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3권 11화
나는 청양의 말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약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유망과의 대결에서 무리하지 말았어야 했던 건가?’
하지만 나는 그당시 내 선택에 옳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일이 벌어진 이상 더 이상 후회해봐야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청양. 그럼 지금 신농은 황제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거냐?”
“아닙니다.”
“음…… 그건 다행이군.”
진짜 다행이다. 만일 황제와 신농의 결전이 벌어졌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뻔한 것이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네게 어떤 명계의 판결이 내려졌든 상관없다. 바로 되살려 주마.”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업륜을 움직이려고 손을 뻗었다. 업륜을 가동시키고 전륜성왕의 권능을 써서 부활하게끔 하면 바로 청양을 되살려낼 수 있으리라.
스윽
“기다려주십시오.”
내가 손을 뻗어서 청양을 살려내려는 그 순간 나를 제지한 것은 청양이었다.
“응?”
내가 청양을 쳐다보자 청양은 무척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내게 부복하더니 말했다.
“전 되살아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취급이 좋은 사후세계로 가게 해주십시오!”
“……?! 뭐, 뭐라?”
나는 기가 막혀서 반문했지만, 청양은 농담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청양의 눈빛에서 진심을 확인한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청양, 왜 되살아나고 싶지 않다는 거냐? 이유를 말해줘.”
“저는 여태껏 인간의 몸이라도 강해지기 위해서 부단한 수련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일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탁록촌에 쳐들어온 고위마족을 상대로 저는 단 3수도 버티지 못하고 즉사해 버렸습니다.”
“…….”
청양의 실력도 내가 있던 미래의 기준으로 신선급 이상이었는데 그 마족의 힘이 어지간히도 강력했던 모양이었다.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그때 느꼈습니다. 더 이상 삶에서 고난을 느끼며 고생하기보다는 이제 생존의 위협을 잊은 채 쉬고 싶습니다.”
“아니 그건…….”
나는 청양에게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냐고 말할 뻔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말았다.
신에 대항하는 인간의 절대적인 한계.
그것은 나 또한 수없이 겪으며 절망해왔던 게 아닌가?
그나마 나는 전생능력을 이용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있어서 천상천하의 수많은 절대자에게 맞선다는 건 절망 그 자체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나는 청양에게 노력해서 그 한계를 극복하라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문득 옆에서 보고 있던 염라대왕을 쳐다보았다. 염라대왕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장내의 상태를 보고 있었는데, 내 시선을 받자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어떤 선택이든 존중합니다. 마음대로 하시길.”
나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이럴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백웅 님. 사후세계는 영혼을 능멸하고자 만들어진 체계가 아닙니다. 도리어 사악한 신들의 손에서 가련한 영혼들을 지켜서 고통을 피하게 해주려고 만들어진 피안(彼岸).”
염라대왕의 시선이 잠시 청양을 스쳐 지나갔다.
“저자뿐만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무수한 필멸자들은 되살아나기보다는 차라리 사후세계에 순응하지요. 사악한 신들이 날뛰는 시대에 잘못 걸리면 명계의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죽음 또한 자비입니다. 청양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자비보다 더 나은 결말을 보장하셔야 합니다.”
죽음이 자비라니…….
그 수많은 죽음을 겪어왔던 나로서는 결코 공감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번 죽었을 때 편해지려고 하는 그 마음만큼은 알고 있었기에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 반대 아닌가.’
나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생을 추구하며 결말을 보려 하는 거지?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편해지려고 노력해야 정상 아닐까?
잠시 내적인 혼란을 겪고 있던 나는 이윽고 청양에게 말했다.
“청양. 네가 되살아나면 너와 친한 자들이 무척 기뻐할 거다. 그건 살아날 이유가 되지 않느냐?”
“인간의 죽음은 언젠가 잊혀지는 법입니다. 도리어 이번에 살아날 경우 다음번에도 계속 살아나야 하므로 더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언제는 되살아날 수 있었다가 언제는 안 된다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으음.”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운이 좋아 고통을 그리 오래 느끼지 않고 죽었지만, 악마와 신족들에게 잘못 걸리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곱게 죽은 김에 그냥 이대로 결말을 짓고 싶습니다.”
“…….”
틀렸다. 청양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평소에도 내가 자주 생각했던 것이라서 쉽사리 반박할 수가 없다. 사실 죽음 그 자체보다는 죽음에 수반되는 고통이 더욱 끔찍한 것이기에 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련하는 게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청양이 삶 대신 죽음을 택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이라서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 삶이란 아름답다고 설득해야 하나?
아니, 삶이 아름답다고 나 스스로도 생각지 않는데 어떻게 저 상태의 청양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청양. 내가 도중에 갑자기 죽어 버려서 너희에게 피해를 끼친 것 같아서 미안하다. 나는 조만간 이 명계에서 빠져나가서 다시 탁록촌에 합류할 생각이야.”
“…….”
“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겠나? 만일 부활을 선택한다면 내 모든 힘을 다해서 네가 더 강해질 수 있게 해주마. 너는 탁록촌에 꼭 필요한 인재야.”
이건 빈말이 아니다. 청양이 지닌 초상능력은 굉장히 뛰어났기에 만일 수련기간만 좀 더 길어진다면 인간의 미래를 열어주는데 큰 보탬이 될 존재가 분명했다. 강력한 신이나 악마들과 직접 부딪히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대단한 전력이었기에 청양의 부활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제가 느낀 건 그런 수련으로는 도저히 메워질 수 없는 격차였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제 마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끄응…… 정말 안 되겠나? 내 마음이 껄끄럽단 말이다.”
내가 간절히 말하자 청양은 그 자리에 서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녕 그렇게까지 말 하신다면, 제가 신(神)이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나는 뜻밖의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신?”
“네. 신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인간의 약함에 고통받을 이유는 없겠지요. 백웅 님이라면 이 정도는 도와주실 수 있을 겁니다.”
“…….”
신으로 만들어 달라고?
나는 내가 신으로 불리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다른 누군가를 신으로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전생하면서 만났던 자들이 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걸 많이 봐 왔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누군가가 내게 부탁하는 건 처음인 것이다.
나는 내 뒤에 시립해 있던 흑웅에게 물었다.
“흑웅. 내가 청양을 신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러자 흑웅이 내 말에 대꾸했다.
[주인의 힘이라면 가능하고 남는 일이오. 저 청양이란 자에게는 피에 잠들어있는 재능이 있으니, 큰 힘을 쓰지 않고도 하위신의 반열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오.]
“어?! 진짜 되나?!”
흑웅의 눈빛이 한순간 예리해졌다.
[하지만 주인은 잘 생각하셔야 하오. 창힐 또한 상위신에 근접했기에 휘하의 팔부신중을 더 높은 신격으로 끌어올려 줄 수 있었는데 왜 일부러 그러지 않았는지를…… 수많은 우주의 신격들이 왜 함부로 부하들의 격을 올려주지 않는지를.]
“…….”
[나는 그리 권하지 않소. 허나 그렇게까지 반대할 일은 아니니 주인의 선택에 맡기겠소.]
나는 흑웅의 말에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좋아. 청양 너를 살려주겠다. 그리고 살아나면 네가 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마!”
내 말에 청양은 도리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저, 정말입니까?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흑웅이 된다니까 뭐! 내 실수를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해라.”
“내가…… 신이 된다고…….”
청양은 현실감각이 없어진 듯 멍하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도와주마.”
쿠웅
내 말이 끝나자마자 청양은 그 자리에 꿇어앉아서 머리를 처박고 크게 절을 했다. 그러고는 환희를 숨기지 못하고 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 녀석 뭐 이렇게 반응이 격렬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일이 잘 풀린 것 같았기에 청양을 업륜 앞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업륜을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청양의 영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아아앗
청양의 영혼은 잠시 후 도깨비불처럼 새파랗게 변했고 내가 회전시키는 업륜에 휘말려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회전하는 업륜 속에서 내 의지대로 결과를 조작할 수 있음을 느꼈고, 망설임 없이 육계(六界)의 회전판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인간계(人間界)!
촤아아앗 -
잠시 후 업륜에서 빛의 기둥이 치솟아 오르더니 청양의 영혼이 인간계로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육계 중에서 인간계의 판을 선택한다면 업륜을 돌리는 자의 의지에 따라서 환생시키거나 그대로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청양이 생전의 육체를 갖춘 채 부활하게끔 만들었고 청양은 아마 탁록촌에 멀쩡히 되살아나게 되리라.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염라대왕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과연 그 정도까지 베풀만한 대상이었습니까……?”
“무슨 말이지?”
“한 가지 조언을 해 드리지요.”
염라대왕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명계의 존재들은 오랜 수련과 엄정한 평가를 통해 천천히 하위존재에서부터 승급(昇級)을 합니다. 차례대로 직위를 올려서 옥졸, 수련관, 비병 등을 거쳐 결국 명판관이나 명계의 장군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전륜성왕이나 제가 단숨에 그들을 신적 존재로 승격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럼?”
“갑작스레 격이 높은 존재가 된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알아두십시오.”
“…….”
“그럼 다음 영혼을 들여보내겠습니다.”
우우우
잠시 후 내 앞에 또 하나의 영혼이 출현했다. 나는 그 영혼을 보자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용길공주(龍吉公主)?!”
고대의 대라신선이자 천계의 대원로이며 천계 창설 때부터 존재했다는 천계의 귀인!! 그녀는 미래에 혈주(血柱)가 되어 도덕천존, 남극선옹 등과 함께 무릉도원에 봉인되어 있었으며 직접 마주쳐본 적이 있었다. 설마 이 명계에서 용길공주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나는 잠시 멍해지는 걸 느꼈다.
‘용길공주도 몇만 살이 넘는 거였구나…….’
용길공주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가진 날개옷의 선녀 그 자체였다. 그녀의 힘을 상징하는 청룡과 적룡, 황룡의 3대 보옥을 몸 주위에 띄우고 있던 용길공주는 눈에 이채를 띄우더니 말했다.
“과연 복희 님이 말씀하신 대로 위대하신 존재시군요. 단숨에 제 정체를 알아보시다니. 그리고 복희 님의 인간 모습과 완전히 같은 이유는 무엇인지…….”
“…….”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죽은 게 아닙니다. 복희 님의 말씀을 전달드리기 위해 천계의 사자(使者)로써 찾아온 것이지요.”
“나를?”
내가 반문하자 용길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희 님께서는 백웅 님이 명계에 유폐되어있는 상황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명계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드릴지 여쭤보라 하셨습니다.”
“…….”
나는 그 말에 염라대왕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리 용길공주가 천계의 사자이며 삼황 복희의 전령이라지만 저승의 2인자인 염라대왕 앞에서 대놓고 할 만한 얘기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라대왕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서 명계 또한 내 선택을 지켜보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용길공주에게 말했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신농과 황제가 머지않아 부딪힐 게 뻔한데 복희는 어떻게 대비하려는 것이오?”
내 질문에 용길공주는 훗하고 웃었다.
“이곳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얘기가 아니군요. 또한 제 스승의 뜻을 제가 함부로 억측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나를 명계에서 빼낸다는 건 전륜성왕의 뜻을 거스르는 건데 어떻게 한다는 말이오?”
“그것은 백웅 님께서 제안에 승낙하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으음.”
아무리 복희가 대단하다지만 이렇게 대놓고 전륜성왕의 품에 있는 나를 빼내겠다고 공언할 정도라는 말인가?
나는 복희의 속내를 알 수 없어서 심경이 복잡해졌다.
‘확실히 복희의 제안대로 바로 명계를 탈출한다면 제일 편하겠지만…….’
왠지 업륜을 비롯해 과업을 수행하고 나면 전륜성왕이 내보내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기에 나는 고민되었다. 여기서 복희의 제안을 따라 바로 탈출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일단은 상황을 지켜볼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그때였다.
파지지직!!
갑자기 거대한 어둠의 번개가 내려치고는 장내에 강대한 존재가 강림한 것이 느껴졌다. 용길공주와 염라대왕 사이의 공간에 나타난 그 어둠의 존재는 잠시 후 스멀거리며 형체를 갖추었고, 이윽고 관복을 입은 화신의 형태로 변했다.
그 화신을 본 염라대왕은 침음성을 흘렸다.
“……설마 왕께서 직접 오실 줄이야.”
그 화신은 내 쪽으로 시선을 향하더니 말했다.
[네가 백웅인가?]
나는 그 화신의 모습을 몇십 번이나 본 적이 있었기에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그렇소. 귀하는 누구십니까?”
[…….]
잠시 후 그 화신의 눈에서 흑광이 흘러나오더니 음울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나는 전욱(顓頊)! 너를 연회(宴會)에 초대하라는 황제(黃帝)의 명을 받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