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8화
무지개뱀은 내 말에 약간의 호기심을 느낀 듯 말했다.
“배당이라고? 그게 무엇이지?”
“그러니까…… 내가 말한 대로 [계시]에서 무조건 허공록을 알현하는 조건 자체를 못 믿으실수도 있지 않소?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그저 우리 회사와 협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해진 주기마다 신력의 정수(精髓)를 배당받으실 수 있소.”
“호오…… 신력을 나누어 준단 말인가? 어떻게?”
나는 무지개뱀의 화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손을 들었다.
‘오기 전에 살짝 만들어뒀지!’
내 손에는 [상업의 권능]으로 획득한 황금 동전이 들려 있었다.
“이 동전을 투자자 분들에게 나누어드릴 것이오!”
무지개뱀의 백안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내 황금동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듯하던 무지개뱀이 입을 열었다.
“그건…… 권능으로 이루어진 물체구나. 거기에 신력을 담아서 준다는 것이냐?”
“직접 담는 건 아니오. 하지만 이 동전을 매개체로 하여 정해진 주기마다 투자자들에게 신력을 전송할 것이오.”
“…….”
“이렇게 하면 설령 내가 말한 목표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때까지 배당을 받게 되니 투자자분들은 손해가 아니오!”
내 설득에 무지개뱀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흐음…… 어느 정도의 신력을 배당해 줄 수 있느냐?”
“투자한 것의 5푼이오!”
“배당을 받는 주기는?”
“……5천 년이오!!”
나는 말을 하면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보통 상황이라면 5천 년이나 되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긴 세월이 허용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윽…… 이환웅…… 정말 괜찮은 거냐?’
5천 년이라고 내세운 건 이환웅이 5천 년으로 하자고 했기 때문! 이런 정신나간 제안이 받아들여질지 의심스러웠지만 나는 일단 이환웅을 믿기로 했으므로 말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잠시 후 무지개뱀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5천 년밖에 안 된다면.”
“괘…… 괜찮고말고.”
나는 무지개뱀의 반응에 살짝 얼떨떨했다. 신들의 시간관념이 다르다는 이환웅의 주장이 실감났기 때문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증명해라.”
“어떤 걸 말이오?”
“네가 [계시]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보증해줄 수 있다는 근거…… 그리고 황금 동전으로 신력을 전송하는 걸 직접 보고싶구나.”
“…….”
“또한 지금의 약속은 모두 네 이름을 걸고 약속해야만 한다.”
대충 다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허공록의 사도인 봉황과 친한 사이요! 그리고 내 권능 또한 허공록이 보증하는 것임을 내 이름을 걸고 말하겠소.”
“흠……!! 정말이냐.”
“그렇소. 나는 경계를 인식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소!”
의뢰를 받았으니까 친하긴 친하지!
봉황한테 배운 게 아니라 천우진한테 배운 거지만 주어를 쓰지 않았으니까 헷갈려도 상관없다!
“호오.”
무지개뱀이 감탄하자 나는 마지막으로 동전을 통해 신력을 보내주는 것까지 시연해 보였다. 그것까지 보여주자 그제서야 무지개뱀이 말했다.
“좋다. 그대에게 투자하도록 하지.”
“감사하오!”
무지개뱀은 살포시 웃는 듯했다.
“종말까지 아무 일 없이 적적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흥미거리가 생겼구나.”
“어떤 걸 투자해주실 생각이오?”
“흐음. 어디 보자…….”
무지개뱀이 잠시 고민하다가 손에서 뭔가를 꺼냈다.
“본디 타인에게 내주는 물건은 아니지만 이걸 투자하도록 하겠노라.”
무지개뱀의 손 위에 들려 있는 물건은 딱 손바닥만한 크기의 개구리 석상(石像)이었다. 나는 그 개구리 석상을 보고 황당해했다.
“이, 이건 뭐요? 살아 있는 거 같은데…….”
개골!
아닌 게 아니라 그 돌로 된 개구리 석상은 돌인데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개골 소리를 내고 있었고 심지어 볼을 부풀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희한한 형상에 내가 놀라워하자 무지개뱀이 말했다.
“이것은 본디 내가 인정한 최고의 사도에게만 하사하던 것. 이 돌개구리를 갖고 있으면 너는 [꿈의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
“[꿈의 시간]?”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무지개뱀의 말이 이어졌다.
“그곳은 [경계]의 일부. 나의 근원 또한 거기서 비롯되었기에 [꿈의 시간]을 유영하다 보면 진정한 [꿈]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존재를 만날 가능성도 있지.”
“……?”
“위급한 상황에 직접 사용해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그만하면 충분히 큰 투자를 했다고 생각하노라.”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대단한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일단 직감으로 볼 때 이 돌개구리는 범상치 않은 유물이라는 게 확실했다. 나는 돌개구리를 목갑 내부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좋소. 그리고 또 하나…… 이번에는 정보를 알고 싶소만.”
“어떤 걸 알고 싶으냐?”
“여와가 창조한 유물인 [생명을 창조하는 새끼줄]. 그 새끼줄을 가질 수 있는 게 여와 말고도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누구인지 아시오?”
예전 생에서 궁금했으나 무지개뱀이 끝내 말해주지 않은 정보!
나는 왠지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직감이 들었기에 이번 기회에 무지개뱀에게서 알아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건 틀림없이 반고와 연관된 정보일 테니까!’
이번 생에서 가장 큰 축이 될 존재는 반고일 가능성이 높다. 반고에게로 이어지는 단서라면 하나라도 필사적으로 캐내는 게 옳은 것이다.
내 질문을 들은 무지개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말해주는 대신 내 배당을 늘리겠다. 동의하느냐?”
“……으응?!”
“뭘 그리 놀라는가? 투자관계면 정보료로 그대에게 또 다른 유물을 받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지. 차라리 내 배당을 늘리는 것으로 정보료를 대체하겠다.”
이, 이거 받아도 되는 제안인가?
내가 당황하자 옆에 있던 이환웅이 말했다.
“위대한 무지개뱀이시여! 6푼으로 올리는 건 어떠십니까?”
무지개뱀은 고개를 저었다.
“최소 9푼.”
이환웅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무 욕심이 과하십니다. 6푼 5리 어떠십니까?”
“…….”
뭔가 마뜩잖은 표정을 짓던 무지개뱀이 말했다.
“백웅이여. 감히 신에게 흥정을 하려고 들다니 건방진 인간종자를 데리고 다니는구나.”
나는 무지개뱀에게 포권을 했다.
“무례를 용서하시오. 허나 배당을 과하게 설정하면 다른 투자자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소.”
“흐음…… 그 말은 다른 놈들에게도 5푼을 설정할 거란 말인가?”
“그럴 생각이오.”
“좋다. 그러면 7푼으로 타협을 보겠다.”
“알았소.”
2푼의 배당을 더 늘여준 셈이지만 정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손해는 아니리라.
내가 내심 잘 교섭했다고 생각할 때 무지개뱀이 입을 열었다.
“그 유물을 소유할 수 있는 건 전 우주에서 단 두 명 뿐이지. 하나는 여와이고, 또 하나는 바로 복희이다.”
“……?!”
“당연한 이야기지. 그 남매는 신좌에서 강신할 때부터 그 새끼줄을 서로에 대한 인연의 증거로 품고 내려왔으니 그 둘 외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으음…… 그…… 그렇다는 건…….”
나는 말을 잇다 말고 삼켰다.
‘설마…… 반고가 그때 알을 공양하고 남은 대가라고 줬던 그 생명의 새끼줄의 소유주가…….’
복희였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반고는 복희의 새끼줄을 갖고 있다가 내게 줬던 것인가?
‘…… 여기엔 뭔가 의미가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생각에 잠기자 무지개뱀이 말을 이었다.
“배당을 올려주었으니 좀 더 가르쳐주마. 사실 그 새끼줄은 그 쌍둥이 신의 탯줄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탯줄…… 이라고?”
“그들이 친남매의 인연으로 품고 있는 유물이지만 동시에 그 유물의 인과율은 어버이인 반고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유물을 이용하면 그들은 신좌가 아닌 장소에서도 반고와 연결되는 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노라.”
“…….”
“이 정도면 충분한 정보겠지. 그렇지 않으냐?”
“음…… 그렇소……?”
사실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 쌍둥이 신의 새끼줄이 반고와 연결되는 게 무슨 의미지?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옆에 있던 이환웅이 내게 말했다.
“충분한 정보가 맞아. 이만 가보는 게 좋겠군.”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무지개뱀에게 말했다.
“그럼 투자 감사하오!”
“심심하면 놀러 오거라.”
파앗
우리는 무지개뱀의 영역에서 물러 나왔다. 나는 바깥으로 나온 후 이환웅에게 말했다.
“새끼줄이 반고와 연결되는 게 무슨 의미일까?”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의 기억을 아는 게 아니기에 잘은 모르겠어. 이번 생에 흑요석으로 동료에게 기억을 전송하는 게 금지됐잖아. 상세한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수십 번의 생 동안에 겪었던 생생한 정보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어.”
“…….”
“방금 전의 정보를 분석하려면 당신에게 흑요석으로 기억을 받은 적이 있는, [미래]의 동료가 필요해. 혹은 전륜성왕에게 상담하거나.”
“하지만 전륜성왕은…….”
“적이 될지도 몰라서 껄끄러울 순 있겠군. 그건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어.”
“으음.”
나는 전륜성왕에게 당장 상담하는 건 위험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다시 저승에 가면 전륜성왕의 힘을 뺏는 거나 다름없으니 이번에야말로 전륜성왕의 편을 들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 그러기에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다음 투자자한테 가자. 누구한테 가지?”
“그거야 당연히 촉룡(燭龍)이지.”
촉룡!
그 존재는 미래에 전륜성왕이 사라졌을 때 그 공백을 메우듯 저승에 버티고 앉아 수많은 영혼들을 먹이로 삼은 [옛 지배자]였다. 아무리 봐도 극악한 존재였기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새끼는 마음에 안드는 데…….”
“촉룡이 우주의 귀고(鬼姑)에서 탄생한 존재이며 복희를 따라 이 세상으로 흘러든 용(龍)이라고 저번에 나한테 설명해줬었지?”
“어.”
“그러면 그 촉룡이란 놈이 어떤 경위로 복희를 따라 흘러들어온 건지 알아내야지. 그리고 투자도 겸사겸사 받고…….”
“으음……!! 그렇군!”
“문제는 그 촉룡이 어디에 있냐는 건데, 그건 복희한테 물어보자.”
나는 복희를 찾아가서 촉룡의 소재지를 질문했다. 그러자 복희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일을 하고다니나 보군, 백웅.”
“윽…… 그저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투자자를 받고 있을 뿐입니다.”
“주식회사라?…… 그렇군, 그 인간의 지혜로군.”
재밌다는 듯 이환웅을 쳐다본 복희가 말했다.
“투자자를 모아 백웅만의 제 3세력을 만들고싶나 보구나, 인간이여.”
이환웅은 복희의 시선에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분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죄송합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그대의 행동 또한 모두 인과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걸테지.”
유하게 받아넘긴 복희가 말을 이었다.
“뭔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나본데 말해보거라.”
“복희시여. 촉룡은 우주의 귀고에서 탄생한 존재라 들었는데 귀고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존재는 스스로를 복희를 따라 이 세계에 진입한 용이라 하던데 그 일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투자를 하지도 않았는데 귀한 정보를 공짜로 얻어내려 하는구나.”
“…….”
“상관은 없다. 어차피 백웅에게는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중얼거린 복희가 입을 열었다.
“귀고란,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장소를 말한다. 차원의 경계를 따라 가장 밑바닥으로 가다 보면 도달할 수 있는 장소이지. 촉룡은 그곳에서 태어난 지배자이며 또한 아주 먼 과거에 나와 싸운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흠칫했다.
“촉룡과 싸우신 적이 있다고요?”
“그렇다. 잠시 호기심에 귀고를 들렀는데 거기에 존재하던 [어둠]이 나를 모방하여 용으로 형상을 바꾸더군.”
복희는 정자 바깥을 내다보며 피식 웃었다.
“놈은 나를 보고 따라 했던 용의 형태가 여태껏 마음에 드는가보구나.”
“…….”
승패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복희가 잠시 놀아주다가 떠나 버렸거나 아니면 복희가 일방적으로 패거나 둘 중 하나였으리라. 그 말을 들은 이환웅이 말했다.
“그렇다는 건 촉룡신은 스스로를 용으로 칭하고 있으나 기실 용이 아닌 존재라는 말입니까?”
“그래. 그것은 그저 순수한 [어둠]. 물체조차 아닌 별개의 존재다. 형태가 아예 존재치 않기에 신이 아닌 필멸자가 놈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지. 심지어 현계하면서 계속해서 귀고의 어둠에서 마력을 공급받고 있으니 무척 까다로운 상대다.”
그렇게 대꾸한 복희가 말을 이었다.
“촉룡이 거하는 장소를 알려주겠지만 촉룡과 교섭할 생각이면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기회주의자이며 잔인하기에 잘못했다가는 너희가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귀중한 정보입니다.”
우리는 복희 앞을 물러 나온 후 곧장 촉룡에게 가기로 했다.
파앗!
우리가 도착한 곳은 새까만 어둠이 가득 찬 완전한 암야의 공간이었다. 나는 예전에도 촉룡이 이 공간으로 부른 적이 있기에 익숙했지만 이환웅은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게 보였다.
“이봐, 괜찮냐?”
“크흑…… 헉…….”
이환웅은 의념과 메피스토의 연산력으로 간신히 압박을 이겨내고 있는 듯했지만, 굉장히 상태가 위험해 보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더니 말했다.
“……무지개뱀이나…… 복희는…… 필멸자인 나를 배려해줬지만…… 여기는 우주의 귀고 그 자체를 소환한 것 같아…… 난 도저히 여기서 못 버티겠어…….”
“목갑에 잠깐 들어가 있을래?”
“그…… 그렇게 해줘. 돕지 못해서 미안하군…….”
나는 신력으로 이환웅에게 보호의 힘을 걸어놓은 후 그를 목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내 앞에는 촉룡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강력한 존재로군…… 그대는 누구인가?]
촉룡은 어둠의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기괴한 모습이었다.
“촉룡이여. 나는 백웅이다. 너에게 투자를 권유하러 왔다.”
[투자……?]
나는 무지개뱀에게 했던 것처럼 상세한 투자설명을 촉룡에게 했다.
그리고 황금동전을 받아들고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촉룡이 입을 열었다.
[수상하군…….]
“뭐가 수상하단 말이냐? [계시]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게 해준다는 게 그리 의심스럽나?”
촉룡은 슥 하고 동전을 앞으로 내밀었다.
[…… 아니…… 바로 이 동전이 수상하다…….]
“동전이 왜?”
[네 말대로라면…… 너는 나 말고도 많은 지배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투자를 권유할 것이며…… 교섭하여 투자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신력을 배당받을 매개체는 바로 이 동전…….]
이어진 촉룡의 말에 나는 움찔하고 말았다.
[…… 네가…… 이 동전만 내버려 두고…… 우리가 투자한 걸 모두 가지고 튀어 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
[투자한 원래 재산을 회수할…… 안전장치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만……?]
아, 아니 이 새끼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일을 허술하게 할 줄 아냐?!
나는 당황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름 걸고 약속했잖아! 내가 설마 인과율의 역풍을 무릅쓰고 그딴 짓을 하겠냐고!”
[…… 모를 일이지…….]
“젠장, 투자하기 싫으면 하지 마! 너 말고도 투자하겠다는 놈들은 아마 줄을 섰을 테니까!”
내가 화를 내며 돌아서려 하자 갑자기 촉룡이 나를 붙잡았다.
[아니…… 그게 아니다…… 내 말을 잘못 이해했구나…….]
슈르르륵
광대한 어둠이 촉수처럼 번져 나와서 내 몸을 붙잡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촉수에 둘러싸였다가 순간 힘을 모아서 터뜨렸다.
콰광!!
신력 덕분인지 이깟 건 장난거리도 되지 못했다. 나는 성난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순간 촉룡이 음충맞은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나한테…… 투자자의 배당이 아닌…… 주식회사의 지분을 다오…….]
“어?”
[뭘 모른 척하는가…… 그저 나도 한 손 거들겠다는 것뿐…… 지금 보니까 뭔가 어설픈 것 같은데…… 내가 너희에게 합류해서 함께 투자자를 모집해 주지…….]
“…….”
이놈이 왜 지분을 받고 싶어 하는 거지?
나는 의도를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촉룡은 느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친한 놈이 꽤나 많다…… 우주의 어둠에 사는 [옛 지배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훨씬 많으며…… 그중 상당수가 이 지구에 내려와 있지…… 네가 나를 끌어들여서 손해 볼 것은 없으리라 본다…….]
“……음…… 그 말은, 네 친구들한테 우리 회사를 홍보해주겠다는 말이냐?”
[그래…… 이를테면…… 이런 건 어떻겠나……?]
촉룡은 이윽고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집하면서…… 주식회사 내에서 계급의 차등을 만들고…… 많이 모집하면 할수록 그 계급을 올려주는 것이지…… 그리하면…… 내 계급은 저절로 높아지고…… 네 뜻에 동참할 투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 분명하다…….]
계급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었기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환웅이 이런 상황에 대한 언질은 전혀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이환웅을 꺼내서 물어볼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슬며시 품속의 목갑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 순간 전신에 에일듯이 몰아치는 어마어마한 마력에 흠칫하고 말았다.
‘윽.’
촉룡은 지금 전혀 방심하지 않고 있다. 내가 뭔가 수상한 짓을 하는 순간 당장 싸울 준비도 되어 있는 호전적인 태도라는 게 정면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촉룡과 싸워서 진다는 건 아니었지만, 저 정도로 경계하는 상태에서 촉룡이 이환웅을 죽이거나 납치하려고 노릴 경우 내가 지켜줄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이환웅을 목갑에 넣어 버리길 잘했군.’
이환웅의 조언을 구할 수 없는 이상 내 자신의 생각으로 촉룡의 제안을 판단해야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라.”
[간단하게…… 내가 최상급 회원으로서 여러 명을 권유하면…… 권유한 놈들이 또 여러 명을 권유해서 그놈들이 상급 회원이 되며…… 다시 여러 명을 권유해서 하급 회원들을 만드는 거지…… 이렇게 하면 무척 빠르게 숫자가 파생되어 네놈의 목적을 이루기도 쉬워지지 않겠나……?]
“호오.”
[그 대신 내가 최상급 회원으로서 얻을 수 있는 독점적 지위로…… 네 회사의 지분을 갖고 싶군…… 간단한 얘기다…….]
“…….”
뭔가 달콤한 얘기였지만 함정이 있는 거 같긴 했다. 다만 그 함정이 나를 향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질문했다.
“잠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 뭐냐…….]
“……[이 행성의 중심에 있는 존재]가 뭔지 알려다오.”
이건 예전에 촉룡이 했던 얘기였는데 내 암기력이 좋아서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기왕 촉룡의 수상쩍은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면 이 정보를 알아낼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행성의 중심에 거하는 그 존재가 먹은 것은 돌려줄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먹은 것은 다 돌려주었다…….]
[나만이 영혼을 먹을 권리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직접 전륜성왕을 약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그 존재…… 그자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먹고 있었지…….]
전륜성왕이 사라진 후의 저승에서는 두 명의 신이 필멸자들의 영혼을 먹고 있었다. 하나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촉룡의 신이었으며 또 하나는 [행성의 중심에 거하는 존재]! 그 존재는 결코 전면에 나온 적이 없었기에 여태껏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 존재는 [전륜성왕을 약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정보가 있었다.
‘전륜성왕과 협력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는 그놈의 정보를 알아내야 해!’
아마도 촉룡은 그놈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리라.
촉룡은 재밌다는 듯 잠시 자신의 초록색 동체를 꿈틀거리다가 말했다.
[너도 그 자에게 흥미가 있나……?]
“무슨 소리지?”
[이미 황제의 세력과 고대신의 세력이 한 번씩 그 존재의 정보를 캐러 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알려주지 않았지만…….]
“……!!”
[하긴…… 나조차도 우연이 겹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할 자였으니…… 크크.]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단한 정보를 알고 있는 척하는군. 그런다고 해서 내가 너에게 내줄 지분이 더 커지거나 하진 않는다.”
[아아…… 당연히 이 이상 욕심부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알려줄 수는 없지…….]
“…….”
젠장, 굉장히 질척이는군…… 까다로운 상대라는 복희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
‘동급이나 다름없는 상대에게도 이렇게 나설 정도라면…… 자기보다 약한 놈에게는 굉장히 잔인하겠군.’
만일에 신력을 충분히 갖추지 않고 이 자리에 왔다면 나는 바로 공격당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힘을 키워온 게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내가 따로 갖고 있는 지분 중에서 3푼을 너에게 내어 주마. 이걸로 만족해라.”
어찌 되었든 촉룡의 말대로 빠르게 회원을 모집할 수 있다면 나한테도 나쁠 게 없다.
[3푼이라…… 뭐…… 괜찮군. 그러면 말해주마…….]
촉룡의 눈이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이 행성의 중심에 존재하는 자는…….[궁전]에서 유폐되어 강제로 오게 된 자라고 알고 있다…….]
“궁전?”
[그자의 진짜 이름은 나도 모른다…… 다만 아주 오래된 자…… 이미 세상에 이름을 떨친 강대한 대신(大神)들과 달리 은명(隱名)하였으며 자신의 실체를 철저히 숨기고 있는 존재이다…….]
“궁전이 뭐냐고.”
[나도 그건 모르겠다…… 다만 단 한 번 마주쳤을 때 그 자에게 공물을 내어주자…… 그가 말해준 정보였다…….]
“……그 정도로 자기자신을 숨기는 이유가 있는 건가?”
[…….]
촉룡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자는 원래부터 [계시] 같은 건 관심 없어 보였다…… 아주 높은 곳에 있었던 자였던 것 같더군…… 그래서 황제나 고대신들도 그자의 존재감을 느끼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높은 곳이라…….”
[직접 만나고자 한다면…… 물리적으로 이 행성의 내핵에 접근한 후 악몽(惡夢)을 꿈꾸는 균열으로 진입하면 될 것이다.]
“그 자에게 공물을 줬다고 했는데 어떤 공물을 주니까 호감을 보이던가?”
[나처럼 그자도 영혼을 먹기 좋아한다. 신선한 영혼을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군…….”
나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약간 호기심을 느꼈다.
‘한 번 찾아가 보는 게 좋을까?’
[계시]에도 관심이 없다는 고위존재가 어째서 전륜성왕을 해치우는 데에는 한 손을 거들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알았다. 그럼 일단 나한테 투자를 해 다오.”
[투자라고……?]
“네가 일을 해준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투자를 안 받을 수는 없지.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
그러자 촉룡이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잠시 후 자신의 부정형 동체에서 뭔가를 촥 하고 뿜어내었다.
그리고 뿜어져 나온 물건은 시뻘건 빛을 내는 조그마한 유리병이었다.
‘음……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군…….’
나는 유리병을 집어 들었고 그 안에 들어있는 선혈 같은 액체를 관찰했다. 피인가 싶었지만 피는 아닌 것 같았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혼자서 꿈틀대는 게 흉측하게 느껴졌다.
[그건 나의 보물이다. 그 유리병을 투자하겠다.]
“어떤 능력이 있지?”
[하급존재에게 그 액체를 먹이면 단숨에 마왕으로 승급하게 된다. 다만 이미 마왕 이상의 강력함을 갖고있는 자에게는 아무 효과가 없다.]
“……!!”
[귀고에서 오랫동안 어둠의 마력을 정제해서 압축한 것이니 네 추종자 중에 하나를 특별히 강하게 하기에 좋으리라.]
이, 이런 보물도 있는 건가!
나는 선혈의 유리병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가 급히 목갑에 집어넣었다.
“고, 고맙군. 그럼 일을 잘 해주길 바라겠다.”
[크흐흐…… 그래.]
파앗
나는 촉룡의 영역에서 물러나왔다. 그리고 목갑에 있던 이환웅을 해방해서 방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환웅의 표정이 당황스럽게 변했다.
“세상에 신이 먼저 다단계 피라미드를 제안하다니…… 하긴 악신이니까 세상의 악에는 더 정통한 것인가?”
“응?”
“아냐. 결과적으로 잘 교섭한 것 같아. 그자가 제안 안 했으면 적당한 신을 끌어들여서 영업사원으로 쓰려고 했는데 알아서 나서준다니 고마울 지경이지. 그리고 초기주주 10인을 당신이 쥐고 있는 이상 3푼이면 단독으로 회사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도 아냐. 물론 촉룡이 나쁜 꼼수를 못 쓰게 감시는 해야겠지.”
“잘됐다니 다행이군.”
“촉룡의 능력에 따라 우리 회사의 회원이 급속히 불어날 가능성이 높아.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찾아가면 되겠군.”
“누굴 찾아가면 되지?”
이환웅이 뭘 묻냐는 듯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
“……!!”
“당연히 당신이 얘기한 대로라면 이 [큰 굴레]의 과거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떡밥과 단서를 쥐고 있는 존재잖아? 그자를 안 끌어들일 순 없지.”
“…….”
“고대신에게 봉인된 테스카틀리포카를 풀어주어서 동료로 삼자.”
“음…… 하지만…….”
나는 망설이며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영계 만신전의 신들조차 경계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악신이야. 게다가 무척 적대적인 것 같은데 그놈과 싸우면 위험할 수도 있잖냐.”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있어.”
“뭘?”
“[태양신의 배꼽]을 꺼내 봐.”
나는 이환웅의 말대로 멤피스에서 획득했던 흑요석인 [태양신의 배꼽]을 꺼냈다. 그 흑요석을 주의깊게 살펴보던 이환웅은 문득 입을 열었다.
“당신 말대로라면 망량선사가 [세상의 배꼽]에서 가장 높은 장소에서 월식(月蝕)의 때에 공양을 해야 신이 부활한다고 했었지?”
“그래.”
이어진 이환웅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난 이미 세상의 배꼽이 어디인지 알고 있어.”
“……뭐?!”
“내가 살던 시대에는 과학적인 상식 중 하나였거든. 사실 당신도 가본 장소이지.”
이환웅이 [태양신의 배꼽]을 턱 하고 들며 씩 웃었다.
“세계의 배꼽, 울루루.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에어즈록이라고도 불리는 그 붉은 거암(巨巖)…… 당신도 남쪽대륙에서 거기가 어딘지 알고 있지?”
“…….”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당연히 알고 있지…….”
그곳은 바로 화요의 봉인지가 아닌가!
이미 열 번 이상 왔다 갔다 했던 장소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환웅은 내게 [태양신의 배꼽]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건 틀림없이 당신이 갖고 있던 그 신체 흑요석과 거의 같은 물건이야. 그러니 세상의 배꼽 울루루에 가서 월식을 일으켜서 공양하게 되면 테스카틀리포카가 부활하게 될 거라고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