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4화
대출이라고?
나는 이환웅의 말에 당황해서 말했다.
“대출이라면…… 돈을 빌린다는 말이냐? 어째서…….”
이환웅이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눈을 끔벅였다.
“어째서긴. 종잣돈이 적으면 돈을 불리는 속도가 느리잖아? 백웅 당신 말대로 엄청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아서 더 빨리 돈을 불리는 게 낫지.”
“하지만 돈을 빌릴 때는 무조건 이자를 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지.”
“그…… 그거 잘못하면 위험하다고. 괜찮은 거냐……?”
나는 무척 걱정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사가 적을 쓰러뜨리던 수법 중에서 대표적인 게 엄청난 고리대금 사채를 강제로 발생시켜서 상대를 자멸시키는 외법(外法)이었다. 그걸 써서 [옛 지배자]마저 작살 내는 걸 기억을 통해서 보았던 나로서는 사채 이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환웅이 말했다.
“일단은 이자가 얼마나 되는지부터 파악해봐야지. [상업의 권능]에는 대출 기능이 처음부터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상업의 권능을 처음 시험하며 연구할 때 건달파의 제언으로 대출이 가능한 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환웅 또한 내게서 상업의 권능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분명 상인 등급 10급이었을 때 최대 5만 마두에 이자가 1일 7할이었던가…….’
나는 그대로 대귀에게 질문했다.
“대귀! 내가 지금 대출을 받는다면 최대 마두와 이자율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자 대귀는 잠시 눈을 파르스름하게 만들며 계산을 하는 것 같더니 내 말에 대답했다.
[3급인 전귀이며 신뢰도 상(上)이므로 최대 120억 마두이며 이자는 1년 5푼입니다.]
“오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어마어마하게 대출조건이 후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120억 마두라고 한다면 예전에 내 팔의 저주를 해제할 때 필요했던 약 90억의 마두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치였으므로 굉장한 양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환웅이 대귀에게 질문했다.
“또 하나 질문. 백웅이 트리무르티와 상업의 권능을 조합해서 생성했던 전신지재 전용 재화 또한 1마두와 똑같이 취급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동전 1개는 1마두와 같습니다. 마두를 동전으로 전환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 스테이블 같은 개념이군. 그걸 알면 됐어.”
잠시 뭔가 생각하던 이환웅이 말을 이었다.
“납득이 가는 수치군. 딱 1금융권 성실고객 대출 수준이야. 게다가 원작자인 창힐조차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이르렀으니 100억 이상을 대출해주는 건가…….”
“120억 빌리면 되냐?”
“백웅. 120억을 전부 대출받았을 때 1년에 내야 하는 이자는 6억 마두야. 당신이 그냥 이 시대의 마물이나 정령을 사냥하는 걸로 6억 마두를 채울 수 있겠어?”
나는 그 말에 예전에 마물을 사냥했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용을 수십 마리나 잡고도 1500만이었으니까…….’
용급 이상의 마물을 1천 마리 이상 잡아야 6억을 채울까말까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때 내가 잡았던 흑룡 또한 중하급 마물이 아니라 명나라 시대의 기준으로는 일국을 멸망시키기에 족한 신화급 존재가 분명했기에, 그런 놈들을 1천 마리 이상 발견해서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신들이 날뛰는 신화시대라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상의 마물들을 잡으려고 할 경우는 무조건 [옛 지배자]의 강대한 사도급 이상이었기에, 나도 굉장히 위험부담이 커지고 힘들게 분명하리라.
나는 계산을 끝내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아마 힘들겠지. 6억은 무리야.”
“그래. 아까 말했던 [노동소득]으로는 최대로 대출받았을 때의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거야.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돈놀이, 돈으로 돈을 불리는 [자본소득]인 거지.”
이환웅이 왠지 얄미워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번에 3급까지 올린다고 가진 보물 싹 다 팔아서 알거지잖아. 이젠 보물 팔이도 안 통해.”
“…….”
끄응…… 그랬지…… 금오도의 알까지 진화시켜서 싹 다 팔아 버리는 바람에 이제 가진 게 없다!
내가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을 때 이환웅이 말했다.
“걱정마. 1년에 5퍼센트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것 정도는 완전히 껌이거든. 나만 믿어.”
“왜 그렇게 자신이 있는 거냐? 너는 그 주식이라는 걸 잘하는 거냐?”
내가 불안한 마음에 그렇게 톡 쏘듯이 말하자 이환웅은 히죽 웃었다.
“흐흐. 10대 초반에 도전했던 내 주식투자 수익률은 5년 동안 52,500퍼센트였어. 그 시대, 그 세계에서 나보다 주식을 잘하는 놈은 없었다고.”
“……?!”
“위아래로 발라먹었지.”
뭐, 뭔가 대단한데?
“세계의 룰을 내가 지배하지 못한 상태였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당신처럼 룰을 지배한 상태에서 덤벼든다면 무조건 그 이상이 가능해. 단지…….”
“단지?”
이환웅은 팔짱을 끼며 걱정스러워했다.
“한 가지 룰이 걸려. 바로 999억이라는 한계수치야.”
“한계수치가 왜?”
“저번에 금오도의 알을 진화시켜서 금란을 팔 때 느꼈잖아. 사실 금란의 가치는 999억의 수십 배였을 수도 있어. 하지만 아무리 해당 수치가 높다고 하더라도 한계수치에 도달하면 그걸로 끝인 거지. 즉 우리가 벌어들인 마두가 9,999억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전신지재를 10개가 아니라 1개밖에 벌 수 없는 거야.”
“……아!!”
나는 이환웅의 말을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러면 지금 이 주식을 이용해서 훨씬 많은 마두를 번다고 하더라도 전신지재 1개만 얻고 끝날 수도 있다는 거냐?”
“그래.”
“9,999억 정도 벌어놓고 999억씩 10번 소모하면 되잖아.”
“……아니, 전제가 틀렸잖아. 아무리 주식으로 많이 벌어도 999억 이상 잔고가 안 쌓이는 거라고. 그런 개념이잖아.”
“아.”
“흐음, 그렇다면 이렇게 가자고.”
이환웅이 말을 이었다.
“다음번 전신지재를 획득한다면 그것 또한 소모를 하는 거야. 그걸 이용해서 한계수치를 최대한 높이는 거지.”
“그럼 999억에 한 번 도달하는 것도 힘든데 여러 번 도달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나 벌 수 있다고……?”
내가 불신에 휩싸여서 이환웅을 쳐다보자 그는 히죽 웃었다.
“아 좀 믿어보라니까. 내가 망량이나 제갈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돈놀이 하나만큼은 일가견이 있어.”
“…….”
“또 하나. 저번에 3급 전귀에 도달했을 때 새로이 생성되었던 특권을 살펴봐야겠지. 대귀, 다시 설명해줘.”
이환웅이 대귀를 쳐다보며 요구하자 대귀의 입에서 설명이 나왔다.
[이제부터 ‘초상능력’, ‘영혼’, ‘성좌’, ‘별’, ‘은하에너지’, ‘법칙’, ‘차원’을 매매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계약해제’에 마두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돈 단위를 산정할 때 ‘버림’ 대신 ‘올림’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돈을 ‘영혼’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상회(商會)를 꾸릴 시 상회의 규모에 따라 능력치에 추가 보정을 받게 됩니다.]
[이제부터 초심자 특전이 소멸되어 허공록에 ‘세금’을 납세하실 의무가 생겼습니다.]
기계적인 설명이 끝나자 이환웅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백웅. 방금 대귀가 설명을 안 해줬지만 허공록에게 내는 거래세가 2할인 거 알고 있지?”
“아……!! 그랬지.”
“그럼 이제 당신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
“…….”
“딱 들으면 알아채야지. 바로 상회(商會)를 설립하는 거야.”
“으음…… 능력치에 추가 보정을 받아야 하니까 그래야겠군.”
내가 간신히 이해해서 말하자 이환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당신만의 주식회사(株式會社)를 설립하기 위해서야.”
나는 그 말에 멍청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엉? 주식회사? 상회나 주식회사나 그게 그거 아니냐.”
“다르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느냐 아니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아마 원시적인 상업의 권능 시스템에서 상회를 설립하면 단순히 당신의 능력치에 보정 받는 걸로 끝나겠지만 상회이면서 주식회사가 된다면 일거양득을 추구하는 게 가능하거든. 아니, 그 이상도…….”
“……?”
“간단하게 설명해주지. 우선 120억을 모두 대출받아서 그 자본금을 모두 넣어서 당신만의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거야. 그다음에는 전 세계의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이고, 그들의 투자를 이용해서 좀 더 쉽게 덩치를 불릴 수 있을 거야. 별다른 꼼수를 안 써도 그것만으로도 200억 정도는 쉽겠지.”
나는 이환웅의 설명에 한층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의 투자자? 지금 인류는 원시인이라니까…….”
“인간한테 투자받는 게 아냐. 당신이 살던 명나라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가 뭐겠어? 전 세계에 넘치는 게 신이라는 거지.”
“……!! 설마!”
“바로 그 설마다.”
이환웅은 음충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고대신이고 [옛 지배자]고 할 것 없이 이 지구에 와 있는 수백 명의 신들에게 투자받는 거다! 그자들은 말 그대로 위대한 존재니까 당신에게 커다란 투자금을 줄 수 있을 게 분명하지 않아?”
“…….”
나는 황당해서 입을 멍하니 벌리고 말았다.
‘시, 신들에게 투자를 받는다고?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개념이 나타나고 있었기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책사들에게 신기묘산의 계책을 들을 때보다 더 헷갈리고 어렵게 느껴졌다. 내 눈이 팽팽 돌아가자 이환웅이 말했다.
“안 그래도 3급 전귀의 단계에서는 온갖 무형의 파워를 거래하는 게 가능해. 즉, 고대신들에게서 성좌를 제공받거나 혹은 옛 지배자에게서 먼 우주에 있는 별을 제공받을 경우…… 그걸 그대로 당신의 마두로 바꿀 수 있다는 거야.”
“으음……!!”
확실히 그렇다! 나는 서서히 이환웅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신기하게 여겨졌다.
“알았어. 그럼 주식회사를 만들어볼까…… 대귀! 주식회사를 만들어다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대귀가 대답했다.
[주식회사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주식, 자본금, 그리고 창업주 본인을 제외한 최초주주 10인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요건을 충족시켜 주십시오.]
“응?”
뭔 소리래?
그러자 이환웅이 말했다.
“자본금은 120억을 대출받는걸로 충분하고 주식발행의 과정을 먼저 거쳐야겠지. 그 후에는 완전히 백웅 당신의 편이 되어서 영혼을 바칠 수도 있는 자들 10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 10명의 운명은 당신이 설립한 주식회사의 운명과 함께 가게 되는 거다.”
나는 그 말에 흠칫하고 말았다.
“그 말은…… 만일 주식회사가 잘못되면 그 10명도 죽는다는 말이냐?”
“죽는 것보다 더하지. 단순히 죽는 거면 당신이 명계에서 바로 빼 줄 수 있잖아. 허공록이 연계된 권능이니까 아마 영혼이 통째로 인과의 굴레에서 소멸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렇게나 심한 대가를 치른단 말인가?!
나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내 마음속을 휩쓰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이환웅이 전에 없던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 10명은 잘 골라야 해. 만일에 그중 하나라도 배신하게 되면 당신 또한 치명타를 피할 수가 없으니까.”
“10명이라…….”
“우선은 120억 마두를 대출받고 주식발행부터 시작하지. 아마 1마두에 1주라고 치고 120억주 발행하면 되겠군.”
“알았다.”
우우우우우
나는 이환웅의 말대로 진행했다. 그리고 대귀에게 요청해서 주식발행의 단계까지 끝나자 탁록촌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 일이 진행되었는지를 모두에게 설명한 후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서 최초의 주주가 될 10명을 뽑아야 해.”
좌중은 고요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진중하다기보다는 어색한 침묵이었는데, 이윽고 좌중에서 건달파가 손을 들고 말했다.
“주군.”
“그래, 건달파. 말해봐.”
건달파는 민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주식회사라는 게 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주군이 무엇을 진행하시려는지 조차 이해되지 않습니다.”
“…….”
나는 나도 모르게 “나도!”라고 외칠 뻔했다. 나도 사실 대충만 이해했지 이 주식회사라는 게 무엇이고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천 년이나 생을 살아온 데다가 경제관념도 틔어 있는 건달파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면 이 시대의 탁록촌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리라.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쩝쩝 입맛을 다시고 있자 건달파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주군은 이미 이 시대를 평정할 주인이시자 진정한 왕의 재질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이미 창힐을 뛰어넘으신 주군이 가시는 길이라면, 이 건달파는 영혼을 걸고 함께 하겠나이다!”
그렇게 외친 건달파는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대뜸 책상 위에 있던 종이에 서명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봐! 설명 제대로 들었냐? 이거 잘못되면 너는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소멸된다고.”
“상관없습니다. 이미 우주를 넘나들 때부터 죽은 목숨이라 각오했었는데 주군 덕에 살아온 목숨!”
쿠웅!
건달파는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내게 무림의 예법으로 포권을 했다.
“저는 주군과 함께 원래 세계로 귀환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
나는 그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젠장…….’
사실 나는 건달파에 그렇게 의리도 없고 좋아하는 놈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서로 싸우다가 군신의 관계가 되었을 뿐이고 팔부신중에 대한 영 안 좋은 감정 때문에 어느 정도는 데면데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낯선 세계에서 갑자기 보게 된 무림의 포권은 내 마음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영혼까지 걸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함부로 대하겠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꼭 함께 가자고. 너도나도…… 소을촌 사람들을 봐야 할 거 아니냐.”
“하하하.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건달파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선 것은 바로 열산이었다.
“백웅!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탁록촌의 촌장은 바로 너다!”
나는 그 말에 당황했다.
“어?! 내가 왜 촌장이야!”
“원래 촌장인 유소가 실종되고 나서 내가 임시 촌장이었는데 네가 소녀를 데려와 주었으니 당연히 네가 촌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
“내게 있어서 너와 같은 은인은 두 번 다시 없다! 네가 우리 탁록촌을 이끈다면 무조건 네 뜻을 따르리라!”
쓰쓱
그렇게 열산까지 거침없이 서명을 하자 옆에 있던 상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잘하라고.”
“인마. 뭐가 뭔지 모르는데 서명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야. 등 떠밀어서 할 일이 아니니 싫으면 안 해도 돼.”
나는 서명을 하려는 상아를 말렸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신이 우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걸 알고 있어. 게다가 청양도 되살려주었으니 나에게는 당신에게 은혜를 갚을 의무가 있는 거야.”
“…….”
쓰쓱
그리고 수보리와 동방삭 또한 별말없이 서명을 했다. 그렇게 5명의 서명이 채워지자 내 옆에 있던 흑웅이 말했다.
[주인! 나도 서명을 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겠소.]
쓰쓱
[되는구려.]
“…….”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흑웅이 초기 주주로 참석하는 게 가능하다고? 이건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뭔가 복잡해서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잠시 후 이환웅 또한 서명을 했고 그는 서명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유망, 청양, 심수력에게 받으면 되겠군. 빨리 유망을 찾아가 보자고.”
“유망이 어딨는지 아는 거냐?”
“유망한테서 받은 도(刀)가 있잖아. 거기에 신력을 불어넣어서 흔적을 따라가면 원래 주인이 어딨는지 찾아갈 수 있지.”
“아!”
“처음부터 유망도 그걸 염두에 두고 찾아오고 싶으면 오라고 준 걸 테지. 그럼 가자.”
“…….”
“왜?”
나는 조심스럽게 소녀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소녀의 서명은 안 되는 거냐.”
그도 그럴 것이 뻔히 이 자리에 소녀가 참석해 있었는데 그녀의 서명을 안 받는 게 이상했다. 그러자 이환웅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말했다.
“소녀가 초기주주로서 무한의 권능을 응용해서 당신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너무 높아서 무시하는 건데?”
“……!!”
아니 이 새끼, 아무리 그래도 본인 앞에서 그런 말을……!!
이환웅이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내지르는 한마디에 내가 당황했지만, 소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죠. 초기주주라는 건 큰 신뢰도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고 힘의 크기는 상관없는 거겠지요.”
“……나쁘게 생각하지 마. 네가 배신할 거라고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야.”
“괜찮아요.”
소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어쩌면 저와 당신은 나중에 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
나는 이환웅에게 말했다.
“가자.”
파앗
나는 유망의 도를 통해서 신력의 흐름을 좇아 그에게 순간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유망이 폭포수 아래쪽에 앉아 있었고 절벽 한가운데에서 청양이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하는 게 보였다.
쏴아아아 -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에서 술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던 거신족 전사, 유망은 내 쪽을 되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왔냐.”
“간만입니다.”
“음, 그래. 죽여서 미안하다.”
“…….”
뭔가 죽여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듣는 건 태어나서 처음인 거 같은데…….
내가 떫은 표정으로 서 있자 유망이 말했다.
“네가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는 애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네가 보여줬던 무사의 신념은 대단했다. 나도 너를 진심으로 전사로써 존경한다.”
나는 유망이 뜻밖에 좋은 얘기를 해주자 머쓱해져서 말했다.
“애송이는 맞습니다. 당신에 비하면.”
“겸손하지 않아도 돼. 지금의 너만 한 수준에 도달한 무예가는 전 우주를 통틀어도 거의 없을 테니까…….”
“…….”
“그리고 내 도(刀)를 받은 놈이 너무 겸손하면 그것도 싫다.”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 유망이 말했다.
“그쪽은 새로 보는 얼굴이군. 저 인간도 네 동료인가?”
“네. 이환웅이라고 합니다.”
“…….”
유망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서 이환웅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는 한참 동안 이환웅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아니군. 역시 너처럼 금기를 깬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