
다음 순간, 의념이 내 손에 강렬하게 집중되었고 날아오던 이기어검의 칼날은 내 손가락 사이에 잡혀 있었다.
[……!!]
“후.”
나는 아슬아슬하게 묘기 같은 한 수를 선보이며 씩 웃었다.
“이 정도면 자격증명은 됐나?”
이것이 바로 무토도리(無刀取り)의 극예(極藝)다.
그동안 검류를 연습하면서 내 무예의 감각은 점점 더 예민해졌으며 본디 장기로 삼고 있던 무예의 기술들은 더욱 정밀해졌던 것이다. 본디 아무리 나라도 목어검을 무토도리로 쉽게 잡아낼 순 없겠지만 오랜 수련이 이런 묘기를 가능하게 했다.
상대는 의념을 보내서 내 손가락 사이에 잡힌 그의 이기어검을 움직이려 했지만, 강철처럼 견고하게 붙잡혀서 움직이지 않자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광오할 자격이 있는 명인(名人)이로군. 내가 태어나서 만난 고수 중에서 두 번째로 강하구나.]
“엉?”
나는 그 말에 약간 자존심이 상해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십 초도 안 부딪혔는데 벌써 내 실력을 판단하는 거냐? 나보다 확실히 강한 고수가 있었다고?”
내가 무공을 수련한지가 몇 년인데, 누구 맘대로 두 번째야?
상대는 내 반문에 대검을 살짝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대가 들어서 알지 모르겠군. 그 이름은 유망(榆罔)이라고 한다.”
“…….”
아니 젠장.
할 말이 없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려서 헛웃음을 흘렸다.
“아…… 으흠흠. 인정한다.”
[음?]
“나도 만났거든.”
[…… 그런가.]
파앗!
그때 내가 잠시 정신집중이 흐트러진 틈을 타서 상대가 내 무토도리에서 이기어검을 빼서 다시 자신의 손에 수발했다. 다시 다섯 자루의 대검을 모두 장비한 상대는 검집에 차분하게 칼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지. 나는 대(大) 아르겔도 유파의 검성(劍聖)이며 검제(劍帝)이며 종사(宗師)인 아지다하카!! 그대는 지금 아르겔도 류(流)에 도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투기장의 패왕인 내게 도전하는 것인가?]
“……!!”
아르겔도의 검종(劍宗) 아지다하카!
나는 놈의 본명을 들은 게 처음이었기에 잠시 그 말을 곱씹다가 말했다.
“종사라는 건 알겠는데 검성이면서 검제라는 건 무슨 소리냐?”
[검성이란 우리 은하계에서 가장 강한 검사(劍士)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그리고 검제는 본 유파의 모든 기술을 사사한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다.]
“……그러니까 최강자라 이 말이군. 대충 이해했다.”
나는 씩 웃고는 아지다하카에게 말했다.
“아지다하카. 나는 네가 검성이든 검제든 패왕이든 상관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네가 신역절기의 백좌(百座) 중 한 명이라는 것!! 너와 무예를 겨루고 싶다.”
[…….]
아지다하카는 잠시 희미하게 눈을 빛냈다. 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건 그대도 백좌가 되고 싶어서인가?]
“음…… 그건…….”
나는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왜인지 그 질문은 핵심을 후벼 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난 별로 백좌가 되고 싶진 않아. 하지만 신역절기가 궁극의 무예로 향하는 중간단계 같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군.”
[그런가…… 그대도 유망과 크게 다르진 않구나.]
“유망은 뭐라고 했는데?”
[그대와 거의 같은 말을 했다. 다만 훨씬 더 오만했지.]
그렇게 중얼거린 아지다하카는 천천히 검을 들었다.
[말해두지만 나는 백좌가 아니다.]
“뭐……? 그럴 리가 없어. 넌 분명히…….”
미래에서 봤을 때는 신역절기의 고수였단 말이다!
내가 그 말을 목구멍까지 나왔는데 간신히 삼키자 아지다하카는 훗하고 웃는 것처럼 보였다.
[무예의 경지가 감투라도 되는가?]
“…….”
[무사라면 칼으로 이야기하라. 더 이상의 이야기는 마음을 흐트러뜨릴 뿐이다.]
나는 아지다하카의 한마디에 마치 찬물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들뜬 마음이 약간 가라앉았고, 대신 침착하게 아지다하카와 거리를 유지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거 좋지.”
스스스…….
나는 삼 장의 거리를 두고 아지다하카와 검권(劍圈)을 겨루었다. 고수끼리만 통하는, 서로의 공격과 방어를 가늠하는 무형(無形)의 범위! 이 공간에서 서로가 선(先)을 차지해서 이기려고 애쓰는 것이며 누가 먼저 검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손쉽게 결판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상당한 시간동안 아지다하카와 대치하던 중 깨달았다.
‘이 자의 검류(劍流)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구나.’
아무리 상대가 고수라고 하더라도 그자가 그동안 쌓아 올린 무예는 반드시 특정한 성격을 띠게 된다. 뇌신류의 고수들은 뇌신류만의 기색을 풍겼고, 무당파의 고수들은 무당파만의 기세를 풍기는 식이었다. 뭐라고 딱 잘라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냥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상대가 어떤 무공을 주로 익혔고 어떤 성격이리라는 게 감이 잡히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지경의 고수들을 대면하고 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지다하카는 달랐다.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데도 그가 어떤 무공을 펼칠지는 도저히 감조차 잡히지 않았으며 주력 무공이 어떤 계열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완전한 무형(無形)에 도달했기 때문인 건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이윽고 그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밀도 있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담백하리만치 스스로를 비운 허(虛)의 기풍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헷갈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아지다하카의 살기가 미약하게 새어 나온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살기를 느낀 후에야 내가 무엇을 헷갈렸는지를 착각했다.
‘…… 반대였구나!!’
다음 순간, 나와 아지다하카의 일검(一劍)이 교차한다. 나는 무량단(無量斷)의 일섬(一殲)으로 아지다하카의 허리춤을 끊어 베었고, 아지다하카의 검은 한 줄기의 검원(劍圓)을 날려 내 심장을 관통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으며 그저 의념의 교환에 지나지 않았으며, 서로가 양패구상하는 결말을 느낀 순간 다시 우리의 초수가 변화했다.
슈슈슈슝
무수한 검인(劍刃)이 혼탁한 가을바람에 휘날리듯이 사방에 교차한다. 나는 끊임없이 상대에게서 치명상을 피하면서 나만 적을 공격해서 없애는 방법이 없는지를 알아보았지만, 그때마다 아지다하카는 귀신처럼 의념으로 내 술수를 차단했다. 실제로는 한 호흡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극한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이미 우리 사이의 공방은 수백 초 이상이 오가고 있었다.
무척 수가 깊다…….
나는 어느새 기(碁)를 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와 상대방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으며, 내가 공격하면 상대는 받아친다. 나는 줄곧 공세를 퍼부었으나 상대는 그때마다 후수(後手)를 두면서 내 공격의 맥을 허리에서 끊어서 봉쇄했다. 실제로는 바둑을 두고 있을 리가 없는데도 너무나 무예의 깊이에 빠져들다 보니 내가 지금 검술을 펼치고 있다는 것조차 까먹을 지경이었다.
그저 척추와 근육에 새겨져 있는 노력이 반사적으로 무예의 흐름을 이어나간다.
타앙
그러는 사이에 드디어 첫 초수가 실전에서 부딪힌다. 수백 번의 의념으로 겨룬 결과 마침내 서로의 첫 공방이 결정된 것이다. 내가 택한 것은 환(幻)과 쾌(快)를 담은 강검(鋼劍)을 내려 베는 한 수였고 상대는 그런 내 공격에 대적해서 자신의 대검 세 개를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모아서 교차하여 검벽(劍壁)을 만들어내었다.
콰아앙……!!
담백할 정도의 한 수였지만 그 파괴력은 굉장했기에 장내에 검류의 충돌로 인한 기파가 폭탄처럼 파괴음을 내었다. 나는 그 폭렬음을 앞에 두고도 계속해서 집중하고 있었고 상대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이자는 절대 무형의 경지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나 검류(劍流)가……!!’
쉬카악 - !!
나선을 그리며 내 왼팔을 토막내려는 치명적인 살기! 나는 그 일수에 잠재되어있는 검류가 무려 다섯 개나 된다는 걸 알아차렸고, 내가 어떻게 대응하든지 간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튈 수 있음을 알았다. 보통의 무사는 이런 공격이 불가능하지만, 상대는 그게 가능한 존재였다.
그렇다면 아까 내 첫수인 무량단을 봉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나는 추측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나선형 검기를 가볍게 떨쳐내며 전방으로 무량단을 시전했다. 그리고 백련교주조차 피하지 못한 절대적인 극속(極速)의 일섬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퍼벅!!
나는 정면에서 아지다하카의 몸통을 후려베는 데 성공했지만, 공격이 얕았다. 그와 동시에 내 팔뚝에 그의 대검이 직각으로 쑤셔박혀 있었고 선혈이 팔에서 뿜어져 나왔다. 상상으로만 예측했던 것이지만 현실도 별다른 바가 없었기에 나는 내 수읽기가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타앗
서로 일격을 먹이자마자 반사적으로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났다. 아지다하카는 쿨럭하고 피를 토해내더니 말했다.
[그 기술은 정말 위협적이군…… 내 모든 기예를 다 동원해도 서로 맞찌르기가 고작이라니…….]
“사돈 남말하는군.”
나는 인상을 찡그려 고통을 참으며 내 팔뚝에 꽂힌 대검을 서서히 뽑아내어서 말을 이었다.
“도대체 알고 있는 검류가 몇천 개냐? 너무 많아서 헷갈릴 지경이잖아.”
내 질문에 아지다하카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본 문파의 불멸외천기는 구백구십구식(九百九十九式)까지 있으며 내가 오랜 세월동안 터득한 타 유파의 검류가 그 열 배 정도 된다.]
“…….”
그렇다.
아지다하카는 무형과는 반대로 극한의 유형(有形)에 도달한 검사!
도리어 형(形) 그 자체에 있어서는 우주제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터득했으며 지금의 나조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모든 검류에 대한 숙련도가 높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검술의 형을 알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을 지경이기에 수많은 실전경험을 겪어온 나로서도 아지다하카의 공격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수많은 형태를 알고 있기에 그중에서 내 무량단의 검류가 힘을 받기 전에 미리 [흐름]을 읽어서 어느 정도 위력을 죽이는 게 가능한 것 같았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하겠지만 나는 비슷한 경지를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아수라…….’
물론 아수라는 아지다하카보다 몇 수 위였기에 아예 무량단을 완전히 피하면서 나를 갖고 놀았지만, 아지다하카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내 흐름을 읽고 최대한 힘을 죽이면서 맞찌르기를 하는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여태껏 보아왔던 어중이떠중이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슈슈슉
아지다하카는 재생능력이 있는지 손쉽게 내 검에 베인 상처를 회복하며 말했다.
[호승심이 치미는군. 그대처럼 겨뤄보고 싶은 상대는 오랜만이다.]
“나도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단순히 신적인 존재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의지로 전투를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것도 아지다하카와 현재 내 검술실력이 왠지 비슷하게 느껴졌기에 더 재밌었다.
내가 검을 쥔 손에 힘을 불끈 주자 피가 잠시 솟구치다가 빠르게 지혈되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군.]
“뭐?”
쿠웅!!
갑자기 나와 아지다하카 사이에 반투명한 검은 막 같은 게 세워졌다. 이 막은 보나 마나 특수한 외계기술로 만들어진 게 뻔했고 투사들을 제지하는 기능이 있으리라. 내가 막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이 데미우르고스 레덴에는 룰이 있다. 나는 1위인 패왕이며 그런 내게 그대가 도전하려면 투사로서 승점을 쌓아야 한다. 그대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투사들에게 공정하지 않다.]
“엉? 나보고 투기장에 참여하란 말이냐?”
[싫은가?]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연히 싫지. 내가 뭐가 아쉬워서 투기장에서 검투사 노릇을 한단 말이냐?”
나는 이래 봬도 레무리아 황제한테 레무리아를 보호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고!
내가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자 아지다하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상대해줄 수 없다.]
“이 투기장 나가서 개인적으로 결투하자고. 그러면 되잖아.”
[안 된다. 이미 그런 꼼수를 쓰는 자들이 수도 없이 있었지만 모두 처벌당했다.]
“젠장. 그딴 처벌 따위…….”
[물론 그대 정도의 고수를 이 투기장 따위가 제어할 순 없겠지. 허나 그대도 몸이 덜 풀린 것 같더군.]
아지다하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감을 찾을 겸 이 투기장에서 놀아보는 건 어떤가?]
“……흐음…….”
[나도 그대를 상대할 기술을 따로 연마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아지다하카의 말에 약간 짚이는 게 있었다.
‘확실히 무공을 제대로 써서 싸운 지 오래되서 그런가 알고 있는 무공이 제때 안 나오는 거 같긴 했는데…….’
대부분 신력에 의존하다 보니 아지다하카의 말대로 감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아지다하카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체류하는 시간은 열흘 남짓이다. 그 사이에 패왕한테 도전할 정도의 점수를 모을 수 있나?”
[가능하다. 각 티어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옵션을 넣고 도전해서 성공한다면 사흘이면 될 것이다.]
“사흘? 좋아.”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나는 감을 되살릴 겸 데미우르고스 레덴에서 싸워보기로 마음먹고는 아지다하카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 거짓말한 거 아니냐?”
[무슨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나는 뚫어져라 아지다하카를 쳐다보았다.
“쓸 수 있잖아, 신역절기.”
[…….]
“싸우면서 느껴졌다고.”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지다하카에게 뭔가 비장의 한수가 있다는 감이 들었고 계속 마음속 한편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역절기를 상대해본 적 있는 내 입장에서 분명히 신역절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 감이 틀린 적은 없었으니 아마 틀림없으리라!
내 말에 아지다하카는 훗하고 웃는 듯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어째서인지는 직접 재전(再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참나. 의욕을 팍팍 넣어주는군…… 알았다.”
나는 씩 웃었다.
“기다리고 있으라고.”
[기대하지.]
슈욱
나는 다음 순간 강제로 순간이동 되는 마력에 떠밀려서 다시 관람석으로 왔다. 사실 신력으로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귀찮아서 안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관람석으로 되돌아오자 이환웅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당신 너무 즉흥적인 거 아냐? 바로 뛰쳐나와서 패왕한테 싸움을 걸다니…….”
“뭐 어떠냐? 그리고 너도 들었겠지만, 투기장에서 좀 놀아야겠다.”
“그래, 잘 놀아.”
“왜 나만 노는 것처럼 말하는 거냐?”
“……설마.”
이환웅이 당황해하자 나는 느물거리며 웃었다.
“당연히 너도 싸워야지.”
“내가 왜.”
“수련세계에서 얼마나 수련했는지 스승으로서 한 번 봐줘야 하지 않겠냐? 심수력이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보고 싶군.”
“하…… 말이나 못 하면.”
이환웅은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성취 같은 건 지금 당장 보여주지.”
“흠?”
쐐액 - !!
다음 순간 이환웅이 쥐고 있던 은하구절편이 내게로 쇄도해왔다. 예고 없는 기습이었지만 나는 가볍게 그 구절편을 쳐내면서 도리어 이환웅을 공격해갔다.
‘원래라면 이 녀석은 여기서 끝날 실력이지…….’
이환웅의 실력은 잘 쳐 봐야 초절정의 초입이었다. 그저 내가 반격 한 번만 해도 뻗을 시시한 실력! 그런 녀석이 수십 년 동안 얼마나 수행했는지 기대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환웅의 가슴팍을 찌르는 그 순간, 나는 기묘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 응?’
이미 막고 있다.
이환웅의 속도는 내게 비하면 무척 느린 편이고, 지금 내 공격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됐든 일격을 처맞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 이환웅의 은하구절편은 이미 인식하기도 전에 내 공격의 행로를 읽기라도 한 듯 정확하게 내 공격을 막고 있는 것이다.
까앙!!
나는 은하구절편의 쇄에 튕겨 나간 후에도 약 다섯 번 정도 검격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각각 다른 검류를 상대로 뒤처지는 속도에도 불구하고 이환웅은 내 검격을 모두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까가강!!
나는 이환웅의 방어를 보자 약간 당황했다.
“너…….”
“어때?”
이환웅은 씩 웃었다.
“강인공지능인 메피스토의 연산력을 이용해서 상대의 공격을 미리 다 계산해서 막아내는 기술이야. 뭐, 의념소모가 심해서 아직 절대지경에 도달하지 못한 내가 쓰는 건 한계가 있는 방어법이지만…… 완성하기만 하면 아마 당신을 상대로도 싸울 만할걸?”
“…….”
“문제점이 있다면 이 의념지경을 연산력과 동기화시켜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최소 수백 년 내내 메피스토의 연산력 내부에서 호흡하며 무예의 리듬을 조절해야 하는 거지. 아직 까마득해…….”
“……그 기술은 너 혼자 생각한 거냐?”
이환웅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심수력이 가르쳐줬겠어? 나는 참고로 사신지혼도 기초 정도밖에 수련 못했다고.”
“그런가…… 기술 이름은 정했나?”
“글쎄. 여러 개 생각해놓은 건 있지만…….”
이윽고 이환웅이 손가락을 딱 마주치며 말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