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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65화 (1,464/1,615)

전생검신 83권 13화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전륜성왕의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외신이 되면 인과율의 업보가 문제라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전륜성왕은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인과율이 뭐지?”

“그야…… 세상을 지배하는 위대한 법칙…….”

“그 이전에, 인과율이란 이유(因)가 있으니 결과(果)가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절대적인 원리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요.”

“즉 결과가 존재하는 건 ‘무엇이든 간에’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 반대라면 이유가 존재하면 어떻게든 결과가 존재하게 된다. 이는 상보(相補)이며 필연(必然).”

나는 당연한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전륜성왕에게 괜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어떤 생각 말입니까?”

이어진 말에 나는 흠칫하며 할 말을 잊었다.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그대가 전생하면서 쌓은 모든 행위는 언젠가 그대 스스로 되돌려받을 거라고.”

“……?!”

“이 현상을 그대의 기억 속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부르던가.”

뭐, 뭐라고?!

나는 여태 생각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게 현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개념 자체가 나를 소름 돋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륜성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불편한 부분을 파고들듯이 입을 열었다.

“그것이 악행이든, 선행이든 우주의 모든 행위에는 업(業)이 쌓인다. 그것은 신조차도 피할 수 없는 숙명! 나는 그대 전생자라고 해서 그 숙명을 벗어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그대가 죽인 자는 언젠가 그대에게 복수할 것이며, 그대가 살린 자는 언젠가 그대에게 은혜를 갚는다. 실로 모든 사소한 행위가 결말을 갖게 되는 것이리라. 그대 또한 전생하며 조금이지만 그 굴레를 느꼈을 터.”

“그, 그런 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추측 아닙니까. 그대로 되돌아온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내가 당황하며 외치자 전륜성왕은 무감정하게 말했다.

“물론 추측에 불과하지. 본좌 또한 광대한 우주의 굴레를 감히 측정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 허나 모든 존재는 업(業)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 업이란 해갈될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그렇다면 외신이 된다면 그대가 여태껏 가지고 있던 업이 어찌 될 거라 생각하는가?”

“자, 잘 모르겠습니다.”

“소멸된다.”

스르릉

전륜성왕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기다란 장도를 서서히 뽑기 시작했다.

“외신이란 굴레 바깥에 존재하는 자. 인과율이란 굴레 안의 업이기에 굴레 바깥의 존재는 그 인과율이 무(無)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업보 또한 무(無)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굴레]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랐다.

“……네? 외신에게는 인과율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신들이 굴레를 벗어나려는 게 단순히 [힘]을 지니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가?”

“…….”

“그렇지 않지. 사실 황제나 복희, 본좌와 같은 반열에 오른 절대자들은 우주의 시초부터 종말까지 그 어떠한 고난도 겪지 않으며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더욱 강력한 외신이라는 존재들이 있으되 그들은 아예 세상의 일에 개입하지 않다시피 하니, 단순히 보자면 타 존재를 꺾어 경쟁관계의 우위를 얻으려는 이유만으로 힘을 추구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 힘의 필요성이 적은데도 진정으로 최상위 신격들이 외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이유란 바로 인과율의 법칙을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전륜성왕의 눈이 잠시 빛났다.

“아무리 신이라 하더라도 우주의 종말 이후에 어떤 사건이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나니, 우리 또한 인과율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종말 후에 그 업의 대가를 치르리라는 사실을.”

“…….”

“허나 인과율이 존재하지 않는, 굴레 바깥의 외신이 된다면 여태껏 존재했던 그 모든 업은 소멸되는 것. 동시에 초월자가 되어 모든 것을 관조할 권리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강력한 신이라 하더라도 승천을 노리는 이유는 그와 같다.”

그런 거였나……!!

신들이 외신으로 승격하려는 이유를 한층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내가 고개를 주억거릴 때 전륜성왕은 나를 향해 장도(長刀)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냥 신이라면 몰라도 전생자가 외신이 된다는 건 너무나 위험하며 끔찍한 일이 틀림없다. 그대는 그 길을 갈 수 있어도 가서는 아니된다.”

나는 전륜성왕의 말이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아서 반문했다.

“어째서 위험하며 끔찍하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뭘 했다고…….”

“…….”

“제가 살아온 시간은 길어봤자 몇백몇천 년입니다. 신들이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찰나이고 그동안에 제가 했던 모든 행위를 합쳐봤자 신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큼도 안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위험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 말에 전륜성왕은 차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고작해야 30번 남짓 전생한 그대의 업(業)이 이미 신의 영역을 뛰어넘었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지.”

“……!!”

“짐작 가는 게 없진 않으리라. 그대의 여정 중 많은 존재들이 그대의 업보가 심대하다는 걸 느꼈으니.”

전륜성왕이 내 기선을 제압하듯 단정 지은 말이었지만 나는 딱히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왠지 나도 비슷한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아마 그대가 전생(轉生)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거대한 업보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내가 읽어낸 그대의 업조차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것…….”

그렇게 중얼거린 전륜성왕이 말했다.

“외신이 됨으로써 그대의 그 어마어마한 업보가 완전히 무(無)로 돌아가는 게 과연 우주의 법칙으로 허용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외신이 된다면, 그 업보를 대신하여 무언가를 바쳐서 균형을 맞추게 되리라.”

“균형이라는 건……?”

“그대의 업보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바치는 게 되겠지. 그 대가가 상상이 가는가?”

“…….”

끔찍하다는 표현을 쓸만하군.

전륜성왕의 말을 이해한 내가 침묵하자 전륜성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서 본좌는 그대가 업을 느끼기를 바라며 업륜을 돌리게끔 했던 것이다. 만일 그대에게 업보를 느끼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면 좀 더 그대의 앞길에 도움이 될 터이니.”

“으음.”

“전생자가 갖고있는 어마어마한 업의 본질을 언젠가 알아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수백 번이나 반복하면서 그저 업륜을 돌리기만 했을 뿐 업 그 자체가 무엇인지는 거의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전륜성왕이 내게 어떤 걸 바랬는지는 알 것 같았지만 실제로 업의 존재를 느끼기엔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전륜성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백웅이여. 그건 언젠가 그대가 이뤄야 할 과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럼 본좌가 여기에 그대를 굳이 부른 이유를 알겠는가?”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죽음’을 이해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나는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제가 죽음을 왜 이해해야 합니까?”

“그럼 전생자보다 죽음을 이해해야 하는 존재가 있겠는가? 그대가 전생하려면 죽어야 하지 않는가?”

“아.”

내가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닫자 전륜성왕은 슬며시 손에 들려 있던 장도를 들고 내게 걸어왔다.

저벅 저벅

그러고는 슥 하고 내 가슴팍에 칼끝을 들이대고는 말했다.

“본좌가 이 칼을 그대로 꽂는다면 그대는 죽는가?”

나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아니요.”

“명치에 칼이 꽂히면 치명상일 텐데 왜 안 죽는가?”

“우선 기력으로 부상을 버틸 거고 칼이 꽂혀도 즉사하지 않게 무공을 써서 활력을 돋울 겁니다. 그리고 신력으로 회복하면 웬만하면…….”

“역시 아무것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군.”

“네?”

푸욱!!

“크악!!”

다음 순간 전륜성왕이 권능을 써서 시공간을 무시하고 내 명치에 장도를 찔러 넣었다. 나는 전조증상도 없는 공격이라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고 적중당한 후에야 신력으로 대항하려 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윽고 뭔가를 깨닫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으윽……!?”

시, 신력이 조금도 발동하지 않아!!

어째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무공의 활맥을 이용해서 최대한 부상을 줄이고 생명력을 남기는 식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전륜성왕이 명치에 꽂은 칼을 뽑아낼 엄두도 못 내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나직이 말했다.

“그대가 말했던 건 모조리 ‘이유’다. 죽음에 도달하는 수많은 인과(因果)중 몇몇가지를 해석했을 뿐이지.”

“크으으윽…….”

“그러나 진정한 죽음의 지배자가 죽음을 다룬다면 그 죽음에 이유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죽음의 권능이다.”

냉엄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꼈다. 싸늘한 기운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가득 채우는 이 기분 나쁜 느낌은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주, 죽는다……!!

슈우우욱…….

다음 순간 나는 그대로 숨이 끊기면서 몸과 영체가 분리되어 버린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영체가 새어 나와서 내 몸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물끄러미 내 영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다시 묻지. 그대는 지금 죽은 건가?”

나는 영체 상태로 대꾸했다.

[영혼이 튀어나왔는데 죽은 게 아닙니까! 다시 살려 주십…….]

“아니, 그대는 죽지 않았다. 아직도 살아 있다.”

[네?!]

“전생하지 않고 있잖은가.”

[…….]

…… 어, 그게 무슨…….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자 전륜성왕은 그대로 내 명치에서 칼을 뽑았다.

푸왁!!

“흐업!!”

그와 동시에 내 영체가 몸으로 도로 들어가며 내가 육체를 다시 갖게 되었다. 나는 명치에서 몰려오는 찌릿찌릿한 고통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전륜성왕의 말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대도 이제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터. 그대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단순한 육체의 상태가 아니다. 세간의 인식으로 그대는 명계에 와 있으니 이미 죽은 것이고, 죽은 상태에서 또 칼에 찔려 영체 상태가 되어도 역시나 죽은 것이지만…… 그대는 여전히 죽은 게 아니다.”

“…….”

“그렇다면 그대가 [죽음]에 이르는 상태란 무엇이지?”

파파팟

나는 급히 고통을 멈추고 지혈하는 혈도를 찍어서 몸의 상태를 안정시켰다. 어째서인지 아직도 신력을 쓸 수 없어서 바로 회복하는 건 무리였다. 나는 고통이 멎어서 생각을 멀쩡히 할 수 있게 되자 전륜성왕의 말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본좌는 그대의 기억을 보았기에 그대가 내심 얼마나 헷갈려 하는지도 알고 있다. 단지 깊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

“…….”

“본좌는 그 해답을 알고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스으으

전륜성왕이 장도를 옆으로 치켜들었다.

“첫 번째는 스스로가 죽음을 인정했을 때.”

나는 불길해서 흠칫하고 경계했고, 이윽고 전륜성왕의 한마디가 이어졌다.

“또 하나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든 이성과 영혼이 분쇄되어 삶을 이어나갈 수 없는 경우다.”

“……!!”

“두 가지의 경우는 필멸자에게 있어서 무척 범위가 넓어보이지만, 지금의 그대에게는 도리어 무척 좁지. 그대는 생과 사의 경계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으며 신력만 쓰면 웬만해서는 죽음을 인정할 일이 없다. 특히 본좌의 권능을 지니고 있으니 더욱 그렇지.”

“……맞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허나 그대는 이걸 생각해본 적이 없으리라. 그대가 살던 미래에 나 전륜성왕은 소멸한 상태였는데, [죽음]에서 태어난 죽음 그 자체인 본좌는 소멸이라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어찌 죽음이 또다시 죽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그 순간 번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말했다.

“으음…… 소멸과 죽음은 다른 상태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대는 그 차이를 무조건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제대로 전생능력을 누리기 힘들 터이니.”

“……?”

무슨 말이지?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전륜성왕의 말이 이어졌다.

“백웅이여. 그러면 다시 묻노라. 그대는 [죽음]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죽음이 뭐냐니…… 너무 철학적인 질문이다.

모든 인간의 철학자와 사색가들이 평생 동안 생각하더라도 결론을 내지 못한 난제!

그런 걸 내가 단숨에 정리할 수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 전륜성왕은 내게 철학을 논하려 하는 게 아냐.’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해야만 전생자로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전륜성왕의 지금 질문은 철학적인 만족감을 위한 게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죽음이라 한다면 다 끝장나서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갈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전륜성왕은 훗 하고 웃었다.

“전생자다운 대답이군. 그대에게 있어서 삶이란 [이어지는 것]이니 죽음을 그렇게 해석하더라도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정답이 있습니까?”

“백웅이여. 죽음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먼저 대극(對極)인 [삶]을 이해해야만 하노라.”

전륜성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느릿하게 자신의 한쪽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본좌가 지금 손을 뻗은 것은 [삶]이며 그 일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손을 뻗지 않고 멈춰있는 상태는 더욱 [죽음]에 가까운 것인가?”

“……아뇨. 그냥 손을 안 뻗은 것뿐이죠. 그것도 삶입니다.”

“그렇다. 행위의 정동(靜動)만으로는 삶과 죽음을 판단할 수가 없지. 허나 죽은 자는 손을 뻗을 수가 없으니, 행위의 자유가 존재치 않는다.”

“그 말은…….”

“잘 들어라, 백웅이여.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인과(因果)이니, 삶과 죽음도 인과율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죽음이란 더 이상 인과율이 파생되지 않는 상태를 일컫노라.”

전륜성왕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즉, 우주의 모든 혼돈이 사라지고 모든 게 정(靜)으로 잦아들어 그 어떠한 인과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질서]의 세계. 그것이야말로 본좌가 다루는 명계보다 더욱 완벽한 죽음의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가장 완벽하게 우주의 법리(法理)가 정돈되어 있으므로 모든 질서의 고대신들이 간절히 바라는 상태이기도 하지.”

“……!!”

“반대로 이 세계에 혼돈이 날뛰는 한 무한의 변화가 창궐하니, 혼돈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죽음 또한 있을 수가 없다. 삶과 죽음이 왜곡되어서 차마 형용할 수 없는 혼돈으로 타락해 버리곤 하지. 그러나 그대도 알다시피 혼돈이 날뛸수록 세계에 고통과 사악한 음천(陰天)이 메워져 끔찍하게 되어 버리니, 극한의 혼돈 또한 차라리 죽음이 더 나은 세계라고 할 수 있노라.”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서 뭔가를 느끼고는 말했다.

“그래서 전륜성왕은 중용을 추구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혼돈과 질서, 어느 한쪽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게 해야만 그나마 이 세계에 존재하는 필멸자와 약자들이 덜 고통받게 되어 있다. 그걸 위하여 본좌는 [죽음]을 상징하는 명계를 창설하여 본좌 나름대로 우주의 인과율을 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염라대왕이 말했던 게 그런 뜻이었던 건가?

내가 뭔가 이해한 느낌에 고개를 주억거리자 전륜성왕의 말이 이어졌다.

“허나 말했듯이 명계는 완벽한 죽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그대도 보았듯이 잠시 영혼이 정류하여 쉼터를 찾아가는 장소이며 업보를 정리하는 용도에 불과하지. 그렇기 때문에 명계를 왔다갔다 하며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정도로는 전생자의 [죽음]을 정의할 수 없다.”

“그렇군요.”

“그러므로 그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대가 스스로 인과를 파생시킬 수 있는 상태, 즉 [삶]을 포기하게끔 인식(認識)시키는 것이다. 어떤 형식이든 압도적인 죽음을 느끼게 하여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지. 또한 그것은 그대가 [죽음]의 형태를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이기에 생기는 일이다.”

“고정관념이라는 건…….”

“전신을 수백 수천 조각 내어 갈가리 찢으면 살아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용암에 뼛조각까지 다 녹아도 살아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라고 하는 [인간]으로서의 인식. 그대는 그 인식대로 죽음을 대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

“물론 그런 건 그대가 스스로 훈련으로 고칠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말한 전륜성왕은 내게 다시 장도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런 인식과는 상관없는 완벽한 인과의 단절. 거기에 접하게 되면 아무리 그대가 나의 권능을 이어받는다 하더라도 소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리라.”

나는 그 말에 눈을 약간 크게 떴다.

“그런 게 있습니까?”

“그렇다. 방금 전 본좌가 그대를 죽일 뻔했던 방식이지.”

전륜성왕은 서서히 자세를 잡았다. 나는 그 자세가 무예의 달인과 같다는 걸 느끼고는 반사적으로 대응하여 자세를 잡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공?”

틀림없다. 저 움직임은 무예를 수십 년 이상 익힌 자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움직임! 신력과 권능으로 인한 인위적인 초능력과는 완전히 달랐으므로 나는 전륜성왕이 무예의 달인이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전륜성왕이 나직이 말했다.

“최상위 신이라면 누구나 무공 정도는 간단히 익힐 수 있지. 수천 배의 시간왜곡장을 만들고 약간의 지식으로 습득하기만 하면 경지에 이르는 건 무척 간단하다.”

“……!!”

“무공이 신력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힘이라서 굳이 익히지 않는 자들이 절대다수지만 본좌는 익혀두었다.”

하긴 황제 또한 무공을 익혔으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할 말을 잃었을 때 전륜성왕이 말했다.

“단 일 합으로 [죽음]을 보여주겠다. 그대는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스윽

나는 무공대결이라면 원하는 바였으므로 최선을 다해서 전륜성왕의 공격에 대비하기로 했다. 전륜성왕이 어떤 무공을 쓸지 기대되기까지 했다.

스스스

“……어?”

하지만 이윽고 전륜성왕의 장도가 천천히 원을 그리는 순간,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그의 도(刀)가 정확하게 반월(半月)을 그리는 순간, 나는 몸의 균형이 아주 정확하게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서, 설마 이건……!!’

연상되는 게 단 하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전륜성왕이 이걸 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뭐라고 말을 외치려는 순간 나는 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비틀리는 걸 느꼈다.

‘아…….’

베여 버렸다.

스르르…….

쿠웅

상체가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잘려서 떨어졌다. 나는 일격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그저 눈만 부릅뜨며 팔딱거렸는데, 전륜성왕은 천천히 말했다.

“[죽음]을 보았는가?”

“…….”

이어진 말에 나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이것이 바로 그대 기억 속 삿갓무사가 쓰던 절연(絶緣)…… [죽음]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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