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3권 15화
전륜성왕의 말을 듣자 내게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부처가…… 실제로 있었구나.’
실재하는 신격이라기보다는 우주적인 관념이자 법칙! 그런 형태의 신이 존재한다는 건 지금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신기해져서 전륜성왕에게 물었다.
“그…… 그렇다면 부처를 믿는다면 [옛 지배자]를 믿었을 때 힘을 내려주는 것처럼 악에 대항할 힘을 주는 것입니까?”
약간의 기대 섞인 물음에 전륜성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존재가 인격신(人格神)은 아니다. 그저 법리(法理)일 뿐. 그러므로 후세의 인간들이 불교라 하여 부처를 신앙한다 한들 그 자체가 힘을 내려줄 일은 절대로 없다.”
“아니, 인격신이 아니라 해도 그만한 힘을 갖고 있는데 왜…….”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마. 만일 과학자라 불리는 자들이 물리법칙을 신으로 믿고 숭앙한다면 물리법칙이 과학자들에게 권능을 주는가?”
“…….”
그, 그건 아닌데…….
내가 할 말을 잃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부처를 믿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법칙과 이치 그 자체를 믿는다는 것. 그 흐름에 순응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큰 흐름 속에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삶의 자세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승(高僧)이라 하는 자들은 나름대로 법력(法力)을 지니고 요괴를 퇴치하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내 말에 전륜성왕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들이 얻은 법력이란 수보리가 얻은 힘과 유사하다.”
“네? 그 말은…….”
“오랜 정신수행으로 [큰 굴레]의 흐름 자체를 인지하여 흐름에서 새어 나온 미세한 동력(動力)을 인간의 정념(精念)으로 소화한 것이지. 그 힘을 깊은 수준으로 연마하게 되면 수보리처럼 [큰 굴레] 자체에 계약을 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혼돈도 질서도 아닌, 어찌 보면 진정한 무색(無色)이라 할 수 있는 힘이지.”
“으음……!! 그렇다면 수보리야 말로 법력의 정점에 이른 존재란 말입니까?”
나는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큰 굴레에 귀의하여 [가면]의 이름을 부처에게로 옮긴 존재보다 더 대단한 경우는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전륜성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코 아니다.”
“아니라고요?”
“수보리는 재능있는 자였으나 [가면]의 본질 때문에 그 법리에게 다가가는 데 한계가 존재했다. 아마 본인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터.”
“…….”
“진실로 부처라는 법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공(空)을 표리일체로 승화시킨 존재가 있다면, 훨씬 위대한 격을 얻게 되리라. 아마 우주의 균형을 뒤바꿀 정도의 존재가 될 터.”
그렇게 대꾸한 전륜성왕이 말을 이었다.
“결론적으로 부처를 믿는 자는 스스로를 믿는 것과 같으니, 피안(彼岸) 또한 자기 자신의 소우주에 있으리라.”
뭔가 심오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을 곱씹다가 앗 하고 정신을 차리고는 전륜성왕에게 말했다.
“아, 아무튼 전륜성왕 님은 부처의 영향으로 착해졌다는 말씀이시군요.”
“간단히 말하면 그리되겠군.”
“근데 그것도 좀 이상한 얘기 아닙니까? 큰 굴레 그 자체인 법리라면 선악이 따로 없는 중용이라 굳이 착한 행위를 권장할 이유도 없을 텐데 왜 사람을 착하게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백웅이여. 이 우주를 주름잡는 강력한 사신(邪神)들은 대개 사악하며 혼돈의 성향을 띄고 있다는 걸 잊었는가?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당연히 중용을 추구하는 자는 그 반대편에 힘을 실어주게 되어 있다.”
“아……!!”
“반대로 질서의 힘이 심히 강대했다면 부처의 법리는 도리어 혼돈을 편들어주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고 의심되는 사건이 있고.”
“네?”
“…….”
왠지 말을 아끼는 듯하던 전륜성왕이 입을 열었다.
“우주의 초기에 직접 세계에 법리가 간섭하던 아주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그 부처가 원하던 중용을 추구할 임무는 바로 본좌 전륜성왕이 넘겨받았다. 그리고 본좌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 우주를 지배하는 대신(大神)들이 몰려오는 걸 느끼고 찾아와서 명계를 창설했지. 신들의 틈바구니에서 필멸자들이 숨을 돌릴 공간을 만들어주며 동시에 혼돈과 질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네에…….”
“그렇다면 백웅이여. 본좌가 가장 쉽게 혼돈과 질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응?
뜻밖의 질문에 나는 언뜻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했다.
“어…… 황제와 복희 등 강력한 신들이 함부로 싸우지 않게 근처에서 중재해주는 거겠죠?”
“아니다.”
“네? 그럼…….”
스릉!
위압적인 칼 소리를 내며 장도를 천천히 뽑던 전륜성왕이 눈을 빛냈다.
“절연의 권능을 써서 모조리 다 죽여 버리는 것이다. 혼돈이고, 질서고 할 것 없이 이 지구에 와 있는 모든 신격들을…….”
“……?!”
“그리하면 쉽게 중용을 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들에게 괴롭힘당하는 필멸자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아마도 사대신수 봉황 또한 나와 생각하는 게 비슷하겠지.”
생각지도 못했던 해결책!
하지만 너무나도 과격하며 폭력적이었기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랐다. 그러고는 잠시 후 당황하며 대꾸했다.
“그, 그렇게 하면 공공의 적이 되어서 합공을 당할 겁니다. 그리되면 아무리 전륜성왕께서 강하다 해도…….”
“그래. 바로 그게 문제이다.”
철컥
칼집에 다시 장도를 집어넣은 전륜성왕의 말이 이어졌다.
“본좌가 전신전령을 다한다면 황제, 혹은 복희 중 한 명과 양패구상할 수 있다. 절연의 권능을 전력으로 쏟아부어 그자와 함께 영겁토록 소멸하는 것이지. 허나 하나를 해치운다면 다른 하나가 남게 되니, 결국 혼돈과 질서의 균형은 부숴지는 것이다.”
“……!!”
나는 전륜성왕의 말을 듣고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마음만 먹으면 혼돈과 질서, 양측의 대장 중 하나와 함께 소멸될 수 있다니……!!’
이 정도로 강대한 신은 미래세계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어째서 이 시대에서 혼돈과 질서의 모든 신격들이 전륜성왕을 알게 모르게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말했다.
“그리고 백웅이여. 본좌가 절연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도 복희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네?”
“그들뿐만이 아니다. 본좌의 직계인 염라대왕을 제외한 이 우주의 그 누구도 절연의 권능과 그 실체를 모르고 있지. 이는 본좌의 비장의 한 수이며 최악의 상황에 그들과 공멸하기 위한 무기인 것이다.”
“…….”
나는 그 말을 듣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당황했다.
“그, 그런 비장의 한 수를 제게 말해주시다니……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전륜성왕이 말하는 바는 의미심장했다. 절연의 권능 자체가 비밀이라는 사실은, 달리 말하면 이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전륜성왕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는 뜻! 전륜성왕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늘어나겠지만, 비장의 한 수가 밝혀지는 건 상대방이 거기에 대비할 전략을 짤 수 있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손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륜성왕은 훗 하고 웃었다.
“이 자리에서 나가서 복희에게 바로 까발릴 텐가?”
“아뇨 절대 그러지는…….”
“왜 그러지 않는 거지? 복희를 그대의 아군으로 생각지 않는 것인가.”
“그건…….”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난 복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복희가 지금까지 나를 적대하거나 섭섭하게 대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전륜성왕의 비밀을 복희에게 말해주는 걸 분명히 망설이고 있었다. 나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말했다.
“본좌가 그대에게 절연의 비밀을 알려주며 호의를 베푸는 것은 바로 그대의 그런 점 때문이다.”
“그런 점이라니요?”
“고민하는 존재라는 것.”
“…….”
“선과 악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하며 계속 기준을 바꿔나갈 수 있는 자. 중용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자가 아니면 안 된다. 너무나 사악하여 이기적인 잣대로만 살아가는 자이거나 너무나 개인의 선을 추구하여 상대를 용납지 않는 존재는 중용에 걸맞지 않다.”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힘없이 대꾸했다.
“그건 제가 딱히 특이한 게 아니라…… 제가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서입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다 그렇다고요.”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왜…….”
“선악이 모호한 경계선…… 이기적인 듯하면서도 내면의 선에 때때로 귀를 기울이는 모순…… 바로 인간의 그런 점이야말로 [아버지]에게 선택받은 이유이기도 하니까…….”
“…….”
내가 침묵하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허나 그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중용이란 그 어떠한 선과 악의 행로보다 더욱 힘겨운 가시밭길임을…… 본좌는 그대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너무나 괴로울 걸 알기에 그 길에 도움을 주고자 할 뿐이다. 그대는 모든 선과 악의 간섭을 이겨내야 하니까.”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말했다.
“……그 말은…… 절연의 권능을 얻으려면 설마.”
“그렇다.”
전륜성왕은 냉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 절연의 권능에 대항할 방법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혼돈과 질서의 신을 베어 버릴 수 있다는 맹세를 여기서 하라!! 이는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이니 어길 수 없다!!”
“……!!”
“그 정도 각오가 없다면 나는 전수해 줄 수 없노라.”
“그 말은 황제도 복희도 베어 버리란 말입니까?”
내가 설마 하는 마음에 반문하자 전륜성왕은 뭘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바로 그것이다.”
“…….”
“봉황에게서 받은 의뢰 또한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겠군. 두 개의 목 중 하나만 가져가도 되겠지.”
이, 이런 일이…….
‘삿갓무사 놈의 공격에 방어할 수법을 터득하려면 황제나 복희를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너무나 어려운 제안!
이걸 받아들인다면 맹세에 따라 나는 황제와 복희를 공격해야 하는데, 솔직히 지금 아무리 신력을 최대까지 끌어 쓴다 하더라도 둘 중 하나도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어찌 보면 전륜성왕과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는 게 차라리 쉬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절연의 권능에 대항할 방법 같은 건 우주에서 오로지 전륜성왕 한 명 만이 전수 해줄 수 있는 기술로 보였다. 만일에 내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부터는 [큰 굴레]의 과거로 되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두 번 다시 배울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륜성왕은 내게 이런 제안을 할 작정이었어.’
나는 그제서야 전륜성왕이 단순히 내게 호의만 베푸는 사람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전생자인 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 혼돈과 질서를 모조리 쓸어 버리고 중용을 실천하겠다는 뜻! 결과적으로 모든 신격을 쓸어 버릴 수 있다면 전륜성왕은 자기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아, 아시다시피 저는 황제든 복희든 아직 일대일로 이길 실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걸 아시면서…….”
“누가 일 대 일이라 했는가?”
“네?”
“당연히 그대를 도와 본좌가 직접 참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와 본좌가 2대1로 황제나 복희를 합공 하는 것이지.”
“……!! 하, 하지만 그들이 혼자 있을 상황이 생길까요? 황제는 나머지 사제에게 늘 보호받고 있는 데다 만신전에서 거의 나오지도 않고, 복희는 마음만 먹으면 신술과 고유능력으로 언제든 상대를 추방시켜 버리거나 도주할 수 있는데…….”
“그건 본좌에게 방법이 있다. 그대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은 비책(秘策)이 있지.”
“…….”
나는 전륜성왕의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는 절대 허세 같은 걸 부릴 존재가 아니었다.
“자, 어찌하겠는가.”
나는 멍하니 전륜성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리 뒤편을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전륜성왕은…… 내가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전생횟수가 쌓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기회를 잡아채려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에 이리도 대담한 제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전생자로 살아온 기억을 보면 쉽사리 내 성향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도 전륜성왕의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오로지 전륜성왕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기술!
단 한 번뿐인 기회!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나는 한동안 말을 잊고 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예전에는 다른 자들의 말을 들어보고 와서 선택하라고 했으면서 어찌하여 말을 바꾸신 겁니까? 이렇게 강요하시는 건 전해 했던 말과 다릅니다.”
“본디 그럴 생각이었지. 나중에 제안하더라도 충분히 그대가 받아들이게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대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계기로 마음대로 죽어 나가는 걸 보니, 자칫했다가는 이런 제안을 하기도 전에 황제나 복희에게 걸려서 죽느니만 못한 꼴을 당하리라는 생각이 들더군.”
“…….”
“황제에게 봉인 당한다면 본좌도 손을 쓰기 힘든 게 사실.”
전륜성왕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본좌는 그대의 기행(奇行)으로 인하여 불안해졌다. 이 강요 또한 그대 행동의 결과인 것이지.”
제, 제기랄…… 역시 유망과 싸우다가 죽는 게 잘못된 거였나?
나는 또 한 번 후회되었지만,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때의 행동에 계속 후회만 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공평하지 않습니다!”
흠칫
내 말에 전륜성왕은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이윽고 반문했다.
“공평하지 않다니?”
“아무리 그래도 황제 공손헌원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이런 결정을 한다는 건 제가 중용을 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겁니다. 그건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니, 전륜성왕 님의 정의에 위배 되는 게 아닙니까?”
“…….”
“적어도 제가 황제의 연회에 참가해서 그의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전륜성왕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대는 그자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있는 데다 언젠가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가? 설마 그대의 대웅제국을 파멸시킨 황제 공손헌원의 대의에 공감할 생각도 있단 말인가?”
왔다!
나는 흐름을 바꿀 기회가 온 것을 깨닫고는 거침없이 말했다.
“네!! 그게 바로 중용 아닙니까?”
“……!!”
“28회차의 모든 동료들은 제게 모든 의지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대의를 따른다면 아무리 황제 공손헌원이 개새끼라 할지라도 놈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도 있습니다!”
“이 자리를 모면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고?”
나는 약간 찔렸지만 도리어 더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게 친다면 마음에도 없는 선택을 하게 강요하는 전륜성왕께서는 중용이 맞습니까?”
“…….”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전륜성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짱을 풀더니 말했다.
“기억에서 보긴 했지만 직접 겪으니 상당한 언변이군. 전생자의 세 치 혀는 그 어떤 지혜자의 언변보다 교활하구나.”
아니,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데!
내가 내심 억울해할 때 전륜성왕이 말했다.
“좋다. 그대의 원대로 황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오도록 하라. 대신에 이야기를 듣고 나면 반드시 본좌가 제시한 선택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맹세를 하도록.”
나는 맹세를 하기 싫었지만 아무래도 맹세를 안 하면 힘으로라도 전륜성왕이 나를 깔아뭉갤 분위기였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합니다. 다만 복희의 얘기 또한 듣고 싶습니다.”
“그러도록. 어디 듣고 싶은 만큼 들어보거라.”
전륜성왕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결국 그대는 이쪽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을 귀찮게 하는군…….”
***
파앗!!
다음 순간, 나는 갑자기 내가 있는 장소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긴?’
마치 별세계와 같은 아름다운 풍광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서왕모의 궁…….”
내가 중얼거리는 바로 그때 웅웅거리는 신어(神語)가 들려왔다.
[겁도 없는 놈이군.]
나는 말이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대한 궁전 건물과 함께, 그 앞에 서 있는 다섯 명의 존재가 보였다.
쿠구구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력이 전혀 나에 못지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
틀림없다.
화신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저자들은……!!
이윽고 얼마 전에 보았던 전욱의 화신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연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올 줄은 몰랐구나.]
“…….”
눈앞에 있는 것은 바로 오제(五帝)의 화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