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6화
나는 이환웅이 가리킨 가슴팍을 보았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심장…….에 강인공지능을 넣었다고?”
“그래.”
“그런 게 가능한 건가?”
워낙 그쪽으로는 아는 게 없었지만 적어도 전뇌자를 오랫동안 알아 왔기에 강인공지능이라는 게 단순한 기계가 절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건 이미 살아 있는 생명체나 다름없었으며 엄청난 연산력을 소유한 존재였기에 다른 의미로 신적 존재에 가까웠다. 그런 강인공지능을 살아 있는 몸에 집어넣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환웅이 말했다.
“전에 말했듯이 원래 이 크로노 쿼츠를 움직이는 게 내 능력이었어.”
짤랑 하는 소리와 함께 이환웅의 손바닥 위에 금빛 회중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환웅은 다시 덥석 하고 크로노 쿼츠를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내 스승은 메피스토펠레스를 이 크로노쿼츠에 담아 내게 전해주었지. 그리고 크로노 쿼츠를 움직이면 시간이 멈추길래 시공계열 능력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 정확히는 크로노 쿼츠 안에 들어있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움직이는 능력이 바로 내 능력이었지.”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야. 강인공지능을 소유하고 조작할 수 있는 게 바로 내 초상능력이라 그 소리지.”
“……!!”
그, 그런 초능력도 따로 있는 건가?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그냥 나일라토프가 너한테 시계라는 매개체를 통해 메피스토를 준 거 뿐이잖아.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따로 초능력으로 분류된다고?”
“후후.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점이 있어. 바로 강인공지능의 의지와 상관없이 능력을 지배하고 끌어쓸 수 있다는 거야.”
“……?!”
“메피스토가 내게 복종한 덕에 능력을 끌어내기 한층 편하긴 하지만 딱히 복종하지 않아도 메피스토의 연산력을 대신 쓰는데 문제는 없다는 거지.”
“으음!”
“그 때 시간을 멈췄던 것도 내가 시간을 멈춘 게 아니라 메피스토가 연산력을 발휘해서 시간을 대신 멈춰줬던 거야.”
나는 그제서야 이환웅의 초상능력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강인공지능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는 거구나!’
굳이 누군가가 그에게 강인공지능의 소유권을 양도하지 않아도 홀로 소유권을 강탈할 수도 있는 능력!
아마도 방금 전에 보여주었던 신비한 회피기술 또한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끌어내어서 발휘한 것이었으리라.
생각지도 못한 능력에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이환웅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난 사실 그 당시에 당신 덕으로 좀 더 강해질 수 있었지.”
“응? 내 덕?”
“……그 얘기는 좀 있다가 하고, 우선은 유망 님께 마저 얘기를 해야겠어.”
이환웅은 비척거리며 부자연스럽게 걸어가더니 유망에게 포권을 했다.
“서명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사업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뭐?”
“이른바 투자설명이라는 것이지요.”
이환웅의 포권에 유망은 같잖다는 듯 피식 웃어 버렸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놈이군. 백웅만 아니었다면 네놈을 반토막으로 접어서 던져 버렸을 텐데 운 좋은 줄 알거라.”
“들어주시겠습니까?”
“어디 말해 봐라.”
“감사합니다.”
이환웅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또박또박 한마디씩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10인의 주주를 다 모은 후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나면, 우리는 전 세계에 은둔해 있는 [옛 지배자]들을 설득하러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반드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떡밥을 이용해서 모두에게 투자를 받은 후, 그들 모두를 전륜성왕 휘하의 세력으로 재편할 것입니다.”
“…….”
유망은 앉아서 듣고 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도 전륜성왕 밑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 이야기냐?”
이환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주주는 말 그대로 회사의 소유권을 10분지 1만큼 소유한 존재들! 회사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그저 투자자일 뿐이니 유망 님의 거취에는 상관없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상거래의 관계이니 지배세력의 원칙과는 위배되지 않습니다.”
“웃긴 얘기군. 개념은 알겠다만 이 시대에 그런 이야기가 통할 것 같으냐? 약하면 잡아먹히고 강한 자는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상(商)이라는 개념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통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허공록과 연결된 능력이기 때문이지요.”
이환웅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인간의 얄팍한 상거래를 모방한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이 상거래의 체계는 우주 서열 2위인 허공록이 보증해주는 것입니다. 전 우주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신용을 가진 존재가 있습니까?”
“……없겠지.”
“상거래란 신용(信用)에서 출발하는 것. 절대적인 신용을 내포한 이상 이 모든 능력과 거래는 신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듯하군…….”
유망은 이환웅의 말에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그래서 모두를 꼬드길만한 떡밥이 무엇이냐? 이 세계에 강림해 있는 무수한 신격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것과 성격이 모두 다를 것인데 그들을 꼬드길 수 있는 떡밥이란 게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유망의 재촉에 이환웅은 잠시 침묵하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말입니다…… [계시]에 무조건 참석하여 허공록을 대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그 순간 유망은 크게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멍하니 듣고 있던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엉?!’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바로 이환웅에게 되묻고 싶었지만 그 순간 이환웅이 눈빛으로 내게 뭔가 눈치를 주었고, 나는 극히 짧은 순간에 그걸 알아채고는 바로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태연한 기색으로 돌변하자 이환웅은 기세를 타듯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백웅에게서 처음 듣고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그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과연 백웅은 대단합니다!”
왜 뜬금없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거지?
나는 황당했지만, 여전히 표정 관리를 했고, 유망은 잠시 나를 살핀 후 내게 질문했다.
“백웅…… 사실이냐? 정말 그런 방법이 있는가?”
순간 나는 사실대로 말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왠지 지금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크게 바뀔 것 같은 직감이 든 것이다.
‘이환웅의 의도대로 가볼까…….’
그리고 다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솔직한 게 안 좋다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네. 있습니다.”
나도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있다고!
“으음!! 그게 뭐지?”
“그건…….”
내가 뭐라도 대충 지어내려고 입을 뗀 순간 재빨리 이환웅이 끼어들더니 말했다.
“이런…… 주군!!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습니까? 이 방법이 누설되면 바로 천하의 대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리도 경고하셨으면서.”
내가 언제?!
나는 속으로 웃기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표정을 엄숙하게 관리하며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서명을 받았다고 해서 완전히 우리 편이신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후우…… 긍지 높은 신농의 대전사께서 전륜성왕 밑에 들어갈까 봐 전전긍긍하셨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고.”
“…….”
유망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환웅은 내 말을 천연덕스럽게 받으며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본디 이런 사실조차 설명해주지 않아야 하는데 유망님이 특별하시기에 큰 단서를 드린 거죠. 사실 투자자로서는 그것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허어, 보통이 아니로군.”
유망은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알았다. 캐내려 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해라. 신뢰를 얻으려고 굳이 더 명분을 맞추려 할 필요 없으니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이환웅이 벌인 일이 유망을 납득 시키면서 이쪽의 패를 다 보여주지 않기 위한 것이었음을 이해했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유망은 한층 더 우리를 의심했을 것이고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배신할 확률은 더욱 커지리라. 그러나 반쪽짜리 정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중대한 떡밥을 설명해주었고 다 밝힐 수 없는 이유를 알려주었기에 유망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명분 또한 생긴 것이다. 유망은 그 사실을 이해했으리라.
“읏차.”
잠시 후 유망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투자설명이라는 건 됐고 이제 백웅 너와 나 사이의 일을 해결해 볼까.”
“저와 유망 님 사이의 일이라니요?”
“그때 대결하기 전에 분명히 말했었지. 네가 진심이 담긴 십초(十招)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받아낸다면 내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고.”
“……아!!”
나는 그제서야 유망의 말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내 반응을 본 유망이 껄껄 웃었다.
“으하하…… 처음부터 내 무공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그저 호승심으로 임한 것이었나?”
“아, 아니 그게…….”
“그게 도리어 좋군.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그때 한판 싸워보길 잘했어.”
유망은 웃음기를 얼굴에서 내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한테는 딱히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내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약속을 한김에 한번 배워보아라.”
“알겠습니다.”
유망의 말대로 내게 더 이상의 절세무공은 크게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익힌 게 너무 많고 익힌 것도 다 소화하지 못해서 낑낑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유망의 무공을 배움으로써 다음 단계로 나아갈 단서를 잡을지도 몰랐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망이 말했다.
“너와 싸울 때 내 무공을 대개 보았겠지만 나는 수많은 무기를 대부분 다룰 줄 알고 각각의 무기술을 따로 나 혼자서 익혔다. 내가 알고 있는 무기술과 무공은 수만 가지가 넘으며 거기에 일일이 이름을 다 붙이진 않았다. 이름을 붙인 것도 있긴 하지만.”
“으음.”
“다만 내 무공을 하나로 통칭하자면…… 거신지무(巨神之武)라고 부르면 된다.”
거신지무.
나는 그 단어를 머릿속으로 되새겼고 유망의 말이 이어졌다.
“거신지무의 요체는 바로 내 권능에 의존한다. 너도 알다시피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는 권능]이지.”
“으음……!! 그건 정말 대단한 능력 같습니다. 저는 유망 님 같은 능력을 가진 자를 생전 처음 봅니다.”
“후후. 칭찬해주는 것 치고는 존경심은 별로 안 느껴지는군.”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타고난 능력에 의존하는 무공이기에, 내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자는 내 무공을 배워봤자 별로 강해질 수 없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수억 년 동안 많은 제자를 만들어보았지만 제대로 강해진 녀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
“마찬가지로 거신지무를 네게 가르쳐줘도 너는 딱히 얻는 게 없겠지. 왜냐면 너는 나처럼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는 권능이 없으니까.”
그렇긴 하다.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는 능력은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능력이지만, 사실 그 외의 무공이 지금껏 내가 익혀왔던 절세무공에 비해 더욱 강력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대단한 숙련도이긴 했지만 다른 무공들도 그만한 급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침묵하자 유망이 말했다.
“허나 사실 거신지무에는 또 다른 공능이자 순수한 기술이 따로 하나 더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방금 전에 말했었지. 나는 네 신력의 성질과 숫자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유망의 눈이 잠시 날카로워졌다.
“나는 처음부터 이 능력을 쉽사리 살릴 수 있었던 게 아니다. 무수한 신력을 겪으면서 그 성질을 이해하고 변화시키고 흡수할 수 있어야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었지. 그 과정에서 나는 신력의 파장을 섬세하게 분별하고, 그 파장을 흉내낼 수 있는 기술을 얻게 되었다.”
“아!!”
나는 유망의 말에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맞아!! 방금 전에 유망이 보여줬던 건 권능이 아니라 기술이었어!’
다른 이의 신력을 느끼고서 그대로 흉내낼 수 있는 기술!
나는 그 사실에서 한 가지를 알아채곤 말했다.
“기술이라는 건 타고난 게 아니기에 후천적인 노력으로 익힐 수 있다는 얘기군요!”
“그래, 그렇다.”
유망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는 네게 신력의 파장을 이해하고 그 파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겠다. 이 기술은 아무리 우주가 넓다지만 오로지 나와 내 유파만이 쓸 수 있는 기술…… 그 이름을 역장류(力場流)라고 한다!”
“……!!”
역장류!
나는 그 말의 울림을 잠시 곱씹다가 말했다.
“그런데 역장류를 배우면 어디에 쓸 수 있는 겁니까? 단순히 다른 신의 힘이 지닌 파장을 흉내 낸다고 해서 그자의 신력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후후, 뜻밖에 날카롭구나.”
유망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네 말대로 나는 타인의 신력파장을 흉내 낼 순 있어도 능력 자체를 흉내 내지는 못한다. 네가 흑웅의 힘을 빌려 여러 신들의 힘을 실제로 복사해서 쓰는 것과는 다르지. 어찌 보면 내 거신지무 역장류는 네가 지닌 흑웅의 하위호환이다.”
“음…….”
“허나 역장류의 진수는 바로 파장 그 자체를 이용하는 데 있지. 잘만 쓰면 너처럼 다른 신능(神能)을 끌어와서 쓰는 것보다 더 강력할 수도 있다. 파장을 흉내 내는 건 다른 장점이 있지.”
“무슨 말입니까?”
“어디 맛만 보여줄까.”
그렇게 중얼거린 유망이 문득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쿠웅…….
원래부터 거대한 거신족이라서 그런지 그가 살짝 하체를 디딘 것만으로도 지형이 둔중하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유망은 일어서서 권법의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염라대왕의 능력을 써서 나를 공격해 봐라. 그때처럼.”
그때?
‘아!’
처음으로 유망과 격돌했던 때 흑웅이 대신 싸웠던 경우를 말하는 건가! 나는 힐끔 옆에 있던 흑웅을 바라보았고, 흑웅은 알겠다는 듯 서서히 내 몸에 스며들어 빙의상태가 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흑웅이 내 몸을 조종하게 되자, 흑웅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일전에 싸웠을 때보다 주인의 잠재력은 더욱 광대해졌소. 나도 그 덕을 보아 강해졌기에 저번보다 더 강하게 갈 것인데 괜찮소?]
그러자 유망은 피식 웃었다.
“네 맘대로 해라.”
마치 절대로 흑웅의 공격 따위는 먹히지 않을 거라는 절대적인 자신감!
그 감정을 읽은 흑웅은 순간적으로 무척 불쾌해졌고, 이윽고 권능을 끌어내어 시전했다.
불길함을 머금은 삼안(三眼)이 떠짐과 동시에 흑웅은 확 하고 한 손을 끌어당기는 자세를 취했다.
염라대왕에 못지않은 죽음의 권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탈혼(奪魂)!]
콰지지직!!
그 순간 유망의 육체와 혼백이 격렬한 파괴음을 내면서 강제로 쥐어뜯기는 게 보였다. 흑웅이 예전보다 강하게 가겠다고 말했던 건 거짓이 아니었는지 유망은 잠시 비틀거리면서 혼백이 뜯겨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유망이 크게 기합을 내질렀다.
“흐압!!”
퍼엉!!
[……!!]
기합의 위세와 함께 흑웅이 도리어 튕겨져 날아가듯 삼 장이나 되는 거리를 뒤로 날려갔다.
그 모습은 일전에 유망이 당혹하며 대처했던 것과는 아예 딴판이었기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란 건 흑웅도 마찬가지인지 말이 없어졌고, 유망은 씩 하고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역장류는 제법 강해 보이지?”
[어떻게 한 것이오?]
“네 공격은 예전에 한 번 맞아봐서 그 파장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파장을 최대한 흉내 내어서…….”
스스스
유망이 몸 주변에 시퍼런 기운을 드러내었다. 나는 그 시퍼런 기운이 유망의 신력이 형상화한 것이란 사실을 알아차렸고, 유망은 이윽고 그 기운을 팔 주변에 두르며 말을 이었다.
“권능이 내게 적중하는 순간 신력의 파장을 최대한 분산시킨 것이다.”
[뭐라고……?]
“능력을 똑같이 따라 하려고 역장류를 쓰는 게 아니야. 상대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받아넘기기 위해서 쓰는 거지.”
나는 그 설명을 듣자마자 유망의 역장류가 어떤 무공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화경(化勁) 이구나!!’
경(勁)이야말로 모든 무공의 원천이며 내가공부와 외가무공에 빠지지 않고 두루 쓰이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 근본은 상대의 힘을 파악하며 그 방향을 알아내고 힘을 흘려내거나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내가 절대지경에 이른 후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매번 연습하는 분야였기에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화경의 극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제대로 장삼봉 진인의 무공을 쓸 수도 없었다.
즉, 신력에도 적용되는 화경!
그것이 바로 역장류인 것이다!
흑웅 또한 그 사실을 파악했는지 침음성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신력이라는 건 사실 이 세상의 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소. 신의 의지가 존재하여 그 의지가 법칙을 움직여 현실을 뒤바꾸는 것인데, 1차원적인 물리력과 기(氣)와는 차원이 다르오. 이번에는 신력을 형상화해서 공격했기에 망정이지, 마법 주문이나 주술의 형태로 신력이 날아가면 그런 걸 어떻게 분산시킨다는 말이오?]
“충분히 할 수 있어. 왜 안 된다고 생각하지?”
[왜 안 된다니…… 신력은 절대적이오.]
“그렇게 단정 지을 것도 없어. 결국은 신력이든 기든 이 세상을 자기 뜻대로 변화시키는 데 쓰이는 힘이자 지렛대가 아니냐?”
유망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백웅. 그러면 네게 하나 물어보겠다. 너는 기(氣)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
여기서 그런 질문을……?
나는 약간 뜬금없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유망의 질문에는 현기가 있었다.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진 질문이 아니라는 걸 무예의 종사로서 직감할 수 있었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이 세계에 가득 차 있는 힘이자 질료이며 내공의 근본이 되는 기운입니다.”
“그래. 기라는 건 그렇지. 혼돈이든 질서든 관계없이 세상에서 가장 중립적인 힘이 바로 기라고 할 수 있다.”
유망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신력은 왜 기처럼 세상에 가득 차 있지 않은가?”
“흠…….”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말문을 잇지 못하자 유망이 말했다.
“이 우주를 100이라 한다면 신들의 존재란 그중에 최소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이 바로 신력인데, 그 신력은 무척 극소수의 신들에게 편중되어 있고 정작 우주를 꽉 채우고 있는 것은 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느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신들이 신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남한테 나눠주지 않으니까요.”
“그럼 만일에 신들이 신력을 온 세상에 뿌리며 나눠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
“내가 추측컨대 신력은 머지않아 기보다 더한 밀도로 세상을 뒤덮을 것이며 모든 존재들이 신력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허나 그건 무척 잠깐일 것이고, 신력이 지니고 있던 강대한 힘은 점차 소멸되어서 머지않아 평범해지게 되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신력의 파장만 오랫동안 연구하다 보니 느껴지는 게 있어서 말이다.”
이어진 유망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기(氣)와 신력은 무척 많이 닮아 있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닮아 있는 게 눈에 보이지. 그 말은 신력 또한 기처럼 다룰 수 있다는 말이다.”
“으음……?!”
“내가 바로 그 산 증인이 아니냐? 신력으로 화경을 쓸 수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기와 신력이 닮아있다고?
나는 예상치도 못한 얘기에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이런 이론은 지금껏 30번 전생하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혼란을 추스르며 말했다.
“그, 그렇다면 기와 신력이 닮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망은 히죽 웃었다.
“좀 배워보면 알 거다. 어디 배워볼 테냐?”
“…….”
나는 역장류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많은 절대지경 고수를 만났지만 [신력] 그 자체를 연구해서 유파의 성명절기로 삼은 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
[큰 굴레]의 과거로 오지 않았다면 이런 기술이 있다는 걸 알 수도 없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알겠습…….”
“잠깐!”
그때였다. 유망과 나 사이에 급히 이환웅이 끼어들더니 말했다.
“배울 때 배우더라도 일단 서명은 다 받고 나서 배워야지. 아직 10명의 서명을 다 안 받았단 말이야.”
“아.”
“수련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할 일은 다 해 놓자고.”
“…….”
내가 유망을 쳐다보자 유망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말 대로야. 역장류를 배우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니까 다른 일을 끝내놓고 느긋하게 와라.”
“알겠습니다.”
파앗!!
나는 이윽고 유망의 거처를 떠나서 다시 천암비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수련세계에 입성하자 다시 이환웅이 만들어놓았던 현대적인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환웅은 어디론가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했다.
“좀 있으면 올 거야.”
이환웅이 스마트폰을 끄자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이환웅.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아까 말했던 신들을 설득하는 방법 말이다…… 정말로 [계시]에 무조건 참석해서 허공록을 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있는 거냐?”
“…….”
“내 기억으론 없는 거 같은데…….”
“그러면 내 말에는 왜 맞장구를 쳐준 거지?”
“혹시 네가 무슨 생각이 있나 싶어서…….”
“후후후…….”
이환웅은 잠시 불길한 웃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그딴 건 없어.”
“어?!”
“알면 내가 세계의 지존이 되었겠지.”
이, 이 새끼 뭐라고?!
내가 기가 막혀서 눈을 크게 뜨자 이환웅이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
“근데…… 방금 느꼈잖아?”
“느끼긴 뭘 느껴?”
“신들조차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경험을 겪은 전생자인 당신조차도 내가 한 말의 진위를 판단하지 못해서 헷갈리는 지경인데 신들한테 이 떡밥을 내세운다고 해서 그들이 거부할 수 있을까?”
“……!!”
“그놈들한테 투자받는데 이게 사실이고 아니고는 딱히 상관없어. 우리는 희망을 파는 거야.”
이환웅은 유들유들한 태도로 손가락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마냥 거짓말도 아니라는 게 중요한 점이지.”
“야!! 방법 없다면서 왜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냐고!!”
“생각해보면 이 상황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닐까? 우리가 한 말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계시] 자체가 이상하다 그 말이지.”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허공록이라는 건 모든 걸 알고 있는 존재라면서?”
이환웅이 근처의 전봇대에 등을 기대며 대꾸했다.
“그런데 왜 굳이 [계시]를 내리는 거지? 자신이 계시를 내리든 말든 그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고 있으니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미래를 이미 다 알고 있어. 그렇게 되잖나? 그런데도 굳이 하급 존재들 앞에 나서서 통지를 내리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당신 말대로라면 [계시] 때 외신이 되어 승천할 존재가 정해지는 건데, 그게 과연 지금 경쟁할 만한 사건이냐는 거지. 왜냐하면 허공록은 모든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아랫것들이 경쟁을 하던 말던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해서 누가 외신이 될지를 미리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면 사실 황제나 흉신이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
“아!”
그, 그것도 그렇네?
여태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에 내가 머리를 홱홱 굴리게 되자 이환웅이 말했다.
“뭐 황제나 흉신은 다른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우선 당신의 말대로라면 전생자인 당신조차도 [계시] 때 허공록이 정말로 내려오는 건지, 내려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몰라. 하지만 나는 뭔가 의심스러운걸.”
이환웅은 염세적인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숨겨져 있어. 내 직감으로 볼 때 이건 뭔가 사기판이야!”
“단정지을 수 있는 거냐?”
“왜 단정을 못 짓겠어? 멸망한 외우주를 직접 내 눈으로 봤는데. 이 쓰레기 같은 세상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
“뭐, 나는 사기판이라도 상관없어. 합리적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만 얻으면 돼.”
그렇게 말한 이환웅은 씩 웃었다.
“그러니까 새롭게 모집할 물주들에게는 희망을 파는 걸로 하자구……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방법을 찾아줄지도 모르니까…… 이해했지?”
“…….”
딱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환웅의 말대로다.
지금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소을촌에 귀환해서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약 한 시진 후, 우리 앞에는 심수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백웅. 오랜만일세!”
“정말 오랜만이구려.”
나는 심수력을 오랜만에 봤는데도 그의 모습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단, 그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기에 순간 흠칫했다.
‘심상치 않은 경지에 올랐다.’
구체적으로 무슨 경지인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자신의 힘을 없앨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무예의 경지에서 가장 높은 단계 중 하나였다. 그것도 절대지경의 안목으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면 심수력은 그동안 절대지경 내에서도 더욱 상위의 심득을 얻은 게 분명한 것이다.
근처에 있던 카페 건물에 들어간 우리는 이윽고 의자에 앉았고, 심수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환웅이 사전에 우리에게 전후사정을 모두 알려주었기에 따로 입 아프게 설명해주진 않아도 되네.”
“음? 그렇소?”
“그래. 이환웅을 데려간 후에 일어난 일만 간단하게 말해줘.”
나는 심수력에게 주식회사 설립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심수력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는데, 그 와중에 서빙로봇이 선반에 커피를 담아서 갖고 왔다. 이환웅은 커피를 각자의 자리에 갖다 놓으며 말했다.
“심수력, 당신이 마지막으로 서명할 사람이오. 고민할 거 없으니 빨리 서명하시오.”
“아닌 것 같은데.”
심수력은 그렇게 말하고는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았다.
“백웅. 정말 내가 마지막 10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도 납득하는가?”
“당연히 납득하지. 납득 못할 이유라도 있소?”
이어진 심수력의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이광은?”
“…….”
“그 또한 10인의 주주에 참석할 자격이 있을 텐데.”
나는 그 말에 황당해서 말했다.
“그…… 그 인간 얘기는 왜 꺼내시오?!”
“왜 꺼내냐니. 당연히 동료 중에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햇수로 치면 우리보다는 이광이 훨씬 더 밀접한 관계 아닌가? 심지어 자네가 외우주를 넘어오기 전부터 동료였고 난데없이 이세계에 소환되기까지 했으니.”
“…….”
“내게 주주가 되겠냐고 하면 당연히 승낙하겠지만 이광 또한 제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일세.”
“하지만 그건…….”
그때였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소? 사부.”
나는 그 순간 홱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
거기에는 이광이 서 있었으나 내가 아는 그 이광이 아니었다.
‘젊…… 다?!’
이광의 용모는 남아 있으되 나이를 먹은 증거인 주름과 피부가 완전히 팽팽해져 있었다.
머리카락도 더욱 윤기가 나고 있었으며 은은한 패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한동안 할 말을 잊고 이광을 쳐다보자 이광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사부 마음대로 하시오. 나한테 겁먹었다는 거 다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