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5화
금기!
나는 그 말에 담겨있는 속뜻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하지만 바로 티를 내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일단 시치미를 떼기로 생각했다.
“무슨 말씀이신…….”
“너 같은 인간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딱 잘라 말한 유망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인간이 기연을 얻어 강대한 신력을 얻는 일은 확률이 낮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지. 마도사들이 오랜 공양의식과 승급을 거쳐 마왕이 되고 [옛 지배자]가 되는 일은 종종 보아왔으니. 뭐 그래도 너 같은 상위 신급 능력을 지니는 건 너무나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
“희박해도 있을 수 있는 일 아닙니까.”
“하지만 너는 거기에다가 무공(武功)을 최고의 수준에 가깝게 익혔다.”
“…….”
“산명(山鳴)…… 네가 무신(武神)이라 부르는 그 존재는 혼돈의 마도(魔道)와 양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전적으로 혼돈을 거부하지는 않으나 너처럼 자연스럽게 신력과 무공을 모두 익힌 존재는 수억 년 이상 살아온 내 삶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물며 [옛 종족]의 노리개에서 갓 벗어난 인간족 따위에서 그런 존재가 나타난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
그렇게 중얼거린 유망이 말했다.
“너는 틀림없이 [큰 굴레]를 넘어서 온 존재다. [큰 굴레]를 되돌릴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말이다.”
역시…… 들킨 건가?
나는 유망에게 들켰다는 생각에 아찔해졌지만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애써 반박해 보았다.
“그것만으로는 제가 [큰 굴레]를 넘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 유망 님 또한 신력과 무공을 양립시킨 존재일 텐데요.”
“그래서 더더욱 네가 있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쓰는 권능이 뭔지 알고 있을 텐데?”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는 능력이죠.”
“내 능력을 제대로 전투에 쓰기 위해서는 수십만 년 이상의 오랜 수련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신력의 미묘한 성질을 파악할 수 있어야 했고 때로는 다른 신의 권능을 직접 맞아가면서 차이를 비교하기도 했지.”
스윽
그렇게 말한 유망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은은한 기운을 집중시켜서 밝은 빛무리를 손바닥에 생성시켰다.
츠츠츠…….
“어떠냐?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네가 지닌 신력의 파장과 비슷하지 않나?”
“……!!”
나는 유망의 손에 흐르는 무형의 기운을 느끼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정말로 유망은 내가 지니고 있는 신력의 형질과 거의 흡사한 파장을 구현화 할 수 있다! 유망이 가지고 있는 뜻밖의 기술은 예상치도 못했기에 내가 놀라자 유망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네 신력은 언뜻 한 덩어리 같지만, 최소한 세 명 이상의 신격들이 지닌 권능이 복합되어 있다. 인과율로써 잠자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최소한 다섯 이상일지도 모르겠군. 그중에는 내가 아는 신성도 있는데 말이지…….”
유망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사실상 전욱(顓頊)의 적자(嫡子)나 다름없는 데다 소호금천의 핵심권능도 갖고 있지, 거기에 염라대왕의 능력을 거의 본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쓸 수 있다. 거기에다가 전륜성왕 본인의 힘도 느껴지고. 내가 잘 모르는 고대신들의 능력도 함께 갖고 있는데 웃긴 건 강력한 신체(神體)가 너에게 직접 흡수된 기색이 느껴진다. 이게 대체 뭐냐?”
“…….”
“이 정도로 다양한 신력을 얻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하나하나에게 엄청난 대가를 바치고 공양하거나 부하가 되어서 수만년 이상 일만 하면 될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 자들은 너를 거의 처음 대하던 것 같군.”
“그, 그게…….”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모두 설명이 가능하려면 네가 [큰 굴레]를 넘은 존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심지어 너는 무(武)의 역사(歷史)와 수많은 명인들의 존재를 언급했고, 실제로도 네 기술은 명인들이 평생을 걸고 닦아낸 절세의 묘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우주에 그런 명인의 맥은 거의 없으며 너 같은 제자를 두었다는 얘기조차 듣지 못했어.”
“…….”
“혹시 반박할 말이 있냐?”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옆에 있던 이환웅이 말했다.
“백웅. 내가 볼 땐 없는 것 같은데.”
“젠장…… 나도 알아.”
나는 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런 건 그리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입니다. 숨겼다고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알아. 전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대죄인이라는 게 밝혀지는 건데 당연히 숨기고 싶겠지.”
나는 대죄인이라는 말에 흠칫했다.
“대죄인이라니요?”
유망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어째서 금기를 범하고도 소멸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우주의 이치를 흐트러뜨리는 존재라는 건 사실이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고대신 일파일 경우 너를 그대로 없애 버리려고 들 수도 있지. 네 존재 자체가 혼돈을 불러오므로 세계를 한층 더 혼돈의 축에 가깝게 해 버리잖냐.”
“……!!”
“뭐, 나는 굳이 따지고 보면 거신족이니 고대신의 유파에 속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
“그게…… 정상입니까?”
“정상은 아니겠지? 아마 고대신이라면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대부분 널 싫어하게 될 거다.”
“…….”
나는 그 말에 섬뜩해지는 걸 느꼈다.
‘복희는 아무렇지도 않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복희가 신좌출신이자 창조신 반고의 적자로서 너무 높은 존재라서 그런 원리원칙에 신경 안 쓰는 것뿐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말은 복희 이외의 고대신에게 내가 [큰 굴레]를 넘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쉽게 적대감을 살 수 있다는 뜻도 되리라.
내가 굳어 있을 때 유망이 말했다.
“아무튼 그런 네가 데려온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 시대의 인간은 아닐 테고 [큰 굴레]의 저편에서 온 미래의 인간이겠지.”
“……맞습니다.”
“그래서 너 혼자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미래의 인간동료를 굳이 여기에 데려온 건 뭔가 이유가 있는 거겠지. 전후사정을 설명해봐.”
나는 유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10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주식회사를 왜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하자, 유망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거기 인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환웅은 앞으로 나서서 포권하며 말했다.
“이환웅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거신족의 전사시여.”
“네 녀석, 어떻게 해서 [옛 지배자]와 고대신들에게 투자를 받을 생각이지?”
“…….”
“네 주식회사 계획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았다. 우선 그들에게 투자를 받을 수 없다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아.”
유망의 질문에 이환웅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단숨에 핵심을 찌르시는군요. 당연히 그들이 원하는 걸 미끼로 내밀 생각입니다.”
“백웅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결국 지금의 신분은 인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와 있는 수백의 [옛 지배자]들은 저마다의 성계에서 한가락 하던 놈들이다. 어지간한 대가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텐데 뭘로 구워삶을 셈이냐.”
“…….”
“말하기 싫은 건가?”
그 말에 이환웅이 대꾸했다.
“네. 말하기 싫습니다만.”
헉?!
이환웅의 당돌한 말투에 놀란 건 도리어 나였다.
‘이, 이 새끼야!! 유망은……!!’
이 시대에 와서 만났던 삼황오제 이하의 신적 존재 중에서 틀림없이 최강에 가까운 존재! 격으로 치면 우주적인 신왕(神王)들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강력한 신력과 무공을 살리면 그들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신들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왕을 살해할 수도 있을 만한 전력이기도 했기에 삼황 염제는 유망을 중대하게 다루는 중이었다.
즉, 이환웅은 사실상 상위 신이자 신화시대 최강급 전사에게 개기고 있는 것이다!
“호오. 그럼 서명은 해줄 수 없는데.”
이환웅은 유망의 대답에 또다시 말대꾸를 했다.
“아뇨, 해주셔야겠습니다. 서명을 받기 전에는 갈 수 없습니다.”
“왜 해야 하지? 투자목적도 설명 못 받았는데.”
“한배를 타기 전에는 말씀드릴 수 없을 뿐입니다. 하지만 일단 가입만 하신다면 무조건 백웅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다 나중에 설명드리지요.”
“네 목숨을 걸 수 있느냐?”
“걸 수 있습니다.”
“목숨은 걸 수 있는데 투자목적은 말 못 해주고? 왜지?”
“보안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지금의 유망 님은 아직 가입을 안 한 상태라서 언제든 우리의 계획을 누설하실 수 있습니다. 한배를 타셔야 합니다.”
“한배라…….”
그러자 유망은 재밌다는 듯 손가락을 이환웅 쪽으로 향했다.
“어디 그러면 목숨을 걸었다는 말을 증명해 보거라.”
쿠구구궁!!
“……!!”
그러자 순식간에 이환웅이 서 있던 땅이 우그러지고 패였다. 동시에 이환웅의 몸은 마치 거대한 중력에 짓눌리듯이 낙지처럼 땅에 처박혔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이환웅을 패대기친 것만 같았다.
이환웅이 꿈틀거리는 걸 내려다보고 있던 유망이 말했다.
“내 투신역장(鬪神力掌)을 견디는 걸 보니 인간치고는 제법 단련을 한 놈이구나. 의념으로 몸의 형태는 지키다니.”
우드득! 우득!!
이환웅의 오공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실시간으로 그의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유망이 뭘 했는지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는 능력…… 그걸 응용해서 순수하게 의념을 [힘]으로 만들어서 내리누른 건가!’
그저 의념으로 장법을 구현한 것뿐인, 무척이나 단순한 응용.
내가 볼 때 이환웅의 현재 경지는 초절정고수를 넘어서 있었는데 그런 이환웅을 손가락질 한 번으로 벌레처럼 만들어 버리는 걸 보면 역시 유망 또한 신은 신이었다. 그것도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장난을 친 것뿐인데도 이환웅이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버린 것이다.
이환웅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나는 그런 생각에 그대로 의념을 내뿜어서 유망의 투신역장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투신역장에 실려 있는 힘이 지금 내 의념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밀도를 갖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인간의 절대지경이 보유한 의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상위신족의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었으니 단순한 힘으로는 상대가 될 턱이 없다!! 이걸 정면에서 상대하려면 의념의 양이 크게 상관없는 국면에서 순수한 기술의 위력으로 버텨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게 성립되지 않았다.
이제 이환웅을 향한 공격을 멈추려면 유망을 칠 수밖에 없다.
‘제기랄. 죽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어쩔 수 없지.’
나는 다시 유망과 싸우다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이환웅이 책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내 동료였기에 동료가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였다.
“크…… 크흑!!”
이환웅의 몸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이환웅은 서서히 압력에서 저항하며 부들거리며 꿇어엎드린 자세까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미 그의 얼굴은 피눈물에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아무런 여유도 없어 보였지만 어찌 되었든 유망의 투신역장에 저항한 것이다!!
‘어떻게?!’
지금 이환웅의 경지로는 불가능할 텐데!!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유망은 조금 눈을 크게 뜨고는 감탄했다.
“호오. 심장을 이상한 걸로 바꿔놓았군.”
심장?
치지지징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환웅의 몸에서 푸른 번개 같은 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환웅의 눈 또한 완전히 새파랗게 변했는데, 그의 눈 안에는 알 수 없는 술식 같은 게 새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양자술식(量子術式)
스핀 네트워크 (spin network)
이환웅은 순간 자신의 두 주먹을 크게 말아쥐는 것처럼 보였다.
슈뢰딩거 온 더 루프(Schrödinger on the loop)
피피핑……!!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환웅이 꿇어앉아 있는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 채, 마치 그의 분신이 생겨나듯이 자연스럽게 투신역장을 빠져나온 것이다! 놀라운 것은 꿇어앉아 있는 이환웅과 투신역장을 빠져나온 이환웅은 완전히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가지 않았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저 기술은 내 모수분신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저…… 저건 분신이 아니다.’
그런데 분신이 아니면 뭐지?
마치…… 둘 다 똑같은 존재 같은데.
감각적으로는 이환웅의 기술에 대한 위화감을 알아차렸지만, 그 정체는 알지 못해서 내가 헷갈려하고 있을 때, 이환웅은 그대로 몸 근처에 푸른빛의 나선이 회오리치는 상태로 투신역장을 벗어났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 위에 어떤 무기를 소환했다.
촤르륵!
은빛으로 빛나는 아홉 개의 절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환웅은 그 절편을 그대로 휘두르며 연속으로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투신역장에 돌격했고, 다음 순간 아홉 개의 절편은 더없이 정확하게 투신역장을 파고 들어가는 게 보였다.
퍼퍼펑
“크으으윽!!”
다음 순간 폭발음과 함께 이환웅은 비명을 지르며 훨훨 날아갔다.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가서 처박힌 이환웅은 피투성이가 되어서 꿈틀거렸는데, 아무리 보아도 투신역장을 이기지 못한 모양새였다. 이환웅이 쓰러진 걸 지켜보던 유망은 재밌다는 듯 말했다.
“초상능력과 무공을 접목시켰나 보구나. 그런 놈이 없진 않았지.”
“…….”
이환웅은 비틀거리며 잠시 후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일어서서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빙긋 웃었다.
“위대한 자여. 지금의 저는 백웅을 주군으로 둔 책사입니다. 그리고 책사가 주군의 계획을 사전에 누설하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환웅이 은하구절편(銀河九節鞭)을 쫙 펼치며 말을 이었다.
“가입 안 하시려거든 그냥 이 자리에서 날 죽이고 끝내십시오. 그게 합리적이니까.”
그 순간 나도 유망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을 각오했다!
이환웅이 담담해 보였지만 그의 감정과 마음은 극히 격정적이었고 동시에 하나의 목적을 향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것은 죽기 전까지 최대한 저항하다가 죽겠다는 무사의 의지였다. 나와 유망은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었기에 같은 전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유망은 뭔가 부러워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제법 괜찮은 부하를 뒀군.”
후웅
갑자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망의 살기가 풀렸고, 이환웅 또한 압력에서 벗어나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허억.”
풀썩
유망은 기절한 이환웅을 내려다보다가 내게 말했다.
“아직은 애송이 중의 애송이지만 왠지 거물이 될 것 같은 놈이군. 무엇보다도 자신의 뜻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광기를 가진 놈이야.”
“광기라고요?”
“잘은 설명할 수 없지만 이런 놈은 본디 책사가 될 놈이 아니야. 엄청난 집념을 지니며 제왕(帝王)이 되레 할 놈이지. 어쩌다 이런 부하를 두게 된 거지?”
그렇게 말한 유망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서명 따위 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저놈의 의기를 보아서 해줘야겠군.”
“……!!”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왜 안 해주려 한 겁니까?”
당연히 해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말이 나오니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유망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멀뚱히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나는 거신족의 장로이자 대전사이고 전사장이야. 거신족의 신인 염제를 영겁토록 섬기는 몸이지. 네가 말해준 주식회사의 개념과 그에 따를 위험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주식회사에 가입하는 건 당연히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윽…….”
“헌데 저 맹랑한 놈은 처음부터 나를 설득하는 걸 전제로 삼고 이 자리에 오려 했던 모양이군. 실력으로는 말도 안 되게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왔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파멸할 수도 있는 모험에 처음부터 몸을 내던졌다는 것이지.”
유망은 팔짱을 꼈다.
“저런 놈은 엄청나게 끈질기지. 재밌기도 하고, 무사의 의기를 보아 서명을 해주겠다.”
“……고맙습니다.”
잠시 후 유망은 수련 중이던 청양을 불러서 함께 서명을 했다.
나는 그 서명을 보며 기절해 있던 이환웅을 신력으로 회복시켰다.
“정신이 드냐?”
“……유망 님은 서명했겠지?”
“인마. 너 방금 진짜 죽을 뻔했어…….”
나는 이환웅의 집념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방금 그 능력은 대체 뭐냐? 지금 넌 아직 절대지경에 오르지 못해서 절대 투신역장을 못 버틸 텐데.”
“아…… 전에도 말했지. 내가 가진 능력은 과학과 조합해야 최강이 될 거라고.”
몸을 일으킨 이환웅은 자신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강인공지능 메피스토가 들어가 있는 거야. 그게 내 새로운 능력의 근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