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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71화 (1,470/1,615)

전생검신 83권 19화

나는 소녀의 말을 듣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반고가 부활한다고?”

[질서]의 거인이자 외신, 반고! 그 존재가 바로 복희와 여와를 창조했으며 현재는 봉인되어 있는 상태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반고가 부활한다는 건 생전 처음 듣는 얘기였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고, 내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 과정을 모르지만 유소의 능력으로 본 결과니) 사실일 거예요.”

“…….”

나는 침묵한 채 곰곰이 생각했다.

‘반고가 부활한다고? 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신이 부활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전혀 단서도 없었고 그럴 계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라는 건 변화무쌍하여 감히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저 황당한 얘기를 마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유소의 예지능력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 행동의 결과로 반고가 부활한다 치지. 그런데 너와 유소는 그걸 왜 막으려고 했던 거냐?”

“반고의 부활은 그 자체로 파멸이라고 했어요. 우선 제가 봤던 광경대로라면, 반고가 부활하는 순간 우주가 청소되어 버려요.”

“……청소?”

“우으…… 설명하기가 힘든데, 모든 게 깨끗해져요. 저는 그 광경을 유소의 능력을 빌려서 봤어요.”

뭔가 허둥대던 소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반고와 함께 봉인되어 있던 ‘무언가’가 풀려나게 됩니다. 저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유소는 그거야말로 진짜 절망이라고 했어요.”

“…….”

“전혀 못 믿는 눈빛이네요…….”

소녀가 축 늘어진 듯했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너 같으면 믿겠냐고. 네 말대로라면 유소 놈은 탁록촌에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으면서 진실을 숨기고 나를 기만했다는 소리 아냐?”

“그, 그렇겠죠.”

“너도 유소의 뜻에 동조해서 황제를 봉인하러 나선 거잖아. 지금도 은근슬쩍 나를 기만해서 조종하려 들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내가 소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움찔하더니 말했다.

“그건 아니에요. 저와 달리 유소는…….”

“유소는 뭐?”

“……인간으로 평범하게 살다 죽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저는 유소가 어딨는지도 몰라요.”

“……?”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유소는 너한테 황제의 봉인을 해제하는 임무를 맡긴 뒤에 연락을 끊었단 말이냐?”

유소는 무척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황제는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고 해서 전 유소의 연락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그전에 당신이 먼저 찾아와준 거고요.”

“……정말 유소가 어딨는지 모르냐?”

“네!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소녀가 약간 붉게 상기된 얼굴로 뜨겁게 말하는 걸 보자 나는 의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름까지 걸고 맹세하는 데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인간으로 평범하게 살다 죽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유소의 목적은 뭐냐?”

“유소는 신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신? 아까 너희는 혼돈의 재능이 너무 강해서 불사체가 될 수 없다고 했잖아.”

“그래요. 하지만 유소는 자기만의 방법이 따로 있다고 했어요.”

“그걸 너하고는 공유 안 해줬고?”

“전 그다지 불로불사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

나는 단호한 소녀의 말에 기가 막혀서 말했다.

“……너희, 영혼이 같은 동일인물이라면서? 장래희망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어도 되는 거냐?”

“태어나기 전엔 그랬지만 태어난 후에는 서로 생각하는 게 달라졌으니 이상할 건 없잖아요. 저는 차라리 힘을 버리고 윤회전생에 섞여서 살고 싶어요.”

“그렇긴 한데…….”

나는 말을 흐리면서 생각을 거듭했다.

‘그 말대로라면 유소는 나를 이용해서 신이 되려고 하는 모종의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던 거군.’

그 과정에 소녀를 이용했고 모든 걸 알려주지는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나는 상황을 대충 이해한 후 소녀에게 말했다.

“알았어. 다 좋은데 그래서 넌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계속 여기에서 황제와 여와가 으르렁거리게끔 하고 있을 생각이냐고.”

“……유소는 이런 상황이 오면 제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요. 이 이후의 미래는 알려주지 않았죠.”

소녀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절 데려가 주세요! 제 능력으로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 제가 두번다시 그 태초의 혼돈으로 돌아가지 않게 도와주세요.”

“음……!! 날 따라가겠다고?”

“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것조차도 유소의 함정이 아닐까?’

소녀 본인은 악의가 없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계책을 잘 짜는 자라면 상대가 의식하지도 못하게 조종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게끔 할 수 있다. 유소는 미래를 볼 수 있으니 세계 최고의 책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고, 소녀를 섣불리 데려가는 게 유소의 함정에 걸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소녀의 손을 굳게 맞잡으며 말했다.

“좋아! 동료가 되겠다면 환영이다.”

아무리 유소가 함정을 판다고 하더라도 내 전생능력까지 넘어설 정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소녀라고 하는 강력한 능력자를 동료로 삼는 이득을 완전히 무시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소녀를 이대로 여기에 놔두었다가는 전쟁의 불씨가 계속 지펴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내가 데려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소녀는 내 말에 크게 기쁜 표정을 짓더니 눈물을 살짝 훔쳤다.

“최선을 다할게요.”

나는 이윽고 걱정스러워져서 말했다.

“그런데…… 황제는 내 거취를 맡긴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사실 네 신병을 지금 데리고 있는 건 여와잖아? 황제가 아니라 여와의 허락을 받아야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거 아니냐?”

황제가 막아선다면 그것도 무서운 일이겠지만 황제가 아닌 여와가 나를 막아서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내 신력이 높은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삼황의 일좌인 여와가 진심을 다한다면 지금 내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소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 있어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럼 나가 볼까요?”

“응? 그…… 그래.”

정말 자신 있는 거냐?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솔직히 어떤 방법을 써야 성난 여와에게서 후환 없이 탈출할 수 있을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소녀의 말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영문모를 자신감이 대단했기에 왠지 믿음이 가기도 했다.

소녀는 이윽고 자신의 섬섬옥수를 들어서 전방으로 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얍!”

츠츠츠츠!!

이윽고 소녀와 내가 있던 아공간에 총천연색의 균열이 쫘악하고 벌어지더니 순식간에 아까 있던 여와의 옥좌 앞으로 시공간이 변해 있었다.

“……!!”

뭐, 뭐야?

나는 소녀를 쳐다보았다.

“뭘 한 거야?”

소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아공간에 있던 [균열]을 [무한]으로 만들었어요. 그럼 균열이 무한대가 되어서 자동으로 아공간이 붕괴되는 거예요.”

“어?! 그, 그런 식으로 쓰는 능력이냐?”

“네. 황제의 봉인도 비슷한 방식으로 풀었어요. 그 경우는 균열보다는 [모순]을 무한으로 만들었지만.”

“…….”

나는 소녀의 능력이 어떤 식으로 발동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모든 것에 존재하는 균열이나 모순…… 어느 쪽이든 간에 아주 미세한 약점을 무한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건가.’

동시에 나는 소녀의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고는 섬찟해졌다.

‘……이런 식이라면…… 그 어떤 결계나 봉인도 소녀를 막을 수가 없어!!’

세상에 균열이나 모순이 존재치 않는 완전한 존재가 아닌 이상 막을 수 없는 초상능력!

어떤 식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다!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여와의 옥좌 위에 여와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파앗

절세미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여와는 아미를 찡그리며 말했다.

“소녀야. 여가 너에게 섭섭하게 대하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 인간의 유혹에 빠져 세상에 나가려 하는 것이냐?”

나는 여와의 말투에 약간 당황했다.

‘……응? 여와가 일개 필멸자한테 저렇게 다소곳이 이야기한다고?!’

미래의 여와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진짜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소녀가 약간 망설이더니 입을 연 것이다.

“미안해요, 언니.”

“……?!”

어, 언니?!

신선도 맨입으로 잡아먹고 거신족도 찢어죽이며 오제조차도 눈치를 보는 천하의 여와에게 언니라고?!

서, 설마 그때 소녀가 ‘언니’라고 불렀던 게…… 여와였단 말인가!

“얘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지 않느냐. 후우…….”

더 놀라운 것은 여와 본인도 그 칭호를 듣더니 그저 납득한 듯 대꾸한 것이었다. 온정적인 한숨을 쉰 여와가 곱지 못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네놈이 소녀를 못된 세 치 혀로 꾀어낸 것이 아닌가?”

“음?! 딱히 내가 꼬신 건…… 어어음.”

내가 뜻밖의 상황 때문에 당황해서 약간 혀가 꼬일 때 소녀가 끼어들었다.

“백웅 님은 황제에게서 제 거취를 약속받고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를 나가게 되면 언니가 황제 패거리와 싸우실 이유는 없어요.”

그러자 여와가 의외인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이냐? 저놈이 대체 뭐길래 황제가 그런 약속까지 해 준 거지?”

“백웅 님은 이 세상을 구해주실 분이에요.”

“후후후…… 하하하하…….”

카랑카랑한 웃음을 떨친 여와는 이윽고 뱀과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여는 믿을 수 없다! 소녀의 존재는 천지사해 힘의 균형을 부숴 버릴 터,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르는 놈에게 줄 수는 없으니…… 네놈은 네 힘을 증명해 보거라!!”

쿠구구구……!!

이윽고 여와의 형태가 서왕모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왕모로 본격적으로 변신하고 나면 사실상 여와 본체에게서 무한정 힘을 받는 것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엄청나게 긴장했고, 과연 지금의 내가 서왕모 본체를 이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제…… 제길. 도저히 계산이 안 되네! 그동안 많이 강해지긴 했지만, 삼황 그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최강급 화신을 상대로 과연…….’

어떻게든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는 여기서 소녀를 데리고 탈출하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소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가볍게 마주쳤다.

“얍!”

따악

바로 다음 순간, 서왕모의 거대한 몸뚱이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게 보였다.

‘아니…… 이건…… 멀어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서왕모 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풍경까지 함께 바뀌고 있었기에 나는 서왕모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어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와 소녀가 서 있는 주변은 전혀 바뀌지 않았기에 마치 공간이 엿가락처럼 낭창낭창 휘어 버린 시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기묘한 상황에 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거리]를 [무한]으로 만들었어요.”

“…….”

그런 것도 되냐고!

“강력한 신이라면 혼돈의 힘을 응축해서 제 힘을 무효화시킬 수 있으니 빨리 이 틈에 달아나요.”

“알았다.”

나는 곧장 소녀의 손을 잡고 신력을 써서 이 궁을 벗어나려 했다.

투퉁! 퉁!!

‘윽! 무슨 놈의 결계가 이렇게 많아?!’

눈에 안 보이는 차원결계가 하도 많아서 나는 몇 번이나 순간이동을 하다가 막혀서 벽에 부딪혔다. 나는 그때마다 아픔을 참으며 일어나서 일일이 결계를 힘으로 부쉈고,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던 끝에 나는 마침내 서왕모의 궁을 벗어나서 외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러나 밖에 도착한 순간 거기에는 뜻밖의 존재가 서 있었다.

[나는 납득하지 못한다.]

“제곡.”

내려가는 계단에서 나를 막아서고 있는 것은 바로 제곡의 화신이었다. 제관을 쓰고 있던 제곡의 화신은 새하얀 안광을 흩날리며 중얼거렸다.

[요순이 소멸한 이유, 너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해주기 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못하리라.]

“……제길!! 황제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닥쳐라.]

제곡의 화신은 그와 동시에 양팔을 뻗으며 자신의 권능을 발현했다.

함흑(咸黑) 소환!

촤촤촥

마치 나와 소녀를 둘러싸듯 아홉 명의 기괴한 마령(魔靈)이 소환되었는데, 각기 전혀 인간계의 생물이라 볼 수 없는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마령들은 소환되자마자 저마다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내 몸을 얽어매기 시작했다.

키이이이

뿌으아아아아

‘이, 이건 소리가 아니라…… 힘 그 자체야!’

이렇게 막강하다면 틀림없는 삼황오제의 전용술법이다!

아홉 마령이 불러일으키는 뒤틀린 혼돈의 마력이 마구 소용돌이 치면서 몇 겹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계의 음공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고 대라신선이라 해도 순식간에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력을 뿜어내어 최대한 버티고 있자 제곡은 자신의 팔을 뻗었고, 그 팔에서 촉수덩어리가 엄청난 기세로 분출되어 나를 붙잡으려 했다.

추와아아악

“젠장!!”

꽈앙

퍼퍼펑

나는 주먹을 내뻗어서 단숨에 제곡의 공격을 분쇄했는데 내 주먹공격의 위력에 촉수들이 단숨에 터져 버린 제곡은 깜짝 놀란 듯했다.

[이렇게 강하다고……? 믿을 수 없다.]

“본체도 아닌 화신 따위로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자신만만하게 외치고는 그대로 제곡을 마무리하려고 생각했다.

“와라, 아그니!!”

화르륵

아그니의 염총이 내 손에 들리자 나는 그대로 힘을 불어넣어서 제곡을 쏴 버렸다.

타앙!!

투확……!!

염총의 궤적은 그대로 제곡의 화신의 심장과 어깨 부위를 한 번에 날려 버렸고, 제곡의 화신은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크으으…… 신의 힘을 담은 무기라니…….]

제곡의 화신은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좋다…… 네놈을 너무 얕본 걸 인정하지…… 이제부터는 인과율의 소모를 감수하고 본체로 상대해주마!!]

“……!!”

젠장!! 본체까지 나오면 여와가 추격해 오기 전에 달아날 수가 없는데!

츠아아아

[가만두지 않겠다!!]

“제길!”

그러나 내가 초조해하건 말건 제곡의 화신은 여전히 아홉 마령을 유지하며 분해되었고, 분해된 몸에서 강력한 마력의 힘이 느껴지며 거대한 존재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순간이동으로 튀고 싶었지만 제곡이 이미 이 근처에 강력한 결계를 많이 깔아놔서 단시간에 돌파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제곡의 본체와 싸워서 이겨야 하는 건가……!!’

소녀를 데려가는 게 이렇게 힘들었을 줄이야!

내가 나름대로 각오를 하며 이를 악물고 있을 때였다.

소녀가 기회라는 듯 앞으로 나서며 제곡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얍!!”

두웅……!!

그 순간 제곡에게서 휘몰아치던 마력의 흐름이 완전히 정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 강렬한 어둠을 분출하던 아홉 마령까지도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버린 듯했다.

“엥?”

내가 놀라서 소녀를 쳐다보자, 소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제 됐어요. 가요!”

“뭘 한 거냐?”

“[소환시간]을 [무한]으로 했어요!”

“……?!”

“보통 신들이 이런 빈틈을 잘 안 내어주는 데 백웅 님 덕분이네요!”

그, 그 말은 제곡은 누가 와서 도와주기 전까지는 화신에게 본체의 힘이 이어지는 시간이 무한이 되어 버려서 정지당한 거나 마찬가지란 건가?!

‘제곡은 이제 저 화신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러면 화신에게 넣은 만큼의 신력을 영구적으로 잃게 되는 건가…….’

설마 이런 식으로 신을 무력화 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때 소녀가 나를 재촉했다.

“빨리 가요. 그런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실 건가요?”

“일단은…… 탁록촌!!”

파앗

나는 천신만고 끝에 서왕모의 궁에서 탁록촌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탁록촌에 도착하자 나는 예상했던 광경이 펼쳐진 걸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길…….”

탁록촌이 있던 장소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으며 산이 몇 개나 사라져 있었고 거대한 힘이 부딪힌 상흔이 대지에 남아 있었다. 나는 명계에 청양이 왔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났다.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당신이 갑자기 유망을 만난다고 사라진 후 1년이나 지났고…… 탁록촌에 쳐들어온 전례 없이 강력한 마족(魔族)과 싸우던 도중 죽게 되었습니다.]

[아마 무사할 것입니다. 거신족이 지원 와 줬으니까…….]

그 ‘전례없이 강력한 마족’과 싸운 결과가 눈앞의 처참한 폐허일 것이다. 나는 그나마 탁록촌 사람들이 거신족이 지원와 준 덕에 살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없어서 이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내가 황망히 탁록촌의 폐허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주군!!”

나는 뒤를 돌아보고는 외쳤다.

“건달파인가?”

건달파는 곧장 내 앞에 부복하며 말했다.

“무사하셨군요. 이곳으로 순찰 와보기를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하다. 내가 실수해서 마족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어.”

“아닙니다. 청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나는 그 말에 반색하며 말했다.

“청양이 말해줬다고?”

“네. 주군께서 부활시켜주셔서 멀쩡히 살아난 후 명계에서 주군이 겪고 계신 일을 모두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가.”

“함께 가시지요. 이곳은 마족에게 알려져서 다른 장소에 새로운 탁록촌을 만들었습니다.”

슈욱

나는 건달파와 함께 새로운 탁록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알고 있던 탁록촌 사람들이 모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계에서 돌아오셨군!! 다행일세.”

제일 기쁘게 나를 맞이한 것은 다름아닌 수보리였다. 수보리 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도 다치거나 죽은 자 없이 멀쩡했기에 나는 내심 안도하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오.”

“아닐세. 그보다 거기 그 여인은 누구지?”

“소녀라고 하오.”

“……!!”

수보리는 깜짝 놀란 듯했다. 수보리 뿐만 아니라 전후사정을 아는 자들은 다들 놀란 듯 내 근처에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자초지종을 한참 동안 설명해 주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는 말했다.

“……그런데 청양이 안 보이는군. 녀석은 어디 갔소?”

“청양은 유망을 따라갔네.”

“유망을?”

수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에게 신의 재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망에게 제자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지. 유망 또한 자네를 죽였다는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를 제자로 받아주었어.”

“음, 그런가.”

“먼 곳으로 가버린 것 같아서 당분간 유망과 청양을 찾긴 힘들게야.”

그렇게 말한 수보리는 이윽고 조심스레 말했다.

“백웅 자네의 설명 덕에 상황은 다 이해했네.”

“이해했으면 다행이오.”

“그런데 그러면 소녀의 힘을 이용해서 할 일이 간단하지 않나?”

“응?”

수보리는 이윽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의 신력을 무한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그럼 모든 게 해결되겠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소녀에게로 쏠렸다.

소녀는 그 시선을 받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돼요.”

“왜 안 된다는 거지?”

“제 능력에도 한계는 있어요. 능력을 부여해준 자가 허용할 수 없는 개념은 능력으로 구현화 할 수 없죠.”

소녀는 맑은 눈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전 우주에서 [신력]을 [무한]히 보유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 그 존엄을 훼손할 수 없기에 그런 식으로는 처음부터 능력을 발동할 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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