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4권 2화
삐익 -
힐끔 자신의 스마트폰이 소리를 내는 걸 보던 이환웅이 말했다.
“……그새 두 명은 지구 맞은편까지 가버렸군.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테니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줘.”
나는 약 한 시간 동안 이환웅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꼼꼼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환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음…… 그래서 삼대세력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 때문에 조언을 구한다는 건가?”
“그래.”
“…….”
이환웅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응?”
이건 무슨 소리인가?
뜻밖의 말에 내가 이환웅을 쳐다보자 이환웅은 근처의 벤치에 앉았고 내게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내가 벤치에 앉자 이환웅은 몸을 편하게 벤치에 기대며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당신 주변의 상황은 아무 맥락 없이 바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고 당신이 거기에 도달하기 전에 쓸데없는 사건이 많이 터지고 있을 뿐이지.”
“그런 거 같긴 한데…….”
“마찬가지로 삼대세력과의 교섭 또한 당신에게 중요한 게 아냐. 스케일이 커서 중요한 것처럼 보이고 있을 뿐 중요하지 않지.”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그들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서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데…….”
“무슨 일이 진행되지 않는 건데? 한번 말해 봐.”
“그야…….”
나는 봉황의 의뢰에 대해 얘기하려다가 멈칫했다. 역시나 발설 금지의 제약이 있어서 이런 걸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인지 내 반응을 본 이환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지 알 것 같군. 당신에게만 적용되는 숨겨진 의뢰가 있는 거겠지?”
“…….”
“말하지 않아도 돼. 그게 만일에 발설 금지의 제약이라 하더라도 내가 멋대로 눈치챈 건 제약에 카운트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이환웅은 스마트폰을 약간 두들기면서 말을 이었다.
“망량선사는 당신이 현실을 회복하려면 일단 전륜성왕을 죽이라 했었어. 하지만 전륜성왕은 결코 당신 혼자의 힘으로는 죽일 수가 없는 상황. 그를 죽이고자 한다면 황제나 복희의 도움이 필요한 거 아닌가?”
“그렇지.”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지. 당신이 만일에 전륜성왕의 손을 잡는 다면? 전륜성왕의 힘을 빌려 복희와 황제를 쓰러뜨린 후에는 전륜성왕마저 배신해서 죽이게 되는 거야. 전륜성황을 죽이지 않는다면 현실을 회복하고미래에 있는 동료들을 만날 수가 없으니까.”
“…….”
“정의의 편을 자처한다면 이런 선택을 하기엔 모양새가 빠지지. 안 그래?”
“그렇긴 하지…….”
내가 망설이며 대답하자 이환웅은 싱긋 웃었다.
“하지만, 내가 계산한 정답은 바로 그거야. 일단 그 문제에서는 전륜성왕의 손을 잡는 게 정답이야.”
“……?!”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이봐! 배신해야 한다면서! 왜 방금 전과는 말이 달라?”
이환웅은 어깨를 으쓱했다.
“말이 다르다니? 난 배신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모양새가 빠진다고만 했을 뿐.”
“야…….”
“잘 들어봐. 판이 어떻게 굴러갈지 얘기해줄게.”
이환웅은 쑥 하고 내 근처까지 얼굴을 들이대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황제의 손을 잡는 경우부터 생각해보지. 당신은 복희와 전륜성왕을 없애고 난 후엔 무조건 황제에게 뒤통수를 맞을 거야. 그러나 황제와 황제가 거느린 삼제(三帝)를 감당할 방법이 없지. 세력도 없고 황제를 일대일로 싸워 이길 힘도 없는 데다 인과율 계산능력은 대체 어떻게 대응할 거야. 변수는 있겠지만 황제의 손을 잡는 건 제일 리스크가 높은 선택지야.”
“음.”
“그럼 복희의 손을 잡는 경우. 복희는 가장 당신에게 우호적인 존재이며 복희를 정점으로 삼황이 뭉칠 것이며 사방에 퍼진 고대신의 세력까지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그러나 복희가 각 세력의 수장을 쓰러뜨리려고 필연적으로 반고의 도끼를 사용하게 되면 변수인 반고가 출현해서 모든 게 파멸할 수 있으며, 고대신의 이상이 당신의 이상과 합치하지 않아. 이게 가장 큰 문제지.”
나는 이환웅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고대신의 이상과 내 이상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큰 문제냐.”
“역시 그건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나 보군. 정연한 질서로 가득한 세계라는 게 우리 인간이 상상하는 질서와는 크게 다를 거야. 단순히 [옛 지배자]가 패악질을 부리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필멸자들은 DNA구조부터 바뀌게 될 것이며 ‘혼돈’스러운 모든 인간의 자유(自由)는 제약당할 가능성이 높아.”
“뭐? DNA?”
“신들이 고작 필멸자의 유전자 조작 정도를 못 할 거 같아? 신력을 써서 당연히 순종적인 존재로 리모델링하지. 혼돈에 더 가까운 인간 같은 종족은 사실 고대신의 마음에 안 들거야.”
“…….”
“그뿐만 아니라 원래 혼돈에 속해 있던 모든 능력은 봉인될 것이며 물리법칙도 많이 변할 수 있지.”
이환웅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수만 년 전의 과거.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당신이 알고 있던 중화문명은 절대 성립하지 않아. 문명은 질서와 혼돈이 뒤엉킨 양태이기에 혼돈과 악이 존재치 않는다면 수많은 왕조의 대결도 생성되지 않으며 고대신에게 복종하는 하위종족인 순박한 인간들이 대대손손 마을에서 살아갈 뿐이지. 그 말은 당신의 미래 소을촌 동료들을 만나는 건 불가능해진다는 소리다.”
“……!!”
“복희도 이걸 알고 있으니까 당신에게 함부로 강권하지 못한 걸 거야. 복희가 나선다 하더라도 ‘혼돈’이 존재치 않는 상태에서 인간의 문명을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재현해줄 자신이 없으니까. 가능하다 치더라도 당신은 수만 년 동안 인간종족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시뮬레이터의 절대자가 되어 팔자에도 없는 문명통제를 시작해야 해. 머리도 안 좋은데 그런 짓을 할 자신이 있나?”
“아, 아니 그게…….”
시뮬레이터? 신? 문명통제?
대체 그게 뭐야!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이환웅이 말했다.
“그에 반해 전륜성왕의 손을 잡는 건 무척 리스크가 적고 당신이 힘을 키울 기회가 크지. 일단 전륜성왕은 칠보를 당신에게 주기로 약속한 데다 이미 자신의 힘을 꽤 당신에게 넘겨줬어. 심지어 전륜성왕의 도움을 받아 질서진영을 타도하게 되면 복희가 지니고 있던 반고의 도끼를 가질 수가 있잖아?”
“……너, 설마…….”
“전륜성왕과 손을 잡아서 황제와 복희를 쓰러뜨린 후 반고의 도끼와 칠보전륜을 이용해서 전륜성왕을 치면 완벽한 승리를 달성할 수 있어. 덤으로 삿갓무사가 갖고 있는 절연의 비밀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엄청난 이득이 아닌가? 게다가 망량선사의 의뢰도 달성하며 당신의 ‘숨겨진 조건’도 충족시킬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
나는 이환웅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져 있다가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아차렸다.
‘틀린 건 없어…….’
아니, 도리어 모든 게 정합성에 맞고 논리적이라서 지금까지 헷갈리던 걸 잡아준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효율에만 맞춰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배신을 감수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얘기가 아냐. 아무런 명분도 없이 내게 도움을 주던 자를 내가 먼저 배신한다고? 그렇게 행동하면 다른 동료들은 나를 믿기 힘들어질 거야.”
“하긴 명분이라는 것도 무척 중요한 거지. 뭐, 내 이야기는 참고 정도로만 들어두라고. 어차피 아까도 말했듯이 삼대세력과의 교섭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뭐? 그래서 중요한 게 대체 뭔데?”
“힘.”
이환웅은 씩 웃으며 말했다.
“힘을 쌓아야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딨겠어? 남과 하는 교섭보다 더 중요한 건 언제나 힘이라고.”
“그걸 누가 모르냐? 하지만 이제 내가 신력을 쌓아서 더 강해지는 건 한계가…….”
“아니, 내가 말하는 건 다른 분야의 힘이야.”
이환웅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상업의 권능]! 당신은 그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는 거다. 그래야 위에서 말했던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선택지도 많아질 것이다.”
“……!!”
상업의 권능?!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환웅에게 말했다.
“그 능력이 편하긴 편한데 황제나 복희 수준의 신들에겐 별로 의미 없는 것 같다. 기껏해야 가치를 교환하는 권능에 불과한데 이게 강대한 신들에겐…….”
“내 생각은 전혀 아닌데.”
이환웅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휙 던져주었다. 내가 얼떨결에 스마트폰을 받아들자 이환웅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백웅. 당신은 전생자로서 거래(去來)를 얼마나 많이 해 봤지? 내가 생각하기로는 최소한 수백 번이 넘을 거야. 안 그런가?”
“그야…… 그렇지.”
“힘이 부족할 때는 거래를 하면 더 커다란 이득을 얻을 수 있지. 그렇다면 모든 것을 거래할 수 있는 그 권능은 바로 전생자인 당신을 위해 특화된 권능이라고도 할 수 있어. 다만 지금까지는 당신이 그 능력을 제대로 연구하면서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게 문제인 거고.”
“연구?”
“내가 준 스마트폰을 켜 봐.”
달칵
내가 버튼을 눌러서 스마트폰을 켜자, 거기에는 현란한 막대기와 선이 그려져 있는 도형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또한 숫자 또한 가득했는데, 나는 이게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이 화면은 뭔데?”
그러자 이환웅이 흠칫하고 놀랐다.
“현대지식을 사마령한테 배웠다면서? 그거 몰라?”
“……모르겠어.”
“음…… 그건 주식(株式)이라는 거다. 그 막대기는 주식의 차트라는 건데 들어는 봤겠지.”
“아!”
그러고 보니 주식이라는 게 있다고 들은 거 같기도 하다. 나는 다른 일이 더 바빠서 그런 게 있다고만 듣고 넘어갔기에 구체적으로 뭔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내가 주식이라는 걸 신기해하고 있을 때 이환웅이 말했다.
“전생자한테 있어서 주식 같은 건 사실 별 의미가 없겠지. 돈도 별 의미가 없는데 주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지만 당신은 지금부터 주식의 개념을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왜?”
“흐흐…… 모르겠어?”
이환웅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그 [상업의 권능]에서 상(商)이란 모든 상거래의 개념을 포함하는 거야. 그건 달리 말하면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해서 돈을 버는 온라인 게임같은 방식으로 능력의 에센스를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상거래 시스템 또한 도입해서 능력을 진화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거지!”
“……?”
“2차 재화 또한 써먹기에 따라서는 도리어 유익하게 될 수도 있고.”
이 새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나도 못 알아들을 지경이었기에 멍하니 이환웅의 말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얘기를 들으면서 당신이 그동안 신들 사이에서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는 별 관심도 없었어. 그 능력…… 그 능력만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이환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신은 황제 공손헌원의 인과율 계산능력에 못지않은 능력을 얻게 될 거야!”
“……!!”
그 정도냐?!
나는 이환웅의 말에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다. 설마 상업의 권능이 그렇게나 대단한 힘이 있었다니? 사실 브라흐마에게 받은 창조의 기술인 트리무르티보다 훨씬 하급이라고 생각했기에 내 놀라움은 더욱 컸다.
이환웅이 잠시 후 말했다.
“그 전에 일단 나를 데리고 현실세계로 다시 가 줘.”
“엉? 이광과 심수력을 만나보고 가야지.”
“한 가지만 확인하면 되니까 오래 안 걸릴 거야. 어차피 그 인간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올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는 데다 다시 돌아올 테니까 일단 가자고.”
“음…… 알았다.”
파앗
나는 이환웅을 데리고 현실세계로 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 오자마자 이환웅이 말했다.
“소녀한테 가자.”
나와 이환웅은 소녀에게 찾아갔고, 탁록촌에 있던 소녀는 우리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다.
“오셨나요? 그쪽은 처음 보시는 분이네요.”
“이환웅이오.”
이환웅은 소녀의 인사를 대충 받으면서 내게 말했다.
“백웅. 상업의 권능으로 대귀(大龜)라는 걸 불러 봐.”
“나와라, 대귀!!”
파앗
잠시 후 상업의 권능을 다스리는 대귀가 거북이 정령의 모습으로 출현했다.
[부르셨습니까.]
“백웅. 내게 대귀에게 질문할 권리를 다오.”
“알았어. 대귀, 지금부터 이환웅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라.”
[알겠습니다.]
이환웅은 대귀의 모습을 확인한 후 질문했다.
“대귀. 전신(錢神)으로 승급하기 위한 2차 재화라는 그 동전이 구체적으로 몇 개가 있어야 전신승급이 가능한 거냐?”
[동전이 총 99999999999개 모이게 된다면 그때 허공록에게 공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전신지재(錢神之財)를 1개 받게 되며, 전신지재가 10개 모이면 전신이 됩니다.]
“……새, 생각보다 더 빡센 조건이군.”
뭔가 질린 듯 중얼거린 이환웅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창힐이 능력승급을 포기한 이유를 알겠어. 허공록과 연결된 권능이라서 1급 상인의 권능을 받기 위해선 사실상 우주에 존재하는 절반 이상의 영적 존재를 사냥해야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재화를 요구하고 있는 거야”
“미, 미친 거 아닌가.”
나 또한 어이가 없었다. 지금은 신들이 전쟁하는 시대라서 비교적 동전을 모으기 쉬운데도 전신지재 하나를 얻기에는 턱없이 동전이 부족했다. 뭐가 이렇게 빡세단 말인가?
그러자 이환웅이 씩 웃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 복사 치트가 있다구.”
“엉?”
“소녀여.”
이환웅이 소녀에게 말했다.
“백웅의 2차 재화인 동전을 [무한]으로 설정해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