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3권 12화
전욱의 화신이 한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연회?’
연회라 하면 높은 자들이 술자리를 벌이는 걸 의미했다. 물론 황제가 거행하는 연회라 한다면 그 연회의 참석자는 천상천하의 강대한 신격들일 게 분명했다. 나는 아직 전욱의 저의를 알 수 없었기에 그에게 대꾸했다.
“전욱이시여, 어떤 연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전욱은 힐끔 옆에 있던 염라대왕을 보더니 말했다.
[너를 포함하여 대계(大界)의 강력한 자들을 초청하는 연회이다. 물론 전륜성왕에게도 초청의 뜻을 전하려 왔다.]
“…….”
[당장 대답하라. 참석하겠는가?]
전욱은 그 특유의 폭군 같은 성격과 달리 일단 이번 제안에서 내게 선택지를 주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런 행동의 이유가 전욱의 성격이 착해진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황제 놈…… 아니 황제께서 연회를 여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정하기에는 제 힘이 너무 미약해서 두렵습니다.”
내 말에 전욱은 살짝 코웃음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크흐…… 핑계는 좋구나. 연회를 벌이는 이유를 알고 싶으냐?]
“네.”
[똑똑히 들어라. 황제께서는 소녀(素女)의 거취를 이번 연회에서 정하고자 하신다.]
“……!!”
흠칫
전욱의 말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염라대왕과 용길공주또한 전욱의 말에 크게 반응하는 기색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욱의 지금 한마디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
사상 최강의 초상능력을 지닌 소녀의 거취 하나로 천지가 진동하고 신농이 황제와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황제 입장에서는 전쟁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녀를 지키려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황제 측에서 먼저 전제조건을 깨버릴 줄이야?
나는 믿기지 않아서 입을 열었다.
“소녀의 거취를 정한다는 건…… 조건에 따라서는 타 세력에 소녀를 넘겨줄 생각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함부로 황제의 뜻을 내 마음대로 재단할 수 없다. 허나.]
전욱은 팔짱을 끼고는 말을 이었다.
[황제가 전쟁을 선택해도 우리는 기꺼이 싸울 셈이었다. 너희 따위에게 진다는 생각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노라! 황제가 범상치 않은 뜻을 드러내었음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
이걸 어쩐다…… 이 연회에 참석해야 하는 건가?
나는 지금 곁에 책사가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머리를 굴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냉큼 승낙하기에는 황제의 계교가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걸 알고 있으니 함정에 걸릴 확률이 높아 보였지만, 그렇다 해서 거절하기에도 무척 아까운 기회로 보였다.
‘전욱의 태도로 보아 이 제안은 그냥 떠보는 게 아니야. 거절할 경우 연회에는 참석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전욱은 문득 내 곁에 있던 흑웅을 보더니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그러고 보니 그놈은 어떻게 만든 거지? 본왕의 신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
이런!! 흑웅의 존재가 전욱을 자극하면 좋지 않은데……!!
나는 속으로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대꾸했다.
“저는 창조신의 능력을 갖고 있는데 천하에 전욱 님의 명성이 높아 우러러보던 중 그 위용을 닮게 만들고 싶어서 이 정령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내 명성이 높다고?]
음…… 아무런 소리나 해 봤는데 왠지 거짓말해야 할 게 늘어난 것 같다……!!
‘쳇.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밀고 나갈 수밖에!’
나는 과거에 전욱에게 아부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헤헤. 사실 제곡이나 소호같은 자들보다는 전욱 님이 더 대단하시지 않습니까? 제곡은 덩치만 큰 허연 멀대이고 소호는 파괴밖에 모르는 새대가리이니 전욱 님께서 도리깨를 휘두르는 위용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요.”
[흐음.]
“마음만 먹으면 신농과도 충분히 싸워 이기실 수 있는 그 힘에 감복해서 지상에 남아 있던 전욱 님의 흔적으로 정령을 만들어보았을 뿐입니다. 하하.”
전욱의 화신은 잠시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러더니 불쑥 말했다.
[네놈의 말을 들으니, 마치 우리 본체가 직접 싸우는 걸 두 눈으로 본 적 있는 것 같군……?]
“아, 그게…….”
나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곡과 소호의 본체를 상세히 묘사한 게 도리어 전욱에게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내가 등 뒤에서 식은땀을 약간 흘리고 있을 때 전욱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큭큭…… 아무래도 상관없다. 황제가 주목할 만한 녀석이군.]
“……네?”
[황제가 말했다. 너, 백웅이란 자가 심상치 않으니 꼭 연회에 초대하고 싶다고. 직접 보니 그 이유는 알 것 같구나.]
“…….”
[걱정 말고 연회에 참석하라. 황제는 자기가 주최한 연회에서까지 암수를 쓸 정도로 치졸한 존재가 아니다.]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럴 거라고 공감할 뻔했다. 황제 또한 음모를 꾸미는 존재였으나 그는 무척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악(巨惡)이었기에 자신의 명분과 품위를 배신하면서까지 목표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는 걸 나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참석하지요.”
[좋다.]
슈슈슉…….
전욱의 화신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완전히 연기로 변해서 장내에서 사라졌을 때 내 귓가에 전욱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연회에서 누구의 편을 들지 지켜보겠다…….]
왠지 의미심장한 한마디에 나는 지금 내 행보가 천상천하의 지배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들어서 인상을 찌푸렸다.
‘황제도 내 존재를 주목한다는 건 별로 좋지 않은데…….’
아니, 그만큼이나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주목받지 않기를 원한다는 게 도리어 양심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내가 황제에게 주목받는다는 건 앞으로 황제의 인과율 계산능력에도 대항해야 한다는 뜻이 되었기에 나는 마뜩잖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처럼 그의 예지능력에 휘말려 들면 답이 없으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용길공주가 말했다.
“백웅 님. 저희 측 제안에 대한 답변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거절이오.”
“어째서인가요? 전륜성왕이 이곳에서 백웅님을 영원히 유폐하려 한다면 대항하실 방법이 있으십니까?”
“전륜성왕은 아직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았소. 죽음을 벗어나서 다시 살아나려 하던 내 쪽이 이치를 거스르려 한 거지. 나는 좀 더 전륜성왕과 얘기해보고 싶소.”
“……알겠습니다. 스승님께 그리 전하지요.”
파앗
용길공주 또한 내 거절 답변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끝까지 보고 있던 염라대왕이 말했다.
“용길공주의 제안을 듣지 않은 건 의외로군요.”
“내가 복희의 도움으로 탈출할 거라고 생각한 거요?”
“주군과 당신 사이에는 거대한 힘의 차이가 있으니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군은 당신을 살려주겠다 약속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당신은 주군에게서 무엇을 본 겁니까?”
나는 염라대왕의 말에 잠시동안 하늘을 보았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반대가 아닐까 싶소만…….”
그냥 내 감은 그렇다.
내 대답에 염라대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럼 계속해서 업륜을 가동하시지요.”
“알겠소.”
스스스
나는 이후 계속해서 심판을 받은 후 내 앞에 서는 수많은 영혼들을 상대로 업륜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업륜을 돌리면서 알게 된 게 있었다.
육계(六界).
업륜을 돌리게 되면 육계 중 하나를 선택해서 영혼의 행방을 정해줄 수 있었다.
인간계의 경우는 환생을 시킬 수가 있다. 지옥도(地獄道)를 택하면 그대로 저승에 머물게 되고 죄의 경중에 따라 더 심한 지옥으로 가게 된다.
문제는 그 나머지 4계였는데, 나는 여기서 저승이 무척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축생도(畜生道)를 택하더라도 영혼이 짐승으로 환생하지 않아……!!’
도리어 축생도를 택하면 짐승이라기 보다는 아예 다른 별세계로 멀리 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아귀도도 마찬가지였는데 아귀도에 선택된 영혼은 그 자체가 형체를 잃고 반죽되어 버리는 게 눈에 보였다.
가장 수상한 것은 바로 수라도(修羅道)와 천상도(天上道)였다. 그 2개를 선택할 경우 영혼은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수백 번의 업륜을 돌리면서 결국 이 찜찜함을 참지 못하고 염라대왕에게 말했다.
“염라대왕!! 수라도와 천상도를 택한 영혼들이 소멸되는 이유가 뭐요?”
“결국 그걸 물어보시는군요.”
염라대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 영혼들은 소멸된 게 아닙니다. 단지 수라도와 천상도를 상징하는 세계가 현재 성왕의 권세 아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성왕이 직접 맡아두고 계십니다.”
“……?!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럴 바에는 육계가 아니라 사계로 설정해야 맞지 않소?”
“제가 설명드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성왕께 직접 들으십시오.”
“끄응.”
나는 침음성을 내고는 염라대왕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업륜도 충분히 많이 돌린 거 아니오? 이제 전륜성왕을 만나게 해 주시오.”
“그러지요.”
우우우
잠시 후 나는 염라대왕이 불러준 저승의 마차를 타고 전륜성왕의 궁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궁에 도착해서 전륜성왕의 방으로 가게 되자, 전륜성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옥좌에 앉은 채 내게 말했다.
“업륜을 돌리는 건 재미있었나?”
나는 전륜성왕의 모습이 여태껏 보았던 ‘나’의 진짜 모습과 달라져 있었기에 흠칫 하고 놀랐다.
“그 모습은……!!”
모습을 바꾼 전륜성왕이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그대의 기억 속에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모습을 찾았지. 그대가 아직까지도 정체를 모르는 존재 중 하나이기에 흥미가 생겼다.”
“…….”
“헌데 이 자의 얼굴만큼은 본좌도 구현할 수 없군…… 어째서 그대는 이 자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지?”
나는 전륜성왕의 모습을 보면서 떫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자의 삿갓 아래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랬다. 전륜성왕은 지금 내 앞에 몇 번이고 나타났던 삿갓무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놈과 썩 좋은 기억이 없었기에 보자마자 약간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전륜성왕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전륜성왕이 말했다.
“업륜을 돌리면서 무엇을 느꼈나?”
“그냥 돌리라니까 돌렸지 뭘 느끼겠습니까…….”
“솔직한 대답이군. 허나 본좌는 그대가 업(業)을 느끼기를 바랬다.”
“업?”
내 반문에 전륜성왕은 옥좌에 손으로 턱을 기댄 채 대꾸했다.
“백웅이여. 사실 내가 그대에게 힘을 빼앗겨 소멸하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그대는 전생자이기 때문에 여기서 소멸하더라도 다음 생으로 넘어가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대를 마냥 구원자로 여겨 모든 힘을 전수해주기에는 그대의 정체성이 확실치 않았다. 나는 그대의 진심을 확인해야만 했던 것이다.”
“정체성이 확실치 않다니 무슨 말입니까.”
“몰라서 묻는가?”
이어진 전륜성왕의 말에 나는 움찔하고 말았다.
“그대는 아직도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옳은지 세계를 멸하는 것이 옳은지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세계 따위 멸망해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세계에서 쌓은 동료들과의 인연을 잃고 싶지 않다는 모순적이며 양가 적인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
“전뇌자라 불리던 그 존재가 그대에게 전생자의 결말로서 그 이상의 답이 있다고 이야기했음에도, 그대는 아직 진정한 결말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상태…… 그런 불완전한 자에게 세계의 운명을 맡긴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도리어 쓸데없이 강력한 힘으로 인해 진정한 해답을 찾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을 터.”
“…….”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저건 30번째 삶을 시작한 이래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었던 내 진짜 속마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까지 삶이 기구하게 꼬이면서 나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혼란스러워졌고, 지금은 그냥 소을촌에 있을 동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셈이었다.
전륜성왕은 심유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그대에게는 업(業)이 필요하다. 업륜을 돌림으로써 그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무슨 말입니까?”
“수라도와 천상도로 가게 되어 있던 영혼을 내가 맡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겠지?”
스스스스!!
잠시 후 전륜성왕이 양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두 손바닥 위에는 각기 백색과 흑색의 영혼 덩어리가 떠올라 있었는데, 전륜성왕은 두 영혼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백색은 천상도로 갈 영혼이며 흑색은 수라도로 갈 영혼이다. 하지만 이들은 환생하지 못할 것이며, 본좌는 아마 소멸할 때까지 이들을 소유하고 있으리라.”
“뭐, 뭐라고!! 사기 친 겁니까?!”
내가 깜짝 놀라서 외치자 전륜성왕은 고개를 저었다.
“천상도란 극락정토(極樂靜土). 수라도란 이 세계 그 자체. 본좌는 그들에게 진정한 천상도와 수라도를 마련해주려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진정한 천상도란 세계의 [끝]이라 할지니…… 그대는 두 가지 극단을 모두 보고 왔다. [혼돈]과 [질서]의 끝을.”
전륜성왕의 말이 이어졌다.
“[혼돈]의 끝이란 바로 그대가 보았던 [옥좌]…… [질서]의 끝이란 바로 그대가 보았던 반고의 봉인. 그렇지 않느냐?”
“……!!”
“본좌는 언젠가 어느 쪽의 극단에서든 소망을 실천하여 세계를 본좌의 뜻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운명을 누리는 것이 바로 천상도이며, 수라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해져 있다가 힘겹게 말했다.
“역시…… 전륜성왕께서는 외신(外神)이 되고 싶은 거였군요.”
“이 세상에서 신이라 불리는 자들 중 그걸 원치 않는 자는 없다. [굴레]의 바깥으로 가고 싶은 건 존재의 본질적인 소망이기에.”
그렇게 말한 전륜성왕의 말이 이어졌다.
“허나…… 백웅이여.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가?”
“뭐가 말입니까.”
전륜성왕의 눈빛이 나를 강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럼 전생자가 외신이 된다면?”
“…….”
“신이 아니라 그대같이 전생하는 존재가 외신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뭐……?
전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얘기였기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신을 쓰러뜨리는 생각밖에 안 해보았기에 나 자신이 외신이 된다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륜성왕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쩌면 그것 또한 하나의 결말일지도 모르지. 어찌 되었든 외신은 굴레를 초월한 자이니 그때부터 세계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지 않은가?”
“아, 아니 그건…… 좀…….”
그 괴물딱지들이 된다고……?!
내가 기겁을 하자 전륜성왕이 무감정하게 말했다.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군. 진공가향이 모든 것을 배격하는 완벽한 [소멸]을 추구한다면 외신이 되는 길이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세계를 멸하려는 것과 지배하는 것은 천양지차인데, 달리 말하자면 지배하는 것은 그대의 동료들도 잃지 않으면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나는 진공가향에 이은 또 하나의 [길]을 제시받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혹시 전뇌자가 나한테 얘기하려 했던 제 3의 길이란 게 이건가……?’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말했다.
.
“허나, 본좌는 거기에 모순이 있다 생각한다. 그대는 이 길을 택할 수는 있으되 끝까지 가서는 아니된다.”
“모순이라고요? 어떤 모순이…….”
“…….”
잠시 침묵하던 전륜성왕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굴레를 초월한 외신이 된다면 여태껏 전생하면서 쌓아온 인과율의 업보는 어찌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