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3권 09화
아무리 보아도 눈앞에 서 있는 모습은 내 동료인 망량의 평소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망량이라 생각할 수 없었고 망량선사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여태껏 보았던 망량선사의 모습이 까만 고양이의 모습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위화감을 견디지 못하고 말했다.
“마…… 망량이 아니라 망량선사, 맞지?”
상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렇다.”
역시.
생긴 건 다르지만 평소의 망량선사 그 자체다.
‘…… 대체 뭐야.’
맞췄긴 하지만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도 아마 전생자의 직감일 듯했는데 대체 망량과 망량선사를 구분해서 뭐에 쓴단 말인가? 뭔가 인과관계가 있을 텐데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괜히 머리가 아파서 고개를 젓고 있자 ‘망량’의 모습을 한 망량선사가 말했다.
“[큰 굴레]를 돌린 이유가 무엇인가?”
역시 망량선사는 알고 있다는 건가? 아니, 애초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를 이런 몽환적인 공간으로 불러올 수 있는 신적 존재이니 전후사정을 모를 리는 없으리라. 나는 별 수 없이 망량선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돌리고 싶어서 돌린 게 아냐. 외우주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전뇌자가 [큰 굴레]를 돌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
“…….”
“나도 질문 좀 하자. 난 방금 죽었던 것 같은데 여기로 나를 불러온 이유가 뭐야?”
내가 망량선사에게 물어보자 망량선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는 머지않아 현재와 미래를 잇게 될지도 모른다. 그 선택으로 파생된 인과가 [큰 굴레]의 과거에 존재하는 네 흔적을 알려주었고, 이 [꿈]으로 네 존재를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 무슨 말…….”
말이 너무 어려워서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망량선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큰 굴레]의 과거에서 쌓은 인과가 범람(氾濫)하여 미래에서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네가 과거에 했던 모든 행동이 계속해서 미래를 파생시키고 있었으며 마침내 현실의 존재 가능성까지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존재 가능성이 붕괴……?”
나는 망량선사의 말뜻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간신히 이해를 하고는 외쳤다.
“서, 설마 동료들이 존재하는 현실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거냐?!”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리될 것이다.”
“……!!”
망량선사는 마치 고양이 모습일 때 같은 정 하나 없는 냉막한 얼굴로 말했다.
“짚이는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이미 무수한 인과를 파생시켰고, 그만큼 과거의 역사를 많이 바꿔 버렸다. 바뀐 역사가 미래의 현실과 접점이 갈수록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현실은 인과율을 잃고 소멸하게 되겠지.”
“제기랄…….”
나는 설마설마 했던 암울한 상황이 닥쳐왔음을 느끼고는 이를 꽉 깨물었다.
과거의 역사를 바꾸기 때문에 미래의 현실이 사라진다는 것!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었음에도 전뇌자나 메피스토 같은 단말들이 괜찮다 하였기에 내심 안심하고 있었는데 망량선사가 나타나서 그게 아니라 하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나는 순간 스쳐나간 생각이 있어서 망량선사에게 말했다.
“파우스트는 연산능력과 천암비서의 권능을 이용해서 미래와 연결시켜준다고 했었어. 그 녀석이 거짓말을 했던 건가?”
“거짓말은 아니다. 무한히 많은 미래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찾아내서 도달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니. 그러나 너의 모든 행동이 계속 인과를 파생시킴으로써 그 가능성을 계속 낮추고 있었던 것이다.”
“크윽…….”
“그리고 네가 걱정해야 할 것은 현실의 소멸이 아니다.”
“뭐?”
망량선사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새로이 전생을 시작하는 시작지점이 그 과거로 고정될 가능성이다.”
“……?!”
뭐, 뭐라고?!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내가 크게 놀라서 눈을 부릅뜨자 망량선사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궁극적인 승리를 달성하기에는 더 좋을 수도 있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미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돼!!”
결국 망량을 비롯해서 내가 모았던 전생동료들이 모조리 소멸되면서 모든 인연이 끊긴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대답하라.”
“뭘 대답하라는 거야?”
“너는 행복을 원하는가, 아니면 진실을 원하는가?”
“……?”
이 질문은 무슨 의미인 거지?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망량선사였기에 나는 질문을 듣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망량선사와 대화하면서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잠시 후 마음을 가다듬고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후자는 무슨 뜻이냐? 진실을 알게 되면 행복하지 않게 된다는 거냐?”
“그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제길! 언제까지 의도도 모르는 소리만 계속…….”
“어느 쪽을 선택하든 네게는 각오가 필요하다. 나는 그 각오에 따라 네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행복을 원하지.”
“어째서?”
“당연한 거 아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지만 사실 나도 원래는 행복해지고 싶었어. 진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거라면 억지로 볼 생각은 없어. 이제 됐냐!!”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망량선사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게 너의 선택인가?”
슈욱
망량선사의 모습이 갑자기 평소의 새까만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망량선사는 고양이가 된 상태로 말했다.
“백웅. 그렇다면 전륜성왕을 죽여라.”
뜻밖의 한마디!
“……!!”
“현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꼬…… 꼭 죽여야 하는 건가?”
나는 망량선사의 말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봉황의 의뢰에 따르면 제일 죽이기 만만한 존재는 삼두 중에서 전륜성왕일 수밖에 없었는데, 전륜성왕 또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내심 죽이기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제 3의 길이 없는지 탐색하고 있었던 중이었기에 망량선사의 제안은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러자 망량선사가 말했다.
“네게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네가 현실로 귀환하고 싶다면 도와줄 뿐.”
“……그냥 지금 미래의 현실로 되돌려보내 주면 안 되냐?”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큰 굴레]를 직접 이을 수 있는 것은 천상천하 만상대겁의 우주 속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존재뿐.”
망량선사는 폴짝 뛰어서 큰 탁자 위로 올라가더니 말을 이었다.
“과거에 소멸했으나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강대한 존재라면 황제, 복희, 전륜성왕 중에서는 오로지 전륜성왕뿐. 현실과의 조각을 맞추고 싶다면 신적 존재의 유무를 먼저 조작해야 할 것이다.”
“으음……!!”
전륜성왕이 소멸되었다는 역사 때문에 그 미래에 끼워 맞춰야 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 이제부터 너는 천암비서와 직접 소통하는 걸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건, 단말을 이용하지 말라는 거냐?”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 굳이 단말이 아니더라도 천암비서가 너의 운명에 끼어들려고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어진 망량선사의 말에 나는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천암비서와 깊게 연결될수록 너는 [진실]에 다가가기 쉬워진다. 대신 진실이 아닌 것 이외에는 추구하기 힘들어지지. 네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너의 자유이다.”
“…….”
[진실]만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제약인가.
그래서 행복과 진실을 물어본 것인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서서히 주변의 풍경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뿌옇게 사라지는 안개가 이어지듯 했고 희미한 향내가 코끝을 간질였고 망량선사의 모습도 천천히 흐려진다. 망량선사는 사라지는 동안에 마지막 한마디를 했다.
[궁극의 절대지존(絶對之尊)…… 네가 그 유혹을 얼마나 견딜지 궁금해지는구나.]
***
파앗
“크윽.”
나는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와 달리 이곳은 환상이나 몽환 속이라는 실감은 없었고 현실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소을촌조차 아니었으며 생경한 궁궐의 침상 위였다.
…… 궁궐?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나는 비단금침에 누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약간 어둡지만 크고 화려한 궁궐의 침실이었으며 아기자기하지만 우아한 장식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내가 여기가 어디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났구나.”
나는 그 목소리가 저만치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나직이 말했다.
“전륜성왕.”
그랬다. 원래 내 얼굴을 한 채로 다가오는 건 바로 명계의 지배자 전륜성왕!
나는 전륜성왕임을 알게 되자 약간 안도감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역시 저는 죽었군요.”
“그렇다. 죽었으니 명계에 온 것이다.”
역시 그런 거겠지?
나는 잠시 전륜성왕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전륜성왕 님. 그러면 저 좀 살려주십시오.”
“…….”
“어쩌다 보니 죽게 됐지만 아무래도 죽은 상태면 손해일 거 같아서…….”
내 말에 전륜성왕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침상 옆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유망과 싸우며 아주 멋있는 호기를 부리던데 이제 와서 그러면 모양 빠지지 않는가?”
“…….”
내가 유망과 싸우는 모습을 다 보고 있었군……!!
나는 약간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애써 얼굴에 철판을 깔며 말했다.
“계, 계산적으로 죽은 건 아닙니다. 다만 그때는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재밌군. 무(武)에 대한 마음이라…… 그대는 그대에게 마음을 맡긴 자들을 위해서 살아가는가?”
“그런 셈입니다.”
전륜성왕은 재밌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순이군. 강대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뛰어난 신력을 얻어야만 하는데, 그 길은 그대가 원하는 대로 무의 극에 도달하는 길과는 배치되는 것…… 둘 다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전생자이니 언젠가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하겠지.”
“……?”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전륜성왕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백웅이여. 일어나서 나를 따라오라.”
스윽
전륜성왕은 그 말을 남기고 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고, 나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서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선 순간 깜짝 놀랐다.
“컥?!”
내, 내 발이 반투명하다?!
이건 틀림없이 영체 상태인데!
나는 내 육체가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전륜성왕을 따라붙으며 말했다.
“내 육체가 사라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겁니까? 저번에 올 때는 육체가 멀쩡했…….”
“…….”
드르륵
전륜성왕은 문을 열더니 내 말에 대꾸했다.
“죽은 자에게 육체 같은 게 어디있는가? 그대는 죽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되살려주십시오. 그러면 되잖습니까.”
“안 된다.”
“네?”
이어진 전륜성왕의 말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그대에게 막대한 호의를 베풀어 되살려주었지만, 죽은 자를 되살리는 건 원래 우주의 금기. 금기를 위반할수록 전 우주의 인과율이 혼란스러워지므로, 나는 그대를 섣불리 살려줄 수 없다.”
뚜벅 뚜벅
전륜성왕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
나는 당황하다가 외쳤다.
“그, 그 정도는 얼마든지 당신의 권능으로 무마할 수…….”
“물론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인 영혼이라면 그 정도의 인과율은 무시할 수 있겠지.”
“그러면 왜…….”
전륜성왕은 잠시 뒤돌아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백웅 너는 전륜성왕의 자격과 본질을 소유하고 있다. 나와 그 존재가 중첩되기에 네가 부활하게 되면 명계가 쪼개어지므로, 나는 이제부터 네 부활을 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